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
- 작성자 김귀
- 작성일 202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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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이다.
“야이 새끼야 어딜 싸돌아다니느라고 인마 새벽…몇시야…몇시?”
약간 곱슬인 머리를 달랑대며 어머니는 분주히 밥 준비를 한다.
“네 시였나?”
“그래 네 시. 네 시에 들어오는게 부엉이새끼도 아니고 잇, 언제 철들라고…니 또 명준이랑 술처먹었제?”
“혼자 먹었어요. 걔 서울 간지가 언젠데 자꾸 그러세요. 그리고 욕하지마세요.”
“욕은 뭐이씨 내가 언제 욕을 했다고.”
“밥먹고 있잖아요 아 진짜.”
밥이 맛있다. 국은 좀 짜므로 6점 드린다. 거실에 식탁이 있는데, 아침엔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식탁에 제대로 들어와서 드라마처럼 감성을 잡고 밥을 먹을 수 있다.
우리 집은 2층 공동주택이다. 우리는, 그러니까 어머니와 나는 1층에 살고 2층에는 남자 하나가 사는데 꽤 오래 전부터 입주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도 뭘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머니 말로는 가끔씩 신음소리가 들리는데, 가보니 남자 하나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딸치고 있겠거니 한다.
“으악!”
윗집이다. 전에 없던 말도 안되는 데시벨의 비명이다. 이것도 모종의 유사 성행위에서 나오는 소리일까?
…그럴리가 없다. 위험요소는 최대한 없애는 편이다. 나는 아침을 먹고 채비 후 집을 나간다. 문 바로 옆에 있는 계단을 올라 2층집의 문을 두드린다. 몇 초 기다리자 남자가 잠시만요 한다. 옷입는 소리가 들리더니 후줄근한 차림의 남자 하나가 나온다. 키가 작고 살이 찌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 남자다. 내가 말한다.
“안녕하세요.”
“어…배달 아녜요?
“아녜요.”
나는 층간소음 문제로 주의를 좀 주려고 왔다고 말한다.
“죄송합니다 네.”
“아침에 배달을 시켜먹으시는 거예요? 뭐 못 나갈 일 있으신가봐요?”
나는 위압감을 조성하려 문틀에 팔을 걸치고 묻는다.
“남이사.”
“뭐?”
“농담입니다.ㅎ.”
“아니 잠시만…”
남자는 문을 닫는다. 위압감을 조성하려는 멘트가 안부인사처럼 들린걸까, 걱정한다.
문이 닫히며 보았는데, 거실에 큰 텔리비전 하나가 있었고 거기에 야동이 틀어져 있었다. 개방성에 취향이 있는 히키코모리일 뿐이었다.
나는 주택의 대문을 열고 거리로 나간다. 왼편엔 선박이 늘어선 바다. 선선한 소금기를 가진 바닷바람이 분다. 흩날리는 머리를 약지로 정리하며 약속된 장소로 향한다. 여자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나름 새로 산 코트를 입어봤는데, 내가 보아도 정말 괜찮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건 그 남자가 사실 동성애 취향도 있어서 나에게 호감을 느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그 정도로 괜찮다는 의미이다. 나보다 훨씬 일찍 일을 나온 이번에 이장이 되신 어부 아저씨가 나에게 온화한 인사를 건넨다.
“어이! 야 나 이거 좀 도와줘바라.”
“안돼요. 저 아저씨 따님 만나라 가요.”
“아니 야 이놈아 이거 잡아주기만 하면 돼야….”
마음이 따뜻하신 분이다. 나는 모른체하고 걷는다.
도착한다. 카페다. 이름은…’박가네’. 촌스럽다. 요번에 새로 생긴 카페로, 우리 동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반응이 뜨겁다. 내가 아는 우리 동네 젊은 사람들은 총 세 명인데, 나와 나의 여자친구, 그리고 그 남자이다. 그 중 두 명이 카페 설립에 신나했으므로 반응이 적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여자친구가 미리 와 앉아 있다. 언제나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 그녀의 매력이다. 나는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바람과 함께 카페는 두 번째 손님을 맞는다.
