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 작성자 구포대교
- 작성일 20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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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 무렵이었다. 비행기는 시끄럽게 고공행진 했고 나는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둥근 지구와 내가 분리된 순간. 아니 중력권 내이기 때문에 아직 난 지구였을까. 그 대상이 무엇이든 나와 무언가가 분리된 듯 한 기분에 휩싸인 순간. 양쪽 귀에서 톰 요크의 목소리가 춤추던 그 때. 일그러진 일렉 기타의 사운드가 뇌파와 주파수를 맞출 때.
아. 그것은 airbag였나. 아니, just였던 것 같기도. 가물가물한 기억의 모서리. 닳고닳은 모서리. 끝에 서 있는 가장 무딘 나. 그곳은 넘실거리는 바다의 소금기 밴 바람이 불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오두막이 있었다. 그것은 일몰을 바라보는 가장 좋은 전망대였다. 동시에 밤바다를 바라보는 가장 좋은 전망대였고, 아침을 맞이하는 가장 좋은 전망대였다. 해변의 혼석은 햇빛에 달궈지고 파도는 윤슬을 둘러 반짝이고. 언덕 위에선 노래가 흐르고. 나는 춤을 췄다.
노을 진 저녁에 오두막의 테라스엔 사람으로 가득했다. 낮의 마무리를 술과 함께 하는 이들이었다.
브래들리는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른 아저씨였다. 그는 그곳에서 바(bar)를 운영하였는데, 갈 곳 없는 나를 흔쾌히 재워주기도 했다. 덕분에 오두막은 내 거처로도 사용되었다. 낯선 동양인에게 침대를 내어준 브래들리에게 무수한 감사를.
그는 영국인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비틀즈의 팬이었다. 광신도라는 표현도 과하지는 않겠지. 덕분에 오두막에선 레논-매카트니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 끈질긴 사랑에 약간 지치긴 했어도 (하루의 절반 이상을 비틀즈의 노래로 채운다 생각해보라. 지치지 않을 리가) 만족했다. 이런 사소한 것으로 투정부리기엔 진 신세가 대단히 무거웠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때문에 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손님은 많이 없었고 해야 할 일이라곤 브래들리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과 비틀즈의 노래를 감상하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꽤나 체력을 소모하긴 했다만.
일은 오후 3시에 끝났다. 그러면 보통 시내로 걸었다. 걸어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갖가지 소음들이 뭉쳐서 소란을 퍼뜨리는 곳. 내겐 뒤엉킨 혼잡함이 필요했다. 무엇이든 균형이 중요하니까. 해변은 무척이나 고요했고, 하루의 일부분은 소란을 채워 넣어야 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도 하고.
당시 내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가 인간관계였다. 그것은 현재까지도 내 삶을 관통하는 가장 굵은 줄기다. 그 줄기는 손을 가지고 있었다. 혹은 더듬이. 혹은 입. 혹은 성기라고도 해도 되겠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줄기들의 손, 혹은 더듬이, 혹은 입, 혹은 성기와 이어졌다.
그러한 방식의 맺음들은 모두 각자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무언가는 사랑, 무언가는 미움, 무언가는 유대, 무언가는 미안함. 무언가는 부끄러움.
무수한 색깔의 맺음들. 그것들이 피워낸 꽃들.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것. 그 꽃의 이름은 동경이었다.
나는 한 소설가를 동경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관계로 앞으로도 소설가라 기술해야 할 듯싶다.
그러나 이름을 제외한 그의 많은 것들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와 친해진 후로는 그의 집으로 찾아가곤 했다. 소설가는 시내 구석진 곳의 빌라에서 살았다.
그는 190cm를 뛰어넘는 장신이었으며 군살 없이 다부진 몸을 유지하는 미남이었다. 나이는 60세를 넘었었나, 안 넘었었나, 확실하진 않지만 그 근처였다. 나이가 많으면 또 어떤가. 큰 키에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하얗고 가느다란 머리칼마저도 멋있었다.
소설가는 언제나 날 반겼다. 처음 만난 날부터 그 다음날, 다다음날, 다다다음날까지도. 쭉. 나도 언제부턴가 편한 마음으로 그의 집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종종 이야기를 나누고 소설가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고, 나도 가끔씩 요리를 하고, 함께 영화를 보고, 책을 선물 받고, 영어를 배웠다. 마지막 사항이 정말 요긴했다.
소설가는 소설가였다. 그렇기에 초보영어구사자인 나는 그에게서 다양한 어휘들을 배웠다. 가장 요긴하게 쓰인 말들은 Bloody, Cunt, Dork, Gimp, Dickhead...... 등이 있겠다. 지랄, 씹년, 얼간이, 다리병신, 좆대가리......
소설가는 호탕한 남자였다. 남자이기에 앞서 호탕한 인간이었다. 누구에게나 큰 목소리로 쉽게 말을 걸고 두려움이란 것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매일 아침이면 해변으로 나와서 조깅을 하고 이따금씩 오두막에서 술을 한 잔씩 하고 잔뜩 취해서 자고, 비틀즈의 노래에 비몽사몽 일어나 함께 노래를 부르고, 죽은 아내를 욕하고, 차를 운전했다. 면허증이 없는데도. 당시 그의 말이 아직까지도 뇌리의 깊은 곳에 박혀 있다.
