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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아이

  • 작성자 고래
  • 작성일 2026-05-31
  • 조회수 101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한 학생은 상담동아리 회장이었다. 동아리의 질감이 느껴졌다. 나무 원목에 시원하면서도 푸르스름한 느낌, 선생님의 팔에서 느껴지는 비릿함. 쪽 빠는 듯한 소리에 붙어 있는 뾰족함에 학생은 손가락이 찔린다. 의자에 가만히 앉은 채로, 총성이 들리고 바지가 벗겨지며 학생은 허억허억 숨을 토한다.

학생은 이면으로 하여금 그 사람이 되어감을 느꼈다. 하지만 학생은 울었다.

학생은 말한다.

"일단 오늘은 좀 같이 다니시죠."

한 남자는 구로에 살고 있었다. 그 남자에겐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 속에 무언가 살고 있었다. 늘 그랬다—사람을 보면 그 뒤에 사는 것이 먼저 보였다. 숨을 들이키는 소리, 무언가 말하는 소리. 남자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안 들리는 척, 정상인 척을 했다.

다들 그랬다. 제 뒤의 것은 못 듣는 척, 안 보는 척.

남의 뒤는 그렇게 잘 보이는데, 정작 보는 쪽의 뒤만은 보이지 않았다. 한 번도 돌아본 적이 없었다.

그때 버스가 흔들렸다. 가방에서 역사 교과서가 나왔다. 이면으로 들어감을 느꼈다.








*








이면에는 연표가 없었다.






한 남자의 어머니가 그 연표 없는 이면 속에서 태어났다. 남자의 어머니는 산골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어머니가 살고 있던 마을은 현월 마을이라는 곳으로, 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외딴 마을이었다. 새로운 체제와 새로운 기술을 맛보지 못한 채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물레방아를 돌리고, 화폐 또한 도선이 썼던 화폐를 사용했다. 분명 마을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어머니의 옷엔 위안부라 적힌 일본어가 있었다.

한 남자의 어머니의 옆엔 여러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일본 군복을 입은 채로, 아니 벗은 채로 어머니를 성희롱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모습은 어느새 조그마한 아이가 되었고, 아이의 앞엔 자신의 어머니가 겁탈당하는 장면이 보였다. 아이의 눈에선 닭똥 같은 눈물이 나왔다. 군인들이 다가왔다. 그 다음은 별이 안다.

아이는 그날 이후로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안쪽에서 밤하늘의 별을 셌다. 하나, 둘, 셋. 끝까지 세어도 아침은 오지 않았다.

해가 뜨지 않았고, 여전히 하늘엔 달이 떠 있었다. 달이 떠 있어 차분한 분위기가 이 마을을 사로잡는데, 한 남자의 형도 그곳에 있었다.

형은 어른이었고, 군복을 입고 있었다. 형은 바로 앞에 보이는 상사에게 인사하며 작전 보고를 했다.

한 남자의 형은 북한으로 침투했다. 형은 군복을 입고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산을 타고, 백두산을 넘어 북한에 들어간 형은 총성이 들리더니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달은 여전히 밝았다. 달은 학교를 비췄다.

한 남자 또한 그곳에 있었다. 한 남자는 군인들에게 총으로 협박받고 있었다. 한 남자가 있던 곳은 마을의 작은 학교였으며, 마을 정중앙엔 전두환이 그려져 있었다.

학교에서, 한 남자는 군인에게 총을 맞았다.

팔에 한 발.

남자는 쓰러졌다.






*







아까, 이면으로 들어감을 느낀 주체는 누구였던가. 그 근처에 누가 있었던가. 키 195센티에 몸무게 100킬로의 한 학생이었다. 학생은 정신을 잃었다. 이면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학생은 이면으로 들어간 게 처음이었다. 언제나 이면을 보기만 했을 뿐이다. 학생은 이면에서 정황만을 보았다. 맥락은 언제나처럼 보이지 않았다. 저 정황들은 이해가 갔지만, 선생님의 어머니는 어쩌다 추행을 당했으며, 형은 어쩌다 총을 맞아 죽었으며, 선생님은 어쩌다 팔에 총이 박힌 것일까. 학생은 선생님의 옷을 잡았다. 선생님은 당황한 듯 눈썹을 찡그렸지만 학생이 빨랐고, 학생의 손바닥 아래, 선생님의 소매 안쪽에서 굳은 자국이 만져졌다.

"쌤…그 쌤이 언제적…분이시죠,"

"알아서 뭐하게 이 한국사 석차 꼴등아."

학생은 단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선생님의 소매 위로 학생의 손이 여전히 얹혀 있었다. 손바닥에 달빛이 닿았다. 학생이 무언가 말하려 입을 움직였을 때, 버스 도착을 알리는 안내음이 들렸다. 버스 창에 고등학교의 전경이 비쳤다. 학생은 버스카드를 꺼내고, 선생님을 잠시 보더니, "이제부터 역사 잘 들을게요. 선생님 이면이 궁금하거든요."라며 내려 교실로 달려갔다.








