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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 작성자 불협화음
  • 작성일 2026-06-01
  • 조회수 80

0. 

품속에서 고이 접힌 편지를 꺼내 쥔다. 반대편 손으로 라이터를 켜 편지의 끝자락에 가져다 댄다. 편지는 노을과 함께 붉게 물들며 자취를 감춘다. 바람은 재를 싣고 바다로 향한다.

“벌써 3년이구나.”

3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나도 버틸 만큼 버텼지.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벗는다. 발갛게 언 발을 이끌고 천천히, 그러나 미련은 없이 바다로 향한다. 찰랑이는 바닷물이 느껴진다. 몸은 점점 가벼워지고, 다리는 부유한다. 이윽고 가라앉는다. 이제 됐어. 

“뭐가 돼?”

들릴 리 없는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를 타고 들어와 제 머리를 맴돈다. 

눈을 뜨자, 그녀가 있다. 



1.

무슨 정신으로 육지에 되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연신 기침을 해대며 물을 뱉었다. 씁쓸한 맛이 입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사뿐한 발걸음으로 내 곁에 다가와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러게 왜 갑자기 그런 짓을 하고 그래.”

“너… 왜 이제 와?”

콧잔등이 시큰거리더니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뭐가 좋은지 눈물을 훔치는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왜 웃어….”

“하나도 안 변했다 싶어서.”

네가 사라진 이후로 내 시간은 멈췄으니까. 목 끝까지 들이찬 말을 삼킨 나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품은 차갑고 건조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쓸 부분이 아니었다. 그녀가 내 앞에 존재한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말없이 한참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녀는 내 어깨를 잡고 조심스레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집에 갈까? 너 이러다 얼어 죽겠어.”


축축하게 젖은 옷가지는 상상보다 무겁고 차가웠다. 사지에 모래주머니를 한가득 달아둔 듯했다. 옷을 벗어 던져 버리고 싶은 욕망을 애써 억누르며 지하철을 탔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깟 시선이 중요한가. 2시간을 달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 물을 틀었다. 따끈한 물이 몸을 적신다. 피로가 씻겨나간다. 샤워를 마친 뒤 거실로 나오니, 그녀는 온데간데없었다.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역시 환각이었나. 아까 그대로 죽어야 했는데. 어리석은 실수를 책망하며 제 머리를 때리고 있자, 반대편 끝 복도 문이 열리며 그녀가 고개를 내밀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 무슨 일이야?”

“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안도감과 동시에 밀려온 민망함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3년이나 지났는데, 그대로구나~”

그녀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방이 신기한지 이리저리 살펴보다 침대에 풀썩 누웠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왜 온 건지 알아?”

“몰라. 이유가 뭐든 상관없어. 지금 내 옆에 네가 있는걸.”

“하하, 너도 참…. 내가 버릇을 잘못 들였구나.”

“네가 이렇게 만든 걸 어떡해.”

“뭐, 됐고. 본론부터 말할게. 난 요즘 수호천사 일을 하고 있어,”

“수호천사?”

“응. 나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게, 지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돕는 거야. 자세한 건 기밀이라 말해줄 순 없고.”

네가 왜 그렇게 됐는지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는데.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맡은 프로젝트가 성황리에 끝나서 3일 휴가를 받았거든. 그래서 추억팔이도 할 겸 바다에 갔는데, 네가 그 짓거리를 하고 있지 뭐니? 원래 수호천사는 사람 눈에 띄면 안 되는데, 내가 널 어떻게 가만두겠어. 그래서 뭐, 이렇게 나타났지.”

“정리하자면, 휴가받아서 쉬려고 했는데 내가 죽으려고 해서 내 앞에 나타난 거다?”

“빙고~”

음, 사실 수호천사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누가 천사의 존재를 믿겠는가.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그건 생각하지 말자. 침대 모퉁이에 걸터앉아 그녀의 머리칼을 만지작댔다.

“이렇게 보니까 좋다. 계속 여기 있으면 안 돼?”

“안타깝지만, 휴가는 3일뿐인걸. 곧 하루 지나가네. 게다가 지금 네 앞에 모습을 보인 걸 들키기라도 하면 난 바로 징계위원회에 넘겨질 거야.”