“면허는 똥가루 날리는 얼간이 새끼들이나 가지라 그래. 내 권한은 내가 정한다! 함부로 제한하지 말라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 무면허가 아니라 한 잔 한 것 같다. 아무튼, 그의 말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단순 그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장면에 있었다.
그는 차를 운전 시작한지 10초가 될 무렵에 가드레일을 갈아버렸다. 하마터면 가드레일을 넘어 바다로 빠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소설가는 멋쩍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태평하게 웃고 있었다.
그 순간이 어찌나 아름답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그의 뒤편에선 태양이 그 어느 때보다 붉게 타오르며 하늘을 물들여 소설가의 그림자를 앞으로 길게 늘어뜨렸다. 붉은 휘광을 두른 소설가에게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도 소설가처럼 살고 싶다 생각했다.
그때야 비로소 난 소설가를 동경함을 깨달았다.
가끔씩 새벽에 눈을 떴다. 잠자리가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브래들리가 내준 침대는 아주 편안했다. 창문에 부딪혀 산란하는 별빛은 예술적이기까지 했다. 방은 완전한 밤으로 물들었다.
그러니 새벽에 눈을 뜨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그 다른 이유라는 것은 악몽이다.
나는 과거의 집착에 시달렸다. 그것은 끈질기게 달라붙어 나를 밑으로 끌어내리려 했다. 나를 과거의 나로 돌려놓기 위하여. 암울한 기억은 예고 없이 찾아온 행복을 거부했다. 다수가 소수를 짓누르듯이.
물론 꿈 바깥의 현실은 행복했고, 크게 불만은 없었다. 과거의 되새김질이 악몽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에 여러 감정이 들기는 했다.
분명히 과거는 불행한 편이었다. 여기서, 과거는 현재와 분리된다. 어둡게 다가오는 과거는 현재가 너무 밝기 때문일 뿐.
이 사실을 가슴에다 묻어두고 잘 때면 악몽은 찾아오지 않았다.
여름의 정중앙에, 장대비가 내렸다. 그곳에도 장마는 존재했다.
후둑, 후두둑, 두둑. 창문을 두드리는 거센 빗방울의 소리에서, 어쩐지 리듬이 느껴졌다.
창밖의 해변은 해무로 가득했다. 완연한 암흑과도 비슷한 새하얀 안개였다. 외출은 상당히 위험했다. 때문에 오두막 안에서 갇혀 지내야만 했다. 으스스한 분위기에 오두막 안에는 나와 브래들리 뿐. 정말이지 심심했다. 그래서 빗소리에서도 리듬을 느끼며 어떻게든 재미를 찾아 헤맸던 건가. 약간은 미쳤을 지도 모른다. 대놓고가 아니라. 아주 약간. 그것이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유익한 방법이니까.
지금 생각해봐도 그 풍경은 참 대단했다. 영화 <미스트>가 연상되는 풍경에 지레 겁을 먹었다.
하늘에서의 부유를 끝마친 빗방울들의 위대한 고향으로의 귀향. 그 잔재로 남은 안개. 그렇게 생각하자니 경이로운 풍경이기도 했다.
손님도 없었고 나는 브래들리에게 체스를 배웠다. 규칙을 몰랐던지라 처음 배우는 데에 꽤나 애먹었다. 흑과 백. 그 속에서 움직이는 병들과 기사들. 왕과 여왕. 정말 흥미로운 게임이었다. 흑백의 세계 위에서 주어진 길을 따라 승리에 다가간다. 무수한 길들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색이 승리를 취한다. 하나에 일조하는 여럿. 분할. 문득, 체스는 인생과 닮아있다고 생각했었다.
다만 삶은 조금 더, 다채롭고, 무한한 길이 존재하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와 브래들리 모두 화들짝 놀랐다. 그 날씨에 누가 술집을 온다고. 경악하기 충분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비에 쫄딱 젖은 모양이었다. 뜨겁고 가쁜 숨 너머로 뜨거운 심장이 느껴졌다.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브래들리는 약간 긴장한 눈치였던 것 같다.
그녀는 스스로를 멜라니아라고 설명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고, 확실히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피부는 하얗다 못해 창백했고 또, 가늘었다.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과 반대로 눈동자는 미동 없이 나를 응시했다. 는지럭대는 검은 물결 같은 머리카락이 자꾸만 눈을 침범했다. 그녀가 마치 메두사인 듯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세심한 기억이다.
우린 멜라니에아게 술을 한 잔 대접했다. 일단은 술집이니까. 또, 차가운 몸을 데우는 것에 있어서 술은 효과적인 발열제이기도 했으니까.
난 멜라니아의 젖은 시선을 회피하기 위해 바빴다. 어째선지 난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볼 수 없었다. 그녀는 이상하리만치 나를 쳐다보았다. 의중을 읽을 수 없는 눈동자에 나는 침착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침착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움직일 수도 없게 된 것이었다.