*







교실로 들어온 학생의 눈에 한 아이가 보였다. 한 아이의 이름은 이서현이었고, 과거 농구를 하다 다리 부상을 입은 후 쉬고 있는 여자아이였다. 박지우라는 아이가 보였다. 살이 찐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아이였는데, 과거엔 예뻤다 한다. 학생은 자리에 앉는다. 자리에 앉아 눈을 감는다. 학생은 선생님의 눈을 보았던 때를 기억한다. 그렇게까지 자세히 보였던 적은 처음인 듯, 여전히 식은땀이 이마에 묻어 있다.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학생은 밑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자신의 다리를 보지 않고 정면만을 봤다. 정면만 주시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을 쉬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교실이 꽉 찼다. 각자의 이면이 학생의 머릿속으로 솟구쳤다. 논리는 없었고, 헤집는 것뿐이었다.

김서연이준호박지민최유진정다은강민준윤서현임재원한소희오승우신예린.

눈을 감는다. 각자의 과거가 보였지만 그 일이 어째서 일어났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서현이 어쩌다 농구를 시작했는지, 어떤 어린 자극이 그 아이를 그쪽으로 밀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무언가가 어째서 일어났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은. 그러고 보니 학생은 한 번도 자신의 맥락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몸을 본 적이 없었다.

학생은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문이 열렸다. 선생님은 역사 교과서를 들고 들어오셨다.

"아 제발…"

정신을 잃었다. 이면으로 다시금 들어갔다.









*










이번엔 정황이 아니었다. 전부가 한꺼번에 왔다. 총성은 어머니가 태어나는 방의 것이자 형이 쓰러지는 능선의 것이자 광장의 것이었다. 군홧발이 마룻바닥과 아스팔트와 백두산의 눈을 동시에 밟았다. 팔에 한 발. 누구의 팔인지는 별이 안다. 한 사람이 위안부였고 이산메였고 권택이었고 련택이었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서산에서 태어난 한 여자아이가 보였다. 여자아이의 첫 울음은 엄마의 손에 막혔다. 깨어나고 보니 여자아이의 주변에선 소음이 짙게 들렸고, 그 소리는 여자아이로선 처음 듣는 미지의 소음이었지만, 여자아이의 엄마로선 분명하게도 아는 총성이었다. 여자아이의 엄마는 숨을 쉬는 것도 잊은 듯 안색이 새파래지고 있었다. 이윽고 총성이 멈췄다. 여자아이의 울음도 멈췄다.

엄마는 여자아이를 업고 산골 마을로 달려갔다. 여자아이는 울지 았다. 엄마는 그저 아이에게 이산메라는 이름을 주고 아이의 찢어진 옷을 수선하기 위해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바느질을 유심히 보았다. 엄마는 늘 방에서 바느질을 했고, 그러다 손에서 피가 흘러 쪽 빨아먹는 모습도 보았고, 피가 흐르는 것도 보았다. 여자아이는 그 후 엄마의 바늘을 몰래 꺼내 자신의 손을 찔렀다. 쪽 빨았다. 푸른 기운이 맴돌았고,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군홧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일제히 들려와 이산메의 몸을 움츠리게 했고, 엄마를 움츠리게 했고,

다음은 아까도 봤듯 별만이 알았다.

이산메의 눈이 삭막해졌다. 영혼이 빠져나간 듯 허공을 보다가, 시선을 가득 메운 한 어린 남자아이를 보았다. 남자아이는 이산메를 안아줬다.

남자아이의 이름은 신대진이었다. 신대진의 맥락이 보이려 할 때, 시점이 바뀌었다.

이산메는 출산을 하고 있었는데 지켜보는 모두가 조마조마하고 있었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들 중 신대진이 있었다. 신대진은 손을 합장하고 하느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발 모두 잘 살게 해달라고. 어떤 아주머니가 남편분은 좀 나가 계셔라 말했고, 신대진은 밖으로 나가 안절부절못하며 걸음을 이리저리 옮겼다. 이산메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신대진은 문을 붙잡고 문을 열려 했으나 참았다. 30분 후, 문이 열렸다. 멋들어진 사내아이 둘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고, 한 아이는 울지 않았다. 이산메는 잠들었다.

