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들에 고무로 된 곰 얼굴
- 작성자 드시코
- 작성일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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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쓴다는 것이든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든 그런 글을 쓰려면 앉아 있어도 내가 거짓말을 쳐 만들어 낸 다른 공간과 사물 사이의 놓인 몸의 감각을 느낄 때는 일어설 수도 있는 것이요 따라서 이렇게 자신이 앉아 있는 의자의 감촉이나 글을 쓰는 지금 창문을 닫아 놓아 너무 덥고 답답하다는 느낌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었는데 이렇게 의자 위 놓여진 다리의 굽혀진 정도나 나의 폐가 부풀어 오르는 숨쉬기마저 그 의식을 하고 있다고 (작위적인 느낌도 있으나) 생각이 들기에 지금은 반드시 무언가를 할 기분이 아니다. 오월 삼일 정오를 육 분 앞두고 방의 불을 끈 채 (누군가는 이것을 한심하다고 은연중에 느낄지도 모르겠으나) 키보드를 두드려보고만 있다. 이야기는 본래 가치있는 것이어야 할 텐데 나의 이야기는 가치가 없다. 늙은 노인이 ‘쓰잘데기 없다’고 말하고, 어린아이가 ‘꿈’이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나는 나의 머릿추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제목을 무어라고 붙일까? 이런 말들로 말미암아 독자들은 이 작자가 어떤 위대한 사람도 아니고 번지르르한 제목과 은유 등으로 자신을 꾸미고만 있구나(마치 반지를 끼거나 샌들에 고무로 된 곰 얼굴을 붙이듯) 생각할 것이다. 이런 추측은 왜 하는가? 그것은 내가 이러한 예상들을 쓰지 않으면 독자가 나를 더욱 어리숙하다고 생각할 것인 까닭인데 (누구도 신경 쓰지 않지만-아니 그러니까, 비난하지 말라.) 소설을 쓴 지 일 년 정도가 되었으므로 문장이 내 머릿속과 직속되어 있지 않고 따로 놀며 한순간마다 작은 먼지로 흩어지는 심상의 간극과 구멍들을 메우는 방법을 잊어 버렸다. 무어라고 쓸까?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아니아니,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 K 혹은 H라던지, 영수라던지 진희라던지 인물들을 추가하면 독자들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남을까? 그것은 번거로운 휴지뭉치가 아닐까? 나는 이런 사회적 시선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 멜랑콜리한 절망에 빠져 있지 않기 때문에 더부룩한 안정감 속에서는 글이 쓰이지 않는다. 그럴 때는 더욱 기름진 사랑을 바랄 뿐이다. (침묵)
앞으로 걷다가 뒤로 걷는다. 저녁에는 유튜브를 보았다.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를 시청한다. 시청한다? 보았다. 뭔 차이야?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이 있지만 나는 그 물건들을 사용하지 않고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며 바디워시의 냄새를 맡았다. 이것이 나의 삶과 닮았다는 문장을 떠올려 보고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 하나씩 비교를 해 보다 이것이 결국 중요한가? 쓰면 그만이다. 생각하고서, 그런데 그것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이렇게 우주는 우주에 이상한 문장을 하나 떠올려 날린다. 내 머릿속에 어떤 형태로-음, 알 수 없겠으나? 뇌에는 한글과컴퓨터가 깔려있지? 않을까? 나는 작게 접은 3M 포스트잇에 오줌 냄새와 같이 이와 같은 문장을 적는다. ‘바디워시는 나의 삶과 닮았다. 또 그것은..’ 이 뒤에 무슨 납득할 만한 것들을 적었어야 했다. 이를테면 그것..
독자들은 위 글에서 어떤 삶의 가치를 발견할 것인가? 그것은 바보짓이다. 권태로운 사람이 아니라면 읽기도 버겁지 않을까?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사람은(무슨 상관인가?-느껴라.) 글이 적힌 무엇을 던져 그것이 내는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만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쓸 사람이 없는다. 그 사람은 완전히 혼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서 움직이고 새로운 것을 떠올리기 버거워지고 숨이 가빠진 나는 바지주머니를 만지작 거린다. (나는 이 글을 쓰며 VR체험처럼, 나의 움직임을 가정한다.) 거실에는 박스가 한두 개 있다. 뉴케어 박스 – 구수한맛으로 서른 개가 들어있다. 뉴케어가 무엇인지 알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은 사람들끼리 많이 하는 이야기이다.
