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경위서
- 작성자 구포대교
- 작성일 2025-12-20
- 좋아요 0
- 댓글수 1
- 조회수 245
그대들은 김지룡을 아시는가?
그로 말할 것 같으면 김 씨 집안의 49대손으로서 독자이자, 지금은 독거노인까지 겸하고 있는 사나이다. 애호박을 닮은 얼굴 형태와 스포이드로 한 방울 씩 찍은 듯한 검버섯으로 그의 외모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모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김지룡은 지금 살인을 저지르려 하고 있다. 그 사연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김지룡의 고향은 부산이다. 1948년 8월, 우렁찬 울음과 함께 태어난 아이는 그때부터 강골의 기질을 보여줬다. 몇 가지 일례들을 살펴보자.
1954년. 김지룡은 옆집의 백구와 일대일로 싸워서 승리했다.
1956년. 김지룡은 처음으로 담배를 배웠다.
1960년. 김지룡은 처음으로 강제적인 절차를 동원한 섹스를 했다.
1967년. 김지룡은 베트남으로 파병을 떠났다.
전쟁에서 돌아온 그는 새 여자를 만나 3개월 만에 혼을 올렸다.
3개월 만에 이혼했다.
여기까지가 김지룡이 살인을 하게 된 배경이다. 어떤가. 조금은 그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는가?
올해로 75세인 김지룡의 일과는 단순하다.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하거나 산책을 하다가 모르는 사람과 말싸움을 하거나다.
아침 7시에 일어난 그는 욕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세상엔 아니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으므로. 텔레비전을 안 보는 그에게 세상은 평화롭게 그지없었다.
김지룡의 부모는 오래 전에 죽었고 형제는 오래 전에 잃었다. 그러니까, 한국을 돌아오고 나서부터다. 어쩌면 떠났을 때부터.
그의 친구들은 타국에서 죽었다.
김지룡은 스스로 수갑을 찼다. 그는 스스로에게 죄를 고했다. 그는 독방에 갇혔다.
어느 날, 그는 문득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검버섯이 이리도 무럭무럭 핀, 늙어버린 남자를 보았다. 어린 시절, 강인하고 거센 성질의 사나이는 쪼그라들고 없었다. 그에게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억센 성정이 거울을 깨버렸다. 거울의 조각들이 그를 분열했다.
그의 독방에는 침대가 없다. 대신 오동나무 관 속에서 잠에 든다.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
그는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한다. 타국에서의 포탄 소리와 총성들과 비명들이 아직도 귓속에 남아 메아리치고 있기 때문이다. 달팽이관을 따라, 나선 모양으로, 계속 회오리치고 있는 잔상들이다.
어떠한가. 이제는 김지룡의 살인 경위가 이해가 되리라 생각한다.
매일 관 속에서 잠에 드는 김지룡은 매일 이름 모를 노인을 살인하려 한다. 우습지 않게도 매일 미수로 끝난다만.
추천 콘텐츠
알렉세이 보스트리코프는 자주 악몽에 허덕였다. 그는 유령함의 함장이었다. 유령함의 이름은 k-19. 별칭, 과부제조기였다. k-19는 언 바다를 유영했다. 꿈 속 풍경은 언제나 다름없었다. 하늘은 밝은 회색에 바다는 혹등고래의 등짝처럼 검푸르다. 삭막하다. 바람은 차갑고 따갑다. 유령함은 언 바다를 깨부순다. 깨진 바다조각은 빛을 바랜 보석처럼 탁하다. 악몽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풍경이었다. 알렉세이는 유령함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함장은 유령함에 들어가야만 한다. 유령함은 냄새로 가득하다. 땀과 기름과 방사능의 냄새가 얽히고설킨 통로를 흐른다. 그 사이로 유령이 걷는다. 유령은 방사능에 피폭되어 죽어있다. 온몸에 피딱지를 점철한 채로, 조용히, 알렉세이를 관통한다. 알렉세이 혼자만이 숨을 쉬었다. 함장은 점점 목이 죄어오고 점점 뜨거워지는 내부를 느낀다. 느낀다. 느낌은 점점 헛것이 되어간다. 먼 것이 되어간다. 먼 세상이 되어버린 먼 과거는 현실로부터 분리된다. 그는 그제야 꿈인 줄 알고 안도의 숨을 몰아쉬는 것이다. 그의 잠자리는 항상 식은땀에 젖어있다. 그의 악몽은 현실에 기반했다. 기억의 재구성이었다. 1961년 7월 3일. 기록보다는 기억으로 더 선명히 남은 날. 북대서양의 밤바다처럼 혼란하던 감정이 선명했다. 잊을 수 없었다. 매일 밤 그의 꿈속으로 침투해왔으므로. 원자로의 온도를 조절하는 냉각수가 고장이 났다. 누군가가 원자로실에 들어가 파이프를 수리해야만 했다. 자칫하면 핵미사일이 터질 위기였다. 잠수함이 터지면 알렉세이를 비롯한 모든 승조원들의 죽음은 고사하고 미군과의 전쟁까지 번질 터였다. 미군의 영해였으므로. 죽음을 각오해서라도 막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승조원들은 죽음의 방으로 밀어 넣어졌다. 