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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이지 않아도 괜찮아 매력적이니깐

  • 작성자 이노을향
  • 작성일 2013-01-30
  • 조회수 1,232

낭만적이지 않아도 괜찮아

매력적이니깐

- 이정란 외 16인, 『방송작가가 말하는 방송작가』, 부키, 2007년. 을(를) 읽고 쓴 서평

이승민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는 없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부분이자, 책을 덮은 후에도 그 여운이 잔잔하게 남아서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문장. 『개편 시기면 제때 원고료가 들어오지 않아 통장이 펑크 나기도 하고, 시간이 없어 제대로 된 자식 노릇, 친구 노릇 못한 적도 많지만 한 편의 시트콤 같은 버라이어티한 작가 생활이 나는 너무나도 즐겁다. 그건 아마도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리라. 만약 이 일이 단순한 생계 수단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우울했을까?』 현실적 요건으로만 따져본다면, 방송작가는 여러모로 힘든 직업군에 속한다. 그러나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고 꿈꾸던 일을 한다면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돈도 시간도 앗아가는 직업이라고들 하지만, 내게 활력과 즐거움을 준다면 기꺼이 감수하며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또 더 생각해보면 그 생각이 달라진다. 돈, 시간은 그렇다 치자! 시간이 없어 제대로 된 자식 노릇, 친구 노릇 못한다는 것은 내 주변의 이들과 나 자신 사이의 거리를 멀어지게 한다. 실제로 모 드라마 작가가 『이 일(방송작가일)을 몇 년 하다 보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모든 인간관계가 끊어지다시피 하니, 그때는 나가고 싶어도 나갈 데가 없고 만나고 싶어도 만나 주는 사람이 없다.』라 하였다. 작가는 본인은 좋아서 혹은 나름의 의무감과 성취감에 취해서 이 일을 하는지 몰라도, 가족이나 옆의 사람에겐 그의 눈치를 보고 숨죽여 살아야하므로 말 그대로 ‘정말 못할 짓’일명 고문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 책의 글쓴이 총 17분 중 한 분이신 SBS 라디오 교양 작가께서는 작가를 하면서 자신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적나라하게 파헤쳐 말씀해주셨다. 일단 친구가 사라진다고 하셨다. 불규칙적인 수면 리듬으로 약속잡기도 어려워진다. 밤샘근무로 피곤할 때에는 밤 9시에 걸려 오는 전화에도 왜 잠을 깨우냐며 성질을 부리니, 친구들은 자연스레 자기네들끼리만 만나게 되고 작가 분껜 전화조차 걸지 않게 되었다며 한숨을 푹-내쉬는데 그 와중에도 피곤해보였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했던 나의 몇 가지 행동들이 갑자기 뇌리를 스친다. 솔직히 말해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분야 상관없이 방송작가가 꿈이라며 말하고 다녔었다. 또한 방송작가가 하는 일 하면 자신의 대본에 맞춰 연기할 배우들과 함께, 여유 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했었다. 일을 할 때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글을 딱 써서 보내고, 충분한 여가생활을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 했었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착각을 해도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한 방송사를 대표하는 작가라도 그렇게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방송작가로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방송작가는 아이템을 구상하고 기획하고 대본을 쓸 때뿐 아니라 늘 치열하게 자기개발을 해야 하고, 몸은 쉬어도 머리와 감각은 쉬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처음 이 직업을 접했을 때,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글을 써내려가는 여유 있는 우아한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러나 덜 익은 열매처럼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그에 걸맞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선입견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커피 한 잔을 홀짝거릴 여유는 없지만, 일을 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보람 및 성취감을 이룬다면, 여유 있음에 버금가는 훌륭한 일이 아닐까? 쉬운 일을 하는 것보다 하면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일이 난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꿈에서 깨어나 새로운 현실로의 접근

