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 작성자 이희원
- 작성일 202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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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109
‘스마일’ 우리 회사의 슬로건이다. 로비 프론트 직원들은 사람이 지나갈 때 급하게 웃으며 “스마일” 하고 인사한다. 뭔 놈의 스마일. 웃을 일 없는 이 사회의 팍팍함을, 나는 이 회사를 통해 배웠다. 최대한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팍 숙이고 지나간다. 사원증을 찍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 또 옆 부서 신입이 와서 인사한다. “스마일” 이런…. 무시할 수도 없고. 요즘은 영포티라고 하던가 어제 우연히 본 뉴스에서 우리 세대를 그렇게 부른다고 했더랬지. 그런 덜떨어진 사람들과 동급이 될 수는 없다. “스마일~” 뒷음을 올리며 입꼬리를 힘껏 올렸다. 잠깐을 마주 보고 웃어주었으니 나를 제발 그들과 같이 생각해주지 않았으면 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오른손으로 볼을 문질렀다. 볼이 당겨서, 입을 벌리고 턱을 늘여보기도 하다가 나의 영업부가 있는 17층에 도착했다. 나보다 어린 상사에게 인사를 하러 간다. “스마일입니다. 에드워드” “음~ 스마일이에요. 데이비드” 싸가지 없는 놈. 그때 나의 상사 에드워드가 입을 열었다. “데이비드씨 잠깐 시간 괜찮을까요?”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대답한다. 그놈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애석하지만, 오늘까지만 일해주실 수 있을까요?” 말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이른 통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멍하니 뒤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존나게 치열한 대한민국의 재취업시장을 미리부터 파악하고 준비한 나는 소위 이 분야의 엘리트라고 부를 수 있다. 그렇다 나는 무서울 게 없었다. 책상을 향해 걸어가 며 생각했다. 책상에 사원증을 두고 어제 마시던 커피가 남은 머그잔만을 들고 가벼운 걸음으로 회사를 나왔다. 잘있어라 에드워드.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한다. 우르르 내리는 젊은 사원들. 손목시계를 보니 출근시간까지 1분 남은 시점이었다. 이래서 젊은 놈들은.. 다들 엘리베이터에서 급하게 내리며 기괴한 웃음을 짓고 지나간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뻐근한 뒷목이 이제야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다.
밝은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절대 나의 부모님들 처럼 자식들에게 용돈이나 받는 인생을 살지 않으리. 창창한 50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지개를 피고 인터넷에 ‘이차취업’이라고 썼다가 ‘재취업’이라고 다시 검색했다. 회사에서 400미터 거리에 재취업 전문 컨설팅 업체가 있었다. 특이하게도 낮에만 운영했다. 지도 앱으로 길을 찾아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핸드폰 지도도 아주 잘 사용한다. 초여름인데도 날씨가 꽤나 더웠다. 겉옷은 팔에 걸치고 이마 사이로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찍어 냈다. 지도를 따라간 곳에는 조금 구린 디자인의 간판에 ‘어서와요. 실버 취업 솔루션’ 이라고 적혀 있었다.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에 올라가면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생각보다 젊은 직원이 혼자 식물에 물을 주고 있었다. 내가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직원은 당황한 듯 허겁지겁 하던 일을 마무리 하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오셨나요?” 재취업 상담 말고 다른 일로도 이곳에 올 일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재취업 좀 알아보려고요” 사무실 소파에 옷을 걸쳐 놓으면 말했다. “그런데 왜 낮에만 운영해요? 젊은 청년이 열심히 일해야지..” “아 요즘은 당일 통보하는 회사들이 많아져서 업무 시간에 많이들 오세요. 반차 내고 오시기도 하고 회사 짤리고 나서 집에 얘기를 못 해서 재취업 준비하는 동안 여기로 출근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웃긴 세상이에요.” 여전히 밤에 운영하지 않는 것이 석연찮았지만 그의 말은 묘한 신뢰감을 주었다.
그가 안내한 의자에 앉아 그의 모니터와 마주보면서 대략적인 스펙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신음 같은 호응을 하며 물어봤다. “들어보니까 토익이랑 바리스타 자격증은 젊었을 때 따셨는데 이런 자격증 기간이 만료되서 많이들 못쓰시거든요.” 나는 손사래 치며 당연히 모두 연장을 신청했고 재시험이 필요한 자격증들 또한 다 합격했다고 말했다. 또 취미로 딴 기능사 자격증을 하나 더 이야기 했다. 직원은 깜짝 놀라며 이런 엘리트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내가 누군데 생각하며 그래서 어디에 취업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어봤다. “일단 40대에서 50대 분들한테 추천해드리는 직종은 청소고요. 이게 경쟁률이 어마어마한데 벌이가 또 좋아요. 대신 새벽에 일하셔야 되는데 괜찮으실까요?” 내가 기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나는 사무직은 없냐고 물었고 “요즘은 회사에서 늙은 사람들 사무실에 들이기 싫어해요” 나는 약간의 체념을 하며 청소부의 연봉에 대해 물어본다. 다니던 직장에서 몇 년 동안 올려주지 않던 연봉과는 차원이 다른 벌이였다. “요즘 길거리에 외국인들 많잖아요. 가끔가다 길 물어보거든요. 그런거에 영어로 대답만 좀 해주시면 돼요. 중국어도 되면 더 좋고." 그래 요즘은 블루칼라가 뜬다지. 몇 년 전 읽은 뉴스의 내용이 스쳐지나갔다. ai인지 뭐시기와 경쟁할 일이 없다는 것은 확실히 큰 장점이었다. 오래 일할 수 있겠군. “그거로 좀 알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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