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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구포대교
  • 작성일 2025-12-25
  • 조회수 272

 그의 고향은 먼 우주다그는 어둡고 추운 그 공간을 정처 없이 떠돌았다어느 순간 그는 어느 행성과 충돌했고 바다의 일부가 되었다그리고 나서도 방랑은 계속됐고 어느 순간 바다는 쪼개지고명명됐다그의 이름은 태평양이 되었다다른 태평양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에워싼 다른 이들과 비교했을 때 그의 삶은 비교적 순탄했다태평양으로 정착한 이후로 바깥 세계로 끌려 나간 적도 없었다가끔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잊을 정도로 그의 삶은 평온했다.

 다만 그의 주변 환경은 시시각각 바뀌었다바다에서 끌려나가 사라져버린 친구들이 태반이었고 해류에 휩쓸려 친구를 잃기도 했다우리들의 삶이란 건 무엇일까 하고 그는 자주 고민했지만 어디까지나 그 혼자만의 생각이었다고민을 나눌 만한 친구가 생기기도 전에 다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방금 인사했던 이가 고개 한 번 돌린 후에 사라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자신을 빼고 변화하는 세계에서 그는 외톨이었다.

 바다의 수평선처럼 평생 평온할 것만 같던 그의 생도 언젠간 태풍을 맞길 마련이다은빛의 물고기들과 함께 달리던 무렵그는 바다 바깥으로 끌어올려졌다그물에 엉킨 갈치들과 함께였다다른 많은 친구들이 다시 바다로 돌아갔으나 그는 은빛 비늘에 매달린 채로 끝까지 버텼다그에게 이는 절호의 기회였다평온했던 삶의 수면을 잔뜩 헝클어뜨릴 반항의 문이었다그렇게 그는 차가운 박스 안으로 유폐되었다.

 춥고어두웠다.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자 다른 친구들이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이봐괜찮아?”

 “으응잠깐 겁이 난 것뿐이야.”

 그는 애써 웃었다그가 선택해서 올라탄 배였지만뒤늦게 두려움이 밀려왔다태평양 속에선 가만히 있기만 해도 안전했는데 괜히 올라와서 미래가 불투명해졌다그러나 그의 곁에 있는 친구들은 어째 태연해보였다.

 “난 이번에 두 번째야삶이라는 게 맘대로 되지 않는 거 아니겠어크게 겁먹지 않아도 돼우리가 할 일은 넓은 세계를 구경하는 것밖에 없으니까.”

 “맞아 맞아.”

 “나도 이번이 세 번짼데 난 호수를 가보는 게 꿈이야말로만 들어봤거든.”

 “......다들 대단하다.”

 그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늘에 매달렸던 때의 자신감을 회복했다두려울 건 없었다미지의 세상을 향한 호기심만이 가득 샘솟았다.

 바닷속과 달리 아이스박스 속에서 그는 주변의 이들과 오래 몸을 부딪쳤다그는 다른 이들의 유랑기를 들을 수 있었다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모두 달랐고 세계란 바다보다도 무척 다양해보였다시간이 꽤 지나아이스박스의 뚜껑이 열렸을 때 그는 그들과 헤어졌다.

 “그럼 멋지게 세상을 돌아다녀봐!”

 “고마워!”

 그는 뚜껑에 매달린 채로 이동했다그렇게 어느 부둣가의 고인 물에 섞여들어 갔다가도금방 하수구로 떨어져버렸다아이스박스만큼 어둡고 추운아이스박스보다 넓은 곳이었다그곳에서도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안녕넌 바다에서 나온지 얼마 안 됐구나?”

 “......구정물이네고생이 많겠어.”

 그의 말에 구정물은 별 거 아니라고 킥킥 웃었다.

 “어차피 조금 지나면 바다로 갈 건데.”

 “바다?”

 “그래여긴 바다로 이어지는 하수구거든.”

 그는 잠시 실망했다가 다시 또 기뻤다안전한 바다로 돌아갈 수 있겠단 생각에서였다그러나 다시 또 실망했는데금방 자취를 감춰버린 자신의 호기심 때문이었다자신에게도 나름의 야망이 있다 생각했건만 그 하찮은 점멸에는 스스로에게 부끄럽기까지 했다그는 호기심의 사채를 소생시키며 다시 한 번 매달리기를 자처했다보다 더 어둡고 더러운 곳까지 도달할 수 이도록그는 생쥐의 발바닥에 매달렸다생쥐는 발자국을 남겼지만 그는 발자국이 되기를 거부했다.

