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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엇갈린 두 날개 - 세계

  • 작성자 chris
  • 작성일 2006-03-05
  • 조회수 2,488

 세계화의 엄밀한 의미는 무엇일까. 전지구인이 보편성 있는 문화나 경제 체제, 그리고 가치 등을 보유하는 것이 세계화의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설명이다. 그러나 보통은 여기서 세계화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기서 감이 잘 안잡히는 사람들은 흔히 미국 회사인 맥도날드가 중국에서도 버젓이 골든아치 간판을 뽐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세계화를 이해한다. 마빈 조니스 박사가 저술한 세계화와 지역화에 관련된 책이 우리 나라에서 '김치냐 빅맥이냐'로 번역되었던 것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맥도날드를 앞세운 다국적 기업은 이미 세계화의 속성을 잘 대변하고 있는 상징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전지구인이 보편성 있는 문화나 경제 체제, 그리고 가치 등을 보유하는 것'이 세계화라고 한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다국적 기업을 떠올려 세계화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 경제적인 측면에만 가중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1900년대 민주주의의 확산도 정치의 세계화의 일부분이었으며,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문화적 유행들도 세계화의 불씨가 점멸하는 것인데 말이다. 특별히, 많은 학자들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그 개념이 등장하고 지속적인 국제 레짐(regime), 이를 테면 UN, 의 지원을 받아가며 확산되고 있는 '인권'의 개념도 중요한 세계화의 요소라고 말한다. 진정한 세계화를 이해하려면, 여러 분야의 세계화, 특히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경제와 인권의 세계화를 주목해야 한다.
 
 경제의 세계화와 인권의 세계화. 누구나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경제의 세계화에 비해 인권의 세계화는 다소 생소한 면이 있으므로 잠시 설명을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인권은 서방 세계에서 두드러지게 발달했던 개념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권에 대한 원형, 즉 사람은 사람이 누려야할 마땅한 권리가 있다, 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크리스트교에서 발생한 자연권 사상 등 보다 정교화된 인권 개념이 있었던 곳은 서양이었다. 자연권 사상은 신학이라는 철학적 배경이 계몽주의에 의해 쇠퇴하고, 지나치게 평등주의적이거나 개인적이라는 이유로 다수의 행복을 주창하는 공리주의에 의해 대체되거나 과학적 실증주의에 의해 반박 당했다. 버크 같은 철학자는 자연권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그 형이상학성과 사회를 뒤집을 수 있는 잠재성을 비판하였고, 벤담은 법적 권리를 그 대안으로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 자연권이 주축이 된 인권의 개념은 딱히 국제적으로 통합된 움직임은 없었지만 서구 철학자나 사회 과학자들의 도마에는 끝없이 올려져 있었다.
 
 이 인권의 개념이 세계의 이슈가 된 것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였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학살 등 히틀러의 '잔학한' 행위가 인권 세계화의 직접적인 효시였다. 자연권 개념을 무너뜨렸던 공리주의나 과학적 실증주의로는 이 사건을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잔학행위에 의해 침해된 사람들의 권리를 '인권의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여지껏 그저 서구적으로만 인정되었던 인권의 개념이, 프랑스혁명부터 2차 세계 대전 사이의 암흑기를 거치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게 되었다. 물론 인권의 암흑기 때도 노예제 철폐 협약이라든지 전쟁인도법 등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은 있어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일부 국가에 제한되는 등의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1942년 국제연합이 '인권과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라는 슬로건으로 전쟁에서의 승리를 역설한 때부터 인권문제가 본격적인 국제 문제로 등장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연합조직(UN)이 만들어지고 1948년 세계인권선언문이 발안됨에 따라 인권은 세계화의 가도에 올라섰다.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국제 외교에 인권을 개입시킨 것도 인권을 세계화의 흐름에 떠민 중요한 사건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카터의 후임인 레이건은 인권을 철저히 무시하는 정치 및 외교를 펼쳤지만.) 흔히 인권의 헤게모니적 변화라고 한다. 인권이 세계의 주요 이슈 중 하나로 등장했다는 말이다.
 
