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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내기 위한 언어-김이듬의 시 세계를 통과하며 보는 살아내는 언어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6-07-30
  • 조회수 394

 나는 늘 믿어왔다삶과 문학삶과 시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시는 삶의 수단이 될 수 있으며삶은 시를 지탱할 수 있을 거라고그렇기에 나는 늘 내 삶을 바탕으로 문학을 써왔다그래서 내가 쓰는 글에는 나의 순간순간을 이룬 학교’,‘기침’,‘소리’,‘가족’,‘친구’,‘그리움’,‘이방인’,‘유령과 같은 단어들이 존재했으며이들이 내 문학 세계를 이끌어왔다내 내면의 세계에서부터 외면의 타자에게까지 한 사람의 삶이 다른 한 사람에게 닿기를 바라며나는 끝없이 순간들을 마주하며 활자를 컴퓨터 화면에 새겼다그러면서 하나의 생을 담은 문학을 추구해 왔고 꿈꿔 왔다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경험과 삶을 텍스트 안에 담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행위들을 했다하루를 끝까지 살아내는 것감정과 ’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글을 쓸 수 있는 물건 앞에 가서 글을 쓰는 것이를 실천하기 위해 나는 글과 삶에 전념한다는 태도로 살아왔고 문학을 해왔다하지만 일상과 삶을 텍스트로 환원할 때 늘 빈틈이 생겼다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문학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이자 기본적인 수단이 문자라는 상징체계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의미론적 특징을 나타내는 기호 삼각형{Semiotic Triangle}은 기호[문자], 지시물개념 사이의 관계를 그려낸 것이다이 개념 안에서 기호와 지시물의 관계는 간접적인 영향을 가진다대표적인 예시로 나무라는 단어를 들 수 있다실제 있는 나무를 가지고 수필을 쓰거나 소설과 시를 쓴다 할 때텍스트 안에 적힌 문자 나무는 실제 필자가 바라보고 쓴 나무가 아닌 활자라는 것을알 수 있다이때 문자가 함유하는 것은 단순 개념이지 지시물이 될 수 없다그렇기에 삶 전체를 온전히 텍스트 안에 문자로 전환하여 넣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또한 이런 문자의 특성은 필자가 생각하는 것을독자가 온전하고 정확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많은 작가들은 자신과 독자들이 생각하는 사물의 심리 영상의 간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자신이 생각한 것을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묘사하고 서술해야 할 필요가 있으면 이런 식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이는 문자의 빈틈을 메우는 과정이며 타자와 세상과 소통하는 글쓰기에서 가장 기초적이면서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이렇게 구체적으로 쓰는 과정 안에서한 글 안에 많은 정보를 풀고많은 언어를 쓰며 과한 감정을 표출하게 되기도 한다실제로도 글을 쓰다 보면많은 습작생일반 초고를 보다 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중간중간에 보이기도 한다이런 과잉은 문학특히 함축성을 중요시하는 시에서는 문제가 되는 부분이 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들어서 시에서 함축의 방식이 조금씩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해 가고 있다고전적인 운문의 함축 방식보다는 서술하는 호흡으로 삶의 단면을 함축하는 산문시가 지금 한국 시단에서   두드러지게 보여진다대표적으로 2026 문학동네 신인상 수상자인 임유영 시인의 시편들송희지 시인의 시편들 등이 있으며올해 2026년 신춘문예 시부분 당선작들의 경향을 바라볼 때도 산문시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함축이라는 시의 개념이 산문시의 등장과 유행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런 흐름 속에서 오래전부터 산문과 운문 형식을 모두 사용하며 자신만의 과잉으로 자신의 삶을 글에 투영하여 시 세계를 펼쳐 나가는 시인이 있다바로 시인 김이듬이다.

 



1.김이듬의 과잉


 


김이듬의 시편들을 바라보면 초기의 시편과 현재의 시들이 조금씩 달라졌다는 것을 볼 수 있다그럼에도 초기부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그녀만의 특징 역시 시 속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이 둘 사이에서 중심이 되는 것이 바로 과잉이다.


과잉은 쉽게 말해서 본래 존재해야 하는 것보다 넘치는 상태를 의미한다그렇기에 문학에서 그리고 김이듬의 시에서 등장하는 대표적인 과잉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이미지의 과잉감정의 과잉단어 사용의 과잉표현의 과잉이 모든 것들이 김이듬의 시에서 시간에 따라 정제되거나 더 드러나게 된다이를 시간 순서대로 보면 초기에서 현대로 올수록 이런 과잉의 김이듬이 가지는 하나의 색으로 확립되면서 조금씩 그녀의 색으로 정제되고 있다그중에서 먼저 알아볼 것은 초기와 현재의 감정 과잉과 표현의 과잉이다.

 



1-1.살아내기 위한 과잉



 

이 인간을 물어뜯고 싶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널 물어뜯어 죽일 수 있다면 야 어딜 만져 야야 손 저리 치워 곧 나는 찢어진다 찢어질 것 같다 발작하며 울부짖으려다 손으로 아랫배를 꽉 누른다 심호흡한다 만지지 마 제발 기대지 말라고 신경질 나게 왜 이래 팽팽해진 가죽을 찢고 여우든 늑대든 튀어나오려고 한다 피가 흐르는데 핏자국이 달무리처럼 푸른 시트로 번져가는데 본능이라니 보름달 때문이라니 조용히 해라 진리를 말하는 자여 진리를 알거든 너만 알고 있어라 더러운 인간들의 복음 주기적인 출혈과 복통 나는 멈추지 않는데 복잡해 죽겠는데 안으로 안으로 들어오려는 인간들 나는 말이야 인사이더잖아 아웃사이더가 아냐

 

히스테리아」 中 {**, 49p.}


 

