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죽음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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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죽었다. 어쩌면 어제, 아니면 내일.
우린 한 마리 인어로 물거품이 되었다.
이번 시니어 전시는 인생과 시가 들어갈 거 같아요. 이 주제로 시 쓰기 활동하겠습니다.
담당자님. 교수님. 그리고 수많은 물방울이 된 우리.
-P.S:송희찬-
*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할 수 있을까? 아무도 안 읽을 거 같은데.”
금순 어머니는 오늘도 시를 쓰다가 의문이 들었나 보다. 그녀는 교실 안을 꽉 채우는 나근나근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본인들의 인생과 이야기가 담긴 문학이 과연 젊은 사람들이나 대중에게 먹힐까 고민하는 듯 보였다. 나는 숨을 참으며 그녀의 뒤로 갔다. 그녀의 흰 종이에는 삐뚤삐뚤한 글자로 쓰인 어머니의 시가 있겠지. 나는 그 시를 들여다보려고 다가갔지만, 그녀는 팔로 자신의 시를 가렸다. 금순 어머니의 두 눈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나를 째려봤다.
“선상님, 그리다가 심장마비 와서 뒤져 불겄어요.”
“아니, 어머니 왜 이렇게 놀라세요. 기침 때문에 알잖아요. 가까이 오는 거.”
“나이 먹은 년이 웬 시에요. 뒈져불 때가 됐으니까 주책 부리는 거쟈 뭐.”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인생을 들쳐 보이지도 보여주지도 않았다. 그저 품 안에 숨기며 나와 다른 어르신들의 시선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어머니의 홀쭉한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독이려고 했다.
그때 목소리 크고 트로트를 좋아하는 정자 어머니가 막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야, 우리가 늙었나? 학생아, 우리 언니야 너무 예삐지?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나이가 대수냐. 오늘이 가장 젊은 날”
“당연하죠, 어르신.”
나는 나를 학생이라 부르는 정자 어머니의 말에 공감을 해줬다. 그래야만이 금순 어머니가 자신을 들춰내고 우리 앞에 자신을 보여줄 것 같아서. 내 말에 정자 어머니는 기분이 좋았는지 김용임의 <나이야 가라>를 계속 불렀다. 그러자 교실 안의 어르신들은 모두 똑같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내 기침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활기차고 크게.
나는 그들의 흥바람을 잠깐이라도 진정시켜야 했다. 여러 번 콜록거리고 손바닥을 두세 번 내리쳤다. 그러나 그들의 불완전한 음정과 화음 앞에서 내 소리는 작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금순 어머니는 입을 다시며 바라만 봤다. 그녀와 나 둘 사이에는 어색한 정적이 흘렀고, 주변 어르신들의 화음은 쨍할 뿐이었다.
그 쨍한 분위기와 정적을 깬 것은 금순 어머니의 한 소리 같은 잔소리였다. 어머니는 입을 쩝쩝 다시며 큰 소리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염병, 날 덥다고 상온에 너무 오래 있었나벼 정자야.”
그녀는 코를 한 손으로 막고 다른 한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불쾌하다는 말에 간접적인 표현인 것 같지만, 정자 어머니는 계속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입에서 퍼져나오는 음정이 귀를 따갑게 만들었다. 이는 금순 어머니도 비슷하겠지. 나는 그들의 불편함과 수업의 진행을 위해 그녀에게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뎠다. 하지만 내가 걸어가는 시간조차 금순 어머니에게는 시끄러웠나 보다. 그녀는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으이 셨어. 선상님 우리 정자 몸 때기 청소 좀 해줘요. 저러다 도가니 나가서 도가니탕 되것슈.”
“아잇 언니야, 우리 살 없어서 우리로만 탕 못 끓인다.”
“아니여, 너 하나면 국밥 10그릇 오지고도 남아.”
“아따, 언니야, 미쳤나 봐. 미쳤나 봐.”
그런 그녀들의 티키타카 덕분에 수업 분위기는 다시 안정적으로 변했다. 어색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활발하지도 않은 그 중간. 그 중간에서 어르신들은 뜨거운 학구열의 눈빛으로 나와 종이를 번갈아 바라봤다.
나는 오늘도 저번 수업과 같이 기침을 했고, 어르신들은 시 쓰다 말다 웃고 떠들었다. 그렇기만 하면 괜찮은데. 나는 그저 봉사자로서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지켜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는 마지막 차시에서 시화 전시를 할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렇기에 시끌벅적한 공기 속에서. 시를 쓰다 말다 하는 어르신들 앞에 서서 마이크를 툭툭 내리쳤다. 차가운 감각이 내 손바닥에 느껴지고 쨍한 소리가 교실을 덮쳤다. 모든 어르신의 이목이 서로의 눈과 눈 혹은 눈과 종이에서 나로 향했다.
