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 작성자 목루일
- 작성일 2026-05-05
- 좋아요 1
- 댓글수 0
- 조회수 84
"너는 우리 학교 어떻게 생각해?”
나는 코팅된 나무 식탁을 손으로 꾹꾹 눌러 문지르고 있다. 주황 전등 빛이 책상에 머무르는 모양을 따라. 그리고 그는 내 앞에 앉아 있다. 우리 사이에는 귀여운 케이크 몇 점과, 커피 두 잔이 놓여 있다. 그는, 작은 몸짓으로 케이크를 들어올리며 내 앞에 놓는다. 그리고 포크와 냅킨 몇 장도. 이번에는 포크를 응시하며 거기 남은 손자국을 문질러 지우고 있다.
“갑자기 왜.”
여전히 포크를 잡고, 손잡이 부분이 전등 빛을 따라 주황이 되도록, 또는 은색이 되도록 기울였다 세웠다 한다.
“그냥.”
말하면서, 딱히 그냥 묻는 사람 같지는 않겠구나 싶다. 포크를 맨 식탁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눈가에 힘을 주고 광대 쪽으로 얼굴 피부를 끌어당긴다. 그리고 그의 미간을 바라보며, 되묻는다.
“그러지 말고, 어떻게 생각하는데. 너도 우리 학교 다니니까 할 말은 있을 것 아니야.”
그가 시선을 조금 올려 나와 눈을 맞춘다. 막상 그의 눈을 보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다. 눈에 힘을 풀고, 살짝 뒤로 기대 앉는다. 그럼에도 등이 어색하게 굽혀져 등받이에 기대어지자 한 곳에 힘이 쏠려 아프다. 다시 허리를 세운다.
“뭘 이제와서. 우리가 신입생도 아니고. 우리 학교 좋지, 뭐. 좋은 학교잖아.”
양손으로 의자를 받치고 그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기울인다. 이번에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모르겠다. 눈을 내리깔고, 다시 포크를 응시한다. 입술을 입안에 넣었다가 빼었다가 던지듯 내뱉는다.
“역시 어디가서 밀리는 학교는 아니지?”
“그런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위권 아니야? 커리큘럼도 도전적이고, 교수진도 괜찮고. 뭐, 여러 의미에서. 그건 왜? 어디 이력서 내? 이런 시기에도 모집을 하나?”
“아니, 그런 건 아닌데.”
포크를 들어올려 케이크에 집중하는 척을 해본다. 케이크가 눈앞에 있으니 언제 먹어도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다. 아마도. 포크를 케이크에 찔러 넣는다. 케이크가 예쁘게 잘리지 않는다. 포크는 케이크를 누르며 들어가고, 찢듯이 한 조각을 떼어낸다. 끼익 소리와 함께 포크가 접시 바닥에 긁히는 감각이 손을 타고 피부에 전해진다. 순간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
영화관에서도, 말하고 만다.
“있잖아, 저 사람 약간 우리 교수님 닮지 않았어?”
“교수님 누구?”
“이번 학기 전공 교수님.”
“별로 안 닮았는데. 여기서 웬 교수님 타령이야.”
음식점에서도, 말할 기회를 찾는다.
“이거 학식에 비슷한 메뉴 나왔던 거 기억나? 이런 것도 나오는구나 해서 신기했는데.”
“그랬나? 난 기억 안 나는데. 잘도 기억하고 있네.”
***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춥다. 겨울 밤하늘은 남색도 검은색도 아닌 회색이며, 반짝이는 가로등도 주변의 빛에 눌려 얌전하다. 차가워 보이는 바닥을 조금 축축해진 털 부츠가 규칙적으로 울린다. 입깁을 뱉고, 입김을 뚫고 걸어나가고, 다시 입김을 뱉으며, 주머니 속 손은 갈 곳을 찾는다.
그와 나란히 걸으며 어스름한 밤에게 가지를 훤히 드러내 보인 나무들을 올려다본다.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면 풍성해 보이겠지만, 무겁겠지. 옷을 벗고 추운 공기를 마시면, 앙상해 보이겠지. 그렇다고 몸을 웅크릴 수도 없는 노릇일 거다. 그런 관점에서는, 역시 나무보다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나은 걸지도 모른다. 주머니 안감을 손톱으로 그러쥐며 혀로 입술을 적시고는, 입을 뗀다.
“아직 집까지 조금 남았고, 잠깐 앉았다 가지 않을래? 저쪽에 벤치 있는데”
“차가울 것 같은데 괜찮겠어?”
“응. 운치 있고 좋잖아.”
운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둠 없는 밤에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은, 흔히들 희망도 절망도 아무것도 아님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도 그 사실을 아주 모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그대로 내쉰다.
