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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현대까지

  • 작성자 바슬바슬
  • 작성일 2009-10-31
  • 조회수 1,761

고전에서 현대까지

- 사회 참여시 3가지에 관한 간단한 연구

(정몽주의 단심가, 정약용의 夏日對酒, 김광규의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읽고나서)

 

  Q세미나에서 아이들이 고전에서 현대까지 3가지 정도 시를 연구해온 뒤,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가져온 시들을 얘기해보자고 했다. 고전에서 현대까지, 현대시만 해도 시는 얼마나 많은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모든 주제를 어우르는 시를 가져와서는 얘기가 제대로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좋아하는 주제를 가진 시들을 연구하기로 했다. 그것은 현실참여를 했던 대표 시들인데, 내가 감명적으로 읽었던 시들을 가지고 연구하기로 했다. 연구라고 해서 그 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탐구한 것이 아니라 그 시에 관한 기존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고전부터 현대까지 현실참여시가 가진 의의가 무엇인지 간단하게 정리해보려고 했다.

 

  우선 1학년 문장론 시간 때 배운 정몽주의 단심가가 생각났다. 이것은 민중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투항을 권유하는 이방원에게 자신의 신념을 말하는 내용인 시조다. 선생님은 이 시를 교과서처럼 단순히 주제와 표현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았었다. 단심가와 하여가가 현재 디지털시대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그 때문인지, 한 편의 명시가 세월을 넘나드는 것에 대한 신기함을 느끼며 수업을 들었다. 그래서 하여가와 단심가는 내 머리 속 고전문학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면 그 중에서 정몽주의 단심가를 살펴보자.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초장)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없고 (중장)

님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종장)

 

  선생님은 하여가를 디지털, 단심가를 아날로그로 설명하셨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정몽주의 공양왕(고려)는 읽고, 쓰는 아날로그적인 것이고 이방원(조선)은 눈으로 보는 디지털 적인 것이다. 그 외에 단심가에 대한 특징들을 말해주셨는데, 모두 이방원의 하여가와 반대되는 것들이었다. 은유가 아닌 환유, 패러다임이 아닌 신태그마, 선택 원리가 아닌 통합 원리가 그것이었다. 여기서 어려운 용어는 패러다임과 신태그마인데, 이 두 용어를 이해하고 들여다보면 두 시조의 특성을 포함하고 있다. 선생님은 “패러다임이란 공간의 등가관계에 따라서 기둥처럼 늘어서있다”라고 설명하셨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이것을 알아보려면 이방원의 하여가를 잠깐 들여다봐야한다.

 

이런들 엇떠하리 저런들 엇떠하리 (초장)

만수산 드렁츩이 얽혀진들 엇떠하리 (중장)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종장)

 

  자, 이 말을 생각하면서 시조를 보자. 감성으로 이루어진 은유, 끊어져 있지 않은 선조성, 시각으로 보는 디지털. 이 정도면 이 시조의 특징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이런들 어떠하냐, 저런들 어떠하냐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냐. 그저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지.”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얼마나 감정적으로 살고 있는가. 텔레비전과 비디오는 모두들 우리 시각을 자극시켜주는 매체다. 그러기에 모든 걸 순간순간으로 넘겨버리고 마는 것이 디지털시대다.

  그렇다면 패러다임과 반대인 신태그마를 알아보자. 선조성이 아닌 딱 딱 끊어지는 분말성, 머리로 생각하는 환유, 긴 붓으로 획을 긋는 아날로그. 선생님은 신태그마를 “소멸 순서에 따라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구성되어있다”라고 말했다. 짐작할 수 있다. 숲에서 부는 바람이 불어오는 서당에서 유생들이 한 글자를 쓰기 위해 공들이는 그 모습이 신태그마이다. 두 시조 모두 현대와 과거를 생각할 수 있지만, 정몽주의 단심가는 지금의 현실과 다르기에 3가지 시 중 하나로 꼽았다.

 

  두 번째는 정약용의 시 ‘夏日對酒’다. 정약용이 시를 쓰는 줄은 몰랐는데, 이번 연구를 계기로 정약용의 시를 보게 되었다. 한시로 된 이 시는 100행이 넘을 정도로 긴 시이다. 이 시는 비유도, 수식도 없다. 그런데 이 시는 당시의 한시들과 다르다. 왜 지금까지 김홍도가 주목받고 있는가? 그것은 주변의 풍경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비참한 백성들을 그렸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정약용도 그 내용을 충실히 담고 있다.