멜라니아는 나를 힐끔힐끔 보며 브래들리와 대화했다. 날씨가 무슨 상관이냐는 그녀의 말에 보통이 아니다, 란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평범하진 않지. 언제나 평범의 기준은 내가 되고 나는 이 날씨에 바깥을 활보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멜라니아는 그리스에서 왔고 영어가 서툴렀다. 나 역시도 영어회화가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우리 둘은 꽤나 잘 맞았다. 말을 몇 번 섞다보니 그녀를 대하는 게 한결 편해졌다. 마음이 잘 맞는 것이 느껴졌는데 말은 둘 다 서툴다보니 대화 꼴이 꽤나 이상했었다. 그렇지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대화는 즐거웠단 것이다.
멜라니아는 시내의 호텔에서 지냈다.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여행 중이었다. 잠시 머물렀다 갈 뿐인 거다. 기약 없는 잠시. 그날 이후로 난 멜라니아와 자주 만났다. 그녀와 대화를 더 잘하기 위해서라도 영어 공부를 꽤 열심히 했다. 소설가와도 더 자주 만나게 되었고.
어느 날엔 멜라니아와 공원을 함께 걸었다. 작은 호수가 딸린 공원이었고,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많았다.
장마의 기세가 사라진 투명한 하늘의 덧없는 푸르름. 그 하늘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호수. 윤슬은 푸른 하늘의 별빛이 되어 반짝였고, 그것을 바라보는 멜라니아는 별빛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때 내 마음 속에서 꿈틀댔던 감정의 이름은 사랑이었나. 마음 속 줄기에서 뻗어 나온 손이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우리들이 피워낸 가장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꽃. 신중하게 개화를 시작했다.
한 번은 소설가와 사교모임에 참석했다. 크다고 볼 순 없지만 작다고도 볼 수 없는, 그런 서점에서 또 다른 작가들과, 아니면 출판업계의 종사자이거나, 아니면 나와 같은 그들의 지인들 소수가 그곳에 모였다. 예상과는 달리 젊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설가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람들은 몇 명 없었고. 잘 기억나진 않지만 소설가가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시켜주는 장면만큼은 어렴풋이 남아 있다. 소설가와 비슷한 연배의 한 남자가 와인잔을 든 채로 연설 비슷한 것을 하고, 기억나지 않는 마지막 말에 모두가 환호하고, 나도 소리를 지르고, 그 후 무리들을 형성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난 소설가를 따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을 친구들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준은 그렇게 해서 만난 친구였다.
그는 갈색의 덥수룩한 곱슬머리를 하고 뿔테안경을 낀, 주근깨가 인상적인 붉은 피부의 남자였다. 미국의 하이틴 영화에서 범생이 역할을 훌륭히 소화 가능할 외모. 어려운 분위기는 하나도 없었고 나는 금세 그와 친해질 수 있었다.
준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4살인가 5살 정도. 이 섬에 하나 뿐인 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이었다. 준은 나를 조수석에 태워주며 섬 곳곳을 관광시켜줬다. 막상 섬에 와도 해변이나 시내에서나 지내며 그 너머로는 좀처럼 발을 디디지 않던 나는, 준 덕분에 섬을 보다 잘 알게 되었다. 그와 다니며 영어 실력이 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인이었고 나와 음악취향이 겹치는 등 닮은 점이 많았다. 그땐 나도 공부벌레 느낌의 이미지였을까? 과거의 내 외관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주변인에 대한 모습이 뚜렷한 것과는 상반되게.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준은 오늘도 여김 없이 나를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달렸다. 한적한 도로 위에서 질주하는 쾌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창문의 틈을 비집고 쇄도해오는 바람과, 그 바람과 마찰하며 시끄럽게 울려대는 음악이 기분을 고조시켰다.
스피커에선 에미넴의 하이톤 목소리가 고조되는 비트에 맞춰 랩을 고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신나는 노래였지. 아마 my name is였을 거야. 아닐지도 모르지. 그의 노래들은 대개 신나니까.
준과 나는 어디론가 향하며 에미넴에 대해 얘기했다. 너무 큰 성공에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몰락해버린 거야. 대충 이런 얘기였던 것 같다. 아마 5집의 평가가 곤두박질치고 약물중독에 빠져 허덕이던 때였나 보다.
스피커에서 에미넴의 목소리가 멈췄다. 차도 멈췄다. 도착한 곳은 섬의 외진 곳. 아마 오두막에서 가장 떨어진 곳이었을 터다. 공장들이 몇 개 보였다. 험해 보이는 풍경과 미지에 약간 겁을 먹었다. 준이 아니었다면 안쪽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했겠지.
좋아할 거야.
준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특별할 것 없는 저 단순한 말이, 아직도 떠오른다.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어쩌면 그 하루가 내게 너무 인상 깊었을 지도.
그곳엔 흑인들이 다수 있었다. 준처럼 백인들도 조금 있었지만 흑인들이 명백한 다수였다. 동양인은 내가 유일했다.
그곳은 가느다란 강줄기가 흘렀다. 크지 않은 다리가 놓여 있었고, 그 그림자 속에서 사람들이 춤을 췄다. 춤이란 리듬에 맞춰서 몸을 움직이는 것. 그들은 머리를 격하게 끄덕거리며 구불거리는 공기에 몸을 맡겼다. 열정과 정열이 가득한 흐느적거림이었다. 그것은 힙합이었다.
