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네버랜드
- 작성자 윤하
- 작성일 2026-05-02
- 좋아요 1
- 댓글수 0
- 조회수 119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지겹도록 자주 보이는 동화책의 끝맺음. 어린시절의 시연은 이 말을 믿었다. 어느 동화책들의 내용처럼 한번의 힘듦이 지나가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거라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믿음이었다. 하지만 이 순수한 믿음을 지켜주는 것은 쉽지 않은 세상이었다. 행복이 찾아오면 언젠가 불행도 찾아오는 법. 행복이 크고 작을지 알 수는 없었고, 불행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이런 냉정한 현실을 직접 경험을 하며 이미 성장해버린, 그리고 아직도 더 성장해 나가야만 하는 시연의 이야기이다.
오늘은 나의 18번째 생일이었다. 평소처럼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부모님에게 축하를 받은 뒤 집을 나섰다.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은 뒤 케이팝을 듣던 평소와는 다르게 오르골을 들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시간은 빠르구나.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 같았던 내 미래, 그리고 이 현재는 왜 이렇게 막막하기만 할까? 조금은 겁이 많아서 그런 걸까.. 이미 내 꿈은 다 사라져버린지 오래인 것 같네. 이 오르골도 오늘을 마지막으로 듣지 말까? 계속 과거 생각이 나는 것 같으니까... '
생일마다 계속 듣던 오르골은 작곡가인 엄마가 나를 위해 만들어 주신, 세상에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이 우리 가족밖에 없었던 자작곡이었고, 태엽을 감을 수 있는 회전목마에 있던 노래였다. 10살 생일 때 받은 이 오르골은 고장난지 오래였지만, 파일이 남아있어서 계속 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비슷한 생각을 계속해 나가며, 학교에 도착했다. 내 생일인걸 알고있는 친구들이 다가와서 선물을 주고 축하를 해줬다. 그 순간만큼은 행복이 치솟았다. 누군가에게 축하를 받는건 당연한 일은 아닐테니까, 나를 생각해줘서 축하해주는 것을 너무 고마웠다. 그러고는 나도 꼭 잊지 않고 친구들의 생일을 챙겨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축하를 잔뜩 받고 나서 시작한 하루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금방 지나가버렸다. 잠을 자기전 책상에 있었던 오르골과 학원을 갔다오면서 샀었던 상자를 가져왔다.
더 이상 태엽을 감고싶어도 감을 수 없는 오르골을 상자에 넣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책상에서 보이는 어린시절의 자신의 것은 다 상자에 넣었다. 그 안에는 장난감도, 처음으로 나에게 흉터를 나게 한것도, 그리고 더 이상 흉터가 자라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해준 것들도 있었다.
겁이 많던, 한마디로 겁쟁이였던 나는 아플 바엔 잊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조금은 두려워했다. 그리고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의 것들을 생각하면 조금은 아파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겁쟁이마냥 잊어버리려고 모든게 들어있는 상자를 벽장 속에 넣었다. 그리고 급히 불을 끈 뒤 침대에 누웠다.
오늘따라 어릴 때 붙여 놓은 야광스티커가 밝아보이지 않고, 먼지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습관처럼 피하려고 했던 그 순간이었다. 난 더 숨고 싶거나 감추고 싶지 않았다. 겁 많던 아이 뒤로 사라져버린 꿈 따위는 잊어버리고, 이 밤에 눈을 감지 않고 새로이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에 가득차며 잠에 들었다
"우아, 이게 뭐야?"
10번째 생일을 맞이한 시연은 이게 뭔지 몰라도 행복하다는 듯 활짝 웃고 있었다.
"이건 오르골이라고 하는거야. 무엇보다 시연이가 자주 회전목마를 타고 싶어했잖아. 자주 탈 수는 없겠지만, 그냥 보면서 계속 생각이라도 하라고. 그리고 태엽을 감으면 회전목마가 돌아가면서, 노래가 나오는데 노래는 엄마가 만든거야."
"엄마 사랑해!! 진짜 너무 고마워.."
가족들과 행복한 하루를 보낸 시연은 평소에 쓰지도 않던 일기를 갑자기 끄적끄적 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낮에 아빠에게 받은 선물 중 하나인 야광스티커를 벽에 붙이고 안방으로 가 부모님 사이에서 잠을 잤다.
