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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 작성자 방백
  • 작성일 2026-04-10
  • 조회수 390

너는 에두아르 르베의 자살을 읽고 있는 중이다. 그 책은 붉은 팥죽색의 민무늬이고, 책등에 작가의 이름과 출판사, 자살이라는 제목이 금박으로 박혀 있다. 너는 3교시 야자를 마치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다. 바깥에는 퍼붓던 비가 그쳐 서늘한 공기만이 맴돌고 있다. 마치 밤중 어시장의, 어느 물고기도 헤엄치지 않는 수족관의 그것과도 같다. 너는 바닥을 본다. 네가 신은 흰 장화 위로 저무는 벚꽃잎이 한 장 떨어진다. 10여분을 기다리자 곧 버스가 온다. 너는 가방을 챙긴다. 버스에 올라 낯선 여자의 바로 앞 자리에 혼자 앉는다.

어제 어머니의 생신 날, 너는 프리지아 꽃다발을 사서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탔다. 그 꽃다발의 색이 보드랍고 예뻤음을 떠올린다. 너는 이어폰을 통해 한 노래를 재생한다. 마로니에의 칵테일 러브로, 그 곡엔 프리지아 꽃다발을 선물한다는 가사가 등장한다. 너의 어머니는 그 노래를 좋아한다. 때문에 너는 노래를 일부러 찾아 들었다.

그러나 그 가사가 책을 읽는 데에 거슬린다는 사실을 곧 깨닫는다. 너는 핸드폰을 들어 조금 더 검색한다. 유튜브에는 여러 버전의 곡이 나온다. 그중 네 눈길을 사로잡는 제목이 하나 있다. 일본어 ver-이라 적혀 있다. 미성의 여자가 해당 곡을 일본어로 부르고 있다. 너의 머릿속은 책 읽기에 적당할 정도로 차분해진다.

넌 에두아르 르베의 자살을 읽고 있다. 바깥 공기는 차갑고, 바닥에는 웅덩이가 조금씩 고여 있다. 버스에서 내린 너는 일부러 웅덩이를 밟으며 걷는다.

넌 반투명한 우산을 음악에 맞춰 흔든다.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너의 시선에 양옆으로 쭉 뻗은 도로와, 밤 10시의 아무도 없는 고요, 일정한 시간마다 불을 바꾸는 신호등이 걸린다. 네 기분은 오묘해진다. 설명할 수 없다. 너의 왼손에는 얇은 팥죽색 책이 들려 있다. 네 가방 안에는 같은 크기의 노트가 있는데, 너는 그 책을 읽으며 든 생각들을 그 노트에 써 두었다.

너는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를 걷는다. 귀에서는 여전히 같은 음악이 흐른다.

넌 일본어로 된 노래를 좋아한다. 가사를 알 수 없기 때문인데, 너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 노래를 듣는다. 일부러 번역을 찾아 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너는 어떤 사람이 뜻도 의미도 없는 말을 박자에, 음정에 맞춰 계속해서 말하는 것을 듣는다. 너의 플레이리스트에는 그런 노래들만 들어 있다. 너는 앞으로도 일본어를 배울 생각이 없다. 너는 걸음을 살짝 튕긴다. 그럼 너는 땅으로부터 살짝 튀어오른다. 너는 책을 읽으면서 네 어머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너와, 자살을 말하던 너의 친구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러다가 문득 아버지를 생각한다. 너의 의식 속에서 어머니는 밀려난다.


너의 아버지는 몇 년 간 너를 떠났다. 또한, 앞으로도 몇 년 간 없을 것이다. 그는 가진 것 없이 용기만 있는 자다. 거기다 사업을 벌여 큰 돈을 한 번에 벌고자 하는 자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많은 나라를 옮겨 다녔는데, 몇 년째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 현재 그가 집으로 오기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는 빚만 나오는 사업장을 정리해야 했고, 비행기 표를 사야 했다. 그는 믿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다. 사기를 친 사람은 한국에서 주택 짓는 일을 함께 했던 사장으로, 미얀마의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업장을 그에게 넘겼다. 그것은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고, 떳떳하게 남탓하기라도 힘든 일화였다. 그래서 어쨌든, 그는 돈을 많이 잃었다.

