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의 운명: 『옥수수와 나』 (김영하, 2011)
- 작성자 Marllin Zero
- 작성일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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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들이 나를 자꾸 쫓아다닙니다. 무서워죽겠습니다. _ 소설집『오직 두 사람』, 113p., 문학동네
편리하게 해석한다면 이렇다.
옥수수 = 나. 옥수수를 쪼아먹는 닭 = 출판사 사장 내외.
작가와 편집자는 마감에 시달리고 싶지 않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책은 기한 내에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하고, 반드시 소비되어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창작자가 느끼는 압박은 모이 시점에서 닭이 눈앞에 있는 것과 같다. 출판부(닭)가 작가(나=옥수수)를 ‘쪼아대는’ 것이다. “나는 옥수수가 아니다 / 나는 옥수수가 아니다”(169p.) 중얼대지만 잡아 먹힐 것 같은 생존의 불안을 일상적으로 느낀다는 점에서 ‘나’는 옥수수다. 그건 단지 출판계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현대 사회 전반은 마감에 맞추어 빨리 빨리, 효율적으로, 생산적으로, 성실하게, 신 들린 것 같은 폭발적인 집중력으로 일들을 처리하라고 인간들을 쪼아대고 있다. 교육도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는데, 특히 근대화 과정에서 학교는 성실한 산업 역군을 양성하는 전일(全日)제 교육기관으로서 기능했다.
작품 속에서 작가인 '나'는 딸의 뒷바라지를 하려면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고, 딱히 다른 재주가 없는 ‘나’는 써야만 한다. 그런데 글이 안 나온다. 원고료를 지급했는데 마감일이 훌쩍 지나도 산출물이 없는 것에 대해서 출판사측은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그러면 '나'는 민법에 따라 금전적 손해배상의 의무를 지게 될 것이고 더불어 '사기죄'로 형사 재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월스트리트 금융계 출신 출판사 사장을 만난 뒤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막 써버린다. 서사 구조의 개연성, 인물의 성격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말자. 한 문장 한 문장에 정성을 들이지 말자. 이미 쓴 글 되돌아보지도 말자. 그런 마음으로. 우리는 마감과 효율, 생산성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에라 모르겠다’, ‘신경 꺼’, ‘너무 공들이지 마’, ‘대충대충 해’의 정신을 학습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작품 속 인물들과 현실 세계 사람들이 내면화한 메시지를 나의 언어로 재구성한다면 다음과 같다.
오랜 시간 몰두하지 마. 천착하지 마. 시간이 아깝지도 않니? 그런 자잘한 골몰은 접고 거칠게 획을 그어가야 해. 그렇게 다들 계약을 지키며 살아가는 거야. 왜 작가들은 자꾸 채무를 불이행하니? 결국 인생의 핵심적 요소는 생존(돈)과 생식(섹스)가 아니겠는가. 일을 ‘쳐내는’ 감각으로 빠르게 과제를 ‘마감’했다면, 너는 비로소 잘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게다가 그런 감각은 곧 인류가 숭배해온 거친 ‘남성성’과도 유사하므로 '생산성이 좋은' 사람이 '광포한 섹스'(150p.)도 잘 하는 거야.
이 작품은 쟁취의 감각, 온라인 게임하는 감각, 경영학, 세상물정, 똑부러짐 같은 것들과 멀다고 여겨지는 문인조차 그러한 지배적 사회질서에 편입되어 가는 과정을 형상화했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을 인생이라는 소설의 등장인물이 아니라 작가라고 믿으며, 자신이 사회구조적으로 결정되는 “종속변수”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행동양식과 감정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움직여보지도 못한 채 닭에게 먹히는 옥수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종속변수라고? 천만의 말씀, 내가 바로 저자이고 일인칭 시점 화자이고 이야기의 종결자야. 168p.
그러나 막상 “닭”을 마주하자 “너무도 두렵”고, "나는 옥수수가 아니"라고 되뇌이는 것만으로는 이 불안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는다.