스피커에선 붐뱁 비트가 흘러나왔고 마이크를 쥔 자는 그 비트 위에서 랩을 뱉었다. 다른 이들은 그의 랩에 달라붙어 춤을 췄다. 약간은 공격적이고 제멋대로인, 무질서한 춤사위가 나를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마이크를 주고받으며 차례를 넘겼다.
지구가 자전을 하고 공전을 하는 것처럼, 당연하게도
내게 마이크가 쥐어졌다.
사람들의 눈길을 느꼈다. 먼 동양의 변방에서 온 이색적인 존재. 그를 향한 호기심. 약간의 껄끄러움과 의구심. 미세한 적대심까지 고스란히 젼해졌다. 지금의 내게까지도.
여기로 올 때까지만 해도 상상치 못한 광경. 얼떨결에 받아 든 마이크엔 어마무시한 공포가 실려 있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두려운 감정이 생생하다. 언제 그렇게 랩을 해봤다고.
하지만 나는 랩을 뱉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초라한 나그네, 로 시작해서 난 노래 부르리라, 로 끝맺었다. 피타입이 부른 돈키호테의 가사다. 당시 피타입의 앨범을 자주 들었고 그 가사가 때마침 떠오른 덕분에. 나름대로 구색은 맞출 수 있었다.
랩을 마친 뒤에는 환호에 젖어들었고 음악과 물아일체 했다.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서 반향을 일어낸 것이 처음이었으리라. 땀에 젖은 전율을 잊기 어렵다.
자주는 아니지만 준을 따라 몇 번씩 다리 밑을 방문했다. 삶의 또 다른 활력을 찾는 곳이었다. 친해진 사람도 두, 세 명 있었다. 그와 반대로, 좋지 않은 관계도 여럿 생겼고.
아직도 그의 이름이 생생하다. 맥. 모 유명 햄버거 브랜드와 이름을 공유하는 맥은 날 처음 볼 때부터 시선이 좋지 않았다. 불구대천지원수라도 본 것 마냥 험악하게 눈을 부릅뜨더니 스쳐 지나가는 척하며 어깨를 부딪혀오기도 했다.
마른 편이던 나는 덩치의 맥 앞에서 맥도 추지 못했다. 괜한 싸움은 피하는 것이 최선이었으니. 어느 정도 굽힐 줄 아는 것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다.
기어코 일이 터진 것은 여름의 끝자락에서였다.
다리 밑에서, 맥은 어느 때나 다름없이 날 툭툭 쳤다. 그닥 특별한 일도 아니었고 난 무시로 일관할 뿐이었다. 내가 아닌, 준이 반응했다.
무슨 말이었는지 형태는 기억나지 않는다만 뜻은 쉽게 유추 가능했다. 욕이었겠지, 뭐. 준은 맥의 멱살을 잡고 밀어붙였다. 맥의 육중한 무게 때문에 크게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맥이 거칠게 준의 손을 뿌리치고 으르렁거렸다. 순식간에 주목이 그들로 옮겨졌고, 싸움을 말리는 손길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정신없는 붐뱁 비트 속에서, 모두가 섞여서 춤을 추듯. 검고 하얀 사람들이 얽히고설켜서 물결이 된다. 그 속에서 흔들리는 난류가 격류가 되어 묵직한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아마 준을 걱정해야할 상황인데. 그런데,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과거의 내 머릿속을 현재의 내가 유추할 뿐.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래서 도망쳤다.
긴 시간인지 짧은 시간인지 그 중간 정도 되는 애매한 시간인지, 헤아리지 못할 시간이 지나 준이 나를 찾았다. 대충 좁은 골목 비슷한 곳이었다.
당시 준의 표정이 어땠는 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우린 어느 공장의 담벼락에 기대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 미안하단 말을 우선적으로 했겠지. 말도 없이 도망쳐버렸으니. 별 탈 없이 이야기를 나눈 것을 보면 준은 사과를 받고, 상태도 나쁘지 않았으리라. 다행이다. 동시에 한심하다. 과거의 나는 스스로 나서지 못하는 한심한 인간이었음을 자각한다. 그때의 날 이해하지 못한다. 비겁한 도망자. 추레한 이명을 난 나에게 붙여준다. 과거의 나에게.
그 후로 다시 다리 밑으로 가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섬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도 했고.
슬슬, 기억이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이 외에도 많은 인연들을 만났으나, 온전히 남아있는 기억이 몇 없다. 그나마 떠올려보자면 존 레논을 닮은 사람이 한 명 있었지.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기른 고동색 머리와 동그란 안경은 떠오른다. 당시에는 몰라도 지금 생각해보면 존 레논과 닮은 외모. 이하 존이라고 서술하겠다.
존은 무직의 백수였다. 한가하게 해변을 걷기 일쑤였고 성격 좋은 브래들리에게 술과 밥을 얻어먹은 적도 적지 않았다. 그가 어디서 사는지도 몰랐는데, 유추해보자면 이런저런 지인들의 집들을 전전해가며 사는 듯했다. 그는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지인이 많았고, 또, 잘생겼다. 아마 이것이 그의 생존비결 아닐까 지금 와서야 조심스레 생각한다. 제 아무리 누추한 행색도 본 생김새의 뛰어남을 가리진 못했다.
