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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너를 받아들이기

  • 작성자 구포대교
  • 작성일 2026-07-29
  • 조회수 259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타자와 나 사이의 관계를 정립할 때 나는 타인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타인에게 나의 얼마만큼을 내보일 수 있을까인간이 인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겹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당장 누구나 타인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을 테기에고전부터 현대의 작품들까지문학의 늘 인간 사이의 오해와 타인에의 불이해를 직간접적으로 함유한다따라서 본 주제는 더욱 확장된다완전히 이해 불가능한 타인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는가.

 

 하지만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아니인간이라는 게 과연 이해받을 수 있는 존재일까평생 병에 시달리며 고독하게 지냈던 겐로쿠 시대 가인 나이토 조소는 독신한거 생활을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었다. ‘春雨やぬけたままの夜着*’ 아마도 밤의 속살을 적시는 봄비가 아니었더라면그 무엇도 잠옷 속의 쓸쓸한 나이토를 움직이게 하지 못했을 테다결국 봄비에 마음이 먼저 움직인 뒤에야 나이토는 몸의 형상대로 남은 요기의 그 구멍을 보게 됐을 것이다인간에게는 모두 그런 어두운 구멍이 있는 법이다그 어두운 구멍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그냥 구멍인 것이다그 어두운 구멍 속에서는 서로를 속이는 것도속는 것도 없다.

 

 *‘봄비가 오네 빠져나온 그대로의 잠옷의 구멍

 

 소설가 김연수는 단편 <그건 새였을까네즈미>를 통해 인간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고독한 존재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옛 일본 가인의 노래를 인용하며 모든 인간은 남이 이해하지 못할 검은 구멍을 지니고 있다 말한다.

 작품 속 등장한 주요인물 삼인방 – 네즈미세희세영은 모두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들이다세영은 언니인 세희의 반응이 궁금해 세희의 남자친구인 네즈미와 섹스를 한다네즈미는 그런 세영을 이해하지 못한다세영은 자신이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단 것을 뒤늦게 깨닫고 남편의 불륜 사실까지 의도치 않게 알게 된다그녀의 언니 세희가 생활을 정상궤도로 올려놓으려 분발하지만 쉽지 않다.

 

 세희는 내게 절대는 떠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맹세하라며 소리쳤다.

 

 세희는 작중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신뢰하려 가장 노력한 인물이다그러나 그녀는 종내에 욕설을 내뱉으며 두 사람에게서 달아나고 눈물을 흘린다세영의 사망 소식을 들은 후로 네즈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네즈미어떡하지이제 어쩌면 좋아중얼거리는 장면은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다몇 번이고 호명하는 그 이름마저 실은 본명이 아니었으니.

 그러나 작가는 인간의 이해불가한 검은 구멍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거부하려 들지 않는다작품의 마지막에 네즈미는 울고 있는 세희를 내버려 두고 집 밖으로더없이 깊은 밤과 꿈결처럼 아득한 어둠 속으로 떠난다이러한 결론은 기실 작품의 초입부터 서술되었다.

 

 우리는 저마다 어둠 속으로 젖어들 것이다우리는 저마다 고독한 존재로 남을 것이다서로 다른 해류를 따라 헤엄치는 물고기들처럼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가까워졌다가는 거무레한 얼굴로 이내 멀어질 것이다작별인사도 없이꿈결처럼죽음이나 망각이나혹은 그 어떤 공포도 이보다는 더 아득해질 수 없다우리가 저마다 자신만의 어두운 구멍 속으로 고립된다는 사실보다는우리가 그 품안에 안겨 있을 때는 그 어떤 이해도 불필요하다는 점에서 인간은 어둠에 본능적으로 애착을 느낄 수밖에 없다그 이율배반적인 애착에 대해 나는 조금 더 생각해본다환한 빛따뜻한 낮이 아니라 캄캄한 어둠서늘한 밤을 향해 우리가 지니는 애착에 대해.

 

 고독은 인간의 본성이며 혼자일 때 비로소 숨김없는 나완전하고 편안한 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이러한 김연수의 글과 김이듬의 시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뾰족 지붕과 하얀 천막들이

 천천히 기울어질 것 같았다

 

 순식간

 가벽 너머에서 만발한

 꽃향기가 넘쳐 왔다

 

 세상의 모든 꽃이 일제히

 내 감은 눈앞에서 피어났다

 

 쉽게 만족하는 나한테서

 시무룩하게 너는 뒤처져 걸었다

 

 원 없이 비 맞았다 비닐봉지로 휴대폰을 감싸니까

 비가 퍼부어도 좋았다

 

 서로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

 

 이 길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좁은 비탈길을 한참이나 올라왔는데

 

 사람이 많다

 넓고 호화로운 카페다

 

 몰랐어윗길에서

 여기까지 차가 들어오는 거

 

 너는 웃으며 내게 묻고

 명랑한 네게 적응이 안 된다

 

 <공원>, <현기증등 김이듬의 시에서는 두 사물 사이의 비대칭이 부각된다지붕은 기울어져 있고나는 너에게 뒤처져 걷는다좁은 비탈길을 올라온 카페에서의 너의 말들을 나는 적응하지 못한다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며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그러나 김이듬의 시 안에서 나는 그 사실에 순응하지 않는다서로에게 미안하다 말한다. <쪽에서 쪽빛을 얻기까지>에서는 나와는 다른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마음가짐을 갖는다.

 

 마지막 눈이 왔다오후에 출근해 보니 식물이 죽어 있었다마치 태어났고 평범하게 성장했고 온순했으며 살해당한 소녀 같았다.