보통 방송작가는 가만히 앉아서 글만 쓴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편견이다. 기획과 구성, 취재 없이는 대본 집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방송작가와 작가가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글을 쓰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방송작가와 작가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라 하면 가만히 앉아서 글만 쓰는 줄 알았는데 이는 나의 잘못된 편견이었다. 이 책에선 방송작가 17인의 삶을 다루었는데, 일반 작가와 달리 방송작가는 글 쓰는 것뿐만이 아니라 기획과 구성, 취재까지 한다고 한다. 단순히 글만 써내려간다고 대본 집필이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방송작가는 단순히 몇 날 며칠을 갈고 닦아 주옥같은 문장을 써내는 직업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선 방송작가를 이렇게 말한다. 생방송 1시간 전에도 방송에 맞는 원고를 거침없이 뚝딱 써내고, 긴급 상황에는 즉석에서 멘트를 한 줄, 한 줄 써서 넘겨줄 수 있는 순발력도 있는 사람!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말 옳은 말인 것 같다. 평소에 아무리 훌륭한 글을 쓸지라도 방송 시간에 맞춰 원고를 완성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서 본질적으로 둘이 쓰는 글에서부터 차이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방송작가가 쓰는 글은 문학 작품의 글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 방송작가는 방송용 글, 즉 진행자나 리포터, 성우가 말할 내용(멘트)을 쓰므로 기본적으로 구어체로 대본을 쓴다. 우리가 말할 때 문어체로하지 않듯이 말이다. 그리고 TV 작가는 화면(영상)에 맞는 글을, 라디오 작가는 라디오의 속성에 맞는 글을 써야 한다.

즉, 방송작가가 말하는 방송작가에게 꼭 필요한 자질을 정리해본다면,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터지면 진행 중인 아이템을 모두 중단하고 새로운 사건에 맞는 아이템으로 프로그램을 다시 신속하게 제작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드라마 작가나 시트콤 작가, 코미디 작가, 영상 번역 작가는 예외지만, 이 경우에도 사회의 변화가 시의 적절하게 녹아들게끔 표현할 수 있으면 좋다고 한다.

솔직히 프로그램을 다시 제작해야 할 경우 당황스럽게 여겨지고 식은땀이 흐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크게 당황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 짧은 시간에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대본을 쓸 수 있는 순발력,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기록하고 메모하는 꼼꼼함, 어떤 사안을 중립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 등이다. 물론 사람마다 성격도 특성도 다양하기 때문에 이 조건들을 완벽히 갖추고 있을 수도. 있고 갖추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위 조건들을 갖춘 사람들이 많다는 것뿐이지 방송 작가라고 해서 꼭 위 조건을 갖추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방송작가로 일하는 데 있어 성, 연령, 학력으로 인한 차별은 딱히 없다고 한다. 개인의 능력에 의해 평가 받기 때문에 타 분야에 비해 성, 연령, 학력으로 인한 차별이 적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한국방송작가협회에 소속된 방송작가의 성별은 여자와 남자의 비율이 7대 3 정도로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나이를 보면, TV 교양 분야나 라디오의 새끼 작가는 업무가 다양하고 많기 때문에 대학 졸업생이나 졸업 예정자들을 선호하긴 한다. 그 외의 분야에서도 일을 편하게 시키기 위해서 서브 작가는 메인 작가보다 나이가 적은 이를 뽑는 것이 보통이다.

방송작가는 프리랜서이므로 안타깝게도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 등의 복지 혜택은 받을 수 없다. 개인 사정에 따라 본인이 일을 조절할 수 있다. 또한 노동 강도도 세다고 한다. 거의 매일 출근하여 하루에 10~12시간씩 아주 다양한 업무를 소화해야 하므로 정신없이 바쁘고 프로그램에 따라 밤샘 업무도 잦다. 한마디로 쉽지 않다.

