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곳에 서 있기 까지
- 작성자 미리
- 작성일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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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이곳에 서 있기까지의 이야기다. 3학년 2반. 천장을 올려다 보니 내 눈은 그런 교실의 문패를 비추었다. 담임이 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어, 그래 안녕. 좀 앉아라 이 녀석들아. 니네도 알다시피 오늘은 전학생 왔고, 이름은 유이든. 자기 소개 한번 해봐.” 스물몇 개의 시선이 동시에 들어왔다.나는 잠시간 뜸을 들이고, 눈을 깜빡였다. 그러곤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유이든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딱딱하고, 부드러운 말투. 거리감 있는 정중함, 나의 말에 누구도 박수치지 않았다. 몇몇이 흘깃거리다 고개를 돌렸다. 그 익숙한 무관심이 오히려 편했다. “저어쪽, 제일 뒤쪽에 문쪽 창가 자리. 거기 비었지? 거기 앉아.” 내가 걷기 시작할 때, 모두 짝으로 앉아있는 가운데 홀로 옆자리를 비워둔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가늘고 창백한 얼굴. 긴 속눈썹, 흐트러진 단정함.아이의 눈이 이든과 마주쳤다. 무표정, 그 안쪽 어딘가에는 이상할정도로 차분함이 맴돌았다. 그리고 가방을 내려놓고, 그 아이 옆에 앉았다. 아침 조회와 1교시 사이의 짧은 시간. 옆자리 아이가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고 필기구를 정리하고 있었던 때였다. 옆자리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안녕.” 나는 고개를 돌렸다. 같은 나이 또래지만, 약간 더 낡고 지쳐보이는 기색이었다. “내 이름은 유이든이야.” “한세윤이야.” 둘은 짧게 눈을 마주쳤다. 이든은 그 말투에서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그 아이는 말할 때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는 듯했다. 마치, 거절에 익숙한 사람의 말투 같았다. 이든은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레 물었다. “이 학교, 괜찮아?” 세윤은 창밖을 봤다. 흐린 하늘. 아이들 웃음소리. 멀리서 날아온 종이비행기 하나가 유리창에 탁 부딪혔다. “괜찮아.” 얼굴에는 한 줄 웃음기 조차 없었다. 나는 그 말이, 괜찮지 않다는 뜻이라는 걸 아주 잘 알았다. 점심시간. 대부분의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책상 앞에서 잠시 서 있었다. 다들 당연하다는 듯, 자신과 상관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식판을 들고 말했다. “같이 갈래?” 세윤이었다. 조금 떨리는 눈빛.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 구석, 빈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세윤은 국을 휘젓다 조용히 말했다. “나랑 앉아도 돼?” “응. 안 될 이유가 있어?” 세윤은 눈을 깜빡이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 날, 다른 아이들 몇 명이 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낄낄거리는 소리와 저들 끼리의 속삭임. 나는 모른 척했다. 아니, 외면했다. 들려도 들리지 않는 척, 보여도 보이지 않는척, 아주 잘 느껴지지만 아는척하면 괜히 상처만 더 받을 뿐이었다. 그날은 평소보다 더 추웠다. 학교 운동장에 서리가 끼고, 복도 창문이 흐리게 김을 머금은 날. 나와 세윤이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점심시간, 식당 대신 원두막. 아이들이 잘 찾지 않는 공간. 그곳엔 나무와 바람, 그리고 차들만이 있었다. “여기 있으면… 조용해서 좋아.” 세윤이 말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침묵이 흘렀다. 둘 다 말이 적었고, 그러면서도 함께 있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다 세윤이 무심히 물었다. “너네 집 어디야?” “집 없어.” “…장난?” “고아원에서 살아.” 그건 아무렇지 않게 말한 진실이었다. 나는 부끄러워하지도, 움츠러 들지도 않았다. 내가 고아원에서 사는건 진짜고, 내가 숨긴다고 해서 달라질것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예상 외로 세윤은 잠시 말을 잃었다. “…아.” 그 짧은 탄식은, 아주 작았지만 또렷했다.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아니, 알아차릴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 탄식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는. 내가 고아원에서 산다는것을 알고는 멋대로에 실망하던 지금까지의 여느 아이들의 탄식소리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은 이미 어떤 경계를 넘어선 기분이었다. 며칠 후, 점심시간. 이든이 교실로 돌아오자, 내 책상 위에는 누군가 일부러 쏟은듯한 에너지 드링크와 그 캔이 널브러져 있었다. 