 

 똑같은 식물을 사서 화분에 심어 두기로 했다아무도 모르게식물이 죽고 나서야 나는 그 식물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뿌리째 뽑아서 자루에 담아 천변 화원에 가져갔다.

 

 내 머리 위로 황사가 꽃가루처럼 내려앉았다. “네가 몬스테리아니?”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나는 문을 닫아 걸었다.


 세희는 끝내 네즈미의 본명을 모르고본명이 아니란 사실조차 모른 채로 네즈미와 이별한다김이듬의 시 <똑같은 식물이 아니다>에서도 나는 이름을 모르는 식물의 죽음을 맞이한다그러나 나는 같은 식물을 새로 구한 후식물의 이름을 알고호명한다인사를 할 때면 늘 이름을 호명하는 모습에서 타인을 수용하고 관계를 개선해나가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타인을 대하기란 언제나 어렵다당신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혼자인 순간을 사랑하는 것도 사람의 습성일 수 있겠지만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너의 색깔을 담을 준비를 하는 것이 함께 사는 사회의 일부로서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삐걱거리는 마루 위를 걸었다

 피아노 앞에 앉았다

 굳어 있던 손가락이 움직였다

 네가 올 거니까

 

 정원에는 새하얀 침대 커버가 마르고 있다

 긴 장마가 끝났다

 어제까지 흘린 눈물과 땀이 빈틈없이 사라지는 정오

 

 다시 폭풍과 기근역병이 올 거라는 뉴스가 들렸다

 찬장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고 유리잔을 떨어뜨렸지만

 아무것도 깨지지 않았다

 네가 올 거니까

 

 숟가락으로 죽을 뜨며 할머니가 말한다

 전쟁 중에서 결혼하고 피난 중에도 아기를 낳았다고

 살아 있으면 만난다고

 

 흔한 말인데 오늘따라 웃음이 난다

 처음 듣는 음악처럼 귀에 들어온다.

 네가 올 거니까

 새벽은 더 이상 푸른 절벽이 아니고

 밤은 더 이상 미완의 종말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연주할 곡을 고르는 동안

 무한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되찾는 동안

 더디게나마 네가 오고 있는 동안

 

 -에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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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빈
  • 2026-07-30
비극 속에서 타인과 춤추는 것

1. 삶은 부조리다 태어남은 선택할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선택할 겨를없이 내던져진 삶은 애초에 부조리라고 할 수 있다. 살면서 고통과 쾌락을 둘 다 얻을 수 있고 어찌 보면 고통보다 쾌락을 더 많이 누리는 삶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러한 도박에 불참할 기회가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이듬의 시집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의 1부 중 <한여름 저녁 한 시간 반>에서 화자는 누군가가 난데없이 맡긴 짐을 떠안게 되고 이 때문에 버스를 놓칠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화자는 자신 또한 이 짐처럼 누군가 &lsquo;세상에 맡겨 두고 찾아가지 않은&rsquo; 것 같다고 생각한다. 화자의 이런 생각은 선택의 기회 없이 탄생함을 인식한 것이다. 또한 짐을 맡기고 찾아가지 않은 건 사실상 짐을 버린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화자가 삶이란 부조리 속에서 내적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이미 태어났고,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 텐데, 그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부조리한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타인이다. 다른 이가 한 사람 인생의 의미가 된다. 그리고 김이듬은 타인을 내면화하는 걸 그 의미로 봤다. 김이듬에게 타인은 내면화가 가능한 존재다. 2부의 <나의 이방인 2>에서, &lsquo;너&rsquo;는 화자인 &lsquo;나&rsquo;와 대화할 수 있지만, &lsquo;탄식을 주워섬기는 너는 내 안의 방랑자&rsquo;, &lsquo;내게도 절친이 있다고/텅 빈 의자 위의 네가/나였음을 증명할 수 있을까&rsquo; 같은 문장들은 &lsquo;너&rsquo;가 &lsquo;나&rsquo;에게 타자이면서도 내면화되는 대상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lsquo;나&rsquo; 대신 분노하기도 하는 타인이지만, &lsquo;나&rsquo; 안에서 내면 안에서 &lsquo;나를 감시&rsquo;하기도 한다. 이는 &lsquo;나&rsquo;는, &lsquo;우리는 불화한다&rsquo;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 화자는 &lsquo;너&rsquo;와의 틈을 인식하고 갈등하는데, (내면 속 &lsquo;너&rsquo;가 &lsquo;나를 감시&rsquo;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자기검열의 주체로 &lsquo;너&rsquo;를 삼고 있는 것이다. <한여름 저녁 한 시간 반>에서 화자는 다른 사람이 맡긴 짐 때문에 환승 버스를 타지 못하고 터미널에 계속 남는다. 시 속에서 화자가 누군가 맡긴 짐으로 스스로 생각되는 것처럼 &lsquo;다른 사람&rsquo;도 세상에 맡겨진 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다른 사람이 화자에게 짐을 맡긴 건 화자가 그 사람을 내면화했다는 은유이다. 한 사람에게 원했든 아니든, 내면화된 타인은 삶을 변화시키지 않고 유지할 의미라는 것이다. 2. 이해할 수 없는 타인 그러나 타인은 온전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당신이 타인에게 의미라고 해도 타인의 삶은 당신이 의미가 아닌 부분에서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고 그것은 당신이 의미인 부분을

  • 금안백
  • 20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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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석호

    아! 시인님이 저번에 시로 올려주셨던 '네즈미'가 이 단편에서 영감받은 것이었군요!

    • 2026-07-29 15:10:56
    손석호
    0 /1500
    • 구포대교

      @손석호 바로그렇습니닷

      • 2026-07-29 17:18:42
      구포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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