위 시는 김이듬의 2014년 작이자 2020 전미번역상 수상작인 히스테리아의 표재작이다. ‘히스테리는 정신 신경증의 유형 중 하나로정신적 원인으로 운동 마비실성경련 같은 신체 증상이나 건망 같은 정신 증상을 의미한다또한 이와 밀접하게 심리 용어로서의 히스테리는 정신적 원인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비정상적인 상태를 통틀어 이야기하는 말이기도 하다따라서 시의 제목이자 시집의 제목인 히스테리아는 독일어인 “Hysterie”의 영어식 표기인 “ Hysteria”라는 것을보면 시에서 등장하는 단어들의 의미를 파악해야 하며시에서의 과잉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우선시에서 과잉으로 나타나는 부분인 도입부를 봐보자. “이 인간을 물어뜯고 싶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널 물어뜯어 죽일 수 있다면” 위 시를 처음 보는 독자가 이 문장으로 시를 처음 마주했을 때독자는 강렬하게 반응한다그 이유는 물어뜯고 싶다’, ‘널 죽일 수 있다면과 같은 단어들이 상당히 날카롭고 강한 분노에서부터 나오는 극단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와 반대되게 시의 배경인 달리는 지하철은 너무 일상적이고 평범한 배경이다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독자들은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더불어 극단적인 단어를 과잉되게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독자는 글을 읽으면서 상황에 몰입하게 되어 히스테리’ 증상을 겪고 있는 환자인 화자가 되어보는 체험을 상상 속에서 할 수 있게 된다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위 시에서 나오는 상황들이 불쾌한 것이 아니라 왜 불편한 것인가를 바라봐야 한다그 전에 우리는 불편함과 불쾌함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불쾌함은 못마땅하여 기분이 좋지 않음을 뜻하는 말로사람들이 멀리하고 싶은 부정적인 의미의 감정을 뜻한다반면 불편함은 어떤 것을하기 거북하거나 괴롭다는 의미로곁에 있어도 되지만편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이를 볼 때시의 배경이 일상이라는 점뿐 아니라 시에서 화자가 느끼는 분노와 원망을 글을 읽는 독자 ’ 자신도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만약 독자 자신이 위 시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공감하고같이 분노한다면 그 상황 자체가 문학에 그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일상일 가능성이 크다그리고 시인은 용기 내어 삶의 단면을 함축하여 하나의 호흡으로 고발할 수 있는 산문의 형식을 채용하여 과잉되고 날 것의 언어를 시를 통해 목소리를 진솔하게 냈다고 할 수 있다이는 과잉이 단순 미숙함이 아니라 전념을 다하여 살아온 시인의 무의식과 의식의 교차점에서 탄생한 발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이는 마치 김수영의 시학과 매우 닮아있다.


 

2.전념하는 삶 그리고 난해성과 신화성


 

김수영의 시는 처럼 사회참여형 시처럼 고발의 성격을 띠는 시도 있는 반면에 시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풀어내는 시들도 있다대표적인 시로 설파제를 먹어도 설사를 막지는 못한다” {설사의 알리바이」 }처럼 설사를 싼 경험을 가지고 쓴 시부터 수입에 대해서 너나 나나 매일 반이다./ 모이 한 가마니에 430”{ 민용에게」 }처럼 너무 일상적이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과 마음속 욕망을 있는 그대로 표출한다그렇기에 김수영의 시는 온몸을 다해 전념한 상태로 살아가면서 쓴 시라는 의미로 온몸의 시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이는 김이듬의 근래 시들과 매우 유사하다자신의 모난 부분아픈 부분 그리고 화자와 시인이 느끼는 분노미움슬픔 등의 감정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혹은 과하게 쓰임으로 보여주는 부분에서.



 

2-1.초창기 김이듬 시의 난해성



 

그녀의 초기 시편들 역시 일부 시에서는 시인 자신이 살아가면서 느낀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풀어내는 작품들도 있다그러나 그 과정이 다소 미숙하여 독자에게는 난해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그 대표적인 작품이 서머타임이다.



 

발목은 시들어간다

걸음을 낭비했다

위세척을 하고 넌 더욱 고통스러워하고

여름이 제일 추워나는 없어질 거야

너는 눈물을 흘리며 웃지만

풍선을 불어줄게

날아오르다가 터지겠지

꿀벌은 꽃잎 속에서

고양이는 나무 위에서

너는 내 무릎을 베고

 

아니널 따라하지 않아

왜 남은 날들을 신경 써야 하니

잘하려니까 심장을 멈추고 싶잖아

난 일광을 낭비할 거야 날 낭비할 거야

낮에는 커튼을 치지

많이 걷지 않고 버스에서 곧잘 자

뭘 찾으려고 넌 거기까지 갔었니

 

내 모닝콜은 거슈인의 자장가

내일 못 일어나도

여름은 살기 좋은 계절

여름은 죽기 좋은 계절

그럴 리 없지만

물고기는 수면 위를 날고 목화는 익어가는데

아빠는 부자 엄마는 멋쟁이

그러니 아가야 울지 말아라

 

서머타임,전문 *


 

시는 첫 행부터 발목이 시들어간다라는 강렬한 표현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이때 독자는 발목과 시들어간다라는 동사에 중점을 두게 된다그럴 때화자는 현재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알 수 있다그리고 바로 뒤에 행인 걸음을 낭비했다라는 표현은 현재 움직이기 힘든 화자가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그래서 이 두 연을 통해 독자는 화자가 어떤 길이든 열심히온 힘을 다하여 걸어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여기서 길은 통상적으로 문학에서 사용되는 인생길을 의미하고 걸음은 살아가는 것 자체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 해석을 했어도이후 나오는 이미지들과 서술들은 쉽게 해석되지 않는다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미지의 과잉이다. 3행 이후부터 시는 다양한 단어를 이미지화해서 보여준다대표적으로 위세척거슈인의 자장가목화물고기 같은 단어들이 있다이들은 서로 연결되는 연관성을 중시하기보다는 서로 비약적으로 연결된 것같은 인상을 준다그렇기에 시가 하나의 중심 이미지로 수렴되지 않고 여러 이미지로 힘이 분산된다그런 이유로 시를 처음 읽는 독자나일반적인 해석을 중심으로 시를 읽는 독자에게 위 시는 읽기에 다소 무리가 있는 난해성이 있는 시에 속한다.