@@@@년 @월 @일 날씨: 해가 쨍쨍
어제 잠든 시간: 10시 / 오늘 일어난 시간: 9시
오늘은 나의 10번째 생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부엌으로 가니 선물더미가 가득 있었고, 식탁에는 엄마가 해준 맛있는 토스트가 있었다. 내가 나온걸 발견한 아빠는 생일 축하하다며 나를 안아주었고, 엄마는 빨리 밥을 먹으라며 나를 불렀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선물을 까보니 그 안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특히 오르골이라는 것이 맘에 들었다. 오늘은 너무나도 행복한 하루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책에서 마지막에서 주인공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했는데, 나도 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있는것 같다. 그럼 오늘의 일기 끝
이른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떤 꿈을 꾼 것 같았는데, 무척이나 선명했고 그리워하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꿈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오랜만에 시험 끝난 주의 주말이라 푹 자려고 다짐했었지만, 이미 잠이 다 깨버려서 방이나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찬물로 세수를 한 뒤, 노래를 틀고, 커튼을 열어 잠시 바깥 풍경을 구경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하고 폰을 보니 아직 십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방에 있는 책장에서 모든 공책을 꺼내보았다. 공부와 관련된 것들은 따로 보관을 하고 일기장은 어제 정리하던 상자에 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내 찰나의 호기심을 막을 수는 없었고 일기장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맞춤법이 다 파괴되고 별 내용도 없고 완전 엉망진창이서 한참을 웃었다. 그러나 계속 읽다보니, 마치 시계 위를 달리는 것 같았고 영화의 한 장면을 하나 둘 넘기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현재와 가까워지게 되었고, 여태까지 쓴 모든 것을 다 읽었다.
어린 나의 네버랜드, 즉 꿈의 세계는 흔한 동화책의 엔딩처럼 영원한 행복이었다. 하지만 더이상 나의 네버랜드는 없었다. 누가 나에게 뭐라고 한들 이미 내 네버랜드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리고 어린 나의 시절을 돌아보는 건 이번을 마지막으로 할 것만 같았다. 아무리 긴 밤을 지나도 후회 따위는 없을 수 있을것만 같은, 쓸데없는 자신감이었다. 가장 최근에 다 쓴 일기장을 하나 꺼내 뒤에다가 한 줄을 추가했다. 멈췄던 일기 속을 다시 잠깐 이어지게 한것이다.
'절대 돌아오지 않을거야. 나의 과거 시절로'
굳은 다짐이었다. 그리고 전에 스쳐지나갔던 생각이 아예 뇌리에 박혔다. 현재의 나를 더이상 숨기고 싶거나 감추고 싶지 않았기에, 과거를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은 조금이나마 옳은 생각이라 들었다. 계속 과거에 옭아메이면서 현실을 잊을수는 없었기에. 두려웠던 나의 어제들은 이미 지나간 일이었고, 내 삶을 동화로 나타내면 별빛처럼 아름답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래도 언젠가 한번쯤은 이 다짐이 깨지지 않을까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며 남은 할 일을 한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십대의 끝, 그리고 이십대의 시작이 다가오는 밤이었다. 친구와 얘기를 하며, 적당히 시간을 떼우고 있었다. 그러다 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나는 폰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한 말을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어이가 없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라니... 그런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내 네버랜드가 없다는 걸 확실히 깨달은 뒤부터 뻔한 행복을 바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멈추지 않았다. 아파도 자라고 싶었기에, 조금은 외롭겠지만 어른이 되어가려고 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네버랜드 생각이라니... 좀 추억이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내 삶에 그닥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들 뿐이었다.
인생에서 나쁜길로 가는게 아닌 이상 틀린, 잘못된 선택은 없다. 그러니 내가 하려는 선택은 한번도 틀린적이 없다. 언제나 무언가를 잃으면 얻는법이다. 지금 나는 이 낡아버리고 구석진 동네에서 열차를 타고 나갈것이다. 20년동안 살아온 나의 추억이 가득가득한 곳. 더이상 아이들이 없어 비어버린 놀이터, 나의 모래성 그 외에 추억이 담긴 모든 곳들을 나는 이제 떠나려고 한다. 이제 정말 오늘의 긴밤을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의 추억을 잃어버리는 대신, 나의 새로운 미래는 얻을 수 있다. 익숙하지 않고 낯선 곳에서 다시 써내려가는 나의 이야기를 얻을 수 있는것이다.
근데 왜 이렇게 슬픈것일까? 결국 내가 원하는대로 끝이 났는데, 왜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은 계속 흘러내리는 것일까? 이미 내 마음은 다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던 것일까? 조금은 위험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과거가 있어야 현재가 있는거니까. 하지만 이생각은 얼마가지 않았다. 내 친구가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해버렸고, 나는 변명할 거리를 생각하느라 또 다른 생각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늦은 새벽 집에 가는 길 놀이터에 잠시 가보았다. 그리고 네임펜으로 미끄럼틀 안쪽에 적기 시작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너는 내 과거를 기억해줘. 나는 내 미래를 향해 살아갈테니. 안녕, 네버랜드'
사물에게 부탁을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나만의 위로 방식이었고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렇게 나의 고향에서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추천 콘텐츠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