장수풍뎅이 냄새가 가득 퍼진 도시에는 장수풍뎅이가 없으므로 나의 억측인지! 가로수, 자동차에 대한 묘사를 늘어놓았다고 가정해도 독자의 마음에는 심상이 피어오르지 않는다. 주름진 할머니 얼굴이 쳇바퀴 소리와 함께 여름날을 기어간다. 언덕은 높기도 하지. 나는 색깔을 알 수 없을 만큼 어두워진 밤에 바람이 불어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낙엽들의 춤이 내 머릿속에 갇힌 것 같아 퍽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지하철 2호선은 계속 돈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봤다. 이런 정보는 유튜브가 신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되었는데? 유튜브가 그 정보를 옮겨 담은 것이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나는 유튜브를 찬미하고 있지만 눈이 아파 눈을 비볐다. dna가 어서 몸을 실으라고 해서 열차 내로 달렸더니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다만 나도 여인이었지만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힐끔대는 것은 나의 식은땀을 줄줄 흐르게 하는 일이었으며 등이 뜨거워졌고-세 번째 왼쪽 손톱이 길게 자랐다는 것이 느껴져 이내 관두고 이어진 두 번째 열차로 갔다. 자동문이 닫히자 이곳에는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할아버지들은 오줌을 참고 있다. 하늘엔 멸치가 떠올랐다. 어느 할아버지가 나는 힐끗 보았다. 할아버지는 붉은 모자와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위에 얇은 조끼를 걸쳤다. 색깔의 조합을 보니 늙은 숲의 정령 같았다. 그게 뭐야? 나는 그런 걸 본 적이 없지만 원숭이가 나를 내동댕이 쳐 버렸다. 할아버지가 물었다. 물었다고?
“(시선)”
할아버지가 나에게 묻지 않았다. 나는 발뒤꿈치에 달린 우산을 펼치며 지하철이 출발하자 중심을 잡으려고 발목에 힘을 주었다. 집에서 세 시간 정도 누워 있다가 밖으로 나왔을 때 가장 좋은 것은 자-보다시피 갈색 머리 단발의 아름다운 여인을 볼 수 있으며 못생긴 선글라스 가방과 이어폰을 낀 소년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동물원 같이 내게 흥미를 돋우었다. 서로를 관찰하고 (어쩌면 나만 관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를 보고 웃는다. (물론 아무도 웃지 않는다.) 나는 하얀 마시멜로 같은 이어폰을 낀 소년을 보았다. 소년께 편지를 보냈다 마음으로,
애틋한 소년 사이와 나의, 무슨 일 또한 벌어지지 않을 수 있으랴..
라고 말하는 사이에, 시원한 에어컨이 여름에 물을 뿌린다. 입자들이 코에 닿아 나는 어깨가 들썩이고 이것이 작동하게 만든 시스템인 지하철의 기능과 윤택하게 닦여있을 기계판의 복잡함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여 간지러운 두려움을 맛보았다. 그러나 마구 아첨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순간 비가 내려 미끄러졌다. 미끄러진 그대로 바닥이 솟구쳐 올랐고 나를 낳은 두 사람이 지껄이는 소리가 연민스레 나를 짓이긴다 망할. 나는 비를 맞고 먹고 부수어 버렸는데 어느새 내 몸이 기우뚱하며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대기를 미끄러져 가 버렸다.
