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슬퍼해야 대물림을 멈춘다-영화:생일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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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1,217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하는가? 여기 글틴에 있는 사람들 중 이 날의 일을 지웠거나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잊쳐지지 않는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여 많은 학생들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 당시 나이가 7살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바다라고 하면 세월호 사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 당시 뉴스에서 배가 침몰하고 있는 장면을 저녁을 먹으면서 뉴스를 통해 봤다. 처음에는 공포, 두려움 나이가 들면서 안타까움 동생이 태어나면서 슬픔 등의 감정까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하게 감정이 피어올랐다. 지금은 이 사건을 기억하면 나와 같은 또래가 죽은 일이라 그런지 마음 한 편이 시려온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이번년도 경건한 마음으로 생활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날 나는 디저트를 소개하는 유튜버의 장난삼은 농담과 댓글에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분노가 올라왔다. 그 이유는 유튜버가 "오늘이 무슨 날일까요? 기출 문제"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이를 본 나는 처음에 당황을 했다. 내가 잘보는 유튜버가 이리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실수라 생각하고 댓글 창을 봤다. 내 예상은 사람들이 유튜버에게 항의하는 글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 예측을 했지만 그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이 반 비판하는 사람을 욕하는 사람 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나는 이를 보고 세월호라는 아주 큰 사회적 참사가 세상에서 지워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머리를 식히며 황주현의 시 <솟아오른 지하>를 떠올렸다.
이 한 덩어리의 잔해들은 견고한 주택일까
무너진 태양은 나보다 위쪽에 있을까 부서진 낮달은
나보다 아래쪽에 있을지 몰락 공전과 자전의 약속은 과연 지금은 유효할까?
왁자지껄한 말소리들이 하나둘 치워지고 엉킨 시간을 걷어내고 고요 밖으로 걸어 나가고 싶은데
{황주현:솟아오른 지하 中}
위 시는 재난의 현장을 바라보는 시다. 바라보는 시선은 각각 다르겠지만 여기서 나온 시선은 사회적 문제를 잠깐 관심 있게 봤다가 다시 일상으로 무덤덤하게 걸어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사회적 재난을 기억 속에서 너무 빨리 잊고 있으며 똑같은 재해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옛날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가 일어나고 약 20년만에 비슷한 참사가 대풀이 된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기억은 금방 잊쳐지고 지워진다. 그래서 다시 이런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이 참사를 그리는 작품들의 주 목적은 또 다시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기억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 많다. 그 중 세월호 사건을 다룬 이종언 감독의 <생일>이 생각났다.
<생일>은 세월호 참사로 아들 수호를 잃은 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의 시작은 정일이 베트남에서 대한민국으로 들어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됬다. 그러나 가족들은 정일을 반길 수 없었다. 정일 대신 아내 순남에 든든한 힘이 되어준 수호가 갑작스러운 참사로 죽었기 때문이다. 예솔 또한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아빠를 보고 좋게만 생각할 수 없었다. 순남은 아들 수호가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아들의 새 옷을 사오고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예솔과 함께 먹고 수호의 생일 날에는 예솔이와 둘이서 수호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등의 행동을 했다. 그런 순남에게 있어 아들이 죽은 뒤 바로 달려오지 않은 정일은 밉고 짜증난 존재였다. 그러던 중 같은 피해자 가족들이 수호의 생일을 함께 하여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죽음을 기억하자 말을 한다. 정일은 그런 사람들의 말을 동의를 했다. 그러나 순남은 이유 없이 거절을 하고 만다. 왜 이유 없이 거절할까?라는 물음을 가지며 영화를 보았다. 그러나 이 물음은 영화가 진행 되면서 순남이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본인의 기억에 함께 있고 싶었기 때문이라 확신이 들었다. 또한 이는 이별이란 경험이 거의 없는 나에게까지 많은 아픔과 공감이 되었다. 아마 내가 잘 돌봐줬던 길고양이와의 영원한 이별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이 된다.
한편 아빠 정일 역시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장례식에 함께 못 있어줘서 미안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수호가 아빠를 만나러 발급한 여권을 가지고 동사무소로 가서 출국 표시를 해달라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잊고 싶지 않고 보내주려고 하는 마음이 여럿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이는 동사무소 직원도 똑같았다. 그래서 죽은 아들의 여권에 출국 도장을 찍어준 것이다. 아들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하나, 하나 해주면서 참사에 있었던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잊고 싶지 않은 감정이 섞인 마음이 스크린 밖에 나에게도 느껴져 마음 한 편이 시려졌다.