신대진은 그 세 명에게 신권택, 신연택, 신련택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 셋 중 운 아이는 둘째 신연택과 막내 신련택이었고, 울지 않은 아이는 맏이 신권택이었다. 두 아이는 사회에 살아 있음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증명했고, 한 아이는 증명하지 않았다. 그것이 마치 그를 증명하듯이, 두 아이는 항상 싸우고 다녔다. 반면 한 아이는 집에서 책을 보고, 성당에 나가 기도를 했다. 한 아이는 성당이라는 비현실에 자신을 위탁하며 사회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성당 역시 사회의 일부분, 성당에선 자신들이 과거 박해되었었다고, 그러니 그 분들을 위해 추모하자고 했다. 한 아이는 어째서 그분들이 무슨 일을 하다 돌아가셨는가 라는 질문을 맞닥뜨리게 됐고, 그렇게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역사 공부를 하며 전교 1등을 하며 살던 어느 날.

그날은 대학교였을 것이다. 세 아이는 모두 갈라졌고, 둘째 연택은 광주로, 막내 련택은 서울로, 맏이 권택은 시골에 남았다. 그리고 광주사태가 터졌다. 신권택은 아버지 신대진과 어머니 이산메를 모시고 광주로 갔다.

둘은 광주에 발을 디디자마자 통곡했다. 시신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실제로 발견하지 못했다. 신권택은 차를 돌려 나가려는 도중 팔에 총 한 발을 맞았다. 그 후는 그냥 죽기 살기로 광주를 빠져나갔으며, 그 후 가족들은 광주 아무 데서나 제사상을 올리고 절했다. 신권택은 이때 울지 않았다.

시점이 바뀌었다. 신련택이었고, 신련택은 백두산을 등반하고 있었다. 숨이 벅찬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내쉬었다. 땀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으나 신련택의 눈은 또렷했다. 백두산 루트로 북한을 가려, 숨을 죽이고, 기척도 죽이며, 밥도 먹지 않으며 북한에 도착했다. 북한에 도착해선 신련택은 북한 군인이 되었다. 군인이 되어 여러 정보들을, 은밀하게 백두산 천지에서 주고 받았다. 백척간두진일보라 했던가. 신련택은 망설임이 없었다.

또 다시 시점이 바뀐다.

신권택과 이산메와 신대진.

그들은 신련택의 유골함을 보고 있으며, 신대진과 이산메는 울고 있었다. 그러나 신권택은, 울지 않았다.


신권택의 모습이 보였다. 평범히 수업하고, 아이들과 수다 떨고, 정치 얘기 자주 하던 박식한 선생님. 그 이면엔 이런 것이 있었다. 신권택 선생님은 여전히 팔에 총알이 박혀 있을 것이고, 선생님의 코에는 유골함의 냄새가 날 것이다. 그러니 역사 교사였다.

학생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195센티의 몸이 좌석에서 접혔다. 다리가, 배가, 팔이, 모두 거기 있었다.


학생은 현월 마을의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산메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학생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곳엔 높이 솟은 깃발이 하나 있었다. 깃발에는 대한민국 국기가 있었다. 학생은 그곳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퀴퀴한 공기에 기침이 나왔으나, 들어가자 들리는 방울 소리에 멈췄다.

누군가가 말했다.

"니 과거가 기억이 안 난다고?"

네, 라 대답하려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성대가 경직됐다. 한복을 입은 여자가 보였고, 그 여자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첫 번째 도약에서 현월 마을이 울렸고, 두 번째 도약에선 현월 마을에 강풍이 불었으며, 세 번째 도약 때 현월 마을은 사라졌는데 학생은 자신이 뛴다고 생각했다. 숨이 헐떡였기 때문이다. 공간은 빈, 흰 공간이 되어 었다.

그곳엔 갓난아기 하나가 누워 있었다.

울지 않는 아기였다.

학생은 그 아기를 알아보았다. 학생은 아기 옆에 무릎을 꿇었다.


학생은 아기 옆에 무릎을 꿇었다.

아기는 울지 않았다.

학생은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학생은 손을 뻗어 아기를 안아 들었다.

아기는 끝내 울지 않았다.

대신 학생이 울었다. 아까 울었던가?

울음은 살아 있었고 두 번은 무엇인가












**













이면 안에 사는 누군가가 있다. 나는 누군가를 본다. 나는 상담사이며 오늘 마주한 대상은 현월 마을 주민이었다. 이름은 이범수라 하는데, 왜 그 이름인지는 나도 몰랐다. 나는…", 나는 이범수의 내면으로 들어갔다.

새하얀 아이가 보인다.

끌어안는 한 사람이 보인다.

이범수인가.

이범수는 저 상태 그대로 멈춰 있다. 눈물로 세상에 태어났지만 태어나기만 했을 뿐 움직이지 않는다. 육체는 영혼을 잃었다.


내 어깨를 만지는 손길에 이면에서 나온다. 이범수의 엄마와 아빠다. 현월 마을은 무슨 마을인지 모르겠다만

현월 마을은 현월 마을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나는 둘에게 선고한다.

"아이가 너무 귀엽습니다."

아이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이범수의 입에서 푸른 음료가 흘렀다. 내 입에서도 푸른 음료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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