너의 아버지는 원체, 너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일 년 전부터 가끔 영상 통화를 건다. 종종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너는 그 연락을 받을 때마다 외딴 나라에서 일하는 너의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는 집에 당장 돌아와도 된다. 그러나 그가 벌(벌어야 할) 돈이 그의 자존심을 지켜 준다. 그는 돈을 벌러 갔지만, 동시에 그의 자존심을 지키러 갔다. 그는 가족들에게 있어 떳떳하고 싶다. 그가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은, 그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그 안에는 네가 알 수 없는 많은 이유들이 생략되어 있다. 하지만 너는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너의 아버지를 초라하게 하고, 너를 슬프게 한다.

너의 동생은 이 년째 방황 중이다. 감정이 북받치면 화를 내고, 공부를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너의 동생은 감기에 자주 걸리고, 자주 아프고, 아버지에 대한 감상이 깊지 않다. 너는 수술 중인 너의 동생을 보면서 아버지를 떠올린다. 네 동생의 많은 모습이 아버지를 닮았다. 그러나 정작 네 동생은 어릴 때 아버지와 헤어져 그와의 추억이 거의 없다. 네 동생은 아버지께 전화 걸지 않는다. 네 아버지는 한 달 전부터 누구의 전화도 받지 않는다.

그러던 중 네 어머니의 생일이 왔다. 너는 야자를 빠지고 일찍 집에 와서 동생과 함께 집안일을 했다. 네 어머니는 밤늦게 돌아와 웃는다. 너희는 늦은 저녁을 먹고,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를 한다.


한 문단이 너의 눈길을 끈다.

[너의 삶은 하나의 가설이다. 늙어서 죽는 사람들은 과거의 집합체다. 그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한 것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너를 생각할 때는, 네가 될 수 있었던 것들이 따라온다. 너는 가능성의 집합체였고 그렇게 남을 것이다.]

너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살한 사람들은 다른 죽은 사람들과 달리 독특한 선택-의지의 성격을 띤다.

그리고 한 상황을 가정한다. 차에 치여 죽은 사람이 있을 때. 그를 a라 하자. a는 창창한 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때, 그에게 남아 있는 ‘차에 치여 죽지 않음’의 가정과 앞으로의 가능성은 모두 사라진다. 왜냐하면 그 ‘가능성’이라는 것은 개인에 한하여, ‘(a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인데, ‘a가 죽지 않음’을 가능하게 하는 상황이 의지나 선택의 형태로서 a에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살한 사람에겐 ‘죽지 않음’의 선택, 즉, ‘가능’한 선택이 그 사람에게 주어져 있다. 따라서 죽지 않았을 때의 다른 상황들 또한 가정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선택의 세계는 자유롭고, 무한해진다.

하지만 너는 곧, 네가 한 생각들이 모두 작가에 대하여 반박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가 이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는 이러한 생각을 했음에도 풀어 설명하지 않았으며, 그대로 남겨 두었다. 남겨 둔 것에 대하여 너는 반박하는가? 너는 일련의 생각이 무의미했음을 느낀다.

하지만 다음 순간, 너는 그 무의미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삶은 단순 무의미의 반복이다. 그 무의미에 있어 삶이 무언가 메시지를 담아 회신했다고 믿는 것이 삶이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며 통통 튀며 걷는다. 바닥이 비쳐 하얀 웅덩이가 아까보다 작은 파장을 남긴다. 너는 네 친구를 생각한다. 삶이 힘들다는 친구. 의식을 따라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처럼 너는 일부러 친구 생각을 한다. 그러나 네 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너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너의 어머니는 너에게 자살을 예고한다.


너는 너의 어머니의 말을 듣는다.


네 어머니의 삶에는 돈과 아버지밖에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어머니의 모든 것이자, 동시에 어머니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때 돈은, 돈으로서의 돈이다. 너는 돈이 필요하다.

네게 돈이 필요한 이유는, 돈이 간절해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간절함에 따른 것이다.