 그러다 그는하수구를 빠져나와 비로소 빛을 보았다햇빛이었다수면 위에서만 일렁이던 한 줌의 빛 무리가 강렬하고 선명한 원으로 하늘에 박혀 있었다.

 하늘그는 선명한 구름과 투명한 하늘을 보았다저 너머의 우주를그의 고향을 실로 오래간만에 기억했다이제는 바닷속의 수많은 이들이 망각해버린 그들의 기원이었다그는 잠시 숙연해졌다지나온 세월의 질감이 느껴졌다그리고점점 뜨거워지는 몸이 느껴졌다처음 느껴보는 열이었다.

 그러던 와중다행히도 그에게 그림자가 드리웠고 그것은 한 마리의 비둘기였다비둘기는 커다란 부리를 들이밀며 그를 굽어보았다정확히는 그의 옆에 나뒹굴고 있던 빵 부스러기였다비둘기는 부스거리를 낼름 핥은 뒤 날아올랐다그는 비둘기의 발꿈치에 매달린 채로 올라가는 자신을내려가는 세계를 느꼈다그러곤 생각하는 것이었다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더 먼 곳으로 향할 수 있구나바다에서아이스박스에서하수구에서지상에서 하늘까지그는 고공행진 했다신기루나 다름없던 구름을 통과했다구름의 아래도 구름의 위도 하늘이었다하늘은 또 다른 세계였다.

 .......태양은 여전히 멀었다그는 세찬 바람과 추위에 더 이상 매달리지 못했다그는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구름 위로 추락했다구름은 폭신하게 그를 받아주었다.

 “괜찮니?”
 그는 흰 구름에 둘러싸였다그도 지금은 구름이었다저 아래에 도시와 바다가 한 눈에 보였다.

 “괜찮아.”

 그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생전 처음 느껴보는 안락함이었다천천히 하늘을 부유했다.

 “우린 계속 이렇게 살게 될까?”

 그가 묻자 다른 구름이 대답했다.

 “아냐우린 결국 바다로 돌아가게 될 거야어떤 과정이 되었건 말이지그러니까 안심하고 땅을 구경할 수 있어.”

 대답에 그는 안심했다그는 바다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언젠가 돌아갈언제나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곳더 이상 그에게 고향은 우주가 아니었다바다였다.

 그는 바다에서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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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알렉세이 보스트리코프는 자주 악몽에 허덕였다. 그는 유령함의 함장이었다. 유령함의 이름은 k-19. 별칭, 과부제조기였다. k-19는 언 바다를 유영했다. 꿈 속 풍경은 언제나 다름없었다. 하늘은 밝은 회색에 바다는 혹등고래의 등짝처럼 검푸르다. 삭막하다. 바람은 차갑고 따갑다. 유령함은 언 바다를 깨부순다. 깨진 바다조각은 빛을 바랜 보석처럼 탁하다. 악몽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풍경이었다. 알렉세이는 유령함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함장은 유령함에 들어가야만 한다. 유령함은 냄새로 가득하다. 땀과 기름과 방사능의 냄새가 얽히고설킨 통로를 흐른다. 그 사이로 유령이 걷는다. 유령은 방사능에 피폭되어 죽어있다. 온몸에 피딱지를 점철한 채로, 조용히, 알렉세이를 관통한다. 알렉세이 혼자만이 숨을 쉬었다. 함장은 점점 목이 죄어오고 점점 뜨거워지는 내부를 느낀다. 느낀다. 느낌은 점점 헛것이 되어간다. 먼 것이 되어간다. 먼 세상이 되어버린 먼 과거는 현실로부터 분리된다. 그는 그제야 꿈인 줄 알고 안도의 숨을 몰아쉬는 것이다. 그의 잠자리는 항상 식은땀에 젖어있다. 그의 악몽은 현실에 기반했다. 기억의 재구성이었다. 1961년 7월 3일. 기록보다는 기억으로 더 선명히 남은 날. 북대서양의 밤바다처럼 혼란하던 감정이 선명했다. 잊을 수 없었다. 매일 밤 그의 꿈속으로 침투해왔으므로. 원자로의 온도를 조절하는 냉각수가 고장이 났다. 누군가가 원자로실에 들어가 파이프를 수리해야만 했다. 자칫하면 핵미사일이 터질 위기였다. 잠수함이 터지면 알렉세이를 비롯한 모든 승조원들의 죽음은 고사하고 미군과의 전쟁까지 번질 터였다. 미군의 영해였으므로. 죽음을 각오해서라도 막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승조원들은 죽음의 방으로 밀어 넣어졌다. 싸구려 방역복을 입고, 문 앞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알렉세이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함장이란 명찰을 달고, 지켜볼 뿐이었다. 알렉세이는 악몽을 꿔서라도 그날을 잊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들을 잊지 않기로, 그는 맹세했던 것이다. 포프스티예프, 코칠료프, 리지코프, 오도츠킨, 카셴코프, 펜코프, 사브킨, 차리토노프.......그들이 없었더라면 그의 지금도, 고국의 지금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숭고했다. 모든 인민들에게 추모를 받아 마땅한 죽음이었다. 그날로부터 귀환한 후일에도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마땅한 추모를 받지 못했다. 사건이 극비로 부쳐진 탓이었다. 알렉세이가 다시 함장으로 불리는 일은 없었다. 그는 연금으로만 삶을 연명하는 검소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의 일상은 단출했다. 오전엔 주로 독서를 하며, 오후에는 주로 외출을 한다. 볼가 강을 따라 산책을 하거나 시내의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거나, 했다. 30년 전의 그였다면 쳐다도 안 봤을 따분한 취미가 이제는 삶의 단단한 기둥이 되어있었다. 알렉세이는 커피는 즐겼을망정 음주는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맨정신이, 악몽의 원천일지도 몰랐다. 광장으로 나가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오후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패턴이었

