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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는 슬퍼하고 싶다

  • 작성자 아기호랑이
  • 작성일 2026-05-31
  • 조회수 73

우리가 연필로 키운 오리를 기억하니. 이차원의 깃털은 부드럽게 깊었고. 오리는 날개를 수평으로 펼치는 법을 몰랐지만 수면에 납작하게 떠오르는 근성이 있었다. 교실에는 납작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선생님께 잊힌 수업은 우리의 추억이 되었다. 


너는 그날 내 옆자리를 자처했잖아. 우리는 앞줄에 나란히 앉아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공부를 했다. 여름 에어컨 아래서 너는 몸을 둥글게 말고. 그러면 공부가 더 잘 된다는 듯이 추위에 떨며 영어 문장을 외웠다. 


나는 국어 문제를 풀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높임법은 쓸데없이 정확했다. 유치원 교사가 아이들에게 여기 오리가 몇 마리 있죠, 물을 때 오리는 높임의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이 선회한다. 오리가 몇 마리인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알 수도 없었다. 가볍게 선지를 지운다. 


그로부터 몇 문제를 더 풀었을 때쯤 네 손이 책상 위로 넘어왔다. 우리는 각자의 공부를 하는 중이었으므로 나는 그 사실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손이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왠지 모르게 난처해졌다. 내가 문제를 잘못 풀어서 네가 첨삭해 주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너는 내신에서 나보다 한 문제를 더 맞혔으므로 너에게는 그럴 역량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네가 손을 거두고 흰 종이 위에 남은 건 겨우 오리 한 마리. 오리는 이차원에서도 부피감이 느껴질 만큼 귀엽게 통통했다. 날개는 제 기능을 못 할 정도로 하찮았지만 귀여웠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랬다. 그랬는데 갑자기 귀여운 오리에게 서사를 부여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작가의 기질이 발동했고 하필이면 나는 그때만 재밌어지는 사람이었다. 


교사: 여기 오리가 몇 마리 있죠

아이들: 0마리요

교사: 왜요

아이들: 얘는 그림이잖아요

교사: 동심이 없군요

아이들: ㅠㅠ


아이들이 모두 울고 나서 너는 오리를 울렸다. 오리의 눈가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너는 오리의 눈앞에 단모음 체계 표 오른쪽 위에 자리한 음성모음 두 개를 추가했다. 오리는 혀를 뒤에 두고 부리를 작게 벌려서 둥근 발음을 냈다. 정말 그랬다. 정말 그랬을까. 어찌 됐든 납작한 오리는 말을 하고 싶어 했는데. 


한 마리 해줘…ㅜ


너는 문제집의 모서리를 빌려 오리의 심정을 대필했다. ‘한 마리 해줘’가 ‘한 마디 해줘’로 읽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너는 오리의 눈을 하고 있었다. 오리와 같은 언어를 공유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만한 동심이 없었다. 나의 문학은 으레 동심을 추구하지만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다만 나는 글을 쓸 때만 웃는 사람이었다. 나는 오리 한 마리를 더 그렸다. 


#2

교사: 여기 오리가 몇 마리 있죠

아이들: 1마리요

교사: 아닌데요

아이들: 왜요

교사: 내가 한 마리 더 그렸거든요

오리: ㅜㅜ


글을 쓰면서 자지러지게 웃었다. 너는 재밌어하는 동안에도 오리의 처지를 대변했다. 그렇게 오리는 태어나고부터 평생을 울며 지냈다. 나의 서사는 잔인했고 너는 오리와 함께 울다가 끝내 웃었다. 두 창작가의 손이 겹쳤고 너는 그동안 몸을 말지 않았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교실에서 우리는 시시덕거렸고 나는 그런 자신이 조금 어색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이 쌓인 덕분에 나는 조금씩 변화할 수 있었다. 너는 만날 때마다 항상 밝게 인사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한동안 그 인사를 받기만 했었다. 도서부에서 처음 만난 우리는 함께 부기장에 지원했다가 한 표 차이로 떨어졌는데. 개표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너는 내가 마지막 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같이 서점에 가고 싶다고도 했다. 얼마 전에 너는 내가 까먹은 나의 생일도 챙겨주었다. 돌이켜보면 너는 항상 둥근 오리의 눈을 하고 있었다. 


네 덕분에 나는 이제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되었다. 네가 만든 동아리를 함께 이끄는 사람이 되었다. 언젠가 서점에 가서 이 소설을 네게 보여주고 싶다. 먼 훗날 네가 나와 함께 오리를 키우고 싶다고 말해주는 날이 올까. 너의 생일에는 오리를 한가득 안겨주고 싶다. 네가 그 이유를 묻는다면 쓰다 만 시를 보여주겠다. 왜 시를 쓰다 말았는지 묻는다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자꾸만 글이 산문처럼 진행되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네가 오리를 낳았잖아

여름 에어컨 아래서

알을 품을 온기는 손바닥에 없었고

오리는 그렇게 손끝에서 태어났다


네가 오리를 키워냈잖아

너는 그날 내 옆자리를 자처하고는

추위에 떨면서도

어떻게든 행복해 보이는 오리를 그려냈다


두 창작가의 건조한 손이 스쳤다

그렇게 손끝에서 부화한

오리는 아직도 울고 있을까

질문하는 것이다


경사랑 해수면이 결국 오리의 활주로였다는 거 알아?

오리는 무럭무럭 자라서 모래사장을 달리다가

그만 수평선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이제 전설이 된 오리를 볼 수 없다


이 시에 네 이름을 숨겨놓았다는 고백

꿈나라는 오리의 활주로가 아니다

우리만 아는 행간 걸침

이제 시가 다르게 읽힌다


나는 문제집을 다시 펼쳐서 우리의 오리 이야기를 읽는다. 내가 휘갈겨 쓴 이야기는 너와 오리의 앙증맞은 교감으로 성립된다. 흑연 사이의 공간에는 글자만으로는 전부 드러나지 않는, 우리만이 공유하는 순간의 기억이 담겨 있다. 네가 오리를 그리기 전에 나는 이미 오리가 높임의 대상이 아님을 명시한 바 있다. 가만히 보면 내가 그은 표식이 오리를 향해있고. 나 때문에 오리가 슬퍼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네가 오리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원히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서러워하는 오리에게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해주어서. 행복하고 싶은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해 주어 고맙다. 나는 집에 와서 네게 문자를 보낸다. 


화살표를 잘(못) 보면 오리가 높임의 대상이 아니라서 슬퍼하는 것 같다. 오리는 창조주인 네 소유물이므로 간접높임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싶다. 그렇지만 높임 표현을 쓰기엔 우리는 이미 친구인걸. 


나는 마지막 문장을 강조하고 싶었지만 너의 답장은 그저 웃는다. 그렇지만 나 역시 그것을 원했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추억에 빚진 사람이므로. 우리의 미래가 웃음으로 가득 차길 바란다. 너는 이 소설을 읽으며 오리 두 마리를 외친다. 오늘 밤 너의 꿈에는 오리가 가득하다. 




P.S. 소설치고 서술이 시적인 이유는 시치고는 문장이 산문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루 만에 쓴 소설은 갓 태어난 오리같이 수필적인 면이 있습니다. 


(실화에 기반한 작품이므로 친구의 허락을 받은 후 게시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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