교과서는 젖어 있었고, 의자에는 보드마카로 낙서가 새겨져 있었다. “유이든 ㅈ병신 고아련이누” 나는 한참을 멍하니 그 짧은 문장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입에 담지 않은채로 천천히 의자를 들어 복도로 들고 나갔다. 누구의 짓인지 묻지 않았다. 어차피 묻지 않아도, 이미 알수 있었기에. 옆 자리. 눈을 피하는 세윤.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았다. 누가 봐도 알았을것이다. 눈을 감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그 상황이 그려진다. 분명 누군가 세윤에게 물었을 것이다. “걔 좀 이상하지 않아? 어디서 왔다고 했지?” “아… 보육원에서 왔다고 했어.” 그저 그랬던것 이었을 거다. 세윤은 배신하려고 그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유로 상처받는 데 익숙했다. 그날 하굣길, 나는 평소보다도 더 천천히 걸었다. 해는 이미 졌고, 가로등 불빛 아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가방 안에서 끈적끈적한 단 냄새가 났다. 나는 문득 한세윤을 떠올렸다. 그가 어떤 표정으로 그걸 말했을지 상상해봤다. ‘그 아이도 나처럼 무심코 말한 걸로, 누군가와의 인연이 끊어진 적이 있었을까?’ 그러고는, 또 나를 탓했다.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날 이후, 나의 학교생활은 조금 더 달라졌다. 직접적인 폭력이나 대놓고 하는 욕설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런 류의 일들은 심각성도 크고 신고하기도 쉬운 길이었기에, 대신 더 교활하고 음습한 방식의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잘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작고 사소한 것들이었다. 점심시간, 식판을 들고 지나가는데 누군가 조용히 발을 걸었다. 간신히 넘어지지 않았지만, 식판 위의 국물이 찰랑이며 옷에 튀었다. 뒤를 돌아보니 누구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저들끼리 모여 앉아있는 아이들이 보란듯이 크고 과장되게 웃고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젖은 옷을 닦아내고 식당 구석 자리에서 홀로 밥을 먹고 있을 뿐 이었다. 수업 시간에도 그 기묘한 괴롭힘은 이어졌다. 필통 속 샤프가 모두 사라져있고, 지우개는 칼로 난도질되어 있었다. 누군가 분명 내 사물함을 열어본 것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조각난 지우개 조각을 주웠다. 곁눈질로 세윤을 보니 세윤은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세윤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세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했다. 나는 그런 세윤의 태도가 익숙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안타까웠다. 며칠 뒤, 미술 시간이었다. 나는 공들여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이든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나는 휘청였고, 팔이 비틀거리며 건드린 물통이 그대로 그림 위에 쏟아졌다. 알록달록했던 그림은 순식간에 검붉은 물감으로 얼룩졌다. "어이쿠, 미안. 발이 미끄러졌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림을 내려다 보았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오르며 어떤 말이라도 입 밖으로 내뱉어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채로, 그저 묵묵히 새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이번 시간에 그리던 그림은 자화상이었기에, 마치 내가 더럽혀지는 기분이었다. 이미 쏟아진 구정물로 더 이상 닦아낼수도, 지워낼수도 없는 그런 느낌 말이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다른것도 아닌 소리 없는 따돌림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다가오면 조용해졌고, 내가 자리를 뜨면 다시 비웃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마주쳐도 마주치지 않은 척 고개를 돌리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곳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되었다. 나는 점차 혼자가 되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쉬는 시간에는 화장실 구석에 앉아 있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척하며 시간을 보냈다. 친구라고 부를만한 이는 세윤 한 명뿐이었고, 그마저도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있으니만 못한 관계가 되었다. 나는 세윤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기대하다 실망하는 것은 더 큰 상처가 될 것임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으니까.