나도 옥수수다. 원래 줄거리 요약하고 원문을 많이 인용하려고 했는데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싶다. 시간을 너무 많이 들이는 것 같다. 이러니까 제한 시간 안에 문제를 못 푸는 거지. 마감일이 명시되어 있는 시험들을 딱 부러지게 못 보는 거지. 대충대충 해서 빨리 넘기는 감각은 육체노동자가 되든 사무직이 되든 심지어 예술가가 되어도 필요할 텐데 지금부터 연습해야지. 1시간 타이머 끝나기 전까지 실모 풀고 놀러 가야지.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이 수록되어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관점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이러면 안 된다. 해설 읽는데 30분, 수록집의 다른 작품들을 찔끔찔끔 살피다가 예상치 못한 재미를 발견하면 최소 1교시부터 3교시까지가 소모된다. 그 시간에 미분을 하면 쉬운 4점짜리 한 문제는 더 맞출 텐데. 박준 시인님께서 커서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보셨을 때, 왜 어른들은 애들한테 자꾸 장래희망을 물어보는 건지 되묻고 싶었다. 왜 덜 살았다는 이유로 꿈이 있을 것이라 전제하는지. 저는 닭을 관찰하는 모이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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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짧고 강렬한 순간이 지나가고 난 후, 까닭 없이 죄의식을 느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여느 여자아이들이 그렇듯, 나도 어떤 사고가 발생하기만 하면, 그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우선 사과하도록 교육받은 탓이었을 것이다.그래서인지 나는 그 일을 엄마에게도, 그리고 그 시절 가장 가까웠던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었다. 시간이 좀더 지나고 나이를 먹게 되니,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예단 때문에 더더욱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순간’에 대한 자세한 서술 이전 이 단락을 읽었을 때, ‘그 순간’이 벼락 맞은 순간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보다 현실적인 비일상적 경험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스스로가 원했는지 원하지 않았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첫 성적 경험 같은. ‘나’는 유년 시절의 그 순간을 어쩌면 잊은 게 아니라 묻어뒀던 것인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후 친구를 통해 ‘벼락 맞고 살아난 사람들의 모임’을 알게 되고 가입한다.우리는 이미 한 번 살아났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모른 채 어느 날 갑자기 공포보다 빨리 덮친 수만 암페어의 전류를 받아냈습니다. 그때 전류는 우리 몸에 길을 냈기 때문에 또다시 맞는다 해도 전류는 그 길을 따라 마치 피뢰침을 지나듯 우리 몸을 지나갈 겁니다. 초점화자를 여성으로 설정하고 벼락 맞은 경험의 발설을 성폭행 경험의 진술로 치환하는 것, 벼락을 맞아 몸에 전류가 흘렀던 경험을 ‘첫 경험’이라 칭하는 것, 모임 구성원들을 뜻하는 ‘발기한 피뢰침’이라는 표현을 통해 짐작할 때, ‘벼락 맞고 살아난 사람들의 모임’은 ‘성폭행 생존자 모임’이 아니었을까?하지만 그렇다면 왜 ‘탐뢰여행’을 떠나는 걸까?*이들은 벼락을 맞아 죽을 뻔 했음에도 일부러 벼락을 맞으러 간다. 다 같이.트라우마 극복을 목적으로 한 자조모임 성격의 ‘퇴역 군인들 모임 같은 건가요?’, ‘레저 삼아 위험을 즐기는 건가요?’ 모임의 지도자격인 J는 답을 알려주지 않고 ‘나’ 스스로에게 왜 이 모임에 왔는지를 물어보라고만 한다. 또한 J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이야기를 이곳에선 마음 놓고 해도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첫 경험을 털어 놓은 이후에도 빗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꿈을 꾼다. 사실 벼락을 네 차례 맞아 의연해보이는 J도 꿈을 꾼다. J는 말한다.그 경험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게 우리 몸에 흔적을 남깁니다. 잠시 잊을 수는 있지만 곧 되살아납니다. 공포 보다 먼저 지나간 것을 몸은 잊지 않습니다.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 라는 ‘나’의 질문에 J는 ‘공포와 전류를 일치’시키고 ‘스스로 전격이 되어 대기와 대지와 몸의 주인이 되라’고 한다. 이는 모임 구성원들이 주기적으로 ‘탐뢰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한 암시가 될 수 있다. 벼락 맞고도 살아난 인간은 벼락에게 당한 객체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탐구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탐뢰여행을 가면 ‘표백제’ 냄새가 나는데, 이는 방전이 시작되면 공기중의 산소가 오존으로 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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