“왔어?”
“어어.”
“앉아. 선글라스 좀 벗으라니까.”
그러면 내 작은 눈이 보여지잖아. 나는 마음속에 눌러적는다. 내심 옷가지에 대한 칭찬을 기대했으나 불발이다. 나는 자리에 앉는다. 그녀는 정말 예쁘다. 갈색으로 물들인 긴머리와 브이라인의 작은 얼굴, 콧볼이 조금 뭉툭하지만 날렵한 콧대와 앞트임과 뒷트임으로 늘린 눈매가 매력적이다. 그녀는 내 자부심이다. 그녀는 내 자부심. 내가 묻는다.
“댓바람부터 어쩐 일이야?”
“오늘 주말이잖아.”
“오늘 주말이야?”
“...그건 그렇고, 따로 할 얘기가 있어서…요즘 어때? 일은 구했어?”
“음악해서 돈 번다 했잖아…몇 번을 말해야 해?”
“하…화내지 말고. 미안해.”
나는 불안하다. 화는 불안이 탈을 쓰고 있는 꼴과 비슷하다. 불안하지 않으면, 화를 낼 일도 없다.
“그럼, 음악 활동은 잘 돼가? 어때?”
“이번에 앨범 다 만들었고 이거 투자해줄 사람만 찾으면 돼.”
나는 거짓말을 한다.
“그 말 저번달에도 했어.”
“아니 그니까 이게 투자자 찾는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는…걱정마. 곧 있으면 찾을 수 있어.”
“...알겠어.”
또한 거짓말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잔소리를 끊임없이 늘어놓아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곤 한다.
우리는 데이트를 한다. 커피를 마시고 꿀에 적신 빵을 먹고 도우미가 있는 노래방에 노래를 부르러 간다. 물론 도우미는 사절한다. 나는 그런 취향이 아니다. 작은 어촌에는 노래방 따윈 없기 때문에 시내로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시내란 것이 말이 시내지 우리 동네와 별반 차이가 없고 우리 동네의 박가네 ㅎ 카페마냥 노래방만 띡 있는 식이며, 그 노래방은 적은 인구가 엎치고 초월적인 고령화가 덮친 열악한 환경에서는 일반적인 노래방의 수익구조론 돈을 벌 수 없다는 계산을 통해 도우미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전에는 여자친구가 불평을 들어놓아 귀찮았지만 적응을 하고 아무말 않는다. 노래를 번갈아가며 부르다 부를 노래가 떨어져 적막이 방문을 열었을 때, 옆방의 아양 섞인 신음이 틈을 놓치지 않고 따라들어온다. 해가 중천인데 뭔. 여자친구는 집에 가고 싶다 한다. 나는 의문이 들지만 따른다.
버스가 오지 않는 관계로 우리는 또 걷는다. 여기서 우리 동네로 돌아가는 길은 반쯤 비포장 상태라 흙과 잔디가 발에 엉겨온다. 여자친구는 내게 내가 만든 노래가 듣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폰을 꺼내 이어폰을 건네고 파일에 담긴 노래를 튼다. 장르는 모던얼터너티브익스페리멘탈아트슈게이징이다.
“이게 뭐야? 그냥 소음 아니야?”
“뭐?”
크게 신경쓴 곡이 아니라 상관없다. 상관없다. 정말로 상관없다.
우리는 초저녁 즈음에 동네에 다다른다. 그러므로 황혼이 불거져 있다. 빛에 쪼이는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드는 생각은 눈이 부시다는 것이다. 내 시선이 내키지 않는 것처럼 바다는 내 시선에 반격한다. 바다는 사실 노래방 도우미처럼 자신의 아름다움을 아무에게나 대주는 짓을 막기 위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그러니까 태양의 성기를 받아내는 이런 때에, 오히려 관찰자의 관음을 튕겨내는 일에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수면 위에 놓이는 빛의 결은 말하자면 비늘이 아닐까. 우리는 바다에 직접으로 닿는 항만의, 선박이 없어 하늘을 가리지 않는 곳에 앉아 다리를 대롱거리며 노을을 바라본다. 문득 태양과 바다의 교감이 나를 표적으로 불안을 부른다. 나는 속절없이 불안에게 구타 당하고 만다. 여자친구가 나에게 묻는다.