“어머니, 아버님 우리 오늘까지는 시 한 편은 완성해 줘야 해요. 그래야 다음 차시 전시합니다.”
“아니, 학생아. 나 아무리 살암써도 인생을 모르는데 어째 인생 시를 씨부려 싸. 나가, 아직 우리 학생보다는 아니지만, 젊어.”
“아이고, 정자 어머니. 나이가 어려도, 사는 마음 꽉 글에 담으면 그놈이 인생 시지. 인생 시가 별거 있다고 했어요, 제가?”
그러자 조용히 시를 쓰고 있던 어르신들이 하나같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들의 순수하고 주름진 그 미소를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마스크 뒤에서 입이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다시 그 웃음들을 손바닥 박수 몇 번으로 멈춰 세웠고 강의실 안에는 내 기침 소리만 남겨두었다.
“자, 여러분 시 쓸 때 그냥 자기 이야기 풀어 놓는다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그리고 아주 정직하게 적어보는 겁니다. 아셨죠? 솔직하게 이야기 풀어요. 그게 인생 시에요. 인생 시.”
“네 선생님.”
그들은 불협화음을 내며 모두 백지에 자신을 조금씩 적어 내렸다. 어설픈 한글로, 어설픈 표준어로, 꾸불꾸불한 문자로. 시를 그리는 그들을 그저 바라보다가 교수자 전용 책상에 앉았다. 학생들과 함께 국문과 학생으로서 시 한 편을 적어 내렸다.
내 인생. 시를.
<엔딩크레딧:쿠키영상 없음>
형이라 부를 때
내 앞은 어른거린다.
상영관 조명이 하나씩 켜지고
스크린에서 흘렁이는 피아노 반주
사이로
사람들이 모두 내려간다.
내 이름은 서서히 올라가는데
이번 영화를 생각하면, 참 많은 일이 있었어.
형
이번 비하인드 촬영본은 없을 거야
기대는 하지 마
두 눈이 어둠 속으로 감긴다.
한 걸음 한 물결
내 이름이 사라질 때마다
어른거리기만 하는 어른에게 누가 마침표를 찍어줄까
내가
네가
우리는 말없이 손 모아 기도만 했는데
오늘을 터벅터벅 살아가기만 했는데
걸음.
멈춤.
말 보폭.
줄임.
인어
물방울로 돌아가는 중
형.
기억에 스며들 거야
밤이라서 나는 잘 보이지 않을 거야
바람에 나는 흔들거리겠지만
바보처럼 여러 번 그은 상처를 지닌 채
또
돌아다니겠지
형이라 불릴 때
나는 어른거렸고 어른이 어른거렸다.
흐릿해지는 스크린에서
야상곡 한 스푼 짜다
내가 이렇게 시를 쓰고 있어서 그런가. 걸음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들이 하나, 둘 내 앞에 모여드는 것 같았다. 그러자 내 갈비뼈에서부터 약간의 통증이 욱신거렸다. 기관지가 간지러워졌고 기침이 또 튀어나왔다. 무의식적으로 또 주변을 살펴봤다. 역시나 어르신들이 내 앞에 있는 종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시를 쓰셔야죠. 제 시 본다고 시가 뚝딱하고 나오지 않아요. 네. 뚝딱 안 나와요.”
그럼에도 어르신들은 내 주변을 떠나지 않으셨다. 그저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 시선 그리고 정적 속에서 내 기침은 다시금 잡음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익숙했지만, 더 강하게 그리고 더 자주 내뱉어졌다.
“아이고 다들 눈깔 괜찮은겨? 거기에 단체로 떨군거여? 우리 선상님 눈깔 찾느라 무겁겄어.”
그때 금순 어머니가 우리들 사이의 침묵을 부드럽고 유쾌한 어조로 풀어주셨다. 그녀의 목소리에 모두 머리를 긁적이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정자 어머니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종이 앞에 앉아 네 박자 장단을 쳤다. 다시 글을 써 내려 가셨다. 그런 그녀의 네 박자 장단을 들으니까 이상하게 송대관의 <네 박자>가 떠올랐다. 떠오른 것이 있으면, 입 밖으로 바로 꺼내는 버릇이 있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한 구절 한고비 꺾어 넘을 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 같은 세상사. 세상사 모두가 네 박자 쿵짝
네 박자 쿵짝
-송대관 <네 박자>-
1시간의 수업은 음악 장단과 유머 그리고 시로 채워졌다. 강의실 몇 바퀴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시를 보고 느끼고, 내 나름대로 해석을 붙여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의 삶과 그 삶이 담긴 시가 한 단어, 하나의 뜻만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기에 그 해석을 절대적으로 품지는 않았다. 그저 이 어르신은 이렇게 느꼈구나, 저 어르신은 저렇게 세상을 살아 오셨구나 이런 생각만 했다. 판단하지 않았다. 터벅터벅 주변을 걸을 때마다 그들의 전부를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그들 안에 있는 진심은 알아낼 수 있었다. 흑연 가루가 잔뜩 묻어있는 평평하게 구겨진 에이포 용지 몇 장을 바라봄으로서 고스란히 그 마음이 내게로 스며들었다.