그날 아침,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아니, 울렸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햇빛은 작은 창문 사이로 무심하게 밀려들었고, 방 안의 공기는 어제와 다를 것 없이 차갑고 습했다. 나는 이불을 목 끝까지 덮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학교에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고싶지 않은 이유는 있었지만, 갈 이유는 크게 존재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의무교육이라는 점? 외에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가지 말아야할 점은 저 밤하늘의 별보다 많았다. 그날 아침, 눈을 떴다. 아니, 떠졌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무언가를 기대하며 깨어난 것이 아니라, 그냥 평소에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난게 끝 이었다. 방 안은 조용했고, 커튼 사이로 어렴풋한 아침 햇살이 흐릿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누워 있었다. 몸은 일어나기를 거부하며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는 채로 멍 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휴대폰은 책상 위에서 진동했지만, 나는 확인하지 않았다. 알람이 몇 번 스쳐 지나가듯 울렸고, 전화 벨소리가 울린 점을 보아, 학교에서 출석 여부를 확인하는 연락도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의미 있게 느껴지는 일이 아니었다. ‘그만두자.’ 그렇게 생각한 건, 사실 밤이었다. 타의에 의해서 망가진 그림, 모두의 무관심, 세윤의 외면, 젖은 교과서와 낙서, 그리고 조용히 앉아 아픈 마음을 삼키던 시간까지. 나는 견디고 또 견뎠다. 말없이, 아무도 모르게. 이젠 그것도 지쳐버리고 질려버린것 같다. 나는 왜 이러고 있지? 왜 이 곳이어야만 하지? 더 이상 버틸 이유가 있는걸까?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책상 위에는 아직도 찢긴 노트와 얼룩진 교과서가 그대로였다. 가방은 어제와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고, 운동화는 구겨진 채 문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것 같지만, 의미가 없다는듯 그저 내려 놓았다. 하나, 둘. 눈물이 조용히, 또 천천히 떨어졌다. 그건 슬픔도 분노도 아니었다. 텅 비어있었던것 뿐이다.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그나마의 허물들이 조금씩 녹아내린 채로 흘러나오는 듯한 감정이었다. 어릴 적, 백밤만 자고 오면 데리러 오신다고 하던 친 어머니가 데리러 오지 않으면서 버려졌음을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 느꼈던 그 감정과는 조금 달랐다. 이건 그보다 훨씬 더 조용했고, 차가웠고, 잔잔한 감정이었다. 학교는 먼 곳에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 멀어서 닿지 않는 곳이 되었다. 이든은 씻지도 않았고,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 그냥 방 안에서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지나가는 차들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모두들 스마트 폰을 든 채로 그 안에 금방이라도 들어갈 것 같은 모양새로 자신들의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학교에도, 보육원에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도. 나는 내가 점점 투명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니, 이미 투명해졌다고 느끼고 있다. 투명하고, 그저 흐르기만 하는 물이 된 것 같았다. 문득, 보육원 원장선생님이 하신 말이 떠올랐다. "힘든 일 있으면 말해. 그냥 참고 있지만 말고, 참다가 병난다.” 그렇게 말을 하시지만, 아이들을 모두 평등하게 좋아하시며, 동시에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원장선생님께 말을 해봤자 돌아오는 건 형식적인 위로와, 피곤한 얼굴, 그래, 그렇구나 정도로 요약할수 있는 반응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울고 있어도, 무너져도, 티를 내지 않는 한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거라는 걸. 그래, 그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그정도면 말이다. 적어도, 누군가 알아차려줄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는것보다는 그게 더 나을것같았다. 그날 하루는 그렇게 흘러갔다. 평소 점심을 먹던 시간이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TV도 보지 않았고, 휴대폰도 켜지 않았다. 나는 자신의 그림이 얼룩졌던 미술 시간, 누군가 다리를 걸던 식당, 냉소로 가득했던 교실을 떠올리며 가만히 있었다. 그 기억들은 하나같이 무채색이었다. 소리도, 냄새도, 감정도 없었다. 그저 흘러간 장면들일 뿐이었다. 해가 졌다. 방 안은 어둑해졌고, 전등도 켜지 않았다. 