이런 의미 해석의 난해함이 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경우는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볼 수 있다시인이 생각하기에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시의 깊이와 완성도실험성이 올라간다고 판단되는 경우두 번째는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감정이 그만큼 정제되지 못한 경우로 볼 수 있을 것이다이 둘 중 하나로 김이듬의 서머타임을 정의한다면 후자라고 말할 수 있다그 이유는 시 자체가 산만하긴 하지만산만함이 혼란한 청춘의 상태와 감정 그리고 정서로 표현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위 시를 후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할 말은 많지만온전히 정리되지 않은 날 것의 감정들이 시인의 손으로 표출된 세계이자화자와 화자를 만든 시인이 지금 함께 마주 보고 있는 세상이라고그리고 이를 온전히 담아내고 싶어 했던젊은 날의 김이듬의 생존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김이듬의 초기 시는 김수영의 온몸의 시학과 비슷한 특징이 그려진다똑같이 삶에서 느낀 것시인 자신이 마주한 세계를 정제보다 현실의 배경이 아니더라도 감정이 존재하는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한다그 과정에서 김이듬의 시에서는 다소 난해함을 띠는 부분이 존재하게 되었다그렇지만더불어 김이듬이라는 시인이 삶 구석구석의 삶으로서 존재하는 과잉된 폭력과 모순된 제도들을 향해 외치는 그녀만의 목소리 역시 확립되고 세상에 퍼져나가게 되었다이 역시 추구하는 방향이 김수영의 시학과 매우 유사했다.



 

2-2.김이듬 초기 신화성



 

하지만그녀의 초창기 시들은 온몸의 시학과 다른 특징이 하나 있었다그것은 바로 신화성이다신화와 환상성이 잘 드러나는 시가 바로 세이렌의 노래.



 

더 추워지기 전에 바다로 나와

내 날개 아래 출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낡은 배로 가자

갑판 가득 매달려 시시덕거리던 연인들

물속으로 퐁당

물고기들은 몰려들지조금만 먹어볼래?

들리지내 목소리이리 따라와 넘어와 봐

너와 나 오래 입맞추게

 

세이렌의 노래」 전문 *


 

위 작품은 김이듬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명랑하라 팜 파탈의 첫 시인 세이렌의 노래우선 세이렌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다전통적인 의미의 세이렌은 얼굴은 여성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한 신화 속 괴수를 뜻한다그러나 중세 시대를 지나면서 세이렌의 모습은 점차 인어와 가까운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었다시에서 등장하는 세이렌의 모습은 첫 도입인 더 추워지기 전에 바다에서 나와라는 부분으로 볼 때 중세 이후의 모습으로 보인다그럼에도 불구하고전통적인 의미의 세이렌의 모습이 전혀 없어지지는 않았다설화에서도 시에서도.


시에서만 보이는 세이렌의 전통적인 특징으로는 내 날개 아래 출렁이는이라는 표현에서 날개라는 단어이다이는 세이렌의 전통적인 외형을 파도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이는 마치 전통으로 대표되는 과거와 현재로 대표되는 지금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으며완전히 세이렌이라는 존재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렇기에 고대 그리스와 현대 세이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을 알아야 한다사람을 목소리나 노래로 홀려서 뱃사람들을 물에 빠트리거나 잡아 먹었다는 설화 속 내용을.


위 시에서는 화자로 보이는 세이렌과 갑판 위 연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그러나 이 둘의 모습은 다소 다르다. ‘연인들은 시시덕거리며’ 웃고 있지만세이렌 바닷가에서 그들이 물에 빠지기를 기다리며 연인들 그리고 위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이 모든 장면이 시로서 보여지는 세이렌의 유혹으로 살인하는 장면이다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은 바다와 낡은 배이다.


옛날부터 뱃일과 바닷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다는 삶 그 자체였다바다는 그들에게 양식을 주는 동시에 목숨을 뺏는 양면성을 가지는 존재였기에그렇기에 여기서 바다에 대한 해석을 인생과 삶으로 할 수 있다그리고 그 위에 떠 있는 배는 삶을 살아가면서 소속하게 되는 사회라고 해석할 수 있다그때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바로 낡은이라는 형용사다이 형용사 하나로 배는 기성세대의 비합리적이고 위험하고 폭력적인 느낌의 사회로 둔갑하게 된다이를 바라볼 때 세이렌은 이런 폭력에서 벗어나려고 외곽에서 도망처 살거나외곽에서 불합리한 사회를 바라보는 한 사람의 영혼다수가 아닌 소수인 개인약자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시의 제목인 세이렌의 노래와 세이렌의 태도는 불합리하고모순투성이인 낡은 배와 같은 사회에서 다수와 함께 생활하지만소수인 한 개인들에게 향하는 폭력이나 모순의 대물림을 끝내고 싶어 하고끝없이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외치는 시인의 욕망이자 목소리처럼 들린다더 나아가 위 시 자체가 세이렌의 노래처럼 들리게 된다.


이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시인이 선택한 것이 바로 위 시와 같은 신화에서 비롯된 시다신화는 보통의 인간 이야기는 아니다세상을 창조한 신들의 이야기이자 귀신의 이야기다그렇기에 대부분의 인물들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다이런 능력들은 신화 속에서 악한 자를 벌하거나자연의 압도적인 힘을 보여줄 때 쓰인다그렇기에 이런 신기한 능력들과 괴이한 모습들이 대중들에게 인상 깊게 각인이 된다그런 의미에서 시인 역시 자신의 목소리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다수 속 소수인 나라는 개인이 겪는 지독하고 모순적인 삶을 대중에게 더 깊숙이 남기기 위해 쓰였다고 보인다특히 김이듬의 초창기 시에서는 분노와 원망이라는 감정들이 많이 보였기에 환상성은 시를 쓰고 자신의 목소리로 살아가기 위해 쓴 보호막 같았다그리고 이는 온몸의 시학과 다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보이지만시 내부 속에 있는 감정들의 온도는 똑같이 뜨겁고 강렬했다.


그러나 환상과 신화로 포장된 김이듬의 보호막이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어느 시점에서부터 그녀의 시에서 일상성이 강해졌고분노보다는 절망 속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의지가 전보다 다소 정제된 과잉과 함께 보이기 시작했다그 전환점이 된 시집이 바로 투명한 것과 없는 것이다.