이렇게 다양한 사건과 사고들이 일어나고 수호의 생일이 찾아왔다. 생일에는 수호의 친구, 세월호 유가족 등등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수호가 살아온 인생을 그린 영상과 함께 시 <어머니 저에요>가 읊어졌다. 시를 읊으기 전까지 생일장은 시끌시끌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시가 읊어지자 영화를 관람하는 관람객도 그렇고 스크린 속 인물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 이 시의 내용은 아들 수호가 가족 주변을 오고 갔고 죽어서 아빠 정일에게 가족을 부탁했다는 내용의 시였다. 이 시를 듣고 들으면서 나는 현광등 센서가 계속 움직이는 것이 수호가 진짜 가족을 찾아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수남같이 했다. 그리고 영화는 엔딩을 향해 갔고 이 가족이 수호를 기억하며 일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 모습을 보아 이실비 시인의 <조명실>이 떠올랐다.
이것이 지옥이라면
관객들의 나란한 뒤통수
그들에겐 내가 안 보이겠지
그래도 나는 보고 있다
잊지 않고 세어 본다
{이실비:조명실 中}
잊고 싶지만 잊지 않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가족의 죽음, 사회적 참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영화 소풍은 우리에게 이를 기억하면서 슬픔에 잠겨 있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주장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잊으면 제 2의 세월호와 서해훼리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주장한다. 이들의 죽음을 우린 기억해야 한다. 이들을 장난거리로 삼아서도 않된다. 오늘도 난 하나의 하나의 세월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다시 이런 참사가 대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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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찬님 안녕하세요. 영화 <생일>에 대한 글 잘 보았습니다.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주제를 다뤄보고자 한 노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다양한 행사 및 기획 등이 진행되고 있고 또 영화도 개봉하고 여러 책들도 출간되었죠. 세월호를 다룬 작품들은 아픈 경험을 다룬 만큼 대면하는 데에 굳은 결심이 필요하기도 할 터입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된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금 여러분들과 같은 나이 또래여서 그에 대한 생각이 또 남다르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시간이 흐를 수록 기억은 조금씩 잊히기 마련이고 또 그에 대한 감정 역시 조금씩 무뎌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어떤 기억은 노력을 통해서라도 반복하여 미래로 전해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희찬님의 이 글도 그와 같은 생각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여요.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의 분량이 글의 도입부라든가 전후로 다룬 시에 대한 이야기에 비해 짧다는 것이에요. 특히 영화에서 ‘생일’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보고 그에 대해 다루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기억’이라는 것 못지 않게 그 ‘생일’이라는 의미에 대한 생각을 통해 그 의미가 보다 깊고 풍부하게 표현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항상 건강한 글쓰기 생활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김태선 멘토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위 글은 본례 <세월 라이프고즈온>을 보고 쓰려 했지만 도저히 이는 볼 용기가 나지 않더라구요.(생일에서도 많이 울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위 글을 쓰면서 눈물을 흘렸다 멈췄다 무한의 반복이었습니다. (동생이 7살인데 만약 내가, 만약 동생이 저 배에 탔으면 어찌 되었을까 이 생각이 최근들어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슬퍼하는 것은 제 또래 친구들에게 찾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이 사건이 일어난 날 고의든 아니든 웃음으로 여긴 사람들 때문에 마음 한 편이 이상했습니다. 제가 민감한 것일 수 있는데 제 초 6학년 선생님의 제자 중 몇 분이 해당 학교에 다녔었다고 한 것을 아직 잊을 수 없었습니다.(중2 때 도덕 선생님도 이와 비슷하게 이 참사와 연이 있었구요.)이 글은 이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저 또한 생일이 가지는 의미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까지 말하면 제가 말하고픈 이야기와 멀어질 것 같아 넣지 않았습니다.그리고 기억에 초점을 둔 또 다른 이유는 세월호 참사가 93년도에 있었던 서해 훼리호 참사가 기억 속에서 지워짐에 따라 일어난 참사라 생각하였기에도 이유에 있습니다. (지금 잠결에 써서 글의 서두가 맞지 않네요.ㅠㅠ 그래도 아무쪼록 제가 전달하고자한 이야기가 댓글을 읽는 다른 글티너 분들과 독자분들께 와닿았스면 좋겠습니다.)
최근 연평해전 관련 영화 리뷰를 봤는데 이 사건도 월드컵에 의해 묻혀지고 잊혀진거 같더라고요 이 주제도 한번 다뤄주세요~~
@도래솔 안녕하세요. 저도 그 영화를 알긴 아는데 제가 다룰 수 있을지 두렵고 이 영화를 보며 많이 울어서 이 주제로 글을 다루기는 제가 조금 더 성숙해지고 나서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글을 쓸 때 너무 많이 울었어요.)
제가 다루기 너무 무거운 주제의 글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요즘 이 참사를 잊은 분들이 많아 이런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본례 몸 상태가 좋으면 쓰려고 했던 글이지만 그렇지 못하게 됬네요.ㅠㅠ 그래도 나름 퇴고를 여러번 했던 글이지만 이 역시 몸이 안좋을 때 해서 걱정이네요.(감기가 1달 째 떨어지지 않네요.글티너 여러분도 멘토님들도 모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