“저…사실 나 할 말이 있는데….”
“뭔데?”
“오늘 빨리 만나자 한것도 사실 이것 때문이거든….”
“말해.”
“그게….”
확성기를 통해 이장님이 다급한 목소리를 뽑아낸다. 본의아니게 여자친구의 말은 끊긴다. 나는 왜인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아 예, 마을여러분 오늘도 강녕하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이제 이번에도 지속 개최되는 마을연례회의를 예 우리 어촌의 대대적인 비수기를 맞아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다들 마을회관으로 모여 주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우리 마을 공식 커플. 너네들은 꼭 오라. 듣고 있제?”
지지직과 함께 마이크를 끄는 소리가 난다.
“가야겠네?”
“어….”
우리는 마을 회관으로 간다. 회관 안은 아직 적막이 들어차 있다. 가끔씩 이장님의 아내분이 만드는 고기요리의 냄비에서 취이익하고 소리가 들릴 뿐이다. 사람들이 한 두명 모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온다. 나는 우리에게 쏟아지는 여러 인삿말들을 기꺼이 하나하나 쳐낸다. 여자친구는 우물쭈물 말을 못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냐고 물어본다. 여자친구는 그 마음이 들리기라도 한 듯이, 나를 흘겨보다 눈을 내리깐다.
……
하나 이상한 점은 그 윗집 남자가 회관에 들어선 일이다. 그는 육중한 몸을 이끈다. 아침보다 훨씬 커진 듯한 몸체다. 딱히 조심하는 일이 없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지독한 냄새 또한 아침보다 더 심해져 회관의 여닫이문을 연 순간 내 코를 때렸다. 그런데, 북적대는 사람들은 그런 본능적으로 불쾌한 생명체가 자신들의 영역에 들었음에도 아는체 하나 없다. 여자친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남자는 회관 구석진 곳에 털썩 주저앉아 나를 노려본다. 나를 노려본다…
……
마을 사람들의 폭격.
자, 자. 뭐야? 우리 딸이 함 직접 말해봐.
뭐야 도대체가 무슨 일인데?
야 이거 수육이 잘 됐네.
회의고 자시고 사실 그거 들을라고 여까지 온거잖아 다들!
난 밥무러 왔는데?
저…사실 대학 합격했어요. 서울 쪽에.
뭐라고?
뭐?
진짜야?
아이고 축하한다.
경사였네 이거.
시바 이거 지 딸 자랑할라고 부른거네 ㅎ.
그러면 마 명준이랑 같은 곳이야?
서울에 대학이 몇갠줄 아냐 이 양반아 가을 새우보다 많다니까.
암튼 좋은데란거지?
씁. 야. 최고 좋은대학 인마.
와하하.
와하하.
하하.
하.
ㅎ.
그정돈 아니에요 ㅎㅎ.
마을 사람들은 술판을 벌인다.
윗집 남자는 수육을 먹는다. 사람의 체질이란게 다양성에 있어 끝이 없다고들 하지만, 먹는 중에 바로 덩치가 부는건 조금 괴이한 일이다.
……
“너…공부 못했지 않냐?”
“농어촌. 재수했어.”
“아.”
“그, 축하해.”
“고마워.”
“그럼, 우리 어떻게 되는걸까?”
“어떡할래?”
“아니, 니가 정해. 내가 뭐라고 ㅎ.”
“무슨 말을….”
“뭘? 나 원래 말투 이렇게 말했잖아. 어?”
“...넌 그게 문제야. 남 기분 생각 안하고, 지 기분만 생각하고, 너, 공감이 뭔지는 알아? 이 상황에 그렇게 틱틱대면 내 마음은 어떻겠어?”
“뭐라고?”