 

2-3. 전념으로 살아온 일상의 시


 

가진 게 없지만

시와 함께라서

제 삶은 충만하고 행복했습니다

어제 시골 한 회관에서

이십대 신인의 수상소감을 들었다

눈물이 났다

나만 이상하게 살아가는 건 아니다

 

2023년 11

담양 글을 낳는 집에서

김이듬

 

시인의 말」 전문 [***, 5p.]


 

투명한 것과 없는 것의 도입이라고 불릴 수 있는 시인의 말이다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그녀의 2017년 작 표류하는 흑발과 시인의 말의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표류하는 흑발에서 쓴 표현인 바람 불었고 나는 움직였다와 달리 구체적인 상황을 가지고 본인을 성찰하고 있다는 점이다이는 위 시집 전반에서 나타난다.


시의 첫 시인 입국장두 번째 시인 법원에서」 그리고 해당 시집의 시 중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에서 먼저 공개된 후배에게까지 나타난다이들 모두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과 상황을 가지고 쓰인 시들이며 동시에 분노보다 다정함이 좀 더 돋보이는 시들이다그런 시들 중 시인의 태도가 변화한 이유를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시가 바로법원에서이다.

 


지문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떼야 할 서류가 있는데

무인 발급기가 나를 식별하지 못한다

내 살갗 무늬가 나의 단서를 갖고 있지 않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나를 확인한다

나는 나를 떠나버린 것 같다

 

잠시만 안고 있어

제 아이를 내 품에 안겨놓고 돌아오지 않는 여자처럼

 

비가 오니까

피부가 촉촉하게 팽창해서

내 지문이 변했을지 모른다

빗길에 중앙선을 넘은 트럭처럼 나는 나로 잠시 미끄러지는지 모르겠다

 

이탈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민원실에서

 

의자를 당겼는데 테이블고 움직인다

분리불안을 느끼는 관계처럼

 

신체와 영혼처럼

의자와 테이블이 일체형이다

버릴 때는 폐기물 처리비 납부필증을 한 장만 붙이면 되겠지

 

지문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야 하는데

나의 여부를 알 수 없다

 

봄비가 오니까

사람들은 미래처럼 외로워서 자아라는 존재를 발명한다

어린 나를 더 어린 내게 던져두고

사라진 엄마를 미워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법원에서」 전문 [***,16~17 pp.]


 

위 시는 누구나 살면서 적어도 한 번씩은 때게 되는 가족 관계 증명서와 한 번은 이용하게 되는 무인민원발급기와 관련된 이야기다시의 도입은 다른 김이듬의 시들과 마찬가지로 강렬하다이 문장은 서류를 때러 법원에 갔는데 무인 발급기가 본인을 식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이 상황을 보고 화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무인 발급기가 나를 식별하지 못한다라고일상에서의 상황으로 보자면누구나 한번은 겪었을 기온습도 등으로 인한 기계 오류 혹은 의뢰자 본인이 지문을 기계 위에다 잘못 찍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하지만 시인은 이를 지문의 잃어버림으로 표현했다이는 낯설게 일상을 사유하는 동시에 시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동시에 시를 읽을 때 주의 깊게 봐야 하는 시어가 된다.


그중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하는 시어가 바로 지문’ 특히 엄지손가락 지문이다시에서도 그렇고일상에서도 그렇고 와 관련된 서류를 무인으로 떼야 할 때는 지문 인식기에다가 엄지손가락’ 지문을 인식시킨다더불어 주민등록증 뒤편에 지문 등록하는 곳에는 엄지손가락’ 지문이 있는 것을확인할 수 있다이는 지문이 각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개인의 고유한 특징이다이런 특징 때문에 사회적인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지문이 사용되고 있으며그중 엄지손가락지문이 제도권 안에서 가장 작은 단위로서 개인으로 식별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그렇기에 시에 이를 대입하면 엄지손가락’ 지문은 제도권 안에서 존재하는 현재의 화자 더불어 지금을 살아가고살아왔던 수많은 화자의 초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것은 화자라는 존재다지금 발화하고 있는 시점의 화자는 수많은 과거를 통과하면서 지금에 도착한 존재이다그렇다면 지문 안에 있는 것들은 지금의 화자를 이루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 그리고 쌓여갈 순간들이라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시에서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사람들은 미래처럼 외로워서 자아라는 존재를 발명한다.” 이때 자아는 수많은 시절의 가 하루하루 삶을 버티면서 살아온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이를 발명해 나아가는 과정을 살아가는 것생애 자체로 볼 때그 과정에서 우리의 지문은 때로는 잃기도 하고바뀌기도 하며생기기도 한다마치 상처를 마주 보고바라보며 극복해 나가며 아픔이 묻어지고사라지고 결국 살아지는 것처럼.




김이듬의 시속에서는 엄마’, ‘여자에 대한 존재가 자주 나왔으며특히 엄마라는 단어가 나올 때 다소 가격해지는 경향이 있다이는 화자를 만드는 시인에게 있어 엄마라는 존재가 사랑과 이해보다는 원망과 분노에 관계가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시인의 생애서도 그러했고하지만위 시에서는 그 상처가 극복되지는 않았어도미움과 분노원망과 같은 감정에 잠식되어 있지 않는다이를 보여주는 부분이 바로 시의 결미와 어조이다위 시는 앞선 시들과 다르게 잠시만 안고 있어라는 구어체적인 표현이 마치 어린아이에게 부모가 전하는 말처럼 다정하지만서글픈 감정이 응축된 어조로 표현되고 있으며마지막 결미에서 사라진 엄마를 더 이상 미워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라는 표현이 이전 시들과 달리 덤덤하였기에 미움과 원망 그리고 분노보다는 그 이상의 덤덤하고 단단한 감정이 느껴지며 시가 감정에 잠식되어 있기보다는 살아내기 위해 단단하게 풀어내고상처를 견고하게 봉합한 과정으로 읽히게 된다이는 기존 시와 다르게 김이듬에게 면모이며 시의 제목인 범원에서의 법원이라는 냉정한 판결의 공간처럼 상처를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살아내면서 과잉하고 정제하며 다정하게 쓰겠다는 포부로 보인다그 이유는 뒤에서 나오는 다른 시 그리고 이후 나오는 시집에서 드러나는 정서가 분노미움보다는 과잉되지만 정제된 삶의 언어가 튀어나오기 때문이다대표적으로 위 시집에 수록 되어 있는 후배에게가 그러하다.