  • 구포대교
  •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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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포대교
  • 2026-01-17
눈높이

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내가 평생을 살며 가슴에 안고 있는 생각이다. 당장 내 아버지만 봐도 그렇다. 우리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다 죽어버린 할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아버지는 자신을 위해 살려 평생을 노력했다. 이기적이기 위해 다짐했다. 아버지는 초라한 지붕 아래서 초라하게 돌아가셨다. 태생은 의지보다 질겼다. 의지보다 질긴 태생. 이보다 알맞은 말이 있을까. 없다고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아버지를 닮아가는 운명에 놓인 사람들이 아들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기적으로 살려 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태생적으로 이기적인 인간들이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러한 진실을 깨달은 아들은 거의 없다. 나 역시 아버지가 죽고, 손주를 바랄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으니 어련할까. 그러니까 나는, 내가 아버지와 닮아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아들에게 감추고 싶어지는 것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들이 나의 키를 넘어섰을 때, 아내가 나보다는 아들에게 의지할 때. 부끄러워하는 자신을 발견했으며, 부끄러워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들은 아직 내 어깨에다 자신을 기대려하는데, 그러한 인식과 현실의 부조화가 어색하고, 심지어는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담배를 피게 된 경위다. 나이 50이 다 되어 갈 즈음에 처음 핀 담배. 비약된 인과관계는 혼란한 마음속에 숨어있다. 적어도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 아버지는 뒷마당에서 담배를 피고는 했다. 이기주의를 고수하려던 아버지는 우습게도 밖에서 피라는 어머니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따랐다. 몇 차례의 욕설이 있긴 했지만, 눈 내리는 시린 겨울 와중에도 꿋꿋이 밖에 나가 추위에 떨며 담뱃불을 붙이던 장면은 아직 선명한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집 안에서의 발언권이 축소되며 아버지는 흡연의 횟수를 늘려갔다. 난 한심하단 눈으로 그의 등을 바라만 봤었다. 가장의 짐 다량이 내게로 옮겨졌을 때였다. 아무렴 나와는 큰 상관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다만 산책하던 도중 편의점 하나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고, 우연히 5000원 권 지폐가 있었고, 우연히 담배를 한 값 산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아니 크게 했지만, 모두 우연히 일어난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본심과는 무관하게 나 스스로의 선택이라 믿었다. 담배를 피자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꼴사납게 기침을 했고, 그러면서도 다시 입에다 가져다댔다. 몇 번의 도전으로 흡연은 익숙해졌고, 오래지 않아 그것은 습관으로 굳었다. 중독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밝은 전망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시작한 담배는 생활의 여백들을 틈틈이 채워줬다. 그 만족감이 꽤 크다. 그러므로 나는 쉽게 담배를 놓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그 사실에 관해서는 거부감이 없으면서도 나를 압박해오는 건 지금의 가족

  • 구포대교
  • 2025-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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