싸구려 방역복을 입고, 문 앞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알렉세이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함장이란 명찰을 달고, 지켜볼 뿐이었다. 알렉세이는 악몽을 꿔서라도 그날을 잊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들을 잊지 않기로, 그는 맹세했던 것이다. 포프스티예프, 코칠료프, 리지코프, 오도츠킨, 카셴코프, 펜코프, 사브킨, 차리토노프.......그들이 없었더라면 그의 지금도, 고국의 지금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숭고했다. 모든 인민들에게 추모를 받아 마땅한 죽음이었다. 그날로부터 귀환한 후일에도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마땅한 추모를 받지 못했다. 사건이 극비로 부쳐진 탓이었다. 알렉세이가 다시 함장으로 불리는 일은 없었다. 그는 연금으로만 삶을 연명하는 검소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의 일상은 단출했다. 오전엔 주로 독서를 하며, 오후에는 주로 외출을 한다. 볼가 강을 따라 산책을 하거나 시내의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거나, 했다. 30년 전의 그였다면 쳐다도 안 봤을 따분한 취미가 이제는 삶의 단단한 기둥이 되어있었다. 알렉세이는 커피는 즐겼을망정 음주는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맨정신이, 악몽의 원천일지도 몰랐다. 광장으로 나가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오후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패턴이었
- 구포대교
- 2026-02-01
매일 아침 일어나면 식탁 위에 우유 한 컵이 놓여있었다. 아마 여덟 살 무렵부터일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우유는, 그곳이 제자리인 양, 놓여있었다. 어디 아침뿐이랴. 엄마가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하루 종일 우유에 시달려야 했다. 아침 먹고 우유, 점심 먹고 우유, 간식으로 우유와 빵, 저녁 먹고 우유......지긋지긋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엄마의 눈길을 피해 자주 우유를 버렸다. 언제 한 번 싱크대에 우유를 버렸다 그 흔적을 발각 당해 감시가 엄격해진 이후로는 쉽게 버리지 못했는데, 그때 싱크대를 한 번 헹구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아무렴 나는 우유를 먹고 무럭무럭 큰다......엄마가 생각했던 시나리오는 그랬다. 인생이란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지 않는가? 애당초 인생에 시나리오를 작성하려는 시도조차도 내 눈엔 코미디다. 다만 우리 엄마를 보고 웃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우리 엄마가 아빠를 무척 싫어했다는 사실만큼은 알겠다. 그런데 그렇다면, 애당초 아빠와 결혼한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사실에 관해서는 내 나름대로 머리가 커가며 추론해낸 값이 있다. 결혼한 후, 아빠가 무턱대고 죽어버리자 엄마는 아빠를 싫어하게 된 것이고 아빠를 싫어하다 보니 아빠 같은 키 작은 남자들을 다 싫어하게 된 것이다. 아빠의 죽음에 관해서는 이제 와서 큰 감정이 없다. 어렸을 적엔 자주 울었고 원망도 했지만 아무렴 기억에도 없는 사람이다. 아빠 때문에 슬픈 것보다도 아빠가 없음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주변 환경이 더 싫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그 사실을 꽁꽁 숨겼다. 모든 비밀이란 비밀이 그렇듯 어디론가는 몰래 샜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래서 나는 절친한 친구가 없다. 학교에서 재밌게 놀던 친구들과도 종이 치고 하교시간이 되면 그대로 헤어져버렸다. 그 정도의 친구들뿐이었다. 어디까지나 교실이라는 공간 안에서만 같이 놀던 아이들. 내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학교에 없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이상하게도 키가 안 컸다. 주변의 친구들이 1년에 6-7cm씩 자라는 동안 난 끽해야 3-4cm 정도. 졸업식 날의 사진을 보면 체감이 쉽다. 1년 1년 벌어지던 간극이 6개가 쌓여서 그들과의 시선의 기울기는 많이 기울었다.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졸업식 날 유독 표정이 부자연스럽던 엄마의 얼굴을. 망가지기 직전의 그 가면을! 덕분에 친구들과 찍은 사진도 많지 않다. 아직도 그날의 엄마가 원망스럽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우유를 계속 마셨고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그랬다. 물론 엄마가 일찍 출근할 때마다 우유를 버리곤 했지만. 그래서일까? 난 키가 크는 일이 없었다. 안 크던 키가 갑자기 크면 그것도 신기하겠지만. 우유는 마법의 수프가 아니었다. 칼슘이 좀 들어있는 암소의 젖일 뿐이다. 난 이걸 오래 전에 깨달았는데 엄마는 좀처럼 몰랐다. 고생은 내 몫이었다. 끝끝내 고등학교 졸업식 날. 지난 두 개의 졸업식이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기에 고등학교 졸업식도 전날부터 걱정이 앞섰다. 차라리 엄마가 안 왔더