 

네가 사는 것도 좋아했으면 좋겠다

 

너를 기다리는 카폐에서 옆자리 사람들의 대화를 듣는다 아이들 점수아이들 담임아이들 친구아이들 운동장아이들 급식......

학부모 회의를 마치고 온 두 사람은 세 시간 넘게 아이들 이야기에 몰입한다 한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멜빵바지를 입었어 둘 다 4학년 2반이며 한 아이는 수학을 잘하는 여자아이한 아이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키가 작은 남자아이인 걸 나도 알게 되었어

 

사랑하는 대상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가장 많이 말하는 거라면

나는 너를 다섯 번 생각했다

이리하여 쓴다

 

사는 게 뭘까?

연말 퇴근길에 너는 말했지

다른 부서 과장의 부친상에 조의금을 부쳤고 야근을 했고 배고파 죽겠다고

 

[중략]

 

나도 너처럼 습관적으로 한숨 쉬지만

네가 얼굴 뾰루지랑 새차를 걱정하면서도

솟아오르는 웃음을 터뜨리면 좋겠어

 

어쩌면 삶에 의미가 있을지도 몰라

의미 없어도 생생하지

사는 걸 꽤 좋아하면 좋겠어

 

후배에게」 中 (***66~67 pp.)


 

위 시는 타인을 기다리는 커피숍에서 있었던 일을 그린 시다화자는 후배라는 사람을 기다리며 옆자리 학부모들의 수다를 듣는다그러면서 화자는 후배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후배는 집단 속에서 어떤 기준점이 되는 어느 사람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이는 우리가 사는 삶과 사회라는 집단 역시 그러하다. 이런 관점에서 위 시를 볼 때  시 속 화자는 단순한 직장 상사가 아닌 인생의 선배처럼 보이게 된다. 그렇게 위 시를 본다면, 먼저 살아온 사람이 후대의 사람에게 전하는 따뜻한 바람이자 잔소리처럼 들리게 한다. 


화자는 좋겠어와 같은 단어를 과 이겨내는 것’ 위주의 단어에 붙여 말한다이때 좋겠어의 표현은 지나치게 반복된다그러나 이런 과잉 덕분에 화자의 감정인 후배인 네가 그저 살았으면삶을 살아냈으면 하는 선배이자 어른의 마음이 독자에게까지 느껴지게 한다더불어 사랑하는 대상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가장 많이 말하는 거라면나는 너를 다섯 번 생각한다/이리하여 쓴다와 같은 표현 그리고 후배인 네가 시 내부에서 특정인으로 지목되지 않은 점시 자체가 구어체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후배이자 너는 특정 인물이 아닌 위 시를 읽고 있는 독자에게 하는 말처럼 보인다그렇기에 독자는 시인을 선배로 바라보게 되며 후배입장에서 위로를 받거나사는 것에 대한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시를 읽는 독자에는 시인 역시 포함된다그리고 그 독자 중에서도 가장 먼저 시를 읽는 사람이 된다그 관점에서 돌아봤을 때 위 시는 과거의 삶을 살아온 선배인 과거의 내가앞으로 살아갈그리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후배인 현재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한 편시 한 편으로도 읽힌다.


이런 시 한 편에는 화자를 만든 시인 자신의 삶이 덩어리 채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동시에 하루하루 일상에 전념을 다해 살아낸 사람의 생존방식이 생각하고 사유하고 지금것 쌓아놓은 분노와 감정을 넋두리 하는 행위가 시 쓰기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리고 이런 성격을 띠는 작품이 바로 클라이맥스 없는 영화처럼이라는 시다.


 

사람들은 모든 서사에 절정이 필요한 것처럼 말하지만

강렬한 클라이맥스 없이도 아름다운 영화를 기억하고 있다

단조롭거나 자연스러워도 좋을 텐데

자연사처럼 쉽지 않겠지

 

[중략]

 

자랐을 뿐인데

위험한 존재가 되어버린

하늘을 찌른다는 말을 듣기도 했을

 

처음으로 소나무를 안아본다

한아름 줄기에서 내 품으로 죽은 침염들을 밴다

벌레도 옮아왔나

가슴과 어깨 너머가 간지럽다

 

벌목공들이 다녀가도

뿌리의 그루터기는 볼품없이 남겠지

 

내가 나무들 둘레를 돌며 위로의 말을 속삭여도 될까

상록의 나무야

한 차례 절정조차 없었던 게 아니라

사시사철 매 순간 최선이었어

 

어쩌면 나무들은 베어지고 싶을지도 모르겠는데

 

나무의 감정을 모르는 내가

 

자기 연민의 넋두리를 뱉으면 안 되겠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숲의 세계를 향해

최소한의 접촉으로 다 아는 것처럼

 

클라이맥스 없는 영화처럼」  [***69~72 pp.]

 

시집이 되기 위해서 시가 인쇄되어 나오는 곳은 결국 종이다그 종이는 결국 나무로 만들어진다이를 생각하며 클라이맥스 없는 영화처럼을 읽어보면 삶과 시에 대한 위로와 자기반성이 들어가 있다.


클라이맥스가 없는 영화란 긴장감이 최고조로 이르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평탄하게 흘러가는 영화를 의미한다그런 평탄한 영화 속에서도 시 속 화자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연스러운 것에 대하여 생각한다나무가 나무로서 자라는 일자신이 사람으로서 그저 온 힘을 다해 생을 살아가는 일 그리고 결국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험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일을그러면서 화자는 벌목을 준비하는 나무에게 위로의 말을 건내고안아주며 말한다. “한 차례 절정조차 없었던 게 아니라사시사철 매 순간 최선이었어라고이 대목이 시의 제목인 클라이맥스 없는 영화처럼인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클라이맥스가 없다는 것은 평탄하다는 것을 이야기하지만이는 평탄함의 연속으로 살기까지 나무 그리고 사람의 삶이 꾸준히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말해주며 이 때문에 연속적인 클라이맥스 자체가 무감각해지고 둔해진 감각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 감각이 가득한 삶 속에서도 화자는 자신의 감정을 나무에게 투영하여 이야기하고 있다그것이 나무의 감정이든아님자기 연민의 넋두리든 화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시는 김이듬의 손끝을 통해서 나무로 만든 종이에 적혀 시집으로 출간되었다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김이듬 시인과 화자 그리고 독자가 한 그루의 나무 안에서 사지사철 그저 열심히 살아온 하나의 삶 안에서 소통하게 만든다.

