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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my world

  • 작성자 구포대교
  • 작성일 2023-09-17
  • 조회수 964

하늘에는 보랏빛이 아름답게 번지고, 땅에선 노오란 들판이 바람에 나부꼈다. 

이 하늘과 땅을 모두 눈에 담을 수 있는 언덕 위에서, 나는 잠을 잤다.

평화로운 삶이었다. 이 삶이 언제부터 시작 됐는가에 대한 질문은 사절한다. 나도 모르니까.


나는 몇 살인가. 나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내 이름은 무엇이었지?

제기랄.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래서, 체념했다. 이건 아무리 고민 해도 알 수 없는 문제다.

그냥 자고 일어나기의 반복이다. 저 드넓은 들판도. 광활한 하늘도 다 볼 수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재미가 없었다.


나는 언제부터 이러고 살았지?

이름 모를 고목에 기대 잠을 자고 일어나면 항상 같은 풍경이다.

이따금씩 하늘을 가로지르는 철새들을 보면, 왠지 모를 부러움이 솟아 올랐다. 아무래도 자유를 향한 갈망이리라.


하지만 내 어깨엔 날개 따윈 없다.

난 내가 날 수 없다는 사실을 꽤 오래 전에 깨달았다. 

내 몸뚱아리 하나 지탱할 발은 있지만. 이 발을 가지고 무언갈 할 생각을 하질 않았다.

굳이 여기서 움직여야 하나? 지루함 하나 때문에?


그리고 어느순간 난 깨달았다.

아무래도 나는 게으른 것 같다고.


* * *


이건 몇 번째 기상일까.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뺨을 스치자 저절로 눈이 떠진다.

그러한 내 시야 안에, 평소와 다른 이물질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응?”


아직 잠결이 다 가시지 않은 지라 잠긴 목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생각해보면 소리를 낸다는 행위 자체를 오랜만에 해봤다. 

나는 잠시 언어를 잊어버린 듯 멀뚱히 놈을 쳐다보았다.


잔뜩 헝클어진 검은 머리에 불구하고도 아리따운 미모를 자랑하는 여아였다.


“?”


어디서 나타난 걸까? 이 근처에 사람이 살만한 것은 없다. 있는 것이라곤 들판이 전부다.

내가 가뜩이나 경계어린 눈빛으로 아이를 쳐다보자, 놈은 겁이라도 먹은 듯이 주춤거렸다.(아니면 걸음이 미숙한 탓일 수도 있다.)


이런 부시시하고도 예쁜 놈이 어디서 튀어나왔는 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오래된 언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


“어디서…왔니?”


제법 친절하게 물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내 목소리자체가 조금 무서운가 보다. 아이는 이내 눈물샘을 터뜨리며 소리내 울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하지? 


제기랄. 이게 어떻게 되먹은 일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나는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세심히 관찰했다.

유치를 뽑고 얼마 되지 않았는지 이빨 몇 개가 없었다. 저 오똑한 코와 쳐진 눈매가 제법 매력적이다. 부시시한 머리칼과 어울리는 외모다.


그나저나 이놈의 울음은 언제쯤 그칠까.

아아. 

아무 것도 없던 공허한 내 삶 안에,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


그 여아는 내가 잠시 눈을 뗐을 때, 사라졌다.

어디로 간걸까. 고작해야 2초 남짓한 시간 안에, 사라져버렸다. 걷는 것조차 잘 못하던데. 허공으로 증발해버린 걸까?


내가 저 하늘의 새였다면 봤겠지. 어떻게 사라졌는지.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내 시야각은 그렇게 넓지 못하였기에. 


…아무래도 상관 없다.

평화롭고 조용하던 내 일상에 잠시 동안의 잡음이 스쳐지니간 것따윈. 


하지만 다음날이 되고서, 아이는 또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안녕.”


지금은 울지 않고 있었기에 나는 대화를 시도했다.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로 손만 살살 흔들었다. 아이의 눈동자가 무심하게 내 손자락을 쳐다본다.


“넌 어디서 왔니?”

“…집.”


말했다.

저 아이가 말했단 말이다! 하기야, 6살 정도는 돼보이는데 말을 못하면 그게 이상하다.

나는 말이 통한다는 사실에 일차적으로 안심하며 말을 건넸다.


“엄마는 어디 있어?”

“…집.”


엄마는 집에 있는 모양이다.(집이라는 말 밖에 할 줄 모른다는 가능성은 배제했다.)


“아빠는?”

“…집.”

부모 둘 다 집에 있는 모양. 그렇다면 요놈은 왜 여깄지?

일단 이름이나 알자는 심정으로 물었다.