시위가 한창인 군중들 사이를 헤쳐 가며 나는 그 화살표와 문장들이 무슨 함의인지 몰랐고 알고 싶지 않았다. 다만 불빛들이 그들 얼굴에 음영을 들여 놓았고 누군가 업고 달린 말티즈의 눈망울에는 한 줄의 쓰다 만 시가 서려 있었다. 나는 이 여러 사람들의 냉장고 냄새, 향수 냄새, 옷장 냄새와 손바닥 냄새를 맡으며 떠올렸다. 요새는 글을 읽는 게 예전같지 않아,라고 말했는데, 말을 건넨 상대방은 들은 체도 안 하고 되려는 신발의 발바닥을 몇 번 부딪쳐 긁어냈다, 어떤 먼지라도 붙어 있었을까? 그런 창백한, 망쳐질 대로 망쳐질 오늘의 하루를 보며 나는 내 눈앞의 동물 친구가 웅성대는 공기를 마시며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욕조 타일이 깨졌지만 누구도 치우지 않은 화장실에 가기로 마음을 언제부턴가 먹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날아오르면서 비둘기의 찢어진 날개죽지에서 나는 피의 비린 향이 코를 찔러 머리가 휘청하였고 잠깐 동안 숨을 참았을 때의 어렴풋한 빛깔이 무지개로 피어올랐다. 나는 이제 누구 말도 안 들을 거야. (독자들은 아마 차츰 이것이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라.) 나는 섬광이라는 말은 되도록 쓰지 않기로 하고, 빛, 반짝임 등으로 쓰기로 했다. 이렇게 하는 편이 마치 동화책을 읽을 때처럼 파도가 방파제에 막히지 않고 스며들 수 있는 방법이었다.
가로지르는 가로수에는 선인장이 피지 않아 여간 근심하지 않을 수 없던 동네의 이사장 친구의 사촌 언니는 결국 그곳에 물을 뿌리지 않을 수 없었고 이따금 곧이곧대로 듣지 않거나 맥락을 엮어 듣지 않으면 거미의 거미줄 뿌리는 소리와 다를 바 없는 여러 얼굴들의 소리를 막기 위해 귀를 자를 수 없었지만 그것은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퍼포먼스라고 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변할 만큼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으므로 그녀가 걷고 있던 아스팔트 바닥 위에 피방울이 흩뿌려질 때 공짜 샤워를 한 일개미 몇 마리는 그녀를 애증의 눈빛으로 볼 밖에였다. 그러나 목이 워낙에 짧은지라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구글을 켜지 말라.-그러나.) 그녀를 세 번 보려고 할 때 목이 부러져 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꿈이었으며 일개미 중 가장 힘이 약한 두 번째 일개미는 노래방에서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두 친구, 혹은 적들은 그를 보고는 “이제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자.“ 라고 말하였다.
나는 드라이기 소리를 좋아해. 지하철을 타고 가며, 첫 번째 일개미(가장 눈이 좋지 않아 두꺼운 안경을 낀)가 입을 열었다. 아무 내음도 나지 않고 세 마리를 빼면 텅 빈 지하철은 언제나 그렇듯이 청록빛 조명을 분사하며 적막에 향수를 새겨 넣었다.
모든 것이 광고야.
처음 가본 곳에서는 으레 옛집의 생각이 났다. 왜 그러냐 물으면 나는 닿기만 해도 먼지가 떨어지는 이불을 새하얀 하늘을 향해 있는 힘껏 던져 버릴 거야..
연인을 만나려면 삼십 초 광고를 기다려야 해,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 나는 착각을 시인하며 더욱 그 공상의 바다 쪽으로 한 걸음 재촉하였다. 물이 들어온다. 모래의 감촉이 야릇해. 나를 아래쪽으로 끌어당긴다. 지상에 선 나를 지하수도 흐르지 않는 깊은 곳으로. 삼십 초가 사 초가 되고 이 초가 된다. 내가 직사각의 화면 속에서 눈알을 굴리는 내게 말을 건다. 너는 필요없어. 숨이나 쉬고 있어. 나는 끄덕이고 보는 것은 커다란 눈이다. 내게는 저런 눈이 없다. 나는 직사각, 누군가가 만든 세상과 빛 그리고 텍스트와 광고 속에서 미숙한 배영으로 숨을 쉰다.