일상의 언어와 과잉으로 시가 쓰이고 분노에서 다정함과 이해라는 정서로 변화가 이루어졌던 시점에서 2년 정도 지난 2025년 12김이듬의 시집은 더욱더 시 쓰는 삶시를 통해서 회복하는 삶그리고 잔해 속에서 기억된 수많은 삶 등장하였고 더욱더 일상적인 언어가 쓰이게 되었다.

 



3.회복하려고 나아가는 삶과 시


 

오래도록 어둡고

우울한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거대한 불에 휩쓸렸다

올해 봄날은 잿더미

암흑세계였다

 

생체발광할 수 있다면

차가운 빛을 만들 텐데

 

더듬어 시를 켠다

절벽이 보였다

 

자서{自序}」 전문


 

보통 시집에서 독자를 맞이하는 첫 글은 <시인의 말>인 경우가 많다그러나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에서는 시인의 말이 없는 대신 짧은 단편 시 '자서'가 있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첫 시인 위 시를 타 시집의 <시인의 말>처럼 읽게된다. 그랬을 때 눈에 각인되는 시어가 두 게 있다바로 와 이다. ‘은 타오르고빛을 뿜는 물성을 가지고 있다동시에 빛과 사물을 태우는 등 위험한 특성까지 가지고 있다그렇기에 봄날어둠빛 등의 단어가 오는 것에는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드릴 수 있다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는 켠다라는 동사와 함께 쓰여 마치 빛을 내는 속성을 가지는 것처럼 묘사된다는 것이다그렇기에 우리는 시집을 읽으면서 불과 시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3-1.회복의 시작은 절망으로부터

 

우선 김이듬은 2025년 3월 영덕에 있는 작업실을 화재로 잃었다그런 재난 속에서 출간된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를 읽을 때김이듬의 상황을 아는 독자들은 시인의 상황과 시집을 겹쳐서 읽을 것이다그러나 하나의 시 자체를 시인의 삶으로만 연결하는 것은 독자에게 하여금 넓은 독서를 할 수 없게 만든다그렇기에 시집 자체만 볼 때시인의 말에서 강조되고 눈에 띄었던불과 시그리고 글 속에서 나타나는 화재의 현장 그리고 재난과 잃어가는 것들과 그런 상황들의 연속인 삶 속에서 화자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중심축으로 두고 독자는 시집을 읽게 된다.

 

마을 사람들이 대피소에 모였다

 

초봄 철창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대형 풍력 발전기도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냐고 물었으나

돌아보면 뭐하냐는 답변과 헛웃음뿐

 

바람 부는 언덕 절벽에

불탄 집을 두고 피시한 이들

대부분이 노인

 

지금이 가장 불행한 시절일 것도 같은데

남은 날들이 별로 길 것 같지 않은데

 

슬픈 농담이지

고맙다

행복하다고 한다

 

살아남은 목숨들은

생에 깊이 사무친다

 

속절없이

사랑한다

 

초봄 대피소」 전문 [****,86~87 pp.]

 

위 시는 재난 이후 대피소의 풍경을 그린 시다불탄 집과 마을 사람들이라는 시어들 그리고 풍력 발전기 등을 봤을 때이 재난은 산불의 이미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이 상황에서 화자와 마을 사람들은 집을 잃어 불행한 시절과 순간을 보낸다그럼에도 화자와 마을 사람들은 헛웃음으로부터 비롯된 슬픈 농담을 하며 살아나간다마치 절망을 더듬으며 희망과 회복을 찾으려는 사람들처럼화마 속의 기억을 묻어놓으며 사무치며 살아나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의 제목이 초봄 대피소인 것이다대피소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잠시 피해 있기 위해 가는 곳재난 피해가 복구되기 전까지 대피해 있는 장소를 뜻한다시에서는 산불 피해를 피해온 풍경으로 등장하고 있다하지만시에서 등장하는 단어들 생에 깊이 사무친다와 같은 표현, ‘노인이라는 시어를 볼 때 우리는 산불이 단순 화재가 아닌 인생과 평생그리고 삶 전체에서 가장 아픈 시절과 부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그렇다면 대피소의 의미는 재난을 피해 온 장소라는 뜻과 더불어 슬픔마저 농담이 된 것처럼 마음속에 아픔이 묻어진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고 사랑하는 공간이자 슬픔조차 농담으로 포장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공간이 없는 경계의 공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이는 김이듬 시에서 자주 보이지 않는 연대와 경계의 만남으로 보인다.


화마의 자리를 연대의 씨앗이자삶의 상처와 경계로 보았을 때 이 화마와 시가 연관이 깊은 연작 시인 봄날 절경은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게 된다.


 

3-2.회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마주보기, 그럼에도 시쓰기

 


1

 

불타는 숲

불길이 치솟는 마을

 

나는 잊을 것이다

잊어야 한다

잊을 수 있다

 

불타는 숲

연기가 치솟는 마을

 

제가 된 구름은 엉겨 붙지 않는다

 

{중략}

 

불타는 숲

연기가 치솟는 마을

타죽은 사람들

 

나는 삶을 각오하지 않는다

 

{중략}

 

쓰지 말아야지 하면서 쓰지 말아야지 하면서 쓴다 쓰고 씀으로써 빠져나갈 수 있다는 착각마자 없으면서

 

이틀 밤을 세우면 쓰기를 멈출 수 있다

 

자고 일어나니 천막이 세워지고 있었다 입체적인

 

나는 내가 겪은 걸 토대로 언어의 텐트를 친다 나는 안 겪은 걸 못 쓴다 바로 지금을 쓰는 버릇 타인들이 싫어하든 지겨워하든 나는 별로 돌려서 말하지 않는다 너무 현실이라 믿기 어려워서

 

봄날 정경」 中 [****93~97 pp.]