“이름이 뭐야?”

“…소야.”

“소야?”

“신소야.”


신소야. 예쁜 이름이다. 저 생김새만큼이나.


“집은 어딨니?”


이 언덕 근처에 집은 없다. 적어도 반경 2km 내에 집을 본 적이 없었다.


“…아파트. 유치원. 바로 앞에.”


아파트? 유치원? 갑자기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군.


“그게 뭐야?”

“…우리 집. 아파트. 옆에. 유치원.”

“…….”


제기랄. 뭐라는 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최대한 대화를 시도했다. 누군가와 소통을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집엔 언제 갈거니?”

“…몰라.”


‘몰라.’ 이토록 무책임한 말이 있을 수가 있는가! 

마음대로 나타났으면 언제 갈지는 알려줘야하는 거 아닌가.

차마 애한테 분노를 표출하지는 못했다.


“…그러냐? 그럼 알아서 놀아. 난 잘 거니까.”


그렇게 난 고목에 등을 기대 앉아, 눈꺼풀로 시야를 덮었다.


……


그리고 눈에서 떴을 때, 녀석은 사라져 있었다.

내 일상에 멋대로 끼어들었다가, 갑자기 사라지다니. 

왠지 다음에 또 나타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에이. 아니겠지. 만약에 그렇다면, 어떻게 사라지는지 눈 한번 안 깜빡이고 지켜볼 테다.


* * *


오늘도 똑같은 일상이다.

잠에서 깨고선, 하늘만 멍하니 쳐다본다. 시선을 돌리면 황금빛 들판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몸을 떠는 게 보인다. 저 들판은 언제나 노란색이다. 내가 저 들판을 처음본 그 순간부터. 쭉.


저 들판의 곳곳엔 허수아비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더기 같은 헤진 옷을 걸쳐 입은 그들은,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할 뿐이다. 

그에 비해 난 자유롭다. 난 걸을 수 있고, 마음만 먹는다면 이 언덕을 벗어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소리도 지를 수 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후우. 상쾌하다. 소리지르는 것도 오랜만이군. 그러고보니 마지막으로 말을 한 게 언제지? 그러니까 언어를 사용한게.


“…….”


모르겠군.

그런 적이 없나보다.

뭐. 상관 없―


뒤를 돌아본 나는 선채로 얼어붙었다.

내 시선과 놈의 시선이 교차한다. 18살은 돼 보이는 듯한 여자가 언덕을 기어 오르고 있었다.


“…….”


입까지 굳어버려 아무 말도 못하는 가운데,

놈이 언덕 꼭대기에 달하더니 나만의 고목에 손을 짚고 섰다.


“이야. 경치 좋네! 오랜만이다, 여기.”

“…누, 누구?”


간신히 내뱉은 두 글자에 놈이 씨익 웃었다.


“나야, 나! 소야!!”


소야?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다. 

뭔가 알 것 같아서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끝끝내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게 누구지?”


아. 괴롭다. 조금만 더 가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방이 꽉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다

나는 약간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놈을 마주보았다. 얼굴이…얼굴이 익숙하다.

그래. 맞다. 과거에 난 놈과 한 번 본적이 있었다! 확실하다.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넌. 여기 왔었지?”


내 말에 놈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릴 때 왔었잖아! 기억 못한다니, 실망인걸.”

“…모르겠다.”


아무리 기억을 뒤집어봐도 생각나지 않자 미칠 지경이다.

놈은 그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내 손을 맞잡았다. 그와 동시에 저 검은 생머리가 내 얼굴을 스쳐지나가며 향기로운 향기가 코끝에 감겼다.


“…향기로워.”


그래. 말로 표현할 정도의 향기로움이었다.

놈은 하얀 치아가 드러나게 웃으며 내 팔에 머리를 기댔다.


“히히. 비싼 샴푸 쓰니까.”


샴푸라니.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전에 나한테 이상한 소리를 하던 꼬맹이도 하나 있었지.


“…!”


제기랄. 드디어 기억해냈다.

소야. 그래. 신소야. 너구나.


“왜? 이제 알겠어? 흐흐.”


나는 소리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옛날처럼 이빨이 없진 않지만. 또, 머리가 부시시하지도 않지만.

저 오똑하고 쳐진 눈매만큼은 확실히 소야, 너다.


“우리, 같이 가지 않을래?”


소야가 보라빛 하늘을 등지고 서서 말했다.


“…어딜 말하는 거지?”

“저기!!”


몸을 들판을 향해 돌린 소야는 검지로 지고 있는 태양을 가리켰다.

아니다. 태양이 아니다. 정확히는 그 태양이 몸을 담고 있는 지평선이었다.


