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언어(퇴고)
- 작성자 고래
- 작성일 202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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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는 앞에 보이는 광경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언제나처럼 보이는 시장 풍경에선 언제나처럼 보이는 진상이 보였다.
"아니 이거 할인좀 해달라고!!"
남자는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나를 생각하지만, 원래 그랬다.
남자의 인생은 원래, 진상으로 넘쳐났다. 남자는 평소와 같이 참으려 했다. 평소와 같이 무릎을 꿇고 사과하려 했다. 친구들이 문득 생각났다. 남자는 속이 불타는 것을 느꼈다.
"이 씨발."
한국어를 이것 밖에 모르던 남자였다. 속이 시원해짐을 느꼈으나, 대가가 있는 시원함인 점 또한 남자는 알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뺨을 때렸다. 남자의 목이 돌아갔다. 꺾이는 듯한 감각 또한 느낀 남자의 눈에선 눈물이 찔끔 흘렀다. 남자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여러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그 중 하나의 기억에, 몰입되기 시작한다.
1
남자는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고 볼펜을 꺼냈다. 눈앞에 보이는 불국사를 보며,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국인을 보며,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볼펜을 손에 쥐었다. 첫 문장을 썼는데,
【存在着一种超越"美"的孤独。(미를 뛰어넘는 고독함이 존재한다.)】
중국어로 쓰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했다. 참혹한 일을 당한 어머니였지만, 남자는 언제나 어머니를 원망했다. 모든 일의 시작이 어머니였으니 말이다.
독경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소리였다. 남자는 옛적에 썼던 일기를 봤다.
2
남자의 어머니는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집안 대대로 우육면을 팔았던 집안의 장녀였던 어머니는, 언제나 기름진 냄새가 가득한 가게에서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우육면 가게는 유명하지 않았고, 팔리지 않았고, 집안의 돈은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의 아버지는 도박을 했다. 장남인 오빠는 집에서 뒹굴뒹굴 구르며 밥을 기다렸고, 어머니의 어머니는 언제나, 다크써클이 자욱한 상태로 우육면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정말 어쩔 수 없었다고, 훗날 남자에게 진술했다.
"그럼에도 행복했었지, 근데 있잖아? 나의 아빠가 결국 빚을 10억이나 만들었어."
어머니는 울었다. 이유는 둘째치고, 해결해야 했다. 그때 한국인 사업가가 나타났다.
"딱 한번만 관계를 가지면.... 갚아준뎄어..."
한국인 사업가가 남자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한국인 사업가는 사라졌다. 남자와, 어머니만 남은 중국에서 남자는 아빠 없는 놈이었으며, 중국인도 아니고 한국인이었다. 친구들은 남자를 끼워주지 않았고, 친구들은 남자를 때렸다.
남자는 몸에 작렬하던 각목 소리와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기억했다.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하던 하루를 기억했다. 남자는 그런 하루에 갇혀버렸다. 언제나 맞고, 언제나 쓰러져 있는 하루, 남자는 구원을 얻고 싶었다.
이 하루라는 감옥에서 나가고 싶었다.
나가진 못했지만, 나간 기분을 주는 장소가 있었다. 남자는 언젠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 보았던 절의 모양새를 기억했다. 멀리서도 보이는 부처의 장엄함과 독경 소리, 남자는 그것을 들으며, 한 가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부처에게 위탁하면 나 자신은 괜찮아진다'
그렇게 남자는 절을 다니게 됐다. 이때 남자가 착각한 것은, 믿음이란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남자는 여전히 맞았다.
부처를 불러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반야심경에는 분명, 고통은 없는 것이라 했거늘, 남자는 부처를 원망했다.
"엄마가 없었으면 이 세상에 없었을테니깐."
남자는 어머니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우육면을 만들고 있었다. 육수의 냄새가 가게를 뒤덮었고, 가게 안의 썩은 곰팡이 냄새는 거기에 반응해 이상한, 썩은 내를 풍기는 가게가 되었다.
남자는 칼을 주머니에 넣어놨다. 언제든 꺼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는 무언갈 봤다. 그 무언가는 어머니의 주름이었고, 헤진 피부였으며, 다크써클이었다. 남자는 눈물을 흘렸다.
남자는 소리를 질렀다.