3차시 수업이 끝나갈 때쯤 나는 그들의 이목을 다시 집중시키려고 박수를 쳤다. 짝짝거리는 소리에 교실 안에 있는 어르신들이 나를 바라봤다.
“어머니, 아버지. 우리 오늘 쓴 시 제가 오늘 걷어서, 다음 주 마지막 차시에 시화 전시할 거예요. 아주 재밌고 신나게 다음 주에 읽겠습니다.”
이런 내 말에 어떤 어르신은 주름이 가득한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으며, 어떤 어르신은 허리를 막 두들기며 웃음을 참았고, 또 어떤 어르신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 낄낄거리면서 쑥스러워하는 분위기와 모습이 마치 우리 학과 문예 창작 수업 같았다. 교수님께서 과제로 쓴 글을 즐겁고 재미있게 새벽을 보내면서까지 읽는다고 하셨을 때와 특히 닮았다. 역시 학생은 노인이나 대학생이나 초등학생이나 다 똑같나 보다. 교수자가 자신의 글을 읽는다는 것 자체. 어쩌면 내 과정, 내 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자신의 삶이 한 사람에게 평가받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쑥스럽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이는 전 세대가 비슷한 것 같다. 그래도 어쩌겠냐. 어르신들의 글로 시화전을 열어야 하고, 이해를 받으려면 읽고, 쓰고, 평가하고, 평가당해야만 하는 것을. 그렇기에 자신을 계속 숨기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글을 수업이 끝나는 동시에 가져갔다.
수업이 끝난 뒤, 가방에서 약을 꺼냈다. 작은 모양의 알갱이를 손에 넣었다. 우울, 불안 틱 약으로 잘 알려진 폭세틴 캡슐 두 정과 페르페나진정 두 정. 내 손에는 이 알약의 부스러기가 흩뿌려져 있다. 나는 흩뿌려진 한 톨의 가루도 남기지 않고 툭툭 털어 입 안으로 떨궜다. 이후 생수 250ml를 다 마셨다. 약이 목뒤로 넘어갈 때. 목구멍을 지나가는 몇 mg의 작은 알갱이 여러 알이 나를 한 번씩 툭툭 건든다. 그때마다 올라오는 쓴맛과 이물감이 싫어 약을 먹을 때 물을 많이 마시는 거 같다.
만약 약 가루가 목에 걸리기라도 하면 하루를 살아가는 시간 동안 선명하게 이물감과 쓴맛을 느껴야 한다. 이런 감각은 몇 번 먹어도, 생수를 아무리 들이마셔도 묻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먹으면서 이를 인식해서 그런가. 더 선명하고 날카롭게 내 목구멍과 순간순간을 건드렸다.
약을 다 먹은 뒤 손을 두 번 털고 교실을 나가는 어르신들한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나 금순 어머니와 정자 어머니는 서로 웃으며 나를 빤히 바라만 봤다.
“아이고, 어머니들 무슨 일 있어요?”
“아이, 이런 말 하기 조심스러운데, 희찬 학생 어 아파? 약을 계속 먹네. 수업 시작부터. 기침도 너무 자주하고.”
평소와는 다른 낮은 탠션으로 정자 어머니가 내게 물어봤다. 내가 답을 하지 못하고 있자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금순 어머니의 팔을 꽉 잡았다. 나의 답을 기다리는 거 같았다. 이런 내 모습을 본 금순 어머니는 정자 어머니의 팔뚝을 자신의 팔뚝으로 쳤다.
“아이고, 정자야. 선상님, 다음부터 에어컨 좀 더 켜야겄어요. 나 냉동고기 되도 정자 쉬는 것보다 낫지.”
“이 언니야가 오늘 시 쓰면서 정신도 같이 종이에 내 던져 불었나. 왜 나 보고 그라? 궁금할 수도 있지. 선상님 오해 마요. 나 진짜 걱정스래서 하는 소링께.”
그녀들은 서로서로 톡톡 치며 나를 무의식적으로 툭툭 쳤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기침만 내뱉을 뿐이었다. 그러자 금순 어머니는 안경만 만졌다. 정자 어머니는 입술을 쫙쫙 벌리다 말고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희찬 학생, 음성 틱이에요? 금순 언니야 손자랑 먹는 게 비슷해서.”
“네?”
나는 한 음절과 물음표의 조합으로 대 물었다. 두 눈이 커졌다. 이는 금순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자신의 아픈 부위가 밝혀진 것처럼. 그녀의 두 눈이 흔들렸다. 동시에 금순 어머니의 목소리를 키웠다/
“정자야,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여. 차라리 날 튀기라. 와 나 새끼까지 건드니?”