술이 들어간 다음은 뭐, 뻔할 뻔자로 와!와!와! 뭐?뭐?뭐? 어쩌고저쩌고 시시비비 왈가왈부…운운. 그러다 펑. 하고, 화라고 불리는 불안이 서로 터지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근처 마트 앞에서 넌 기다리고 난 장을 본다. 까만 바다와 해변이 마트 앞에 있다. 나는 마실 것 여러개를 챙겨 계산해서 나온다. 너는 말한다.
“헤어지자.”
라고….
나는 분을 삭힐 수 없어 다시 마트에 들어간다. 술 때문이다. 술 때문이야. 마트엔 통유리로 된 창이 바닷가 쪽으로 나 있고 불편한 의자가 밖을 볼 수 있게 배치되어 있다. 나는 잠시 그곳에 앉아 물을 마신다. 짜다.
어디선가 나타난 윗집 남자가 너에게 다가온다. 너는 아무런 내색이 없다. 남자는 너에게 아주 밀착되어 있건만, 눈알은 튀어나올듯이 팽창되어 나를 노려보고 있다. 실핏줄이 터지기 시작하고 눈은 충혈된다. 내가 몸을 이리저리 흔들자 눈도 그것을 따른다. 씨익, 웃는다. 건치네. 팔자주름이 깊게 새겨지고 코는 복코처럼 콧볼이 터질듯이 커진다. 남자는 어느샌가 네 몸집의 두 배를 넘어선다. 살을 불려 옷은 살에게 잡아먹힌지 오래다. 얼굴살은 왜인지 홀쭉해져만 간다. 그것은 마치 도깨비가 되어간다…
너는 남자에게 목덜미를 잡힌다. 하하. 너도 남자처럼 변해간다. 마치 공기가 빠지는 것은 막히고 주입은 늘어가는 풍선처럼 너는 부풀어 올라 여성성을 찾아보기 힘든 모습으로 변해간다. 성별이란 얼마나 벗기기 쉬운 꺼풀인가. 남자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 같은데도 두 팔로 힘껏 그녀의 목을 쥐어짜듯이 잡아 그녀를 잡아올린다. 그녀의 목의 동맥이 터져 피가 남자의 손에 묻는다. 남자는 몸을 틀어 바닷가쪽을 향한다. 그럼에도 목은 그대로 나를 향해 보고 그 흉측한 얼굴을 보이고 있어, 마치 부엉이처럼 목이 꺾여 돌아간 듯 하다. 부엉이보다 더 한건가? 이제 남자는 해변으로 걸어간다. 아니, 흘러간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살을 최대한 늘어뜨리며, 천천히. 그러나 소리는 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남자는 그녀를 바다에 풍덩, 집어던진다. 그리고는 부엉이처럼 나를 노려보며 바다로 걸어들어간다. 바다에 파문이 일며 주변의 수위가 올라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너무나 큰 부피 때문이겠지. 나는 남자를 똑바로 주시하며 마트 밖으로 나가려 했으나 마트 유리벽에 붙은 소주 광고판에 무대가 가려져 잠시 남자를 놓친다. 마트 입구로 나오자마자 남자의 얼굴과 몸은 없어졌다. 내 머리에서 남자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나는 바다로 걸어간다. 새까만 해변에 가로등의 불이 켜진다.
……
바다는 비늘을 가지고 있다. 내가 보고 있던 비늘 한조각은 처음에는 남색을 가지고 있다가 끝자락에 연한 노란색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러나 같은 곳에 곧 새로운 비늘이 돋는다. 비늘은 몸을 지키기 위한 부위므로 사라지고 다시 돋는 것은 이상하다.