나는 어둠 속에 앉아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외로움 속에서 나는 조금은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를 포기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해방감을 주는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바뀌지 않던 세상에서, 처음으로 내 선택을 한 기분이었다. 그건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고, 무섭도록 차분한 감정이었다. 내가 학교에 가지 않은 이유를 누군가는 궁금해했을까? 세윤은 무슨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아주 잠깐 떠올랐지만, 이내 사라졌다. 생각해봤자, 내가 찾을 수 있는 답은 없었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이번엔, 아주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세상과 잠시 등을 돌렸다.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선생님의 전화가 왔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조용히 학교에 도착해 조용히 있었다. 다만, 한가지 특이사항이 있었다. 세윤과 잠깐 대화를 나누었는데, 반응이 꽤 신기했던것같다. 세윤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기에, 힘겹게 속내를 꺼내 보았다. “괜찮아,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아, 네가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었던 거였겠지. 네 선택을 존중해. 내 상황 때문에, 너무 자책하지 않길 바라.” 세윤은 내가 원망의 말들을 마구 쏟아낼 줄 알았다는 듯 여러 감정이 섞인듯한 오묘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왜..?” “말 그대로야. 너를 원망하고 있지 않아. 그저 어느 순간 알려졌을 사실이었고, 원망한다고 해서, 이 상황이 바뀌지도 않아. 그래서 오히려 안타까워. 하나뿐인 친구의 치부를 스스로 알려버린 네가 후회하지는 않을까 라는 가정에 빠져들어서.” 벙 쪄버린듯한 세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날의 대화 이후로 나와 세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안타까웠고, 세윤은 나를 껄끄러워 하는 눈치인것 같았다. 내가 일부러 괜찮은 척 한다고 느껴서 그런 것 일까 하고 막연히 추측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며칠만에 학교에 돌아와서도 달라진것은 크게 없었다. 괴롭힘은 약해지기보다는 비슷하거나 더 심해졌고, 학교는 내가 없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것은 없는 작은 사회였다. 그렇게 딱히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조용히 모든것을 속으로 흘려보내며 지내고 있었다. 나의 반년은 이렇게 흘러갔었다.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또, 흔히 말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이기도 하구요. 저녁에는 여느때와는 다르게 조용히 보육원을 빠져나갔어요. 정신없이 걷고, 걷고, 걷고, 또 걷다보니 절묘하게도 오늘따라 옥상이 열려있는 건물에 도착했어요. 난간위로 머리를 내밀고, 바깥을 바라보니 검은 하늘 아래의 개미떼가 보여요.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질서 정연하게 모두 먹이를 찾아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그런 개미떼 말이에요. 나는 그 위에서 하늘을 향해 걸음을 뗍니다.박차고 나감과 동시에 발이 어느곳도 디디고 있지 않은,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은듯한 자유로운 기분이 들어요. 바닥은 보지 말아야겠어요. 바닥을 보게 된다면 분명 잔뜩 겁이 난 채로 눈물을 흘리며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지은 채로 죽어버리고 말거에요. 잠깐의 궁금증이 생겨 버렸어요. 이 개미같은 사람들은 떨어지고 있는 나를 인식하고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비명도, 누군가의 외침도 들리지 않는걸요.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지며 죽는것을 외면한것은, 제가 특별히 모자란탓이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흘깃 내려다본 길가의 한 사람이 저와 눈을 마주친것 같지만, 조용히 외면하고 있으니까요. 아, 나는 이렇게까지 괴로워하며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되었군요. 내 탓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자초하여 일어난 일도, 내가 모자라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군요. 그 아이들은, 제가 외면하지 않았더라도, 필연적으로 타인을 괴롭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이렇게 죽지 않아도, 그래도 되었던거군요. 누구의 탓도 아니었던것이고, 그 안타까운 아이들의 탓도 아니고, 세윤이의 탓도 아니었을거에요. 