그녀가 이렇게 큰 목소리와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주름진 입술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정자 어머니의 말이 맞았나 보다. 정자 어머니는 이 말이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듯 그저 눈만 동그랗게 뜨며 큰 소리를 지르고 있는 금순 어머니를 바라봤다. 그녀는 금순 어머니의 팔을 꽉 잡았다.
“아니, 언니야 왜 이렇게 흥분했어. 언니 얼라가 아프면 아픈 걸 마주해야지. 와 숨기려 하노?”
“요년이 미쳐불었나? 네 동생년 어디 아프다 뒈져 분 것도 야기하면 좋겄냐? 가족 야기는 함부로 꺼내는 거 아니다. 증자야.”
두 어르신의 입술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나와 그들 사이에만 있었던 정적은 나와 금순, 정자 어머니. 이렇게 삼 자간의 정적으로 바뀌었다. 일어서야 했다. 그들의 신경전을 멈춰야 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입꼬리와 보이는 눈꼬리 모두 올리며 천천히 그녀들을 말렸다.
“아이고, 어머니들 진정하시고. 내가 얘기할게요. 나 기침 틱. 틱 있어요. 그리고 금순 어머니도 정자 어머니도 서로 가정사 들척이지 마요. 이왕 나온 거 저는 까서 이야기하지만, 두 분은 사이좋게 지내야지. 본인 시에서만 들척여요.”
이 말을 들은 정자 어머니와 금순 어머니는 그들의 머리를 긁거나, 허리를 두드릴 뿐이었다. 특히 정자 어머니는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번갈아 다셨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금순 어머니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 역시 입을 여러 번 다시며 내게 물었다.
“선상님은 힘들지 않았어요? 우리 아는 목구녕 때문에 집 밖에 나오지 않는데. 이런 말 하는 것도 실례인 건 아는데 노인네 노망짓 한다고 생각하며 들어줘요.”
그녀의 말을 들으니 그녀의 손자는 초창기의 나.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에 내 모습과 닮아 있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의 나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자신의 무가치함을 마주 보고 있다는 점에서. 계속해서 기도해도 아물지 않는 자신이 있다는 점에서.
**
기침이 시작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말부터였다. 틱이라는 것이, 정신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 되는 것이라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기침이 시작된 이후 삶이 바뀌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회적으로 기침하는 환자를 경계했다. 코로나19가 조금씩 옅어져 가던 2022년도 똑같았다. 내가 버스를 타면, 몇몇 사람들의 눈빛이 나에게 쏠렸다. 기관지에는 눈동자 하나하나가 걸린 듯 간지러워졌고, 기침이 내뱉어졌다. 동시에 갈비뼈가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러면서 심장 주변에 통증이 몰려왔다. 이런 상태는 학교, 집 어디서도 반복됐다. 나는 그저 존재함으로써 흔들렸고, 갈비뼈는 여러 번 부러졌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나로 누른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중학교 3학년까지는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3학년 때 담임과 같은 반 친구들 덕분에. 그녀와 그들은 먼지에 민감한 내 기관지를 위해 창가 맨 뒷자리. 공기 청정기 앞자리를 나에게 늘 양보했다. 그 덕에 먼지로 인한 기침은 줄었다. 그들의 배려와 더불어 나는 나로 호흡하는 법을 연습했다. 가슴 부위를 한팔로 감싼 뒤 호흡하는 방법으로. 인간으로 살아 나가지만, 인간과 다른 방식의 호흡으로 살아갔다. 마치 목소리를 잃고, 다리가 생긴 인어의 호흡처럼. 그러면서 갈비뼈와 복장뼈 등등의 가해지는 압박이 줄었다. 또한 팔에 한 번 걸려 기침의 강도 역시 약해졌다. 그 속에서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담임 선생님의 마지막 인사로 고등학교에 진학해도 잘 살아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
“희찬아, 지금 정도의 기침이면, 아마도 고등학교 생활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다.”
그러나 그녀의 다정한 응원은 고등학교 입학이 다가오는 겨울 방학까지만 유효했다. 그 시기 그녀의 응원을 받아 시작했던 기도는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 모두 사라지거나 무너졌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2024년 3월. 나는 2023년도의 나처럼 기침으로 인해 창가 맨 끝자리. 공기 청정기 앞에 앉게 되었다. 내가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자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은 교실에서 이곳이 다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호흡이 날이 갈수록 깨져갔다. 내 기침은 침묵과 정적이 가득한 1학년 8반 교실에서 날이 갈수록 점차 돋보여 갔다. 역시 인간은 인간의 호흡만으로 육지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처럼 인어 같은 존재도 바다에서만 인어의 호흡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가?
