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의 악마
- 작성자 Atrophy
- 작성일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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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너는 도시쥐와 거지쥐 중에 뭐가 더 좋아?"
도시쥐요! 아들이 외친다.
그는 알고 있었을까요?
그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는 걸.
그의 어머니는 알고 계셨나요?
그에게는 이미 길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챘을까요?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끝없는 절벽이 있었다는 것을..
본인이 하지 못한 걸
타인에게 강요하지 마세요.
우린 평범하게 학교를 다녀야 하고,
친구들과 지내야 합니다.
바이럴된 인생관과
#2028대입준비
왜 둔재를 영재학교에 보내려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려는 당신이 너무 미워요.
'너무 힘들어, 그만해'라 외쳐도
"그야 너를 사랑하니깐!"
그리고 그 날은 오고,
그날은 떠나가지 못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단순히 몇 시간짜리 시험 하나로
사람들은 대학을 정하고
다음 1년을, 운명을 정한다.
내가 떨어지며
내가 없는 집 속.
너무나 큰 꿈을 꾼 것 같아.
아... 도대체 몇명이 더...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
절대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
뉴스에 나와도 3개월이면 잊혀지잖아?
그녀는 너무 늦게,,,,,,,,,,,,,, 말해버렸다.
"왜 처음 만났을 떄 말하지 않았을까,"
"아들아, 사실은 말이야,
나도 의대에 가 본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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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작품을 영화로 2번, 책으로 1번 봤다. 영화로 봤을 때의 감동이 더 컸기 때문에 영화로 비평을 쓰려한다. 마지막을 어기의 이야기로 장식하기 위해 누나인 비아의 이야기로 먼저 시작하겠다. 비아는 가족에 대한 서운함이 쌓여갔다. 그녀도 물론 동생을 아끼고 좋아했지만 온 가족의 관심이 안면기형을 갖고 있는 동생한테 쏠리는 데 불만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티 내지 않고 꿋꿋하게 참아냈다. 비아가 뭐라고 하면 가족들이 더 힘들어할 걸 알기에 짐이 되지 않으려 늘 노력했다. 비아도 아직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일 뿐인데 투정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그녀가 안타까웠다. 성숙하지만 아직 어린아이인데. 그렇지만 비아의 행동이 옳은 행동일까? 맞다, 아니다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지만 비아 혼자 그 모든 상처를 짊어지는 것은 가족도 원치 않았을 것이다. 짐이 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면 그녀의 상처가 조금은 치유가 됐을지도 모르는데. 큰 문제는 비아의 친구 미란다와의 일이었다. 미란다는 비아와 어렸을 때부터 친구 사이였는데 그러다 보니 비아의 가족과도 잘 알고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미란다는 여름 캠프를 갔다 오더니 비아를 피하게 된다. 비아는 당황했고 나 역시 그녀의 태도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그러면 누구든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이유가 나온다. 미란다는 부모님의 이혼 등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다, 캠프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비아의 따뜻한 가족(어기 포함) 이야기를 마치 자기 가족의 이야기인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 자신에게 동생을 위하는 희생적인 누나라는 프레임을 덧씌워 사람들의 동정을 얻으며 결핍을 채우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비아를 마주하기 부끄럽고 미안해 의도적으로 피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미란다의 행동이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미란다는 비아의 화목한 가족이 부러웠던 것이다. 자신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비아에게 약간의 질투를 느꼈다고 생각해봐도 좋겠다. 물론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도, 잘한 선택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비아에게 말하고 사과했으면 됐을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란다에게는 그 방식이 최선이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 보면 어떨까? 미란다도 그저 가족의 사랑이 고팠던 미숙한 아이였으니까. 둘의 화해는 학교 연극에서 이루어진다. 미란다가 주인공을 맡고 그 대역을 비아가 맡았다. 미란다가 객석에 온 비아의 가족을 본 후, 비아에게 주인공 자리를 양보하며 무대에 서게 해 줬다. 비아와 그녀의 가족에 대한 미란다의 진심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미란다는 여전히 그들과 잘 지내기를 바란 것 같다. 자신을 가족처럼 대해주던 그들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과거, 친구의 가족을 소재로 삼아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미란다가 현재, 주인공이 될 기회를 포기하고, 자신이 한 번도 가족의 중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비아에게 자리를 넘기며 그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이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 캔디
- 2026-08-30
서론1) 탐구 배경나는 왜 소설을 쓰는가?이 질문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질문에 한 번에 답할 수 없었다. 오래전부터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냐에 대해 묻는다면 머리가 아팠다. 사실 처음에는 그저 재밌어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라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그래서 역사를 좋아했고, 역사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알베르 카뮈의 소설을 읽었다. 카뮈의 소설은 정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했다. 알베르 카뮈처럼 나의 생각을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면, 나의 철학을 구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 욕망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남자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주위에 소설을 쓰는, 아니 글을 쓰는 친구를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나는 소설을 쓸 수 없었다. 