그냥 그저, 너무나도 무심했던 사회의 사람들은 내가 죽은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또 다른 사람이 같은 비명을 지르며 119를 부르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이건 내가 이곳에 서 있기까지의 이야기다. 3학년 2반. 천장을 올려다 보니 내 눈은 그런 교실의 문패를 비추었다. 담임이 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어, 그래 안녕. 좀 앉아라 이 녀석들아. 니네도 알다시피 오늘은 전학생 왔고, 이름은 유이든. 자기 소개 한번 해봐.” 스물몇 개의 시선이 동시에 들어왔다.나는 잠시간 뜸을 들이고, 눈을 깜빡였다. 그러곤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유이든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딱딱하고, 부드러운 말투. 거리감 있는 정중함, 나의 말에 누구도 박수치지 않았다. 몇몇이 흘깃거리다 고개를 돌렸다. 그 익숙한 무관심이 오히려 편했다. “저어쪽, 제일 뒤쪽에 문쪽 창가 자리. 거기 비었지? 거기 앉아.” 내가 걷기 시작할 때, 모두 짝으로 앉아있는 가운데 홀로 옆자리를 비워둔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가늘고 창백한 얼굴. 긴 속눈썹, 흐트러진 단정함.아이의 눈이 이든과 마주쳤다. 무표정, 그 안쪽 어딘가에는 이상할정도로 차분함이 맴돌았다. 그리고 가방을 내려놓고, 그 아이 옆에 앉았다. 아침 조회와 1교시 사이의 짧은 시간. 옆자리 아이가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고 필기구를 정리하고 있었던 때였다. 옆자리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안녕.” 나는 고개를 돌렸다. 같은 나이 또래지만, 약간 더 낡고 지쳐보이는 기색이었다. “내 이름은 유이든이야.” “한세윤이야.” 둘은 짧게 눈을 마주쳤다. 이든은 그 말투에서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그 아이는 말할 때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는 듯했다. 마치, 거절에 익숙한 사람의 말투 같았다. 이든은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레 물었다. “이 학교, 괜찮아?” 세윤은 창밖을 봤다. 흐린 하늘. 아이들 웃음소리. 멀리서 날아온 종이비행기 하나가 유리창에 탁 부딪혔다. “괜찮아.” 얼굴에는 한 줄 웃음기 조차 없었다. 나는 그 말이, 괜찮지 않다는 뜻이라는 걸 아주 잘 알았다. 점심시간. 대부분의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책상 앞에서 잠시 서 있었다. 다들 당연하다는 듯, 자신과 상관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식판을 들고 말했다. “같이 갈래?” 세윤이었다. 조금 떨리는 눈빛.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 구석, 빈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세윤은 국을 휘젓다 조용히 말했다. “나랑 앉아도 돼?” “응. 안 될 이유가 있어?” 세윤은 눈을 깜빡이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 날, 다른 아이들 몇 명이 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낄낄거리는 소리와 저들 끼리의 속삭임. 나는 모른 척했다. 아니, 외면했다. 들려도 들리지 않는 척, 보여도 보이지 않는척, 아주 잘 느껴지지만 아는척하면 괜히 상처만 더 받을 뿐이었다. 그날은 평소보다 더 추웠다. 학교 운동장에 서리가 끼고, 복도 창문이 흐리게 김을 머금은 날. 나와 세윤이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점심시간, 식당 대신 원두막. 아이들이 잘 찾지 않는 공간. 그곳엔 나무와 바람, 그리고 차들만이 있었다. “여기 있으면… 조용해서 좋아.” 세윤이 말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침묵이 흘렀다. 둘 다 말이 적었고, 그러면서도 함께 있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다 세윤이 무심히 물었다. “너네 집 어디야?” “집 없어.” “…장난?” “고아원에서 살아.” 그건 아무렇지 않게 말한 진실이었다. 나는 부끄러워하지도, 움츠러 들지도 않았다. 내가 고아원에서 사는건 진짜고, 내가 숨긴다고 해서 달라질것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예상 외로 세윤은 잠시 말을 잃었다. “…아.” 그 짧은 탄식은, 아주 작았지만 또렷했다.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아니, 알아차릴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 탄식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는. 내가 고아원에서 산다는것을 알고는 멋대로에 실망하던 지금까지의 여느 아이들의 탄식소리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은 이미 어떤 경계를 넘어선 기분이었다. 며칠 후, 점심시간. 이든이 교실로 돌아오자, 내 책상 위에는 누군가 일부러 쏟은듯한 에너지 드링크와 그 캔이 널브러져 있었다. 교과서는 젖어 있었고, 의자에는 보드마카로 낙서가 새겨져 있었다. “유이든 ㅈ병신 고아련이누” 나는 한참을 멍하니 그 짧은 문장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입에 담지 않은채로 천천히 의자를 들어 복도로 들고 나갔다. 