2학년이 다가오는 1학년 2학기. 지금부터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수시든 정시든 그들에게 내 기침은 잡음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2학기가 되니 담임은 본인 수업 중에 나에게 화장실에 가서 기침 크게 하고 오라는 요청을 자주, 거의 매시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숨을 참으며 여름의 습기가 가득 찬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의 공기는 늘 물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곳에서 숨을 고르고 기침을 여러 번 하다 보면 습기가 내 기관지에 다시 들어오게 된다. 이 때문에 기침이라는 것이 여러 번 그리고 강하게 한다고 강도나 빈도가 약해지거나 적어지는 것은 아니였다. 역으로 담임 말 한마디에 반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뒤를 돌아 생기는 시선과 화장실의 물기 때문에 기침은 더 많이 나왔다. 그럴 때면 교실 안은 담임의 지식과 더불어 내 잡음만이 매일 돌아다녔다.
이런 날이 반복되자 담임은 8월 말부터 나와 상담을 벌였다. 담임의 수업이 끝난 뒤 매일 그의 등을 바라보며 교무실로 걸어갔다. 내가 마주 본 그의 등은 한여름의 더위 때문에, 땀이 잔뜩 묻어 비릿한 냄새가 났다. 복도에는 학생들이 막 뛰어다녔다. 그런 그들을 지나는 동안 나의 잡음이 강해졌다. 이때문에 귀에서 기계음 같은 이명이 흘렁였다. 동시에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몸이 무거워졌다. 교실과 교무실이 멀게만 느껴졌다.
교무실에 도착했을 땐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나와 담임 둘뿐. 그는 자신의 의자에 앉으며 평소에도 낮았던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그의 중저음은 교무실 전반의 공기를 압도했다. 공기의 질이 바뀌었다. 기침의 강도가 더 강해졌다.
“희찬아, 서운하게 듣지 마라. 자퇴는 어떻겠니? 친구들의 표정이 날이 갈수록 좋지 않아.”
형용사는 명령형으로 쓸 수 없는데. 그는 서운해하지 말라는 비문을 말하면서 무리한 요구를 했다. 나는 그의 말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침묵과 옅은 잡음을 낼 수밖에.
그렇게 가만히 있는 내 모습에 그는 옅은 헛기침을 따라 했다. 그의 작은 눈이 크게 떠지며 똑바로 나를 바라봤다.
“희찬아, 선생님은 너만의 담임이 아니라, 우리 1학년 8반 27명 모두의 담임이야. 희찬이 같은 친구가 학교에 남으면 선생님도 좋지. 근데 다른 친구들도 있고. 그리고 네가 2학년 올라가서 괜찮아진다는 보장이 없으면 너도 힘들고. 너를 위해서 자퇴는 필수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요소인 거 같아.”
나는 그의 논리에 크게 반박할 수 없었다.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갔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였다. 단편적으로 자퇴하는 방향으로 밀어붙여졌다. 내 삶이. 인간의 정형적인 걸음이 아닌 물방울이 잔뜩 묻은 인어의 걸음으로 걷게 되었다. 학교 밖 청소년이 되었다. 내가 학교에 다닌 몇 년의 시간과 기침을 참으면서 망가진 나의 호흡. 그리고 학교를 끝까지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던 나의 기도가 그저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변해버렸다. 나도. 모든 순간도. 함께. 인어의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학교 밖 청소년이 된 2024년 9월부터 몇 달간 집에서 유튜브 숏츠만 넘겼다. 핸드폰 하나하나를 넘길 때 휴대폰에서 나오는 도파민에 그저 익숙해져 갔다. 그 과정에서 마약성 기침약인 코데인과 정신과 약에 의존하고 있는 나를 봤다. 그저 담임만을 저주하는 기도를 올리고, 담임을 글 속에서 죽이는 내 글을 봤다. 나의 무가치함을 바라봤다.
“정신차려 송희찬. 지금 뭔 지랄이니.”
나는 나의 뺨을 때렸다. 두려움에 약하게 한 번. 점차 강도가 강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뺨이 붉어지고 얼얼해졌다. 그러면서 천천히 통증과 감각이 무감각해졌다. 그렇게 될 때까지 나를 때렸다.
침대 안에서 침대 밖으로 나가고. 담임을 저주하던 글에서 나를 저주하고 마주 보는 글을 썼다. 그 활자들 너머에 세상을 공부하는 검정고시와 수능을 준비했다. 노트북 위에 다양한 내가 퍼져갔다. 기침의 물방울이 노트북 위로 번져갔다.
그 덕에 다른 친구들보다 1년 빠르게 지방 사립 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한 살 빠르고 동시에 한 살이 어리다는 점은 내 삶에 불완전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저 문제없이 잘 다니고 좋은 사람만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내 삶에 두 번째 기도였다. 그럼에도 나는 기도라는 것은 무가치한 행위라고 믿었다. 기도로 따라오는 행운을 믿지 않았다. 기도는 그저 사람을 간절하게 만들 뿐이니까. 이런 마음가짐으로 신입생환영회이자 입학식에 갔다.