존은 또, 체스를 굉장히 잘 두었는데. 때문에 브래들리가 그를 아주 좋아했다. 공짜로 얻어먹는 손님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그를 반겼었지. 때문에 나도 그와 꽤 친해졌었다. 함께 해변을 따라 달리기도 하고, 여자들을 소개시켜주기도 했지. 그는 잘생겼고, 많은 여자들이 그를 사랑했으니까. 그가 그 많은 그녀들을 모두 사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때의 내 마음 속에는 단 한 명만이 존재할 수 있었고, 그 한 명의 이름은 멜라니아였지 다른 이가 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거절했었나? 문득 든 의문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때의 나는 분명히 거절했었지. 그게 정상이니까. 나는 멜라니아를 사랑했으니까. 우리의 꽃은 분명히 피어났어. 가장 아름다운......처연한 꽃은.
분명한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써버렸다. 과연 내 말은 분명한가? 사고가 힘겹다. 나는 다른 여자를 만났을지도......모르지. 하지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다시 과거를 보도록 하자.
나와 멜라니아는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장소는 다양했다. 해변에서, 공원에서, 카페에서. 풍경은 대략적이다. 안개처럼 뿌연 배경 앞에, 말레니아의 미소만이 선명하다.
그녀와 대화를 하던 장면들이 선명하다. 내 입에서, 그녀의 입에서 나오던 말의 뜻은 모르겠지만. 별 거 아닐 터다. 아무런 얘기나 두서없이 내뱉었을 거다. 그것마저도 너무 행복했던 시절. 악몽으로 다가오던 과거를 용서했던 지금의 행복.
눈물이 난다. 잠시 멈춰야할 것 같다.
그러니까, 멜라니아는 정체불명의 여인이었다. 그 선명한 외모와는 달리 그녀의 배경은 불분명했다. 단순히 풍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이름과 국적을 제외한 모든 것을 몰랐다. 나는 멜라니아를 사랑했으나,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그녀의 성 씨마저도. 그저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몰랐던 것. 그 무거운 사실이 나를 옭아맸다. 여름이 경계선에서 그렇게 말했었지.
당신에 대해 알고 싶어.
이런 진부한 멘트를, 그녀의 손을 잡고 한없이 진지하게 말했더랬지.
소나기의 흔적이 남은 후덥지근한 공기에 너는 숨결을 불어넣었지.
너와 나의 숨결을 더 나누고 싶었는데. 너는 거부했지.
밤공기가 어쩐지 끈적하게 달라붙어 싫다고. 너는 내게 말했어. 너의 말풍선은 화살 모양으로 내게 박혔어. 나는 그저 밤공기와도 같은 것이였음을.
자각했다.
아니면
자임했다.
그녀의 생각이 어떻든 나는 스스로를 끈적이는 밤공기라 치부했다. 착각이 된 거짓 된 자각. 지금에서야 그렇게 깨달을 뿐, 그때의 나는 한없이 추락했다. 끈적한 어둠 속으로.
끝끝내 나는 멜라니아를 사랑했다. 난 공항으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무언가를 해야 하나. 필시 고민했다.
사무치는 괴로움에 몸부림쳤어야 했나. 나는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 휴 그랜트처럼 생기지도 못했는걸. 현실과 영화를 너무도 철저히 구분했던 시절의 나였다.
가을 낙엽처럼 멀어지는 거리. 여름에 갇힌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멜라니아가 몸을 돌려 나를 보았다. 아니, 나를 보았나? 내 옆에는 누가 있었지?
준이었나. 존 레논이었나.
준이 멜라니아와 아는 사이란 건 이상하다. 아무래도 존이 맞겠지. 그의 발은 한 눈에 담기 벅찰 정도로 거대하니까.
아, 나는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존 레논이 갑자기 밀쳤기 때문이다. 어디서 나타난 거지? 놀래킬 의도였으니, 원래부터 함께는 아니었다. 원래는 언제부터를 원래라고 말하지?
갑자기 나타난 존 덕분에 말레니아는 나를 발견했다. 가을로 향하는 여행자의 작별인사가 다가왔다.
멜라니아와 존은 대화를 나눴지. 그랬던 것 같다. 나를 내버려두고, 둘이서.
그녀는 망설였나. 나를 바라보기를.
시선을 피하려 애쓰는 심상이 쉽게 그려졌다. 분명 그랬던 거지. 순서는 지나고 차례가 도달했을 때, 격동하는 그녀의 눈동자와, 심장을, 마음을 느꼈다.
스스로 추락해버린 지 며칠 뒤였고(바로 다음 날은 아니었을 것이다)난 그녀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짧은 시간 해묵은 감정이 눈동자에서 흘러나왔다. 그녀와 이어진 선이 녹아내리는 듯. 난 선이 끊어지기 전에, 고백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더욱 알고 싶다고. 멜라니아의 표정은 놀라기 보단 애틋했다. 어느새 존 레논의 모습은 사라졌고 그녀의 가느다란 손이 내 뺨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입술이 달싹이고, 난 허망하게 깨달았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음을.
우린 둘 다 서로를 몰랐다고.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고.