누구의 짓인지 묻지 않았다. 어차피 묻지 않아도, 이미 알수 있었기에. 옆 자리. 눈을 피하는 세윤.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았다. 누가 봐도 알았을것이다. 눈을 감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그 상황이 그려진다. 분명 누군가 세윤에게 물었을 것이다. “걔 좀 이상하지 않아? 어디서 왔다고 했지?” “아… 보육원에서 왔다고 했어.” 그저 그랬던것 이었을 거다. 세윤은 배신하려고 그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유로 상처받는 데 익숙했다. 그날 하굣길, 나는 평소보다도 더 천천히 걸었다. 해는 이미 졌고, 가로등 불빛 아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가방 안에서 끈적끈적한 단 냄새가 났다. 나는 문득 한세윤을 떠올렸다. 그가 어떤 표정으로 그걸 말했을지 상상해봤다. ‘그 아이도 나처럼 무심코 말한 걸로, 누군가와의 인연이 끊어진 적이 있었을까?’ 그러고는, 또 나를 탓했다.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날 이후, 나의 학교생활은 조금 더 달라졌다. 직접적인 폭력이나 대놓고 하는 욕설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런 류의 일들은 심각성도 크고 신고하기도 쉬운 길이었기에, 대신 더 교활하고 음습한 방식의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잘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작고 사소한 것들이었다. 점심시간, 식판을 들고 지나가는데 누군가 조용히 발을 걸었다. 간신히 넘어지지 않았지만, 식판 위의 국물이 찰랑이며 옷에 튀었다. 뒤를 돌아보니 누구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저들끼리 모여 앉아있는 아이들이 보란듯이 크고 과장되게 웃고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젖은 옷을 닦아내고 식당 구석 자리에서 홀로 밥을 먹고 있을 뿐 이었다. 수업 시간에도 그 기묘한 괴롭힘은 이어졌다. 필통 속 샤프가 모두 사라져있고, 지우개는 칼로 난도질되어 있었다. 누군가 분명 내 사물함을 열어본 것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조각난 지우개 조각을 주웠다. 곁눈질로 세윤을 보니 세윤은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세윤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세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했다. 나는 그런 세윤의 태도가 익숙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안타까웠다. 며칠 뒤, 미술 시간이었다. 나는 공들여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이든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나는 휘청였고, 팔이 비틀거리며 건드린 물통이 그대로 그림 위에 쏟아졌다. 알록달록했던 그림은 순식간에 검붉은 물감으로 얼룩졌다. "어이쿠, 미안. 발이 미끄러졌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림을 내려다 보았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오르며 어떤 말이라도 입 밖으로 내뱉어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채로, 그저 묵묵히 새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이번 시간에 그리던 그림은 자화상이었기에, 마치 내가 더럽혀지는 기분이었다. 이미 쏟아진 구정물로 더 이상 닦아낼수도, 지워낼수도 없는 그런 느낌 말이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다른것도 아닌 소리 없는 따돌림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다가오면 조용해졌고, 내가 자리를 뜨면 다시 비웃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마주쳐도 마주치지 않은 척 고개를 돌리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곳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되었다. 나는 점차 혼자가 되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쉬는 시간에는 화장실 구석에 앉아 있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척하며 시간을 보냈다. 친구라고 부를만한 이는 세윤 한 명뿐이었고, 그마저도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있으니만 못한 관계가 되었다. 나는 세윤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기대하다 실망하는 것은 더 큰 상처가 될 것임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으니까.그날 아침,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아니, 울렸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햇빛은 작은 창문 사이로 무심하게 밀려들었고, 방 안의 공기는 어제와 다를 것 없이 차갑고 습했다. 