그리고 어느 비늘이 사라진 곳에 새 비늘 대신 너의 신발이 뒤집힌 채 돋는다. 나는 가까이 간다. 해변에서 얼마 가지 않은 곳에 신발이 있었기에, 적당한 길이의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그 신발을 건드려본다. 신발은 무게감을 손끝으로 전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씹고 있던 씨발을 하나 뱉고 아차 하고 다시 주우려고 하지만, 씨발은 바다에 무겁게 침전되어 바다와 쉽게 유리되지 않는다. 조금 더 시도하면 주워 볼 수 있겠지만, 게으름이 내 천성이라는 당위성이 없다면 지금의 내 한량성을 변호할 수 없기에, 나는 포기한다. 나는 코트를 벗고 바다속으로 들어가 신발과 연결된 시체의 다리를 잡고 바다 깊숙히 밀어넣어 바다의 흐름에게 내 일을 위탁한다. 신발이 윤동주마냥 바다가 마땅히 주어진 길인 것처럼 유유히 걸어간다. 물에 젖은 긴 머리카락이 일순간 수면 위로 뜨다가 신발과 함께 바다 속에 깊이 잠긴다. 연한 노란색을 가진, 저거 고장났는데 시바 언제 고치는지 안그래도 어둡고 폐쇄적인 동네에서 사람 죽으면ㅎ, 어쩌려고. 아무튼 원래라면 주황색을 띠어야 할 연한 노란색 가로등이 꺼지고 바다는 비늘을 감춘다. 추운 해변에서 나는 코트 주머니에 넣어둔 핫팩의 열을 지키려 쥔다. 나는 해변을 벗어나간다.
가다가 까먹고 있던 손의 피를 씻으려 바다에 다시 들른다. 새까만 바다도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운치가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ㅎ. 흐.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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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귀
- 2025-12-17
해몽 이 글 다음에 위치한 글은 내가 꾼 꿈에 대한 어렴풋한 기록이다. 나는 일주일 전에 이 꿈을 꾸다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나 기이함을 느꼈다. 그닥 악몽도 아닌 것이, 땀을 흘릴 정도로 긴장감을 유발했던 것이다. 크게 좋은 꿈은 아닌 것 같아서 대충 잊어먹으려 했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밀착되어 떨어지지 않아 나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그 내용을 글로 옮겨보았다. 싸구려 SF소설의 배경, 주제 없는 대화, 너저분한 감정과 상황….하나 건질만 한 것은 고독감이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가득 메운 고독감. 그것 때문에 나는 식은땀을 흘렸던 듯 싶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제목 또한 ‘외딴'으로 지어보았는데, 너무 현학적인가? 과연 청소년기부터 이어온 괴기한 작명센스를 또다시 뼈저리게 느꼈다. 기사의 헤드라인도 그쪽 계열이라 도무지 잘 쓰질 못하겠어서 요즘 실적도 영 아니다. 까내리긴 했지만서도 무엇인가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있다. 그런고로 이 글에 해몽이라는 멋들어진 단어를 제목삼고—이것 또한 나의 작명센스를 여실히 보여준다.—이 이야기를 파헤쳐보려 했지만 원체 머리가 나쁜지라. 점점 할 말은 없어지고 글은 더러워진다…역시 난 글에는 소질이 없다. 글을 쓰는 도중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기자님, 학생 하나가 기자님을 찾습니다.” 동료가 학생 한 명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최근에 나는 청소년과 관련된 사회 문제에 대한 기사를 하나 썼는데 그것을 읽고 나를 찾으러 여기저기 발품까지 뛰었다는 말을 영웅담을 읊듯 이야기해주었다. “어어, 그래. 무슨 일로 나를 찾았는고?” “기자님, 제가 꿈을 하나 꿨는데요….” 그 꿈의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정신병에 걸려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잘생긴 남동생을 구출하고 자신 또한 치유받아 더 나은 삶을 향해 정진하게 된 한 소녀…운운.’ 나는 브라더 콤플렉스가 담겨 있는 지루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별 생각없이 그 이야기를 듣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 꿈의 이야기와 거의 닮아 있는 것 아닌가? 나는 그 사실에 대해 말하곤 그 꿈에 대해 더 캐물었지만 더 이상의 성과는 없었다. 내가 흥미를 잃자 소녀는 흥미로운 사실을 첨언했다. “저도 그냥 개꿈이라 생각했는데요…다른 애들한테 이 이야기를 하니까 자기들도 같은 내용의 꿈을 꿨다고 말하는 거 있죠? 심지어 기자님도 그렇잖아요. 어때요? 이 꿈, 혹시 또다른 사람도 꾸었다면? 기사로 내기에 충분한 이유 아녜요?” 분명히 신기한 이야기이다. 내 꿈과 다른 이들의 꿈이 연결되는 경험은 가히 초현실적인 현상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신기한 이야기이긴 하다만, 입증할 방법도 없고...먹힐지도 의문이야. 요즘 기사들이 너무 자극적이게 되어서 말이지...만약 같은 내용의 꿈을 꾼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의 피드에 기사를 띄울 자신이 없다는 거지.” 나는 그렇게 타협을 진행했다.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 아닌가요? 정당성이 부재된 상처, 풍요로 인한, 쉽게 맺히고 쉽게 끊기는 관계에 의한 외로움, 그럼에도 고독을 도구로 상처를