그녀와 나는 갑자기 걷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공항보다 더욱 깊은 곳. 과거를 향해, 기억 위를 걸었다.
멜라니아는 새벽의 해변에서 나를 보았다. 그리고, 속된 말로, 사랑에 빠졌다. 운명은 첫 눈으로 구별할 수 있었다고.
그녀는 믿었다.
난 그녀의 기억을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에게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 행위는 환각처럼 눈앞을 어지럽히며 현실에까지 영향을 끼쳐서야, 멜라니아는 사랑이란 지독한 바이러스임을 깨달았다.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던 장마 속에서 깨달은 사랑은 멜라니아를 괴롭혔다. 병의 원인을 직접 마주해야만 바이러스를 해독할 수 있었다.
사랑. 그것이 그녀가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를 지나 바까지 올 수 있던 이유이자 동력이었다. 애초부터 이 사랑의 시발점은 내가 아니라 그녀였던 것이다.
멜라니아 카라만리스. 그녀는 자신의 나이에 대해 고향에 대해, 여행의 목적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앞의 두 것은 까먹었지만, 마지막으로 말한 여행의 목적만큼은 기억한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기 위해. 이를 위해 멜라니아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나와 일정부분 일치하면서도 다른 목적이었다.
그녀의 말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공항의 목전이었다. 멜라니아 카라만리스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멜라니아 카라만리스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그날처럼.
그날의 그녀는 내 인생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을 사랑해.”
I love you.
그 단순한 말이, 덜 채워진 마음에 쿵, 하고 부딪쳤다. 종이 울린다. 성탄절보다도 기쁜 순간에 기쁨의 종이 울렸다. 채워지는 여백.
“멜라니아.”
탑승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나와 멜라니아는 공항 내 벤치에 앉았다. 분주히 움직이는 발소리들이 소란했다.
너무 소란스럽고, 시끄러워서, 세상에 너와 나 단 둘만 존재했다.
나는 너에게 나를 알려줬다.
어렸을 적부터 양친이 없었지. 고아원에서 자라서 초중교를 졸업했지. 내 친구들은 고아들이였어.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부모가 있는 친구들을 멀리 했던 것 같아. 스스로를 울타리에 가둔 셈이지. 그러다, 어느 날 조부모의 사망 소식이 내게 닿았어. 별 감흥은 없었지.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양반들이거든. 애초에 죽었을 거라 상정하고 살았어. 그래서 놀란 건 좀 있었지. 그런데, 더 놀란 건, 그자들이 내게 유산을 남겼단 사실을 듣고였어. 성인도 되지 않았는데 큰돈이 굴러왔지. 그래, 그게 조부모에 대한 내 인식이야. 어디서 한 번 굴러오는 돌멩이 정도랄까. 조금의 슬픔도 없었어. 약간의 분노는 있었지만. 친구들은 날 부러워했고, 은근히 나와 거리를 뒀어. 굉장히 당황스러웠는데, 난 거리가 멀어지도록 내버려뒀어. 이해할 수 있으니까. 난 고아원을 나와서 작은 방을 구해 살았지. 나름대로 많은 것들이 충분했지만, 가슴 속 어딘가가 텅 빈 느낌을 받은 거야. 그것은 외로움일까? 난 대한민국을 떴어. 외로움을 달래줄, 변화를 찾기 위해서였지. 그리고 이 섬에 도달했고, 당신을 만났어.
삶을 말했다기엔 짧은 내용이 끝나고, 나는 옆에 앉은 멜라니아를 응시했다. 치밀어오르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시선을 피하진 않았다. 그저, 어렸을 적부터 알고 있던, 출처 모를 단순한 한 마디로, 사랑을 전했다.
고백이 모두 오간 다음, 두 개의 입술이 포개어졌다. 작별이었다.
그녀는 나와 짧은 시간을 더 보내다 작은 쪽지를 건네주고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 순간을, 미래의 우리가 기억하길 바라.”
그녀는 그렇게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떠났다. 마음의 여백은 모두 채워졌지만, 그렇게 했다. 멜라니아도 떠났으니, 나도 떠나잔 마음이었을까.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어쩌다 그 섬을 떠나게 되었는지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손이 격하게 떨린다. 심장도 격동한다. 그러나 나는 적을 수밖에.
나는 지난 13년간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 섬에 대한 것, 그곳에서 만났던 인연들. 그곳에서 그려낸 행복들.
애시당초 그 섬의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갖고 있는 여권에서도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며칠 전, 바다에서 술을 마시다가 우연히 떠올린 기억. 하마터면 영원이 잊을 수도 있었다.
13년 간 소실된 섬에서의 기억. 그곳은 태평양이었나, 대서양이었나. 분명 브래들리도, 소설가도, 멜라니아도 기억하는데, 그 외의 많은 것들을 잊었다.
이틀에 걸쳐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들을 드디어 짜 맞추는 데 성공했다. 꽤 많은 기억들이 복구되었고, 행적의 윤곽이 그럴 듯하게 나타났다. 아직 찾지 못한 것은 두 개. 섬의 이름과, 그곳을 떠나게 된 경위이다. 어딘지 모를 그 섬을, 나는 어째서 떠난 거지?