- 구포대교
- 2026-01-17
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내가 평생을 살며 가슴에 안고 있는 생각이다. 당장 내 아버지만 봐도 그렇다. 우리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다 죽어버린 할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아버지는 자신을 위해 살려 평생을 노력했다. 이기적이기 위해 다짐했다. 아버지는 초라한 지붕 아래서 초라하게 돌아가셨다. 태생은 의지보다 질겼다. 의지보다 질긴 태생. 이보다 알맞은 말이 있을까. 없다고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아버지를 닮아가는 운명에 놓인 사람들이 아들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기적으로 살려 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태생적으로 이기적인 인간들이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러한 진실을 깨달은 아들은 거의 없다. 나 역시 아버지가 죽고, 손주를 바랄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으니 어련할까. 그러니까 나는, 내가 아버지와 닮아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아들에게 감추고 싶어지는 것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들이 나의 키를 넘어섰을 때, 아내가 나보다는 아들에게 의지할 때. 부끄러워하는 자신을 발견했으며, 부끄러워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들은 아직 내 어깨에다 자신을 기대려하는데, 그러한 인식과 현실의 부조화가 어색하고, 심지어는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담배를 피게 된 경위다. 나이 50이 다 되어 갈 즈음에 처음 핀 담배. 비약된 인과관계는 혼란한 마음속에 숨어있다. 적어도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 아버지는 뒷마당에서 담배를 피고는 했다. 이기주의를 고수하려던 아버지는 우습게도 밖에서 피라는 어머니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따랐다. 몇 차례의 욕설이 있긴 했지만, 눈 내리는 시린 겨울 와중에도 꿋꿋이 밖에 나가 추위에 떨며 담뱃불을 붙이던 장면은 아직 선명한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집 안에서의 발언권이 축소되며 아버지는 흡연의 횟수를 늘려갔다. 난 한심하단 눈으로 그의 등을 바라만 봤었다. 가장의 짐 다량이 내게로 옮겨졌을 때였다. 아무렴 나와는 큰 상관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다만 산책하던 도중 편의점 하나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고, 우연히 5000원 권 지폐가 있었고, 우연히 담배를 한 값 산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아니 크게 했지만, 모두 우연히 일어난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본심과는 무관하게 나 스스로의 선택이라 믿었다. 담배를 피자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꼴사납게 기침을 했고, 그러면서도 다시 입에다 가져다댔다. 몇 번의 도전으로 흡연은 익숙해졌고, 오래지 않아 그것은 습관으로 굳었다. 중독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밝은 전망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시작한 담배는 생활의 여백들을 틈틈이 채워줬다. 그 만족감이 꽤 크다. 그러므로 나는 쉽게 담배를 놓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그 사실에 관해서는 거부감이 없으면서도 나를 압박해오는 건 지금의 가족
- 구포대교
- 2025-12-27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