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우리는 서로의 안녕이 되었다.
- 작성자 캔디
- 작성일 202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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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100
첫 등교 날 아침이 밝았다. 전날 뒤척이다 3시간밖에 못 잔 덕에 아주 좀이 쑤신다.
드디어 새학기, 새 친구들과 새 담임을 만나는 바로 그날. 오기를 바랐지만 동시에 무엇보다도 피하고자 했던 그날이 내 눈앞에 다가왔다.
끼이익-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이미 무리가 지어져 있었다.
'아... 이번 1년 어떡하냐...'
낙심하며 머리를 박은 채 엎드렸다.
'올해 혼자 다니는 거 아니야...?'
바로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놀라서 일어나보니 어떤 남자아이 하나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동그란 눈망울,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까지. 왜 연예인을 안 하고 학교에 남아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입을 떡 벌린 채로 그의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마치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저기로 빨려들어가면 영원히 못 나오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의 얼굴만 본 것도 수초. 그 아이가 당황했지만 금세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안녕? 나는 이현우라고 해. 네 이름은 뭐야?"
현우... 이름마저도 아름다운 그가 왜 나의 누추한 이름 따위를 궁금해하는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홀린 듯 답했다.
"김서연..."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치 술이라도 마신 듯이 헤롱거리며 답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내 앞의 의자를 돌려 내 얼굴을 마주보았다.
"너 이름 되게 예쁘다. 사실 나는 유학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거라서..."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짓했다. 귀를 대라는 것이다. 그의 숨결이 내 귀를 간지럽힐 때마다 나는 녹아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가 없어."
뜻밖의 얘기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 얼굴에 아무도 들러붙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야? 뒤따라온 말을 듣고 나는 기절할 뻔했다.
"그러니까 나랑 친구하자."
"친구? 친구를 하자고? 너랑 나랑? 왜?"
동그랗게 치켜뜬 눈으로 따지듯 묻자 그는 잠시 당황했다. 그러고는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오리같은 표정을 지었다.
"싫어...?"
그의 눈은 마치 강아지가 혼날 때 짓는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아, 아니! 좋아! 너무 좋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고 주위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얼굴이 빨개진 채 홍당무가 된 나를 보고서는 현우는 피식 웃었다.
아마 그는 내가 그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겠지.
"귀여워"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등교 때부터 하교 때까지, 아니 하교 후에도 서로 붙어있었다. 그와 있는 날들이 일상이 되었다. 이제는 그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는데...
"나 유학 가. 다시 돌아가게 됐어."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뭐 어차피 너도 적응 잘했고 나 하나 없어도 잘 지낼 거란 거 알아."
'아냐. 내가 너없이 어떻게 잘 지내... 처음 본 순간부터 너는 내 세상이었는데...'
"알지만, 그래도 난 너 보고싶을 거 같으니까 수능 끝나고 내가 뛰어올 수 있게 7시에 이곳에서 만나. 그때 꼭 보러 올게"
그때는 몰랐다. 그의 유학이 단순히 교육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그게 그와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약속대로 나는 수능이 끝나고 약속장소로 뛰어갔다. 5분, 10분. 시간이 흘러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못 오나 보네...'
실망감을 애써 감추고 뒤돌았을 때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분명 현우였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았다.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서는 정말 놀라 자빠질 뻔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핏기 하나 없이. 몸도 축 처져있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나는 그에게 소리쳤고 그는 살짝 찡그렸다.
"아... 미안. 놀라서. 근데 정말 어떻게 된 거야?"
그는 내 눈을 피했다. 나는 불길한 예감에 그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야, 이현우! 나 똑바로 봐! 뭔데? 왜 이러는데?"
그는 서서히 고개를 들었고 나를 바라본 그의 눈망울에는 이슬 같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한번 물었다.
"하... 왜 그러는데? 말을 해야 알지."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서연아... 나... 죽는대."
그의 몸과 목소리는 함께 떨리고 있었고 동시에 얼굴도 빨개지고 있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두 눈이 흔들렸고 심장이 마구 뛰어댔다.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너랑 함께할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지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믿고 싶지 않았다. 자꾸만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알아야 했기에, 이유도 모른 채로 떠나보낼 수는 없었기에 간신히 입을 뗐다.
"왜... 죽는대...?"
조심스럽게 물은 내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져나올 거 같았지만 참았다. 내가 울면 그는 더 아플 것 같아서. 그는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사실 나 예전에 유학갔다는 거 있잖아. 그거 치료 때문에 간 거였어. 이번에도 그랬고. 괜찮아졌다고 해서 퇴원했는데 다시 안 좋아졌다더라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눈물만 참고 있었을 뿐.
"그동안 말 못해서 미안해."
"왜? 무슨 병인데?"
초조하게 물었다. 그의 입에서 병명이 나오자 내 심장은 중력에 이끌린 듯 쿵 떨어졌다.
"췌장암 4기. 이미 내 몸에 가득해서 이제 더는 가망이 없대. 그래서 버킷리스트 채우고 있었는데 마지막이 너 만나는 거였거든. 이젠 정말 다 이뤘네..."
그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행이라는 듯. 죽기 전에 마지막 인사라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듯.
정적 속에서 몇 분이나 지났을까.
"나 이제 가봐야겠다. 만나서 반가웠어. 나 없어도 넌 잘할 거야. 이제 진짜 갈게. 안녕."
그의 미소 속엔 차마 다하지 못한 말과 눈물이 머금어져 있었다.
떠나가는 그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야!"
그가 뒤도는 순간 그의 품에 덥썩 안겼다. 그는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의 따뜻한 손길에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 너 좋아한다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정말 알고 있었다는 듯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래서 좋았다는 듯 그는 따뜻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 분명히. "너도 나 좋아한다고. 그것도 알아?"
"응. 알아. 나의 마지막을 장식해 준 사람이 너라서 다행이야. 사랑해, 김서연."
"사랑해,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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