* * *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공책을 덮었다. 하얀 벽지를 등진 허공에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한 것들 투성이다. 어쩌면 그 동안 꿔 온 꿈들이 교묘하게 꾸며낸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 개의 기억들은 안전하게 보전되어 있었고 이상한 부분도 없었다. 모든 이상한 점은 섬을 떠나고 난 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후.
다시 한 분 한숨을 내쉰다. 감정적 피로와 막막함에 찌든 한숨이 아니라,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한숨이다.
난 키우는 개와 함께 바깥 산책을 나섰다. 도시의 소음이 전해지지 않는 한적한 길 위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쉴 때, 스트레스는 자신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어쩌면 그것들은 한여름 밤의 꿈일 수도.
어쩌면 그것들은 내가 어릴 적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써내린 이야기일 수도 있다.
생각할 것은 한 가지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그것들을 기억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인연들이 있었던가. 호의를 가르쳐준 브래들리. 동경을 가르쳐준 소설가. 즐거움을 알려준 준. 사랑을 알려준 멜라니아.
멜라니아의 마지막 바람을 기억한다.
그렇게 된 이상 나도 그들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거짓이라 해도.
상관없다고. 아직 꽃잎은 지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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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내가 평생을 살며 가슴에 안고 있는 생각이다. 당장 내 아버지만 봐도 그렇다. 우리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다 죽어버린 할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아버지는 자신을 위해 살려 평생을 노력했다. 이기적이기 위해 다짐했다. 아버지는 초라한 지붕 아래서 초라하게 돌아가셨다. 태생은 의지보다 질겼다. 의지보다 질긴 태생. 이보다 알맞은 말이 있을까. 없다고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아버지를 닮아가는 운명에 놓인 사람들이 아들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기적으로 살려 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태생적으로 이기적인 인간들이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러한 진실을 깨달은 아들은 거의 없다. 나 역시 아버지가 죽고, 손주를 바랄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으니 어련할까. 그러니까 나는, 내가 아버지와 닮아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아들에게 감추고 싶어지는 것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들이 나의 키를 넘어섰을 때, 아내가 나보다는 아들에게 의지할 때. 부끄러워하는 자신을 발견했으며, 부끄러워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들은 아직 내 어깨에다 자신을 기대려하는데, 그러한 인식과 현실의 부조화가 어색하고, 심지어는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담배를 피게 된 경위다. 나이 50이 다 되어 갈 즈음에 처음 핀 담배. 비약된 인과관계는 혼란한 마음속에 숨어있다. 적어도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 아버지는 뒷마당에서 담배를 피고는 했다. 이기주의를 고수하려던 아버지는 우습게도 밖에서 피라는 어머니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따랐다. 몇 차례의 욕설이 있긴 했지만, 눈 내리는 시린 겨울 와중에도 꿋꿋이 밖에 나가 추위에 떨며 담뱃불을 붙이던 장면은 아직 선명한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집 안에서의 발언권이 축소되며 아버지는 흡연의 횟수를 늘려갔다. 난 한심하단 눈으로 그의 등을 바라만 봤었다. 가장의 짐 다량이 내게로 옮겨졌을 때였다. 아무렴 나와는 큰 상관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다만 산책하던 도중 편의점 하나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고, 우연히 5000원 권 지폐가 있었고, 우연히 담배를 한 값 산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아니 크게 했지만, 모두 우연히 일어난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본심과는 무관하게 나 스스로의 선택이라 믿었다. 담배를 피자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꼴사납게 기침을 했고, 그러면서도 다시 입에다 가져다댔다. 몇 번의 도전으로 흡연은 익숙해졌고, 오래지 않아 그것은 습관으로 굳었다. 중독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밝은 전망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시작한 담배는 생활의 여백들을 틈틈이 채워줬다. 그 만족감이 꽤 크다. 그러므로 나는 쉽게 담배를 놓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그 사실에 관해서는 거부감이 없으면서도 나를 압박해오는 건 지금의 가족
- 구포대교
- 2025-12-27