원망을 토해낼 곳이 없었던 것이다. 친구들 무리 가운데 한 친구는 정치인이었고, 부처는 실체가 없었다. 그저 소리를 질렀고,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 후는 버팀의 연속이었다.
3
남자는 일기를 덮었다. 불국사 구경하러 와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청승맞게. 남자는 불국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부처의 상과 독경 소리는 언제나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부처는 원망의 대상이었고, 그 느낌을 받기 위해 온 것도 아니었다. 남자는 한국인이 인사하는 장면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1시간쯤 걸었을까, 남자에게 그 누구도, 인사하지 않았다.
남자는 또한 울었다.
남자는 이때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뒤틀리는 느낌, 꿈인 듯한 느낌, 뺨에 찰싹- 맞는 감각이 돌아왔다.
남자는 여전히 여자에게 맞고 있다.
독경소리가 들려온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남자는 깨달았다. 여태껏 버티기만 했다는 것을. 문득, 쇠비릿내가 느껴졌는데 주머니를 뒤져보니 어머니를 죽이려 했던 칼자루가 들어 있었다.
칼자루를 들었다.
여자에게 꽂았다.
눈을 감았다.
"관자재보살 행심 반야바라밀다 시조견..."
반야심경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자세히 들으니 어린 동자승이 독경을 외는 듯했다.
4
남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독경소리는 여전히 들렸다. 일어나니 남자는 이곳이, 예전에 우리 도시에 있던 그 절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남자는 일어나려 한다. 그런데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일어날 수 없는 남자였다.
"이곳은 피안이란다."
남자는 어렸을 적 들었던, 주지스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너는 어리석음을 끊어내야 하지. 어리석은 너를 보거라."
나무의 향긋한 냄새가 남자의 코를 스쳤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이 아닌 듯했다.
"참고, 또 참아서 그렇게 터진 것 아니더냐? 네가 부처를 원망했지만, 부처는 원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한다 하지만 부처는 실체가 없다. 그리고 넌 세속의 사람이지. 세속을 끊거라. 너의 주머니에 있는 그 칼로."
남자는 눈을 떴다. 남자는 몸이 없음을 느꼈다. 그저 실체 없이 떠다님을 느꼈다. 부처에게 귀의할 수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남자가 보는 것은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였고,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친구의 아이였다. 친구는 한국 여자와 결혼한 모양이었다. 친구의 아이를 남자는 빤히 봤다. 꽃처럼 어여쁜 모양새였지만, 각목으로 분질러진다면 더 좋을 듯했다. 남자는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 생각했다.
그러자 남자는 몸으로 돌아왔다. 몸의 근육과, 뼈가 이질적이었다. 남자는 달력을 보았는데, 3개월이 흘렀음을 깨달았고 이곳이 감옥임을 깨달았다. 남자는 비웃었다.
남자는 밥을 배식하는 교도관을 봤다. 교도관의 눈을 빤히 봤다. 교도관의 눈이 멍해짐을 느꼈다. 남자는 영혼을 내보냈다. 순간 세상의 외곽으로 빠졌고, 세상의 이방인이 된 남자는, 이방인이 되지 않기 위해 교도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뼈와 근육은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남자는 그 길로 교도소장에게 갔다.
"병가 내겠습니다."
라 말했는데, 말했다는 감각만이 남고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방인은 세상에 말을 남길 수 없음을 느낀 남자는 그저, 서울대병원 산부인과를 향했다.
서울대병원으로 가는 길은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를 기다리지 않았는데, 버스가 와있음을 느낀 남자는 웃었다. 그러나 들어갔을 때, 표정이 썩어 들어갔는데, 안에는 어머니가 있었고, 뒤에는 주지스님이 동자승과 함께 있었다.
식은땀을 흘렸다. 주지스님은 남자의 주머니를 손짓했다.
남자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주름이 보였다. 자글자글했다. 어머니의 다크써클이 보였다. 슬픔이 느껴졌다. 추행당한 사람의 눈빛이 느껴졌다.
문득 손이 나갔다.
어머니의 가슴팍을 찔렀다.
5
서울대병원 산부인과에서 아이의 눈이 남자를 봤다. 꽃 같은 눈이었다. 남자는 칼을 들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뺨이 얼얼했다. 독경 소리가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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