그녀가 재즈를 듣는다. 나는 생각했다. 재즈에 대해서 나는 아는 것이 없는데, 그렇다면 이 말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무슨 의도로 내게 성큼, 가까이 다가온 것인가? 푸른 갈대밭은 이 책상 위에 뜬 창문 덮개 너머로 고스란히 머물러 있다. 나의 눈은 저 구름만큼이나 흐리게 보인다. 나는 사라져 가는 비누방울 같고, 또..
그녀가 계속 재즈를 듣는다. 그러나 나의 연인은 여느 소설처럼 모두 안다는 듯한 말을 하지 않았고 그보다 더 미숙했다. 나는 그것이 안쓰러웠고 기대한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으나 그녀의 얼굴이 조명등에 비추어져 무지 아름답게 보였다. 그런 눈은 보고도 보면서 눈을 감을 수 없다는 등 말을 더해 보아도 모두 거짓. 단지 그녀를 소유하고 싶다는 것의 돌림말이다.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는 건 내가 태어나서 새끼 동물에게 창을 던진 적이 없는 까닭이다.
그녀와 난 어제 숨을 쉬었다. 어제 같이 오랫동안 손을 잡을 뻔해서 당시 두 사람을 비추었던 흰 태양빛에 어떤 특별함이라도 있는 걸까 생각 들었지만 오늘 아침 먼지 쌓인 작은 방에서 누구도 깨우지 않는 커다란 적막한 건물 속에서 바라본 태양은 어제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고 나는 무슨 장난을 치나 싶었다 그녀는 조금 더 늙어 있었지만 내가 그녀를 조금 더 사랑했기 때문에 상쇄되어 버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소설을 시작할 때에 ‘무슨 거짓말을 할까’라는 말로 시작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었으나 이제는 모두 잊어 버렸다. 산딸기를 먹을 수 있을까 없을까, 6일 전에 가까운, 길도 없는 산봉우리에 다리를 걸쳐 조금씩 올라갔을 때 나는 주저했다. 태양은 내 머리 위에서 바람을 거스르지 못하는 익룡처럼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산딸기는 탐스러웠지만 나는 그것의 야생성을 두려워했다. 먹으면 죽는 거야? 물었다. 거울 역할을 할 연못도 없어, 손톱만큼도 못한 정도의 크기를 떼어 똑 먹어 보았다. 민들레꽃을 꺾었을 때의 기분이 혀에서 죽은 해파리처럼 늘어졌다.
그녀는 시인이 되고 싶어한다는 마음을 입 밖으로 내지 않으나 늘상 내가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자주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 시인이라는 칭호를 달았고 그녀는 웃었다. 그런데 그녀가 웃을 때마다 이 모든 산등성이에서 벌어지는 일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나는 우리를 스스로 동정하고 연민하지 않을 수 없어 이따금 그녀의 손가락에 접힌 주름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래서 삼일 전에는 한밤중 열린 창문 아래로 그녀가 아닌 다른 이를 찾아 눈으로 쫓았다.
집에 가자, 내가 사흘 전에 그녀께 말했다. 그녀는 두더지굴에 들어가려 애썼다. 나는 명태를 잡으려다가 말았던 참이었다. 왜인지 이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녀의 발바닥은 흙먼지투성이었고 내 손톱에서는 생선의 비린내가 났으나 나는 나의 창자를 뒤집어 까보면 이 정도 비린내는 날 것이라고 여겼으므로 그녀가 아무 말 하지 않기를 바랐으나 그녀는 자신의 발바닥을 손으로 털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잠깐 뒤돌아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흙을 묻혔다. 그녀는 내가 집에 가자고 한 말을 들었을까? 나는 잠깐, 마트에서 진열대에서 언제나 볼 수 있던, 에어컨 냄새와 여름 향기와 카스텔라가 기억이 났으나 그녀가 말을 했다. 난 집이 없어, 내가 말했다. 그런 생각이라면 그럴 거면 내가 집을 할게 들어오렴. 그녀가 산을 굴러 내려갔다. 그러나 중간에 멈추었고 몸을 일으킨 후 내 손을 잡고 우린 같이 산을 내려갔다. 낙엽 소리, 낙엽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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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