그의 고향은 먼 우주다. 그는 어둡고 추운 그 공간을 정처 없이 떠돌았다. 어느 순간 그는 어느 행성과 충돌했고 바다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도 방랑은 계속됐고 어느 순간 바다는 쪼개지고, 명명됐다. 그의 이름은 태평양이 되었다. 다른 태평양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에워싼 다른 이들과 비교했을 때 그의 삶은 비교적 순탄했다. 태평양으로 정착한 이후로 바깥 세계로 끌려 나간 적도 없었다. 가끔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잊을 정도로 그의 삶은 평온했다. 다만 그의 주변 환경은 시시각각 바뀌었다. 바다에서 끌려나가 사라져버린 친구들이 태반이었고 해류에 휩쓸려 친구를 잃기도 했다. 우리들의 삶이란 건 무엇일까 하고 그는 자주 고민했지만 어디까지나 그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고민을 나눌 만한 친구가 생기기도 전에 다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방금 인사했던 이가 고개 한 번 돌린 후에 사라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자신을 빼고 변화하는 세계에서 그는 외톨이었다. 바다의 수평선처럼 평생 평온할 것만 같던 그의 생도 언젠간 태풍을 맞길 마련이다. 은빛의 물고기들과 함께 달리던 무렵, 그는 바다 바깥으로 끌어올려졌다. 그물에 엉킨 갈치들과 함께였다. 다른 많은 친구들이 다시 바다로 돌아갔으나 그는 은빛 비늘에 매달린 채로 끝까지 버텼다. 그에게 이는 절호의 기회였다. 평온했던 삶의 수면을 잔뜩 헝클어뜨릴 반항의 문이었다. 그렇게 그는 차가운 박스 안으로 유폐되었다. 춥고, 어두웠다.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자 다른 친구들이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이봐, 괜찮아?” “으, 으응. 잠깐 겁이 난 것뿐이야.” 그는 애써 웃었다. 그가 선택해서 올라탄 배였지만, 뒤늦게 두려움이 밀려왔다. 태평양 속에선 가만히 있기만 해도 안전했는데 괜히 올라와서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그러나 그의 곁에 있는 친구들은 어째 태연해보였다. “난 이번에 두 번째야. 삶이라는 게 맘대로 되지 않는 거 아니겠어? 크게 겁먹지 않아도 돼. 우리가 할 일은 넓은 세계를 구경하는 것밖에 없으니까.” “맞아 맞아.” “나도 이번이 세 번짼데 난 호수를 가보는 게 꿈이야. 말로만 들어봤거든.” “와......다들 대단하다.” 그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늘에 매달렸던 때의 자신감을 회복했다. 두려울 건 없었다. 미지의 세상을 향한 호기심만이 가득 샘솟았다. 바닷속과 달리 아이스박스 속에서 그는 주변의 이들과 오래 몸을 부딪쳤다. 그는 다른 이들의 유랑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모두 달랐고 세계란 바다보다도 무척 다양해보였다. 시간이 꽤 지나, 아이스박스의 뚜껑이 열렸을 때 그는 그들과 헤어졌다. “그럼 멋지게 세상을 돌아다녀봐!” “고마워!” 그는 뚜껑에 매달린 채로 이동했다. 그렇게 어느 부둣가의 고인 물에 섞여들어 갔다가도, 금방 하수구로 떨어져버렸다. 아이스박스만큼 어둡고 추운, 아이스박스보다 넓은 곳이었다. 그곳에서도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안녕. 넌 바다에서 나온지 얼마 안 됐구나?” “응. 넌......구정물이네. 고생이 많겠어.” 그의 말에 구정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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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5
그대들은 김지룡을 아시는가? 그로 말할 것 같으면 김 씨 집안의 49대손으로서 독자이자, 지금은 독거노인까지 겸하고 있는 사나이다. 애호박을 닮은 얼굴 형태와 스포이드로 한 방울 씩 찍은 듯한 검버섯으로 그의 외모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모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김지룡은 지금 살인을 저지르려 하고 있다. 그 사연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김지룡의 고향은 부산이다. 1948년 8월, 우렁찬 울음과 함께 태어난 아이는 그때부터 강골의 기질을 보여줬다. 몇 가지 일례들을 살펴보자. 1954년. 김지룡은 옆집의 백구와 일대일로 싸워서 승리했다.1956년. 김지룡은 처음으로 담배를 배웠다.1960년. 김지룡은 처음으로 강제적인 절차를 동원한 섹스를 했다.1967년. 김지룡은 베트남으로 파병을 떠났다. 전쟁에서 돌아온 그는 새 여자를 만나 3개월 만에 혼을 올렸다. 3개월 만에 이혼했다. 여기까지가 김지룡이 살인을 하게 된 배경이다. 어떤가. 조금은 그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는가? 올해로 75세인 김지룡의 일과는 단순하다.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하거나 산책을 하다가 모르는 사람과 말싸움을 하거나다. 아침 7시에 일어난 그는 욕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세상엔 아니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으므로. 텔레비전을 안 보는 그에게 세상은 평화롭게 그지없었다. 김지룡의 부모는 오래 전에 죽었고 형제는 오래 전에 잃었다. 그러니까, 한국을 돌아오고 나서부터다. 어쩌면 떠났을 때부터. 그의 친구들은 타국에서 죽었다. 김지룡은 스스로 수갑을 찼다. 그는 스스로에게 죄를 고했다. 그는 독방에 갇혔다. 어느 날, 그는 문득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검버섯이 이리도 무럭무럭 핀, 늙어버린 남자를 보았다. 어린 시절, 강인하고 거센 성질의 사나이는 쪼그라들고 없었다. 그에게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억센 성정이 거울을 깨버렸다. 거울의 조각들이 그를 분열했다. 그의 독방에는 침대가 없다. 대신 오동나무 관 속에서 잠에 든다.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 그는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한다. 타국에서의 포탄 소리와 총성들과 비명들이 아직도 귓속에 남아 메아리치고 있기 때문이다. 달팽이관을 따라, 나선 모양으로, 계속 회오리치고 있는 잔상들이다. 어떠한가. 이제는 김지룡의 살인 경위가 이해가 되리라 생각한다. 매일 관 속에서 잠에 드는 김지룡은 매일 이름 모를 노인을 살인하려 한다. 우습지 않게도 매일 미수로 끝난다만.
- 구포대교
- 202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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