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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 작성자 캔디
  • 작성일 2026-07-25
  • 조회수 278

나는 이 시로 김이듬 시인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따라서 오직 이 시에 근거하여 비평을 할 생각이다.


<시 전반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

대화 형식의 전개&소설과 같은 전개: 신기하고 참신하고, 그래서 놀라웠다. 어렵고 난해한 용어를 사용하는 다른 시들과는 달리 일상적인 언어의 사용으로 인해 가독성이 높으며 이해가 쉬웠다.


1부


소비뇽: 말을 건네는 어투를 사용한다. 인상 깊은 구절은 마지막의 '우리 하염없자 야생하자' 그 이유는 '야생을 뜻하는 소비뇽을 함께 마시며 시간을 보내자, 위험해도 도전하자'는 말을 이렇게 짧게 끊고 야생이라는 말을 사용한 점이 신박했다. 또한 소비뇽은 화자의 죽은 강아지의 이름이라서 이 강아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아지는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무모한 동물로써 도전이라는 것을 강아지에 빗대어 묘사한다고 생각했다. 야생을 동작으로써 '~하자'라고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청유형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야생은 거칠고 위험하지만 그 위험 속에서도 무모하게 도전해보자는 메시지가 느껴졌다.


산책: '선녀가 없으므로 선녀탕이 있었다'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통해서 선녀탕에 선녀가 없는 쓸쓸함을 표현한 것 같다. 부재를 통해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 위한 장치로 느껴졌다.


귤 따기 체험: 귤을 가위로 잘라내는 것에 비유하여 점층법을 사용한다. 관계까지도 끊어내고 말과 시간까지도, 잘라낸 것만 고심해서 밭에 심어 키우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귤을 따는 것을 삶에서 소중한 것을 골라 심는다고 표현한 점이 인상 깊었다. 시인은 쉽게 귤을 가위로 잘라내듯 자신에게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망설임 없이 잘라내는 결단력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 같다.


2부


멀고도 가까운 이사: 짧게 이어진 내용(이사 과정)의 시들을 엮어 하나의 제목으로 표현한 점이 인상 깊었다. 화자가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불편한 일들을 각 챕터마다 진솔하게 풀어내며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대변하는 것 같다. 이를 통해 독자는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


흼은 색깔이 아니다: '빛이 없는 물에서 헤엄을 쳤다' 화자는 흰색보다는 검은색을 좋아하며 검은색은 함부로 빛이 스며들지 못한다. 화자는 굳이 순결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이 구절에서 어둡다기보다는 화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세상에서 편안하게 유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빛만을 쫓지 말고 어둠 속에서도 충분히 자유롭고 편안할 수 있음을 담아낸 것이 아닐까?


똑같은 식물이 아니다: '언니가 돌아올 때까지 돌봄을 부탁한 식물을 나는 만지지 않았다, 누가 나를 만지는 게 싫으니까'에서 식물과 나를 동일시하여 식물의 상태와 그것을 서툴게 키우는 모습, 그로 인해 죽은 식물이, 화자 자신의 상태와 자신을 잘 돌보지 못하여 결국 마음이 죽어버린 것을 표현하는 것만 같았다. 이후 똑같은 식물을 사서도 문을 닫아 거는 모습을 통해 화자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3부


그때보다 지금이 나은지: 아이를 혼자 두고 외출한 엄마와 그것을 질책하는 어떤 한 사람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나 또한 엄마가 두 살짜리 아이를 방치한 채 외출한 게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아빠가 교도소에 가고 혼자 변기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느꼈을 공포감, 무력감, 우울감을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조차도 마음대로 만나지 못해 답답했을, 그래서 탈출을 감행했을, 엄마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시인은 아마도 어머니의 희생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님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머니이기 이전에 그들은 한 인간이었고 꿈 많던 여인이었다.


오지의 건축물: 여성적 어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자신이 이재민이 되어 가설 건축물에 살게 된 것이 '신이 자신을 사랑해서 그런 것이다'는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이 시는 전반적으로 고생을 하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반어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애쓰고 있는 듯하다. 다만 화자가 진실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것은 마지막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을 보며 절벽에 둔 집터 생각을 하고 잿더미와 폐기물로 남은 생활을 걱정한다는 부분에서 실은 갈 곳을 잃고 절벽 끝까지 몰린 채 앞으로 남은 생활마저도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화자의 심리가 잘 드러난 부분이라고 본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드디어 이 시집의 제목이자 주제가 될 시가 나왔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나는 벽돌만 한 비누를 집어던지지 않았다'라는 구절이 특히 인상 깊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아무런 변화가 없음을 자각하고는 포기한 것 같았다. 자연이 잘못해도 결국 사람의 잘못이 된다는 말 또한 인상 깊은 구절 중 하나였다. 원인 제공은 자연이 했지만 결국 모든 책임은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인간이 져야 하는 모순점을 짚어내고 있다. 사랑하는 동생이 아주머니에게 오해를 받아도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말하는 화자의 모습에서 '체념'이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는 것은 누구를 미워하든 바뀌는 게 없기 때문에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는 화자의 무력감이 들어나는 구절이라고 생각했다.


4부


폭우가 우울을 부르지 않을 때: 이 시도 제목과 내용이 모순된다고 본다. 폭우 때문에 노트북도 걱정이고 동료도 걱정된다. 반복적으로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리고 이 뜻을 마지막 연에서 정리해준다. 극단적 선택을 앞둔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이라고. 즉, 화자는 폭우라는, 죽음을 생각하기엔 굉장히 사소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제목과 내용이 모순처럼 느껴진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모순은 맞지만 화자는 정말로 폭우가 우울을 부르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죽음을 불러올 뿐. 우울이라는 감정에 익숙해져 우울하다는 감정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는지 모른다. 그저 우울할 새도 없이 죽음을 생각하는 게 일상화된 거 같기도 하다.


가을하다: 가을을 동사로 표현한 것이 신박하고 재밌었다. 10월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고는 사라진 그 사람을 그리워하며 연락이 닿지 않는 상대를 갈망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마지막 문장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10월은 시월로 소리나는 탈락의 미덕을 갖고 있다' 10월이라는 발음이 우리가 사용하는 발음 체계로 하면 '시붤'이라고 나야 하지만 '시월'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특성이 있다. 부드럽고 안정적인 계절감을 느낄 수 있으며 10이라는 숫자는 완전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10월을 달력에서 보면 완전하지 않고 약간 어정쩡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모순이 있다. 또한 어쩌면 그 사람의 삶에서 탈락해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시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신박하면서도 아련한 발상이다. 


<결론>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는 것은 다른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은 채 본인만을 자책하며 살았던 삶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이 시는 시인의 삶을 조금은 반영한 듯 보인다. 즉, 시와 동시에 수필의 느낌이 물씬 밀려왔다. 이는 '언어의 집', '어떻게 하면 시 짓기가 다시 재밌어질까' 이런 구절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시인 자신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구체적이고 설명적인 어조를 사용함으로써 보다 생생함을 더해준다.

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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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현서

    우와 1빠로 쓰셧군요. 대박...

    • 2026-07-26 23:33:59
    양현서
    0 /1500
    • 캔디

      @양현서 책을 읽으면서 정리한 덕분에 그런가봐요. 저보다 훨씬 잘 쓰실 거 같은데 기대하겠습니다.

      • 2026-07-27 23:06:02
      캔디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