실제로 꿈꾸는 것과 현실 속에서 겪는 것은 다르다. 나도 방송작가에 대한 환상이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작가라는 약간 고상한 느낌이 드는 직업도 알고 보면 정말 빡빡한 정신적 막노동이라 불릴 만큼 시간도 정성도 많이 쏟아야하는 직업이란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시사·교양 작가는 분명 고단한 직업이다. 그러나 고단한 만큼 매력적이고 고단한 만큼 따뜻함도 함께 숨 쉰다.’에서 ‘고단한 만큼 매력적이고 따뜻함이 숨 쉰다.’ 라는 말이 사실 처음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단함과 매력은 별개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무슨 말일까? 곰곰이 되새기며 읽어보았더니, 작가분의 요지가 ‘고단함마저 그 직업이 갖고 있는 매력으로 승화시킨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어서 [이슈 메이커와 성공적으로 인터뷰를 해냈을 때의 짜릿함, ‘아! 아직도 우리 사회는 살만하구나.’라고 느끼게 해 주는 미담의 주인공들과 이름 없는 청취자들이 뿜어내는 훈훈함……. 만약 당신도 그 짜릿함과 훈훈함을 느끼고 싶다면 라디오 시사·교양 작가가 되라. ‘내 다시 태어나도 시사 작가는 되지 않으리.’라고 이를 갈면서도 노트북 앞에서 전열을 가다듬는 모순된 기쁨을 당신도 누릴 수 있길 바란다.]에선 교양 방송작가란 직업이 일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다 끝내고 돌아보면 뿌듯하고 보람된 일로 여겨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송작가에게는 매일매일 데드라인이 있다고 한다. 아이템을 잡아야 할 데드라인, 섭외해야 할 데드라인, 구성안을 짜고 내레이션을 써야 할 데드라인, 대본을 써야 할 데드라인 등 말 그대로 그때까지 해내지 못하면 죽는 것과 다름없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내야 한다. 또한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은 어느 누가 쉽사리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갑작스런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서도 링거를 맞아 가며 대본을 써야 하고, 부모가 죽어도 영안실 옆에서 원고를 써야 하는 것이 방송작가의 운명이다. 사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너무한 거 아닌가? 방송작가는 사생활도 없나? 하는 생각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방송은 불특정 다수 즉, 대중들과의 약속이므로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교양 있는 방송을 만드는 작가의 삶이란

대한민국에서 라디오, 그 가운데서도 시사와 교양을 표방한 프로그램은 셀 수 없이 많다. 장르도 다양하다. 보통 출근이나 퇴근 시간대에 방송되는 정통 시사 프로그램들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슈를 주로 다루고 낮방송 프로그램에는 교양적 요소가 더 가미된다. 토론이 주가 되는 프로그램도 있다. 교양프로 작가는 그날의 주요 이슈를 고르고, 그 이슈를 누구와 어떻게 풀어 갈 것인지 생각하며 자신의 역량과 개성에 따라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그렇게 오늘도 대한민국에서는 수많은 시사   〮교양 프로그램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발 빠르게 그날의 뜨거운 이슈들을 전한다.

그러면 이렇게 많은 시사교양 프로그램들 가운데 다른 프로그램과는 조금 다른, 최고라고 하기엔 쑥스럽지만 그래도 청취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라디오 시사〮교양 작가는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할까?

좋은 시사〮교양 작가가 되려면 먼저 특종에 대한 욕심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특종을 향한 본능과 갈망은 기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전화 인터뷰라는 특성상 라디오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다른 매체보다 빠르게 그날의 이슈 메이커를 연결할 수 있다. 그리고 기자들에게는 꽁꽁 감춰 두었던 이야기들도 MC와 말을 주고받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생방송이니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이런 식으로 라디오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특종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TV나 신문이 인용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최고의 방송, 최고의 인터뷰는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이슈 메이커에서 나오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잡기 위해 들이는 노력, 그것을 통해 얻고자 하는 투철한 특종 의식인 것이다.

방송작가. 특히 교양 방송작가는 보다 더 많은 오해를 산다. 우아하고 말 그대로 교양이 있어 보인다는 오해를 말이다. 그러나 우아한 이미지로 비춰질지 몰라도, 물 아래의 발은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는 백조 같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늘 앞서가지 않으면, 자기 개발을 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마는 것이 이 일의 즐거움이자 어려움이다.

“방송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오만이다. 그러나 방송은 청취자들과 함께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같은 방송이긴 하나, 교양 프로는 단순히 웃고 넘기는 시트콤이나 예능프로와는 다르다. 그 안에 담겨있는 메시지 하나하나가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사람들에게 가려진 현실을 즉시 하도록 하며,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또한 진실 된 방송은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그러한 마음들이 하나 둘 모여 점점 커진다면, 이 각박한 세상에 한줄기 빛과 같은 도움이 된다.

방송작가란 직업에 있어 명심할 것은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되 언제나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카멜레온처럼 변신해야만 한다. 나 역시 카멜레온 같은 교양 방송작가가 되어 평생 작가라는 이름으로 멋지게 살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는 바이다.

이노을향
이노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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