너는 네 어머니를 생각할 때 침묵한다. 그러나 너는 불 꺼진 방 안에서, 아무도 없는 일요일 낮의 거실에서, 몇 시간 뒤에 등교해야 하는 월요일 새벽에서, 집 밖에 나가지 않았던 5일 간의 추석 연휴에서 상담 전화기를 붙잡고 오열했던 적 있다. “왜 나는 어머니의 감정을 받아 주지 못하죠? 그것을 하는 사람과 나의 차이가 뭐죠?” 너는 아마추어 상담사에게 마구 따진다. 답변을 듣지도 않고 혼자 울다가 거의 화가 나자,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너는 전화를 그냥 끊어 버린다. 소리를 지르지는 않는다. 너는 바깥으로 나간다. 너는 걷는다. 계속 걷는다. 사람들이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자살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너는 자살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그 책을 산 것이 아니다. 너는 에두아르 르베가 누구인지 모른다. 너는 그가 원고를 보내고 며칠 뒤 자살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너는 책을 다 읽지도 않았다. 너는 원고를 보내고 며칠 뒤 자살했다면 반드시, 그것이 자전적이거나 어딘가에서 감정적으로 북받치는 서술이 존재할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너는 책의 앞부분만 조금 읽었을 뿐이다. 거기다 너는 그의 삶을 찾아 보며 소설과 그의 삶을 대조할 생각도 없다. 단지 너는 책을 읽으면서, 그가 서술하는 ’너‘의 자살이 점점, 아내를 두고, 만화책을 책상에 펼쳐 놓고, 테니스 라켓을 가지러 가는 척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쏜 ’너‘가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너에 대해서 그가 서술하는 것 같다는 감정만을 점점 더 깊이 느끼게 될 뿐이다. 너는 어떠한 예언서를 읽는 듯이, 네가 유체 이탈하여 존재하는 듯한 감각을 느낀다. 그는 ’너’의 자살을 통해 ‘너’가 순수한 가능성의 집합체가 되었음을 표현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너’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를 떠올릴 때에만 가능하다. 그의 삶의 일부라도 직접 경험한 사람들만 그의 다른 가능성을 가정할 수 있다. 가정이란, 해당 사람의 과거를 바탕으로 하여, 그 모습을 직접 겪은 자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그’가 가졌을 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를 직접 겪은 자가 한 명도 남지 않게 될 때 ’그‘는 사라지므로 ’그의 가능성‘ 또한 사라진다.

가능성은 영원하지 않다. 그도 다른 모든 타살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죽음 이외의 가정이 존재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남는다.

그의 과거는 사실(의도)과는 다르게 단지 미래의 관점에서 그의 자살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근거로 남는다.

너는 이 모든 것의 의미를 찾고 싶어진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갑자기, 너는 걸음을 딱 멈춘다. 바람이 괴상하게 분다. 너의 왼쪽에서 하얀 불빛이 번쩍인다. 넌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다. 너의 시야를 온통 휩쓸며 눈부시게 빛나는 그것을 너는 바라본다.


*


찰나의 순간 너는 고민한다. 네가 앞으로 걸어간다면, 너는 산다. 그러나 네가 멈춘다면, 그것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네가 죽는다면 사람들은 네가 어떻게 죽었다고 말할까?



아직 아버지가 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타고 올 비행기는 먼 미래의 어느 순간에 존재한다. 하지만 네가 죽는다면 너의 아버지는 당장 올 것이다. 그의 자존심은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삶은 그 무의미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것이다.

아직 어머니는 죽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을 가능성은 먼 미래의 어느 순간에 존재한다. 하지만 네가 죽는다면 너의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선택의 순간을 당겨오거나 밀어낼 수도 있다. 너는 밀어내는 쪽에 건다.

왜냐하면 너의 동생이 아직 있다. 너는 수술 중인 너의 동생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가 없다. 베팅의 고함이 몸을 수그린다. 네 동생은 네게 있어 미지의 존재다.


왜?


그가 너보다 어리고, 그가 살아 있으니까.

그런데 네 어머니, 아버지와 동생의 차이가 뭐지?

 

자살이 가능성의 집합체라면 삶은 뭐지?



너는 사는 게 뭐냐고 물어보던 친구의 얼굴을 떠올린다. 너는 이유를 스스로 찾지 않고, 남에게 물어보는 태도가 나약하다고 생각한다. 그럭저럭 대꾸한다. 사는 게 삶이야. 그러자 친구가 외친다.


너는 삶에 순종적이야!”


*


너는 아직 이어폰을 꽂고 있다.


너는 단지, 이 순간 네 손에 든 책을 세상에서 지워 버리고 싶어진다.