고등학생 때처럼 몸을 구부정하게 만든 채로 갔다. 환영회가 열리는 건물에는 사람이 몰려 있었다. 그때 현승이 형을 처음 만났지. 현승이 형은 구부정하게 국문과 팻말 주변을 맴돌며 콜록거리던 나를 보고 먼저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국문과 신입생이세요? 저는 신입생 강현승입니다.”
먼저 인사를 건 현승이 형은 나보다 한참 나이 많은 어른 같았다. 고작 한 살 차이만 나는데. 나에게 학과 모든 동기는 더 큰 어른처럼 보였다. 미성년자와 성년의 차이가 한 살이라는 간격을 무시하는 거 같았다.
나는 그에게 압도됐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멀뚱멀뚱 서 있었다. 그러니까 현승이 형은 “괜찮아요?”라고 대 물어봤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올해 국문과 신입생인 송희찬입니다.”
“왜 이렇게 놀라세요.”
“아, 제가 사실 신입생들보다 한 살 어려서요. 다 너무 큰 어른처럼 보이네요.”
그러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면서도 만나서 반갑다고 친하게 지내자고 했다.
그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건 사람이었다. 동시에 그에게 나는 가장 먼저 대화 나눈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와 현승이 형은 입학식 때 만나서 4월까지 늘 붙어 다녔다.
나는 그를 따라다니면서 시선으로 생기는 기침 수가 조금씩 줄어갔다. 교수진들과 동료들에게 현승이 형이 내 상태를 잘 설명해줬기에. 이명도, 갈비뼈의 압박도 모두 조금씩 사라져 갔다. 이렇게 잘 지냈는데.
“희찬아, 나 없어도 잘 지낼 수 있지?”
“형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 이번 주까지만 다니고 자퇴할 거 같아.”
1학기 종강이 다가오던 6월. 학교생활에 적극적이었던 그가 교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한 입 베어물며 먹고 있던 밥이 한톨 한톨이 입안에서 날렸다. 타국의 쌀을 섞었는지 익숙하지 않은 식감에 밥맛을 확 떨어트렸다. 내 동공은 확장됐지만, 그의 얼굴은 보지 않았다. 그저 밥에만 집중하며 진짜 미소 없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충분히 생각하시고 결정한 거겠죠? 그럼 나는 응원합니다.”
내 말이 끝난 뒤 우리 사이에는 그저 정적만이 돌았다. 둘 다 부실한 학식에만 집중하고 또 신중했다. 주변은 밥 받는 학생들과 수다 떨며 놀고 밥을 먹는 학생들의 소리가 이 테이블 저 테이블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들이 우리 둘 사이의 침묵을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이제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데. 우리였던 내가 나라는 개인으로만 남게 되는데. 나는 그에 대한 응원보다 나에 관한 생각으로 그와 함께 지낸 마지막 일주일을 보냈다. 그저 침묵으로만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내 모습은 어른이 아니었다. 어른인 적도 없지만. 어른 속에 있어 어른으로 나를 착각했나 봐. 나는 어른이 아니었다.
현승이 형이 떠난 뒤. 강의 시간, 강의 외 시간 모두. 복장뼈 주변이 부서질 듯 기침이 나왔다. 삐- 소리 나는 이명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순간순간이 지속되자 본래 고요하고 조용했던, 교수님들의 강의 시간에도 내 잡음이 많이 들려왔다. 우리였을 때와 달리 그저 한 명의 개인이 된다는 것은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나 자신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나는 강의 시간에 한쪽 팔로 심장 주변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필기를 했다.
또한 자취방에서 혼자 있을 때, 자퇴한 뒤에 했던 것처럼, 강하고 빠르게 내 뺨을 여러 번 때렸다. 한쪽이 붉어지도록. 감각이라는 행위 자체가 없어지도록. 더 나아가 가위의 넓적하고 둔한 면을 접은 채로 내 팔을 약하게 여러 번 그었다. 처음에는 자국이 남지 않을 정도로 더 나아가 흰 쇠 자국이 남을 정도로 그었다. 그러나 피가 보일 정도로 그을 수는 없었다. 죽고 싶은 것이 아닌, 정신을 차리고 싶어서였기에. 몸이 망가지고, 흉터가 남아도 죽는 것은 무서웠기에. 아니 정확히는 기도 한 번 이루어지지 않고 죽는 것은 아깝고 괜찮아 보이지 않았기에. 이렇게 한 뒤 또 소리 한번 지르고 싶었기에. 몇 분 몇 초 망설였다가 시를 썼다. ‘나의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도 죽은 모습 아닐까? 생각하며.