나란히 벤치 쪽으로 걸어간다. 그가 조금 앞질러 가 벤치 위의 먼지를 털어준다. 그리고는 벤치 위에 몸을 뻣뻣하게 세워 앉고, 천천히 몸에 힘을 푼다. 추운 듯 몸을 부르르 떨고, 헤헤, 하고 웃는다. 나도 마주 웃는다. 보폭을 크게 해 그의 옆에 걸터앉았는데, 나무 재질임에도 벤치에서 천천히 올라오는 냉기가 온몸을 타고 돈다. 나도 몸을 부르르 떨고는, 몸을 웅크려 웃는다.
“춥네.”
“춥지?”
굳이 오늘 불러내어, 굳이 조금 영화 시작 시간보다 이르게 만났다. 굳이 여러번이나 어색한 화두를 던졌다. 결국 외투 안감 실을 몇 개 뽑아내며, 같은 짓을 반복한다.
“우리 교정도 추운데. 작년 겨울에, 엄청 추웠잖아. 너 나오는 거 기다리는데, 얼어죽을 뻔했어.”
“그랬지. 근데 뭐, 학교 아니어도 어디든 춥잖아. 매년 더 추워지는 것 같고. 기다리게 한 건 미안하지만. 오늘 학교 얘기 왜 이렇게 많이 해? 개강이 다가와서 불안해?”
그러면서 베시시 웃는다. 나는 부츠 끝으로 바닥에 원을 그린다. 발이 빙빙 도니, 다리는 저려오고, 원은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그래도 발을 돌린다.
“시간표는 짰어?”
“짜긴 했는데, 튕길 때 리스크를 너무 크게 잡은 것 같아서. 플랜 B도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 너 아직 못 짰어? 아직 좀 남았으니까 그렇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지 않아?”
그는 팔을 뻗어 내 어깨를 당겨 감싼다. 나는 그래도 잠시 발밑을 보다가, 두 발을 땅에 붙인다. 그의 팔을 떼어내고, 그를 향해 돌아앉는다.
“나 휴학해.”
***
납작한 티백을 주황색 머그컵에 담는다. 전기 주전자에서 띠링 소리가 난다. 따뜻한 주전자 손잡이를 잡고 물을 따른다. 물에서 김이 올라오고, 물은 회전하듯 무늬를 그리며 컵 벽에 부딪힌다. 물이 손에 튀자 가볍게 맞은 듯한 통증에 조심스럽게 물을 따르기 시작한다. 티백이 동동 물 위로 떠오른다.
컵을 손바닥으로 감싸려고 했지만 너무 뜨거워서, 손잡이를 잡고 바닥을 손가락으로 받친다. 컵을 들고 발소리가 나지 않게 걸어, 침대 앞에 앉아 등을 기댄다. 컵을 바닥에 내려놓고, 양 팔로 다리를 감싸 가슴을 누른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진해진 찻물을 바라보며 카페인을 떠올린다. 그라면 아마 마시지 않았을 거다. 그, 라는 단어와 함께 그가 물었던 것을 떠올린다.
“나 휴학해.”
“진짜? 언제부터 할 건데?”
“이미 신청했어. 다음 학기부터 안 나가.”
그리고 그는 시선을 돌렸다. 입이 살짝 벌어져 있었고, 내가 그의 손을 잡았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당황했겠지, 하고 생각했다. 놀랍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놀랍다. 나는 아직도 당황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아직까지도, 휴학이라는 말이 멀고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나의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비해, 그에게는 타인의 일에 일상적인 관념이나 인상을 적용할 권리가 있다.
“언제 신청했는데? 상의라도 하지.”
“상의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까. 의외로 신청하기 쉽더라고. 설마 버튼 하나에 휴학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지금 생각해도 무책임하고 한심스럽다. 그러나 그는 다시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와 나의 눈높이는 같았다. 그가 나를 올려다보게 할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을 보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 눈을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왜? 글 쓰게?”
목소리에 억양이나 높낮이가 없었다.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눈썹이 여덟 팔 자를 그리며 올라가는 것을 관찰함과 함께, 내가 그의 눈을 피하고 있음을 자각했다. 한 손으로 벤치를 짚고, 다른 손으로 철제 장식의 모서리를 세고 있었다.
뜨거움에서 따뜻함으로 넘어가는 머그컵을 양손으로 쥐고, 표면이 매끄러워서 놓쳐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차를 한 입 홀짝인다. 열기가 목을 타고 자국을 남기는 것만 느껴지고, 차 맛은 잘 모르겠다.
“글쎄. 모르겠어.”
“모르겠다는 게 무슨 말이야.”
그는 목에서 나온 웃음소리를 내었다. 나도 목에서 나온 웃음으로 답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냥, 쉬고 싶어서.”
“쉬고 싶기는 맨날 쉬고 싶었잖아. 때려칠 거라는 말도 입에 달고 다녔고. 갑자기 왜?”