나는 이불을 목 끝까지 덮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학교에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고싶지 않은 이유는 있었지만, 갈 이유는 크게 존재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의무교육이라는 점? 외에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가지 말아야할 점은 저 밤하늘의 별보다 많았다. 그날 아침, 눈을 떴다. 아니, 떠졌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무언가를 기대하며 깨어난 것이 아니라, 그냥 평소에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난게 끝 이었다. 방 안은 조용했고, 커튼 사이로 어렴풋한 아침 햇살이 흐릿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누워 있었다. 몸은 일어나기를 거부하며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는 채로 멍 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휴대폰은 책상 위에서 진동했지만, 나는 확인하지 않았다. 알람이 몇 번 스쳐 지나가듯 울렸고, 전화 벨소리가 울린 점을 보아, 학교에서 출석 여부를 확인하는 연락도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의미 있게 느껴지는 일이 아니었다. ‘그만두자.’ 그렇게 생각한 건, 사실 밤이었다. 타의에 의해서 망가진 그림, 모두의 무관심, 세윤의 외면, 젖은 교과서와 낙서, 그리고 조용히 앉아 아픈 마음을 삼키던 시간까지. 나는 견디고 또 견뎠다. 말없이, 아무도 모르게. 이젠 그것도 지쳐버리고 질려버린것 같다. 나는 왜 이러고 있지? 왜 이 곳이어야만 하지? 더 이상 버틸 이유가 있는걸까?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책상 위에는 아직도 찢긴 노트와 얼룩진 교과서가 그대로였다. 가방은 어제와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고, 운동화는 구겨진 채 문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것 같지만, 의미가 없다는듯 그저 내려 놓았다. 하나, 둘. 눈물이 조용히, 또 천천히 떨어졌다. 그건 슬픔도 분노도 아니었다. 텅 비어있었던것 뿐이다.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그나마의 허물들이 조금씩 녹아내린 채로 흘러나오는 듯한 감정이었다. 어릴 적, 백밤만 자고 오면 데리러 오신다고 하던 친 어머니가 데리러 오지 않으면서 버려졌음을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 느꼈던 그 감정과는 조금 달랐다. 이건 그보다 훨씬 더 조용했고, 차가웠고, 잔잔한 감정이었다. 학교는 먼 곳에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 멀어서 닿지 않는 곳이 되었다. 이든은 씻지도 않았고,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 그냥 방 안에서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지나가는 차들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모두들 스마트 폰을 든 채로 그 안에 금방이라도 들어갈 것 같은 모양새로 자신들의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학교에도, 보육원에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도. 나는 내가 점점 투명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니, 이미 투명해졌다고 느끼고 있다. 투명하고, 그저 흐르기만 하는 물이 된 것 같았다. 문득, 보육원 원장선생님이 하신 말이 떠올랐다. "힘든 일 있으면 말해. 그냥 참고 있지만 말고, 참다가 병난다.” 그렇게 말을 하시지만, 아이들을 모두 평등하게 좋아하시며, 동시에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원장선생님께 말을 해봤자 돌아오는 건 형식적인 위로와, 피곤한 얼굴, 그래, 그렇구나 정도로 요약할수 있는 반응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울고 있어도, 무너져도, 티를 내지 않는 한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거라는 걸. 그래, 그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그정도면 말이다. 적어도, 누군가 알아차려줄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는것보다는 그게 더 나을것같았다. 그날 하루는 그렇게 흘러갔다. 평소 점심을 먹던 시간이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TV도 보지 않았고, 휴대폰도 켜지 않았다. 나는 자신의 그림이 얼룩졌던 미술 시간, 누군가 다리를 걸던 식당, 냉소로 가득했던 교실을 떠올리며 가만히 있었다. 그 기억들은 하나같이 무채색이었다. 소리도, 냄새도, 감정도 없었다. 그저 흘러간 장면들일 뿐이었다. 해가 졌다. 방 안은 어둑해졌고, 전등도 켜지 않았다. 나는 어둠 속에 앉아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외로움 속에서 나는 조금은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를 포기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해방감을 주는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바뀌지 않던 세상에서, 처음으로 내 선택을 한 기분이었다. 