 

봄날 정경은 총 3편의 시로 이어져 있다. 1은 산불이 일어난 현장의 잔혹한 모습을 그대로 그렸다. 2에서는 초봄 대피소의 배경으로 보이는 대피소가 나오고, 3에서는 화자의 트라우마에 관해서 이야기가 나온다여기서 주목해서 바라봐야 하는 시편은 봄날 정경의 2그 이유는 쓰기라는 단어가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화자는 글을 쓰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글을 썼다.” 그는 글을 씀으로써” 고통 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착각같은 희망마저 없으면서도 자신이 봤던 풍경들을 남들이 싫어하든 지겨워하든 돌려 말하지 않고 글을 썼다이는 대피소에서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형식인 텐트라는 메타포를 빌려 살아내기 위해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마주하고 그 기억들을 내면의 언어를 시로 이야기로 표출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그리고 그럼으로써 타인들의 시선으로 생기는 불편함이 가득한 대피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해석과 함께 더불어 그런 글과 시 때문에 이틀 밤을 새우는” 등 대피소 생활이 다소 어려웠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이는 시 창작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창작은 창작자의 고통을 덜어주고살아내게 해주기도 하지만내면에 있는 것을 모두 쏟아내고 마주보게 하는 행위이기에 창작자에게 감정적 과잉을 요구하는 고통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를 쓰면서 때때로 여러 번 멈추기도 한다. 가끔은 시를 쓰는 고통이 일상보다 더 크게 창작자에게 다가와서 일상을 방해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간혹 우리는 시 쓰기의 즐거움, 마주보기의 즐거움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린다. 이를 표현한 작품이 바로 넌 아직 재밌니」다.


네 주인집 정원엔 올해도 붓꽃이 피어났니?

 

넌 아직 반지하에 사니?

물이 새던 그 방에

죽은 시계를 벽에 걸어 놓은 채

 

내가 쓰다 준 회색 소파에 앉아 골똘한 표정을 짓는지

 

내가 놀러 가자고 해도 안 나가고

누가 사귀자고 해도 안 만나고

그렇게 살아도 지겹지 않니?

 

너 아직 붓을 안 꺾었니?

 

나는 가끔 시를 쓰다가 우는데

 

그림이 거의 팔리지 않아도

전혀 알아주지 않아도

너는 네 인생에 만족하더라

 

공공연히 너를 끌어내리려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가

찌그러진 물감 옆에 물통을 쏟으면서도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라

 

너는 화가라는 업이 짊어져야 하는 짐처럼 여겨지지 않니?

그 직업이 놀이처럼 재밌니?

 

어떻게 하면 시 짓기가 다시 재밌어질까

 

내일 나는 마감해야 해서

네 전시회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넌 아직 재밌니」 전문 [****110~111 pp.]


 

 위시에서는 두 인물이 나온다. 시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화자와 화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너'가 등장한다.  이 둘은 똑같이 예술을 행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화가인 '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아직도 재밌어 하는 반면에 시인인 화자는 '너'에게 "어떻게 하면 시 짓기가 다시 재밌어질까"라고 물어 볼 정도로 시에 대한 재미가 다소 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 원인은 다양한 것이 있겠지만 "너는 화가라는 업이 짊어져야 하는 짐처럼 여겨지지 않니?/ 그 직업이 놓이처럼 재밌니?" 라는 구절을 볼 때 이유 중 하나가 '시'라는 회복의 놀이이자, 감정적으로 회복하는 취미가 '직업'으로 변질되어서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결코 시를 포기하지 않는다. '가끔'이라는 부사가 붙기는 했지만, 화자는 '시를 쓰다가' 울기도 한다고 하며, 결미에 들어서는 '내일 나는 마감해야 해서/ 네 전시회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라는 구절을 통해서 화자 역시 '시' 마감을 진행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해서 봤을 때, 시인인 화자는 '시'에 대한 재미, 흥미, 열정 등은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계속 쓸 것 같은 행보를 보인다. 마치 '시 쓰기' 자체가 삶을 같이 나아가는 동반자이자 '나' 자신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처럼. 



4.태워도 타지 않는 전념의 언어


 

이처럼 창작자가 자신의 고통을 바라보며 시를 창작하는 행동은 역설적으로 시가 살아내기 위한 언어의 운동이라고 증명하게 된다그 이유는 회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절망을 더듬는 과정이 필요하고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길에서 우리는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끔 시를 쓰다가 우는”[넌 아직 재밌니, ****, 110~111 pp. 이유도 글을 쓰지 못하다가도 마감이 닥쳐오면 결국 글을 써서 제출하는 것도결국에는 시를 쓰면서 자신을 치유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그 과정에서 시인들은 서로 다른 온몸의 시학과 생존의 시학을 사용하게 된다.


그중 김이듬은 삶의 모순과 과잉 그리고 비약신화일상 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문학 안에 넣어 이야기한다때로는 그녀의 시들이 과하기도 하지만시 속 안에 들어 있는 감정의 진정성만큼은 독자에게 하여금 강한 위로나 삶의 공감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을 열심히 불태우는 사람의 모습에 삶에 전념하게 되지 않을까나는 그렇다고 믿는다그것이 아무리 감정 속에서 태워도 타지 않고 남은 응어리라 할 지어도 독자와 자신의 살아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살아냄의 언어를 쓴다는 것이 김이듬의 시가 가진 가장 강한 언어의 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각주

*명랑하라 팜 파탈김이듬문학과 지성사, 2007. {해당 작품은 현재 책이 없는 관계로 쪽을 쓰지 못했습니다}

**히스테리아김이듬문학과 지성사, 2014.

***투명한 것과 없는 것김이듬문학동네, 2023.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김이듬, 민음사,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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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기루
  • 2026-07-30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 대상을 환원하지 않는 시선에 대하여