나는 남은 1학년 1학기의 시간 동안 허리를 구부정하게 학교에 나갔다. 그러면서 마지막 시에 관한 생각을 강의 시작 전과 강의 끝난 후에 머릿속에 펼쳐 놓았다. 이런 내 모습이 수업 시간에도 티가 난 것 같다. 나와 현승이 형과 친하게 지내던 문학 과목 교수님이 수업 끝나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희찬아, 많이 힘드니? 너라면 현승이 없어도 학문에 재미 둘 거 같은데 아닌가 봐?”
“아이 학문은 늘 재밌죠. 국문과 특히 문학 수업은 제가 학교 들어오기 전에 늘 기대하던 수업인데요. 다만 요즘 몸이 조금 아프네요.”
그러자 교수님은 여린 한숨을 쉬며 나에게 하나를 권했다.
“희찬아, 너 시 쓰기 교육 봉사 나가지 않을래? 힘들 때 누군가를 가르치면 힘이 날 때도 있어. 몸도. 마음도.”
나는 그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생각하는 척할 뿐이었다.
그렇게 살던 중 빠르게 종강이 찾아왔고 나는 교수님 말에 떠밀려 시화 수업 봉사를 맡게 되었다. 그냥 흉터를 마주 보지 않고 그저 물 흐르듯 살아냈고 여기까지 왔다. 아마도 금순 어머니 손주분도 지금 이렇게 살아가겠지. 시간 가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
나는 그녀들에게 온전히 내 이야기를 다 하지는 않았다. 그저 틱으로 자퇴했고,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숨을 쉬고 나아갔다고. 그 과정에서 이런 영화 같은 삶을 찍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저 아픔은 이야기하지 않고 성공한 부분만 이야기했다. 이는 금순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손주분의 상태를 다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머쓱해 하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힘이 될 거 같은 한마디를 했다.
“어머니 시선에 힘들어도 결국 살려면 살아지더라고요. 저 봐봐요. 너무 걱정 마요.”
그녀는 그저 머쓱하게 웃으며 본인 혼자 강의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정자 어머니가 갑자기 나와 금순 어머니께 두 팔을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눈은 미세하게 흔들렸다. 사람들 신경 안 쓰고 낯짝 두꺼운 어머니가 흔들리다니. 나는 그녀의 손을 꽉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정자 어머니가 두꺼우면서 주름진 본인의 입술을 빠르게 열었다. 그녀의 삶을 빠른 속도로 말하기 시작했다.
“미안타. 나가 멍청한 년이야. 다 나 같이 면짝 두껍게 사는 거 아닌데. 언니야, 그리고 학생아 미안타. 언니야는 알겠지만, 암으로 뒈진 동상 20년 수발들다가 뒈져부니까. 나 속이 후련타드라. 근디 이런 생각한 내가 더 밉더라. 어차피 천국갈 거 뒈져부니께 나만 생각하고 사는디 언니야가 너무 아 걱정하는 거 같아서 말했는데 미안타. 조동아리 꼬뫼불고 살랑께 용서해줘.”
그녀의 빠르고 어버버한 목소리는 지금 것 그가 보여준 행동과 반대되었다. 그런 모습에 금순 어머니는 정자 어머니의 손을 꽉 잡고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정자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금순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증자야, 넌 정순이처럼 아프지 말어. 살라 그런건디 뭐라 하겄니. 근디 나 손주 건든 건 나는 아직 잘 모르겄다. 근디 어쩌겄냐. 나도 저지른거 뭐. 선상님한테나 미안해해라 이년아.”
정자 어머니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입 모양으로 다시 이야기했다. “학. 생. 미. 안. 해.” 나도 모르게 입을 앙앙 벌리는 그 모습에 피식 웃어버렸다. 내가 웃자 덩달아 두 어르신 역시 화해하다 말고 웃어버렸다. 깔깔깔. 참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게 뭐란가. 어른이 되고 죽을 때도 다 됐는데. 몸은 그저 어린아이처럼 신나 할 뿐이었다.
“암튼 사과 잘 받았어요. 저 괜찮아요. 우리 다음 주에 마지막 수업 잘 받읍시다.”
그들은 다시 서로의 손을 붙잡으며 강의실 밖을 나갔다. 강의실 안은 비었고 내 기침 소리만이 남았다.
강의실을 나가기 전에 어르신들이 쓴 시를 여러 번 읽어봤다. 그 위에 놓인 인생과 그림을 같이 들여보았다. 20장 모두 한 장씩 낱개를 넘길 때마다 삐뚤삐뚤하고 서툰 한글로 적은 서툴고 상처받았던 삶이 그대로 보여졌다.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아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의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기 쉽게 공유하기 위해 한글 파일에 타이핑을 했다. 딱딱한 폰채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그들의 삶을. 그러던 중 가장 눈에 띈 두 작품이 있다. 아까까지 같이 떠들고 웃었던 두 어머니의 시.