책은 단지 책으로 존재했을 뿐, 네가 앞으로 할 선택에 있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네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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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백

    가능성을 부여하고 싶어. 사는 게 삶이라는 말은 수동적이지만, 그 자체로 본질이기도 해. 하지만 삶에 순종적이라고 외치던 너는 삶에 무언가 기대하고 있는 거 아니야? 삶은 무의미의 반복이고, 어떻게 살든 사는 것이 삶인데, 그것 이외의 다른 게 필요해? 삶에 무슨 저항이 필요하지? 죽음만이 삶에 대한 저항인가? 삶에는 의미가 없어. 마찬가지로 죽음에도 의미가 없지. 삶에 의미가 없기에 죽음에 의미가 있다는 너의 말은 이상해. 죽음이라는 ‘종결’에 의미가 있다면, 종결 이전에 내용이 있었다는 거잖아. 내용에 아무 의미가 없다면 종결도 의미가 없는 게 더 맞는 말 아니야? 삶과 죽음은 본질적으로(의미적으로) 동일해. 너는 이미, 삶에 무언가 다른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어.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가능성을 부여하고 싶어. 네가 살아있을 때 너의 삶은, 이미 고정된 남들 일상의 사이클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해. 하지만 네가 죽음으로서, 너는 그들의 사이클에 사소한 나사를 빼 버리고 그들은 약간 어긋나는 사이클을 돌리기 시작하지. 네 죽음이 그런 방식으로 의미가 있다면, 너의 삶이 누군가의 삶에서 의미가 있다는 뜻이므로, 본질적으로 삶과 죽음 중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머지 하나에 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거야. 그는 죽고 싶다고 말하는 어머니를 본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서 의미를 찾는 행위야말로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그의 어머니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어떤 의미가 있거나 없어서가 아니라, 어쨌든 끝내고 싶어하는 거다. 어쨌든 다. 삶의 고통을. 그는 그리고, 삶이 무엇이냐고 묻는 그의 친구를 본다. 그의 친구는 그에게, 충분히 슬프지 않다고 말한다. 확실히, 그는 지금 충분히 슬프지 않다. 그는 친구가 말하는 충분히의 기준이 무엇인지 안다. 충분히는, 충분히 끝내고 싶은 정도다. 너는 ‘죽음’의 겉에 속해 있다. 한때는 죽음의 문 가까이 있었지만, 현재에는 완전히 외부자다. 그래서 너는 의미라도 찾아 본다. 철학적으로 생각해본다. 자살은 무엇인가? 삶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죽음의 외부자로서, 죽음을 바라보는 존재로서, 그런 스스로를 위한 물음이다. 너는 답을 찾지 못한다. 가능성이라는 말만 남는다. 가능성이 허공을 부유한다. “절대로 가능성을 무시하지 마라.”는 좋아하는 책의 좋아하는 구절도 떠오른다. 너는 가능성을 잡아채 무언가에 집어넣는다. 가능성은 구겨져 들어가, 그 안에서 점점 크게 부풀어오른다. 부풀어오른다. 부풀어오른다. 펑 터진다. 세계가 된다. 모두가 각자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네가 남의 세계를 바라볼 때, 너는 슬프다. 네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에.

    • 2026-04-11 07:22:51
    방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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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호랑이

    절제된 문장과 안정된 묘사가 마음을 차분히 만들어주는 힘이 있어요. 일상 속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소재를 활용하고 있는데, ‘나’의 손으로 그것들을 거머쥐면 어째서인지 같은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독자의 마음에 균열을 일으키는 듯합니다. 어딘가 모르게 자꾸 내면을 응시하게 되는 글이었어요. 특히 ‘자살이 가능성의 집합체라면 삶은 뭐지’에 사유가 이르기까지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6-04-10 21:15:00
    아기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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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완

    확몰입되는감각이있고사유가굉장히마음에들어방백은말하고싶은바가명확하고그걸말하는데주저하지않아서,그걸어떻게하면문학적언어로표현하는지잘알아서멋있는사람이야.사소한거라도힘들면언제든지연락해

    • 2026-04-10 18:24:59
    강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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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능사

    방백만 아니었으면 트리거 워닝 띄우라고 할 뻔

    • 2026-04-10 14:59:31
    기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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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백

      기능사님 안녕하세요. 이 소설 같은 경우에는 제목 자체가 워닝이라, 트리거에 해당하시는 분들은 안 보실 거라고 생각해 달지 않았습니다. 제목 이상으로 자극적인 표현도 없어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띄워야 한다면, 여기선 개인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있어 다음 작품부터는 주의하겠습니다. 평소에는 조금의 묘사라도 독자를 생각해 주의 경고를 달고 있습니다.

      • 2026-04-11 00:27:35
      방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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