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두
- 작성자 A
- 작성일 202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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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아니, 알 것 같기도 하다. 책에서나 봤던 녹색 자연환경. 이걸 숲이라고 했었나…? 아니 사파이어 빛 바다? 아무튼. 지금 연도가 삼천…. 잘 모르겠다. 달력이라고는 볼 생각도 없어서.
그런데 그 와중에도 정확한 건 지금 내 나이는 120살이라는 것이다. 그건 확실히 기억한다. 근데 왜 이렇게 젊냐고?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말을 물으면 엄청 실례다. 인류가 발전함에 따라 생명과 피부, 건강 그밖에 다양한 것들이 성장했다.
내가 120년째 인공심장을 끼고 살았지만, 멀쩡한 이유도 그것과 동일했다. (이쯤에서 눈치챌 수도 있겠지만, 병원에 매달 정기 검진을 갈 땐 나이는 꼭 알아야 하기에, 나는 나이 하나만큼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세상은 발전했지만, 자연환경은 퇴보되었다. 바다가 기름으로 뒤덮이고, 나무가 시들고, 동물들이 죽어갔다. 인공지능의 발전과 인간의 무자비한 자연 훼손 때문에 지구는 썩어갔다. 그때쯤 인공 자연이 나타난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인공 자연은 이걸 따라올 순 없을 것이다.
"우와…."
진짜는 남달랐다.
숲의 내음은 인공 자연과 거의 일치했지만 분명 달랐다. 이곳, 진짜가 따스한 분위기라면 인공 자연은 차가운 따뜻한 분위기였다. 마치 사람과 로봇처럼, 아무리 비슷하게 해도 느껴지는 이질감, 이라고나 할까.
멀리서 들려오는 산새들의 속삭임도 남달랐다. 여기는 그냥 '숲'이라고 밖에 표현이 안 될 정도였다. 숲이다, 진짜 숲….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주위를 둘러보며, 나는 넋을 잃은 채 순수하게 감탄만 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누구?"
경계가 한가득한 질문 나를 찔렀다. 뒤를 돌아보자 한 남자 나를 째려보듯 바라보며 서 있었다.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지만 나이 추측은 하지 않은 게 좋기에 티 내지 않았다.
남자는 도저히 숲에 사는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결정적으로 입고 있는 하얀 가운은 연구소에서나 볼 법한 옷이었다. 숲에 사는 사람보단 숲에 놀러 온 과학자가 더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기에, 왠지 모르게 팔뚝이 싸해지는 것만 같았다.
"어… 안녕하세요…?"
"…혹시, 이그제머?"
"…네?"
"이런 못 알아보아서 죄송하군요."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남자는 꽤 이상했다. 이그제머? 이그젬? 뜻이 … 예시? 아니, 시도였나? 영단어는 직접 사용한 지 오래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의아한 나와는 달리 남자는 나에게 밝은 듯한 미소를 보냈다. 분명 미소였지만 어딘가 꺼림칙했다. 쉽게 말해 그냥 웃음이 아닌 자신을 숨기고 포장하는, 그런 웃음이었기에 더욱 수상했다.
"이곳은 어떠신가요?"
"…좋네요. 멋져요, 아니 어떤 형용사도 부족해요."
남자의 말에 잠시 경계하던 태도를 버리고 주위를 다시 한번 보았다.
남자가 너무도 수상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숲의 아름다움에 빠져 다시 한 번 뒤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멋지고, 아름답고, 따듯하며 다정했다. 아니, 이것도 부족했다. 누군가에게 이곳이 어땠는지 설명해야 한다면, 나는 형용사 백과사전 앱에 들어가 잔뜩 검색했을 것이다.
"좋네요."
"…그럼, 당신은… 여길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요?"
"네."
푸하하하- 당황한 듯 되묻던 남자가 갑자기 크게 웃었다. 가소로운 꼬맹이를 본 듯한 웃음이었기에 상당히 기분 나빴다. 남자의 웃음은 멈출 줄 몰랐다. 웃고, 또 웃었다.
한 10분이 지나서야 나는 웃음을 멈춘, 조금은 진정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아, 죄송하군요. 크흡, 그런 질문을 제가 받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괜찮습니다, 이제 알게 될 테니까요."
응? 갑자기 엉뚱한 답을 한 남자를 바라보자, 남자는 하얀 가운에서 어떤 물건을 꺼냈다. 작은 휴대용 리모컨 같았다, 아니 리모컨이었다.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리모컨은 21세기까지 사용하던 역사적으로 귀한 물건이었다. 만약, 작동이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어쨌든 리모컨을 발견했다면 박물관에 기증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 리모컨을 왜 꺼내는…? 아니, 왜 이 남자에게 있지?
남자는 나를 향해 작게 웃어 보이더니, 말했다.
"부디 즐거운 시간 보내셨길."
그리곤 리모컨의 버튼이, 그 남자에 의해 눌러졌다.
"잠깐ㅁ…!"
*****
"어떠셨나요, 이그제머 94님?"
"…아름다웠어요.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다행입니다."
"…."
"편안히 잠드시길."
_____
곡두: 「명사」 눈앞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 환영)
(단어 설명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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