<꽃구경 가자>
최금순
도가니탕 팔았어 엄마도 다 살았어
우리 새끼 망태 할아버지 무십다고 도망갈라고 할 때
우리 새끼 앙앙 때 부릴 때
엄마는 웃어
도가니 때서라도 느 새끼
나 새끼 낫어
망태 할방은 나가 잡을게
콜록콜록
아가야, 도가니탕 하나 먹어라
할매가 망태구 다 잡아버릴게
콜록콜록
우리 아가 예쁜 아가
오늘은 밖으로 꽃구경 가는 거 어때?
할매가 같이 나가줄게
물 떨어져도
물을 맞아보는 거여
같이
-
<미친년>
박정자
오늘도 병원에 왔고, 내일도 병원에 갈 거 같아
미친년이 미친년 잡으려고
날래도 갔네
날래도 왔어
어이 동상아
살았을 때 나 괴롭히더니
뒈지니까 나가 널 괴롭힌네
미친년아, 미친년아
오늘밤도 병상 앞에서 불러본다.
우린 다시 못 만나겠지만
우린 다시 못 보겠지만
곧 나도 갈 거 같아
쿵짝 쿵짝 부르다 갈게
너도
쿵짝 쿵짜작 부르라
-
두 어머니의 글 밑에 그려진 수많은 물방울이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두 시를 여러 번 만지고 여러 번 바라봤다. 여린 기침이 훅하고 연속적으로 튀어나온다. 다음 주에 내 시와 함께 시화전에 같이 올라간다니.
숨을 크게 쉬었다. 여러 번. 고등학교 화장실에서부터 지금 대학교 종강 기간 복지센터 안까지. 바닷바람처럼 따가운 공기를 맞았다. 그 바람과 공기 안에는 지독한 피 냄새와 비릿한 냄새가 났다. 아마도 종이에 베인 상처와 내 몸에서 나는 땀 냄새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냄새가 지독하지만은 않았다. 그저 이 향이 아파서. 어젯밤에도 내 팔을 스쳐 간 가위 자국을 만졌다. 따끔따끔했다. 평소였다면 만지지도 않았을 상처가 펑펑 터지듯 시려왔다.
1주일 동안 다시 나를 퇴고했다. 어제도 내 글은 죽고, 오늘도 내 글은 죽고, 내일도 내 글은 죽겠지. 그리고 나도 매일 죽겠지. 그러면서 다시 1주일을 살았다.
*
마지막 수업이 되기 한 시간 전 복지센터에 와서 강의실에 그들의 삶이 담긴 시와 그림을 벽 한쪽에 코팅하여 붙였다. 그 옆으로는 모두가 모두의 언어를 알아볼 수 있으면서도 최대한 그들의 뜻을 다 담을 수 있게 프린팅해서 두었다. 얼굴과 몸에서는 땀이 막 흘렀다. 어르신들이 보면 또 무리했다고 또 혼나겠네. 그러기 전에 손수건으로 흐르고 있는 땀을 닦았다. 그때 정자 어머니와 금순 어머니가 오셨다.
“아이고, 선상님 고생이 많으셔요. 땀 좀 봐. 쉬었다 하시지. 한 시간 뒤에 해도 안 뒤져요.”
나는 그런 어머니들의 걱정에 그저 웃으며 전시를 완성해 갔다. 한 점 한 점 인생이 쌓일 때마다, 묻어두고 보지 못했던 순간들이 쌓일 때마다 송대관의 <네 박자>가 강의실 전체를 덮었다.
종이에 적힌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한 시절의 내가 종이와 강의실에 모여 수많은 인어가 물방울로 펑펑 터져가며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삐뚤삐뚤하고 더럽고 시끄러워 보일지라도.
우리는 어제도 죽고, 오늘도 죽고, 내일도 죽는다. 그러면서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거린다.
이 네 박자로 우리의 전시회가 세상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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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누군가에겐 문학이란게 이토록 굵은 것일 수도 있구나, 하는 감상이 드네요잉... 잘 읽었습니닷!!
@별무리 님 감상평 듣고 의도한 것이 잘 보여진 것 같고, 위로도 받은 느낌이에요 감사합니다^.^ 별무리님도 건필하시길 응원할게요
세끼 굶어가며 어제 올렸다가 문장이 좀 더러워서 지웠다 다시 올려요...잘 정리 됐는지 모르겠네요...(그럼에도 오늘도 어제처럼 계속 글 쓸게요... 몸이 실시간으로 망가질 거 같네요 ㅎㅎㅎ)
@송희찬 식 사 꼬 박 꼬 박 하 시 고 영 생 하 세 요 ! ! ! ! ! (몸 아껴써요)
아이오딘님 고마워요^^ 다만 마감을 지켜야 하기에 몸을 조금 더 혹사시키겠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