노트북에 초고는 쌓여만 갔지만 그 누구도 읽지 않는 글은 무의미했다. 학교 내에서는 백일장을 포함하여 이러한 문예행사가 아예 진행되지 않았다. 나는 고립된 무인도에 갇혔다. 그때 쯤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소설은 나의 생각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와 문학에 대한 교류를 하지 못하여 외로움을 겪던 차에 나는 온라인 모임을 하나 만들었다. 인문학과 철학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는 모임이었다. 약 100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나는 소설을 쓰기 보다는 작품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 토론을 하던 중 어떤 사용자가 민음사 책의 표지 하나를 올렸다. 이름은 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파란색 표지에 그려진 한 외로운 노인과 안개. 나는 그 사진에 매료되었다. 그것이 김승옥과의 첫 만남이었다. 민음사는 원래 외국 문학 전집만 발행한다고 생각하고, 한국 문학도 나오는지는 몰랐기에 나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바로 구매했다. 그리고 첫 문장은 나의 마음을 점령하기에 충분했다.감수성의 혁명이라 불리는 그의 문체는 문체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던 나에게 모범답안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문체보다도 김승옥이라는 작가가 형성한 하나의 거대한 철학적 세계였다. 이라는 작품에서 드러난 '자기세계'의 개념 이후 현대인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그것에 따라 멸망해가거나 몰락하는 인물은 분명 무언가 그의 철학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그 거대한 세계는 무엇일까. 마치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이 아닌가. 김승옥 작가의 소설이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답을 절대 정해주는 소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철학만 하더라도 주로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질문만 던지지는 않는다. 실존주의도 인간이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삶을 강조하고, 칸트도 인간 존엄성에 따른 의무를 부여한다. 그러나 김승옥은 항상 소설을 애매하게 끝낸다. 의 주인공 ‘나‘는 윤희 누나가 범죄에 연루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놓고서는 그저 마을 주위를 서성이며 여러 생각을 하며 끝이 난다. 소설 에서는 주인공의 욕망을 결국 실현하지 못한 채로 다시 고향에서 서울로 돌아간다. 김승옥은 이런 애매한 상황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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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한 소재와 다른 서술 조세희의 문학세계가 투쟁과 서늘함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면, 윤흥길의 문학 세계는 다정함과 화해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결말부는 “꼭 죽여.”로 끝난다면 윤흥길의 『장마』는 “모든 걸 용서”하는 것으로 끝나니까. 또한 난장이의 딸은 철거민 입주권을 구매한 사람을 증오하는데,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철거민 입주 권리를 산 사람이다. 연작에서는 철거민 입주권을 구매한 권력자를 절대적 악인으로 상정하고 선과 악의 대립적 구도를 구성함으로써 권력의 폭압에 대한 정서적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윤흥길은 철거민의 광주대단지 입주권을 구매한 엘리트층의 권씨라는 인물이 경제적으로 몰락한 상황을 묘사한다. 권씨는 대학을 나왔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과거의 영광을 기리면서 정장과 구두를 신고 공사장에 출근한다. 권씨가 자신을 도시빈민과 구별짓는 태도나 철거민의 입주 권리를 구매한 점에서는 전형적인 경제적 약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매일 구두를 닦는 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이며, 조세희의 작품들이 드러낸 사회적 모순은 결국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권씨처럼 연민하게 되는 개인들의 집합일 수 있다.조세희뫼비우스의 띠차차 알게 되겠지만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이제 대학에 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_30p.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살기가 너무 힘들다.”아버지가 말했었다.“그래서 달에 가 천문대 일을 보기로 했다.” (…)“아버지, 도대체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아요?”“지섭이 미국 휴스턴에 있는 존슨 우주 센터에 편지를 써 보냈다. 그곳 관리인 로스 씨가 답장을 보내올 거야. 후년에 우주 계획 전문가들과 함께 달에 가게 될 거다.” _72p.(…)“로스 씨의 편지를 받기 전에 보여줄 것이 있다. 지섭에게 말해서 쇠공을 쏘아올려 보여주마.” 집이 무너진다는 것. 지금은 죽은 여자가 ‘나’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새겨진 채 굳은 시멘트, 오랜 시간이 걸려 손수 지은 집, 집이 부서지는 순간까지 숭늉을 먹는 식구들. 급속한 근대화로 인한 마을 공동체의 붕괴, 고유한 기억이 담긴 공간이 소멸하고, 빈터가 되고, 수몰되는 순간은 한국 문학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현진건의 『고향』, 문순태의 『 징 소리』등 20세기 문학은 전통 사회가 거스를 수 없는 힘에 의해 해체되어야 했던, 서구화와 근대화를 국가적 차원에서 총력을 다해 추진하던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다. 그리고 21세기에도 여전히, 김애란의 『 침묵의 미래』는 집과 고향과 거기서 쓰이던 언어의 붕괴가 한국 사회를 넘어서 세계의 섬과 숲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로 시선을 확장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고향과 언어를 ‘중앙’에게 빼앗기고 중앙이 만든 집에 살며 중앙의 언어를 쓰게 되는 것은 비단 소수 민족 사회뿐 아니라 도시적 삶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포착한다.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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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에 올리려 했는데 다른 게시판에 올려버렸네요.
@Atrophy 나의 글방->작성한 글->수정->등록->분류 선택으로 바꿀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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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호 체인소맨 극장판 레제편입니다. 해시테그에 이미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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