 

黃口出胚胎(황구출배태) : 뱃속에서 갓 태어난 어린 것도

白骨成灰塵(백골성회진) : 백골이 진토가 된 사람도

猶然身有徭(유연신유요) : 그들 몸에 요역이 다 부과되어

處處號秋旻(처처호추민) : 곳곳에서 하늘에 울부짖고

冤酷至絶陽(원혹지절양) : 양근까지 잘라버릴 정도니

此事良悲辛(차사양비신) : 그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戶布久有議(호포구유의) : 호포 문제도 오랜 논의 끝에

立意差停勻(입의차정균) : 제법 균등을 기하는 안을 세워

往歲平壤司(왕세평양사) : 작년에 평양 감영에서

薄試纔數旬(박시재수순) : 겨우 몇십 일 시험하다 말았다네

萬人登山哭(만인등산곡) : 만인이 산에 올라 통곡하거니

何得布絲綸(하득포사륜) : 무슨 재주로 왕의 말씀 선포하리

 

  정약용은 자신이 느낀 백성들의 처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쓰고 있다. 삼정의 문란과 타락한 신분제도, 잘못된 등용문, 호포법, 황구청점, 백골징포, 인징, 족징, 추수를 해도 곡식이 남지 않은 현실 등을 말했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에게 하는 따끔한 소리 같다.

 

  세 번째 시는 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이다. 이 시인은 아이러니를 잘 쓰는 시인으로 유명한데, 그것이 이 시에서도 나타난다.

 

4 · 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고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리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히 늪으로 발을 옮겼다

 

  4.19 혁명을 참여했던 시절의 열정이 사라진 지금의 안타까움을 얘기하고 있다. 평론가 김병익은 ‘이 시는 거듭 돌이켜볼수록 우리 시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60년대 이후 난해한 내성으이 언어로 주조를 이루어왔다. 아마도 50년대 전후의 처참한 삶의 파괴에 대한 즉각적인 분노를 노래한 언어들에 대한 반동이었을 이 내면적 난해 시들은 그것이 유도되도록 한 그 시대의 내면적 풍경들을, 언어로 표현하기 히든 심상들을 드러내기 위한 적절한 방법론의 한 표현이었을 수 있었다. … 그러나 추상과 관념의 세계로 몰아버리는 아류의 시단을 재촉했다. …김광규의 시들이 이같은 아류의 난해시들을 비판하고 극복하고자 한 새로운 방법론의, 유일한 실천이라고까지 말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성취였다고 평가하는 데는 그리 주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이외 김광규 시인은 대부분의 시에서 도시 속에 잠재된 폭력성과 과거의 회상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본 두 시와 이 시는 다른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에서 말하는 대상들에서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화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 지로 알 수 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이방원의 시에서 요즘 현실의 특징을 찾아낼 수 있지만, 다시 간단하게 생각하면 하여가의 사회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의 사회는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정약용의 시에 나타난 백성들은 왕 아래에 있는 것을 자로 여겼지만, 지금은 자신의 주권을 찾는 것이 자유다. 정약용의 사회에서 백성들은 굶주림에 허덕였지만, 김광규의 시에선 배고픔 대신 억압된 소시민을 다룬다.

 

  이렇듯 나는 간단하게 세 가지 시를 보았다. 특징은 각자 다른 반면, 모두 자신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위 시들은 모두 특별한 표현 없이 쓰여진 시이다. 사회를 토로하는데 미학이 섞이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 문예지는 현실과 미학이라는 두 파로 나눠져서, 어떨 때는 무엇을 중요시하냐는 문제로 시인들 끼리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들었다. 분명 문학은 사회 속에서 존재하며, 현실의 부조리함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글을 통해 감동을 주는 예술 또한 문학이다. 시인이란 그 간극을 찾아 그 작은 구멍에 자신이 체험한 삶을 저며 넣는 역할이 아닐까?

바슬바슬
바슬바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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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이론에 조금 치중되고 자신의 해석을 중심으로 한 감상평이 있으면 더욱 금상첨화이겠습니다. 문학평론가와 같이 이론에 접목하여 해석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평론이고, 이 글방에서는 감상`비평글로서 자신의 해석을 조금더 강조한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 2009-11-06 10:17:11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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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시정신과 표현기법에 대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묶어 공부하였군요. 이와 같이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사고훈련이 매우 필요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의 생각들은 체조하듯 자꾸 힘을 길러가게 되는 것이니까요. 여러 사람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은 공부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이고 겸손한 자세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논리와 감수성으로 시를 읽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입니다.

    • 2009-11-06 10:17:08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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