그건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고, 무섭도록 차분한 감정이었다. 내가 학교에 가지 않은 이유를 누군가는 궁금해했을까? 세윤은 무슨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아주 잠깐 떠올랐지만, 이내 사라졌다. 생각해봤자, 내가 찾을 수 있는 답은 없었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이번엔, 아주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세상과 잠시 등을 돌렸다.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선생님의 전화가 왔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조용히 학교에 도착해 조용히 있었다. 다만, 한가지 특이사항이 있었다. 세윤과 잠깐 대화를 나누었는데, 반응이 꽤 신기했던것같다. 세윤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기에, 힘겹게 속내를 꺼내 보았다. “괜찮아,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아, 네가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었던 거였겠지. 네 선택을 존중해. 내 상황 때문에, 너무 자책하지 않길 바라.” 세윤은 내가 원망의 말들을 마구 쏟아낼 줄 알았다는 듯 여러 감정이 섞인듯한 오묘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왜..?” “말 그대로야. 너를 원망하고 있지 않아. 그저 어느 순간 알려졌을 사실이었고, 원망한다고 해서, 이 상황이 바뀌지도 않아. 그래서 오히려 안타까워. 하나뿐인 친구의 치부를 스스로 알려버린 네가 후회하지는 않을까 라는 가정에 빠져들어서.” 벙 쪄버린듯한 세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날의 대화 이후로 나와 세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안타까웠고, 세윤은 나를 껄끄러워 하는 눈치인것 같았다. 내가 일부러 괜찮은 척 한다고 느껴서 그런 것 일까 하고 막연히 추측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며칠만에 학교에 돌아와서도 달라진것은 크게 없었다. 괴롭힘은 약해지기보다는 비슷하거나 더 심해졌고, 학교는 내가 없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것은 없는 작은 사회였다. 그렇게 딱히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조용히 모든것을 속으로 흘려보내며 지내고 있었다. 나의 반년은 이렇게 흘러갔었다.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또, 흔히 말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이기도 하구요. 저녁에는 여느때와는 다르게 조용히 보육원을 빠져나갔어요. 정신없이 걷고, 걷고, 걷고, 또 걷다보니 절묘하게도 오늘따라 옥상이 열려있는 건물에 도착했어요. 난간위로 머리를 내밀고, 바깥을 바라보니 검은 하늘 아래의 개미떼가 보여요.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질서 정연하게 모두 먹이를 찾아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그런 개미떼 말이에요. 나는 그 위에서 하늘을 향해 걸음을 뗍니다.박차고 나감과 동시에 발이 어느곳도 디디고 있지 않은,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은듯한 자유로운 기분이 들어요. 바닥은 보지 말아야겠어요. 바닥을 보게 된다면 분명 잔뜩 겁이 난 채로 눈물을 흘리며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지은 채로 죽어버리고 말거에요. 잠깐의 궁금증이 생겨 버렸어요. 이 개미같은 사람들은 떨어지고 있는 나를 인식하고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비명도, 누군가의 외침도 들리지 않는걸요.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지며 죽는것을 외면한것은, 제가 특별히 모자란탓이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흘깃 내려다본 길가의 한 사람이 저와 눈을 마주친것 같지만, 조용히 외면하고 있으니까요. 아, 나는 이렇게까지 괴로워하며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되었군요. 내 탓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자초하여 일어난 일도, 내가 모자라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군요. 그 아이들은, 제가 외면하지 않았더라도, 필연적으로 타인을 괴롭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이렇게 죽지 않아도, 그래도 되었던거군요. 누구의 탓도 아니었던것이고, 그 안타까운 아이들의 탓도 아니고, 세윤이의 탓도 아니었을거에요. 그냥 그저, 이 무심한 세상이 흘러가는대로 살았던것 뿐 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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