“저기 너머. 여기선 못 보는 곳까지 가자고!”

“…싫어.”


싫어. 내 대답은 ‘싫어’다.


“왜?”


왜. 그렇게 물을 줄 알았다. 하지만 대단찮은 대답 밖에 없었다.

귀찮아서. 

안 궁금해서.

무서워서.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이것들이 아니었다.


“그냥.”


그냥이었다. 위의 것처럼 말하면 뭔가 쪽팔리지 않는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히잉. 오랜만에 찾아왔는데, 아쉽네.”


오랜만에 찾아오다니. 여기가 놀이터라도 되냔 말인가.

생각난 김에 물었다.


“넌 어디서 왔지?”


참으로 근본적인 질문이 아닐 수가 없다. 

그리고 내게 돌아온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현실에서.”

“…뭐?”

“나야 현실 세계에서 왔지. 여기는 꿈 속이잖아?”

“…….”


그 어처구니 없는 말에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것도 대답이라고 한 거냐?


“굉장히 기분 나쁜 농담이었어.”

“…응?”


재미도 없다. 여기가 꿈 속이라니. 꿈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몰랐던 거야? 여긴 현실이 아니야, 아저씨. 여긴 내 꿈―”

“닥쳐! 네가 뭔데 현실을 부정하지? 게다가 아저씨라니! 난 아저씨가 아니다! 나는! 난…!”


난 내 이름을 말할 수 없었다.

내 이름 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름. 

그놈의 이름이 뭐가 대수라고. 제기랄!


내가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자 소야는 당황한 듯이. 그리고 겁먹은 듯이 뒤로 주춤거렸다.


“미, 미안. 그게 아니라…꿈이란 건 내가 잘 때―”

“됐어. 듣고 싶지 않아. 내 눈앞에서 사라져”


난 나무에 기대 눈을 감았다.

고요에 잠겨 잠에 들어야 할 터인데, 마음 속의 분노 때문인지 잠에 들지 못했다.


훌쩍.


소야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어디 한 번 울어봐라. 울고 싶은만큼 울어봐! 난 눈을 뜨지 않을 테니까.

내 마음 속 말이 동한 것일까. 놈은 곧이어 목놓고 소리내 울기 시작했다.


15분 쯤 지났을까.

울음 소리가 멎었다. 난 아직도 잠에 들지 못했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나 때문에 우는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일까? 

아니다. 잘못을 한 건 저쪽이지 내가 아니다. 저놈이 먼저 내 현실을 부정했다. 내가 지금까지 가꾸어왔던 내 일상을 부정했단 말이다!


내가…가꾸어왔던….

제기랄.

내가 언제부터 가꾸어왔다고. 그저 흘러갈 대로 흘러가는 일상이었다. 난 하는 것 없이 그 일상에 휩쓸리기만 했다. 

지루함. 따분함. 심심함.

이 따위의 것들은 모두 나에게서 나온 감정들이었다. 평화로운 일상이라는 명목 하에 이 모든 것들을 방치했던 것이다.


격동하던 생각들이 어느정도 잠잠해지고서야,

나는 눈을 떴다.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검은 하늘과, 으스스한 들판.

그게 전부였다.


* * *


소야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하기야. 애에서 청소년으로 성장해서 왔을 때도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나는 이 언덕 위에서 시간을 보내며 소야를 기다렸다. 잠들기 전엔, 일어났을 때 네가 있어달라고 항상 빌고 잠에 들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소야가 사라진 날. 그때부터 나는 날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지금으로서 25840일이다.

해가 저물며 황혼이 언덕과 들판에 내려 앉았다.

오늘도 나는 소야를 만나길 빌고서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꼬부랑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그 외모나 분위기는 무척이나 달라져 있었지만 나는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소야.”


내 부름에 그녀는 힘겹게 돌아보았다.

쳐진 눈매 주위로 지글지글한 주름이 번져 있었다.


“…….”


소야는 말 없이 내게 손을 건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손을 맞잡았다.

저 하늘 위의 태양빛이 따사로이 우리를 비춘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세상의 모든것.

그 너머를 향해, 나와 소야는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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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 2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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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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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운

    안녕하세요, 구포대교님. 한 사람의 꿈속에서 존재의 이유도 모른 채 무기한 기다리는 삶이라니 무척 쓸쓸하네요. ’소야’가 ‘나’를 찾아줄 때만 의미가 만들어지고 기억이 생성되는 것 같기도 했고요.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같은 말을 하는 게임 속 NPC나 창고에 처박힌 어린 시절의 장난감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은 아마도 ‘나’의 세계와 공명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23-10-07 21:00:17
    김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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