 이제 인권과 경제의 세계화를 견주어 보도록 하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경제 세계화는 인권의 세계화와 대립된다. '제 3세대 인권'이라고 불리는 잠정적 권리 중 하나인 '발전권'의 등장이 그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다. 발전권은 세네갈의 한 고등판사로부터 발의된 권리로서, 사람에게는 말그대로 발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권리는 비록 권리의 주체가 개인이냐 집단이냐, 혹은 누가 이 권리를 지켜줄 의무를 지느냐, 라는 풀지 못한 질문 속에 갇혀있었지만 1993년 비엔나회의에서 조금이나마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발전권의 실용성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개발도상국가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의 행태, 즉 다국적 기업이 국가 정부와 계약하면서 여러 가지 조건들, 이를테면 국내 기업에게 지급하는 국가 지원금을 줄여라, 우리에게 한해서 환경 보호 기준을 낮춰라, 등등을 내세우는 것이 이미 심각한 국제적 폭력이라고 지적된 바 있었다. 발전권은 이 다국적 기업의 횡포로부터 개발도상국가 등의 약소국의 국민들을 보호하는 권리라는데에 그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경제와 인권의 세계화가 어느 지점에선가 분명 상충된다는 사실을 찾아낼 수 있다.
 
 다국적 기업 외에도 경제적 세계화의 큰 주축, 지구적 경제레짐이 되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실태도 경제적 세계화와 인권 세계화의 충돌을 시사한다. 브레튼우즈 기구는 세계은행, IMF, 그리고 WTO로 전환한 GATT, 이 세 국제금융기구를 말한다. 이 국제금융기구들은 '비정치적' 경제 정책을 중시하기 때문에 인권 문제는 '정치적' 문제라 하여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IMF 폭동'이다. 이 IMF 폭동은, 1979년 제 2차 세계석유파동 이후 절상한 달러화 때문에 채무국들이 심각한 외환위기를 겪게 되고 IMF의 경제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하였다. 이때 IMF는 지원기금을 제공하면서 공공 기업의 민영화, 임금동결, 복지예산 삭감, 긴축 재정 같은, 구조조정 같은 인권 침해 요소가 필수적인 정책들을 해당국가들에게 요구했다. 이 정책들이 사회적으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폭동으로까지 번진 것이 IMF 폭동이며, 이것은 브레튼우즈 기구들이 세계 인권 문제에 어떻게 반응해왔느냐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 중 하나이다.
 
 매우 재미있는 것은, 브레튼우즈 기구와 세계인권선언문이 거의 동시대에, 비슷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제 2차 세계대전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보복 관세'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대공황이 발생하고 미국이라는 광활한 시장이 불안정해지자 각국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서로의 국가에 관세를 높게 매기기 시작했다. 곧 보복적으로, 그리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진 이 관세 전쟁이 제 2차 세계대전 발생의 경제적 원인이 되었다.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때, 세계는 제 3차 세계 대전을 막기 위해 제 2차 세계대전을 발생시킨 이 경제적 요인을 제거하고자 고정환율 제도를 시행했다. 미국의 달러화를 금의 가치와 묶어서 고정한 후 이를 통해 '일반관세'를 통용시키려 한 것이다. 이 때 이 일반관세를 위한 관세 합의를 주도하는 기능을 맡게 된 것이 바로 GATT였다. 그 관세 합의를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배경을 조성하는 기능을 하던 것들이 IMF와 세계은행이었고, 이 세 기구를 통틀어 브레튼우즈 체제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세계인권선언문이 결국엔 제 2차 세계 대전을 거울 삼아 인권의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때, 마찬가지로 제 2차 세계 대전 발생 과오를 되씹어 만들어진 것이 브레튼우즈 체제인 것이다.
 
 이렇게 발생 목적이 비슷한 경제와 인권 세계화의 상징들은 중도에서 완전히 어긋나 버렸다. UN의 정치 부문은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 그리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편, 국제금융기구들은 불평등을 심화시킬 개연성이 있는, 국가보다 시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특별히, 국제금융기구들은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의무는 거의 짊어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경제적 상황을 좋게 만들 권한은 가지고 있지만, 인권계 기관들과 협력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사실, 국제금융기구도 국제법 질서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인권에 대한 의무를 져야만 하지만, 그들은 임시방편만 늘어놓을 뿐 '정치성이 짙다'는 이유를 들어 인권 문제에 개입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물론 그들도 인권과 어우러지기 위한 첫걸음은 시도하고 있다. 세계은행 같은 경우는 NGO-세계은행 위원회를 도입하는 등, 국가를 대신하는 비국가적 NGO들과의 토론을 지속하고 있으며, IMF는 국제부채와 저개발의 구조적 원인에 대하여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인권 문제를 향한 첫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세계은행과 NGO들의 협력구조는, 세계은행이 상대하는 NGO계층이 진짜 풀뿌리 NGO라기보다는 소위 '엘리트'NGO들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IMF는 조금씩 인권 문제에 접근하고는 있지만 '거의 인권 문제에 개입을 하지 않는다'라는 평까지 받고 있다.
 