“설명하기는 좀 힘든데. 그냥 지금 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 뭐랄까, 내가 지금 하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전공이 잘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너무 앞뒤 안 보고 달리는 것 같아서.”
“그랬던 게 하루이틀인가.”
말이 끝날 때의 어조는 평서문. 그리고는 의문문의 박자로 손가락을 벤치에 두드렸다. 탁탁탁탁 하는 소리가 서둘러 공기를 달렸다. 그가 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나에게서는 눈을 돌렸다. 내 입에서 철 맛이 났다.
“그냥, 그런 거 있잖아. 계기 같은 거. 설명하기 힘든데. 어떤 사람을 봤는데, 그 사람 사는 게 잘 안 풀리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해서라도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 나는, 군대도 안 가도 되고, 집안도 위태롭지는 않고, 언제든지 복학할 수 있고. 비겁한 이야기지만.”
침을 여러번 삼켰다. 그리고 잠시 숨을 참았다. 윗니와 아랫니가 부딪히는 소리가 관자놀이에서 났다.
며칠 전에 길에서 프리지아를 파는 할머니를 보았는데, 그 할머니와 내 책장이 겹쳐 보였다. 이 세상에, 책으로 가득한 책장도 있고, 글 속의 고난도 있고, 꽃 파는 할머니도 있다는 사실이 부당해 보였다. 공정한 세상이 와주지는 않을까, 하고 바랬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깨달은 것이, 세상이 공정해지면 나도 싫은 일만 하면서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대로 공정하게, 한 인간으로서 죽어야 한다는 것.
그런 생각이 들자, 무서워졌다. 그래서 잘 살고 싶어졌다. 많이 가진 만큼, 더 잘 살고 싶고, 죽기 전에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크게 한 입 들이켰다가, 너무 뜨거워서 기침이 난다. 컵을 내려놓고, 얼굴을 침대에 대고 열기를 식힌다.
“고작 그런 이유로?”
“아니,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아. 있잖아, 그냥 고민하는 거. 언제나처럼 고민만 했는데, 갑자기 어떻게 휴학하는 건지 궁금해져서 찾아봤거든. 그래서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의외로 절차가 너무 쉬워서...”
침대에 누워서 천장 얼룩을 세고 있었다. 할머니 생각도 나고, 옆에 던져놓은 책이 손에 잡혔다. 평소처럼 얼룩을 다 세면, 다 때려쳐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떻게 때려치는지 알면 더 자세하게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져서, 절차를 찾아봤다. 아이패드를 켜고 홈페이지에서 휴학 버튼에 마우스를 올려놨다. 그러고 있으면 마치 진짜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해방감이 들었다. 그러다가 충동적으로, 손가락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래서 뭐 할 건데? 글 쓰고 싶다고 그랬잖아. 작가 될 거야?”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닌데. 글도 쓰긴 써야지. 근데, 글도 쓰고 싶지만, 사실은, 뭐라고 할까, 쉬고 싶어서...”
사실은, 뭐라고 할까, 아무것도 안 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어릴 때부터 입시니 뭐니 열심히 살았으니까. 근데 막상 내가 겪은 세상은 학교랑 학원이랑 집 밖에 없잖아. 그래서, 특별히 무언가에 얽메이지 않고,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어. 그렇게 하면, 글도 쓸 수 있게 될 것 같고, 당장은 답이 없어도 좋은 경험일 것 같아서. 젊고, 지금 하는 경험은 또 귀하니까. 방향 없이 달리는 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후회할 것 같은데, 너.”
“그래도, 그런 거 있잖아. 언제든 복학할 수 있고. 군대도 안 가고. 안전한 환경이니까.”
살면서 꼭 후회를 해야 한다면, 이런 식으로 젊고 안전할 때 하고 싶어서. 후회해본 적도 거의 없으니까.
“그런가. 그럴지도. 그래도 글 같은 거라도 써.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잖아.”
“그렇지, 아무래도. 그럼 같이 아르바이트라도 할래? 생활비 정도는 벌면 좋을 것 같은데.”
“아니, 나는 공부에 집중하고 싶어서.”
그리고 그는 나를 집에 바래다주었다. 함께 겨울 밤거리에서 회색 공기를 뚫고 걸었다. 공기는 막이 되어 귓구멍에 스미고, 코는 얼어서 무감각했다. 그는 앞을 바라보며 걷고, 나는 하늘을 보며 걸었다. 이윽고, 내 집 건물 문이 열리고,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그는 낮은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나는 검은색 유리문 반대편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그의 뒷모습이 어른어른 멀어졌다. 그가 뒤돌아보았다. 나는 그를 보았고, 유리문 너머로 그도 아마 내 실루엣 정도는 보았을 것이다. 그는 다시 앞으로 걸었다. 그의 뒷모습이 어른어른 멀어졌다.
추천 콘텐츠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