- 김귀
- 2025-10-15
1. 기타 그런 날이 있다. 송장이 된 듯 꿈쩍도 하지 않고 싶은 날이. 그날은, 산송장이 되어 파리가 꼬일 정도로 방에 틀어박혀 책 한 권만을 쥐락펴락하다가, 그 책 속의 문장 하나를 잡고는 자칫 하루 전부를 폐기할 뻔한 날이었다. 그 책은 경제와 관련된 책이었는데, 그 책에서 나온 인상 깊었던, 또 앞서 말했었던 구절을 인용하자면, “대공황의 밤, 그것은 아무래도 신이 주신 성찰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경제학책에 무슨 이런 현학스런 말을 써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경제로 먹고사는 주제에 경제를 왜 까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불가해한 이런 문장을 뻔뻔스레 적어논 후 이해하려는 나를 불구로 만드는 이런 행위를 왜 했는지, 그것이 가장 불가해였다. 그래, 너는 위선을 떨고 있다. 마치 자신이, 현찰이 햇빛을 태운 이 사회에서 자신만이 콘크리트의 노예가 되지 않고 또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일 줄 아는 현자라도 되는 양, 위선을 떨고 있다. 조금의 요의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다. 요의에 의해 방 상태는 뒷전이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갔다는 사실조차 무의식에서 진행한다. 마치, 마치 화장실이 무저갱이 된 듯 하다. 나는 무저갱의 주변에 매달려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면 떨어져버린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는 한 손에는 책을 잡고 있는 관계로 일을 볼 때 사용한 손만을 씻고는 몸에 기분 나쁘게 밀착되어있는 나시를 손자국이 남도록 꽉 쥐어 물기를 닦아냈다. 방은 좁았다. 책이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이 방의 사분의 일을 채우고 있었고, 그 책장 옆에 작디작은 창문이 있었다. 그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조금 더 잘 받기 위한 내 철제 침대의 자리는 창문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었다. 창문으로 바라본 그날은 꽤 밝았고, 또 꽤 선선했다. ‘밖으로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라고 생각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상한 것이 있었다면, 방문이 잘 열리지 않아 여러번 힘을 줘서야만 문을 열 수 있었다는 것과, 방문을 열자마자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마치, 이 방문 밖의 풍경을 처음 보기라도 한 듯. 밖으로 나가 거리를 거닐었다. 중간에 스산해보이는 골목 하나를 발견해 그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골목에 들어가자마자 발에 감기는 눅눅하고 노후화된 아스팔트의 감각이 마음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중천인 해와 시원한 바람이 그것을 말끔히 지워주었다. 시간은 낮 12시. 인적이 드문 시간이었고 또 인적이 드문 거리였다. 우연히 남자 하나를 마주쳤다. 난 그런 상황에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그 남자를 불러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는 스리피스의 슈트를 입고 꽤나 멋들어지는 공공칠 가방을 들고 어깨를 피고 나를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걸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그것을 즐기는 중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선생님처럼 멋진 분이 이런 누추한 골목에는 어쩐 일로 드셨습니까?” “함부로 말하지 마시죠. 한때는 저희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가게가 이 골목에 있었으니까요.” 그는
- 김귀
- 20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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