 세계화가 단순히 경제나 인권, 한 분야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측면적 현상임을 이해할 때, 세계화에 직면해 있는 우리는 경제와 인권 세계화의 충돌을 완화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어느 한 쪽에서, 혹은 양측에서 어떤 종류의 양보를 할 것인가, 그리고 양측이 다 양보해야 할 경우 어느 측에서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느냐라는 것까지 결정해야 한다. 그러러면 경제와 인권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판단이 필요하다. 단순히, '지고지순한 인권이 세계화되는 것'이 '시장바닥을 뒹구는 것 같은 경제가 세계화되는 것'보다 가치가 있으므로 경제기구에서 인권 개혁을 해야한다, 라고는 말할 수 없다. 물론 인간이 침해받아선 안되는 본질적인 권리가, 경제를 통해 이윤과 편리를 증진시키는 제 2차 권리에 의해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경제적 권리조차 어떻게 보면 인권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경제권을 인권으로 눌러버리는 것은 팔을 잘라내버리고 온전을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나의 의견은 온전한 세계화를 위해 지금으로선 경제계가 인권계에 더욱 양보를 해야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국제 정세도 그런 쪽으로 흐르고 있다. 이런 여론은 인권 세계화의 시초가 히틀러의 잔혹한 '인권 침해'에서부터 시작되었듯, 경제적 세계화의 '인권침해'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즉, 인류 역사에서 무시당해온 인권계는 아직도 양보할 것조차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미 개발도상국의 착취 당하는 어린 노동자들, 공공 시설의 축소, 노조의 일방적인 권리 침해 등 경제계가 펼쳐놓은 인권 착취의 꾸러미들은 또다시 '인권 수호'의 필요성을 잉태한 셈이 되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인권 NGO들의 활동과 UN의 정책들이 경제에 대비되는 인권을 위해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 중 한 가지가 바로 현 UN 사무총장인 코피 아난의 '글로벌 컴팩트'이다. 글로벌 컴팩트는 가입한 경제기구들로 하여금 인권 정책을 수립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체제로서, 현 국제 정세를 잘 반영하고 있는 거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그 결과에 따라서 인권과 경제가 얼마만큼 어우러질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따라 얼마나 잘 어우러진 세계화가 이루어질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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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Ϳ ̷ Ƿڵ...../ Ծ

    • 2006-03-13 16: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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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님이 주장원하실 줄 알았는데 제가 운이 좋았나봅니다... 사실 조금 읽기 힘들어서 프린트를 해서 학교에서 읽었는데 비문학 독해로 써도 손색이 없는 듯 합니다. 감동감동이었어요>ㅅ<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써주세요:-D

    • 2006-03-10 22: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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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다보니 또 흥분해서 헛소리 몇 구절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웠습니다. 그냥 이 말 한마디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인간으로서 태어난 모든 생명체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어떤 인간으로 생활하는지에 관계없이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 2006-03-09 23: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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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보수 세력들은 오히려 도덕을 무너뜨리고 국민들을 경제동물로 전락시켜 지켜져야 할 기본적 인권들을 유린했습니다. 지금도 고위층 중 경제가 어렵다면서 아우성을 해대는 자들은 이미 배가 부른 자들이나 더 배를 채우려는 탐욕에 눈이 먼 자들 밖에 안됩니다. 저소득층, 빈민층들이 오히려 더 어려운데 말입니다. 고도비만인 자가 하루 세끼에다 간식도 배터지게 먹어놓고는 아직도 더 배고프다며 진짜 굶주림에 고통받는 자에게 돌아가야 할 자장면을 뺏어먹는 꼴입니다.

    • 2006-03-09 23: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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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경제를 앞세워서 국민의 인권, 자유를 짓밟는 사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다른 국가들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성인군자로 칭송받던 맹자가 말한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며 먼저 국민들의 생활을 경제적으로 안정시켜야 한다는 구절이 보수 우익 세력의 레퍼토리가 되어 있는데요. 보수 세력은 이 구절에 대해 맹자가 의도했던 파급효과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맹자가 무항산 무항심을 외쳤던 근본적인 이유는 백성들에게 덕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민본주의 사상을 토대로 하여 도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2006-03-09 23: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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