이 시집을 읽기 전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많지 않았다. 시인의 집이 화재로 전소되었고, 그 이후 이 시집이 출간되었다는 정도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시집 역시 화재 이후의 상실과 회복을 담은 기록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화재라는 사건이 시집의 중심에 놓여 있고, 그 경험을 어떻게 견디고 지나왔는지가 주된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다.가장 먼저 읽은 것은 자서였다.> 오래도록 어둡고> 우울한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거대한 불에 휩쓸렸다> 올해 봄날은 잿더미> 암흑세계였다> 생체발광할 수 있다면> 차가운 빛을 만들 텐데> 더듬어 시를 켰다> 절벽이 보였다처음 자서를 읽었을 때는 화재를 겪은 시인의 절망과 그 이후의 다짐을 압축해 놓은 글처럼 느껴졌다. 특히 ‘시를 켰다’라는 표현은 어둠 속에서 불을 켜듯, 시를 통해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미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생체발광’이라는 표현 역시 스스로 빛을 내고 싶다는 바람 정도로 이해했고, 마지막의 ‘절벽이 보였다’는 문장은 막막한 현실을 비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물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왜 ‘시를 썼다’가 아니라 ‘시를 켰다’일까. 왜 절벽은 ‘보였다’에서 끝날까. 하지만 처음에는 그 표현들을 깊이 붙잡기보다, 앞으로 읽게 될 시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장을 넘겼다.1부 ― 바깥을 오래 바라보는 시선1부를 읽으며 가장 먼저 받은 인상은 시선이 바깥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시인은 사람을 관찰하고, 일상적인 풍경을 오래 바라본다. 특별하거나 극적인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평범한 장면 하나를 붙잡고 그 안에서 천천히 사유를 이어 나간다. 읽기 전에는 화재라는 사건이 시집 전체를 이끌어 갈 것이라 예상했기에 이러한 전개는 다소 의외였다. 오히려 시인은 자신이 겪은 일을 서둘러 이야기하기보다, 먼저 타인과 세계를 바라보며 자신의 시선을 가다듬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그 과정에서 나는 1부가 단순히 바깥을 관찰하는 장이 아니라, 아직 자신의 상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전 스스로를 천천히 위로하고 마음을 정돈해 가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화재를 외면한다기보다는, 그것을 곧바로 언어로 옮기기에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 과정은 어쩌면 화재라는 사건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를 천천히 위로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특히나 1부의 첫 시인 「이 세상에 없는 것」은 이후의 시집을 읽는 내내 계속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다 소모된 것과 사라진 것의 차이는 뭘까> 모두 끝났다고 말해도 될까> 이 세상에 원래 없었던 것 같은 그것을 찾아> 나는 어딜 이토록 떠도는 것인지이 구절을 읽으며 처음에는 상실을 겪은 사람이 스스로를 다독이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소모된 것’과 ‘사라진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미 쓰여 없어졌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혹은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는 걸까. 시인은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이 시는 화재 이후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이

  • 미빈
  • 2026-07-30
비극 속에서 타인과 춤추는 것

1. 삶은 부조리다 태어남은 선택할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선택할 겨를없이 내던져진 삶은 애초에 부조리라고 할 수 있다. 살면서 고통과 쾌락을 둘 다 얻을 수 있고 어찌 보면 고통보다 쾌락을 더 많이 누리는 삶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러한 도박에 불참할 기회가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이듬의 시집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의 1부 중 <한여름 저녁 한 시간 반>에서 화자는 누군가가 난데없이 맡긴 짐을 떠안게 되고 이 때문에 버스를 놓칠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화자는 자신 또한 이 짐처럼 누군가 &lsquo;세상에 맡겨 두고 찾아가지 않은&rsquo; 것 같다고 생각한다. 화자의 이런 생각은 선택의 기회 없이 탄생함을 인식한 것이다. 또한 짐을 맡기고 찾아가지 않은 건 사실상 짐을 버린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화자가 삶이란 부조리 속에서 내적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이미 태어났고,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 텐데, 그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부조리한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타인이다. 다른 이가 한 사람 인생의 의미가 된다. 그리고 김이듬은 타인을 내면화하는 걸 그 의미로 봤다. 김이듬에게 타인은 내면화가 가능한 존재다. 2부의 <나의 이방인 2>에서, &lsquo;너&rsquo;는 화자인 &lsquo;나&rsquo;와 대화할 수 있지만, &lsquo;탄식을 주워섬기는 너는 내 안의 방랑자&rsquo;, &lsquo;내게도 절친이 있다고/텅 빈 의자 위의 네가/나였음을 증명할 수 있을까&rsquo; 같은 문장들은 &lsquo;너&rsquo;가 &lsquo;나&rsquo;에게 타자이면서도 내면화되는 대상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lsquo;나&rsquo; 대신 분노하기도 하는 타인이지만, &lsquo;나&rsquo; 안에서 내면 안에서 &lsquo;나를 감시&rsquo;하기도 한다. 이는 &lsquo;나&rsquo;는, &lsquo;우리는 불화한다&rsquo;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 화자는 &lsquo;너&rsquo;와의 틈을 인식하고 갈등하는데, (내면 속 &lsquo;너&rsquo;가 &lsquo;나를 감시&rsquo;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자기검열의 주체로 &lsquo;너&rsquo;를 삼고 있는 것이다. <한여름 저녁 한 시간 반>에서 화자는 다른 사람이 맡긴 짐 때문에 환승 버스를 타지 못하고 터미널에 계속 남는다. 시 속에서 화자가 누군가 맡긴 짐으로 스스로 생각되는 것처럼 &lsquo;다른 사람&rsquo;도 세상에 맡겨진 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다른 사람이 화자에게 짐을 맡긴 건 화자가 그 사람을 내면화했다는 은유이다. 한 사람에게 원했든 아니든, 내면화된 타인은 삶을 변화시키지 않고 유지할 의미라는 것이다. 2. 이해할 수 없는 타인 그러나 타인은 온전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당신이 타인에게 의미라고 해도 타인의 삶은 당신이 의미가 아닌 부분에서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고 그것은 당신이 의미인 부분을

  • 금안백
  • 20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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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새벽까지 급하게 달려서 완성했습니다. 아직도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이제는 마감도 지났고 놓아줘야 할 것 같아요.{너무 피곤해 ㅠㅠ} ㅎㅎㅎㅎ

    • 2026-07-31 08:27:25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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