“혹시 내가 죽으면 널 만날 수 있어?”

“그런 생각은 하는 거 아니야.”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나를 끌어당겨 제 품에 눕혔다. 일단 자자. 오랜만에 느낀, 익숙한 손길에 편안함을 느끼기도 잠시,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녀의 허밍 소리가 잔잔히 들렸다.



2.

“냉장고가 왜 이렇게 텅텅 비었어?”

“평소에 밥을 잘 안 해 먹어서….”

“이건 뭐야? 대체 얼마나 방치했길래 음식이 원형도 없이 썩었어? 이런 건 좀 버려!”

“이따 내가 버릴게, 일단 거기 둬….”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했다. 모처럼 그녀의 집밥을 먹을 기회를 놓친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녀는 찬장을 뒤적이더니 2개 남은 라면을 꺼내 끓이기 시작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면을 넣는 모습을 보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내 바람과 달리 라면은 5분 만에 완성됐고,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밥 좀 잘 챙겨 먹어. 나 없다고 이렇게 살면 어떡해.”

“난 밥 할 줄 모르는 걸 어떡해. 음식 레시피라도 남기고 가든가 했어야지.”

“그렇게 갈 줄 누가 알았겠어.”

일순간 정적이 흐른다. 나는 진부한 농담으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애써 띄우며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 싸가지 없는 상사는 어떻게 됐어?”

“몰라. 나 거기 잘렸어.”

“정말? 왜, 그 자식이 너 자른 거야?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그놈 면상을 한번 갈기고 왔어야 하는 건데, 아오….”

“너 죽고 무단결근을 많이 했더니 잘렸어.”

“아, 음. 미안.”

이러다가 체하겠네. 일단 먹자. 남은 라면을 조용히, 빠르게 처리한 우리는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아, 약. 까먹을 뻔했다. 침실 옆 탁자에서 약봉지를 가져와 뜯고, 입에 털어 넣은 뒤 물과 함께 삼켰다.

“이건 무슨 약이야? 어디 아파?”

“정신과에서 타온 약이야.”

무슨 말을 해도 왜 자꾸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그동안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으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곤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 죽고 있었던 일, 말해줄게.”


*

유독 바람이 거세던 겨울날이었다. 퇴근길은 평소보다 막혔고, 휴대폰은 방전되어 매일 걸려 오던 전화를 받지 못했다. 걱정이 됐던 것인지 그녀는 집 앞 사거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 건너편, 내가 버스에서 하차하는 것을 본 그녀는 손을 흔들며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나를 보며 건널목을 건너는 그녀가 있었다. 오랜만에 나온 마중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뛰어가던 순간, 도로 교통표지판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정확히 그녀 위로. 코트에 피가 흩뿌려졌다. 즉사였다. 그렇게 그녀는 스물다섯의 나이로 비명횡사했다.

그 뒤로 1년간은 자세한 기억이 없다. 울다가 쓰러지는 것을 반복했던 것 같다. 반복되는 무단결근에 회사는 잘리고, 냉장고에 있던 식재료는 썩어 문드러졌다. 조용히 좀 하라며 문을 쾅쾅 두드리던 옆집 사람은 내 몰골을 보곤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사람에겐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마다 119에 신고해 빈사 상태인 나를 여러 번 살렸으니. 2년째에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다. 이 괴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나마 죗값을 받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았으며, 잠은 사치라 여겼다. 나를 좀먹으며 돈을 모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그녀의 유골함을 봉안당에 안치했다. 그 후 매주 봉안당에 갔다. 내가 그녀를 죽였다는 사실을, 나 때문에 그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어제, 그녀가 죽은 지 3년째 되던 날,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그녀 곁으로 가려 했다. 

*


장황한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아름아, 왜 나를 기억했어. 그냥 잊고 살아갔어야지. 훌훌 털고 잘 살았어야지.”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어. 널 사랑했는데, 어떻게 너 없이 잘 살아….”

“나를, 사랑했어?”

“응, 나보다 훨씬 더.”

내 손을 쥔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고개를 들자,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무어라 말하고 싶은 듯 입을 움직이더니, 이내 입을 닫고 나를 껴안았다. 그녀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왜 그걸 이제야 말해….”

그녀의 말은 거기서 끝났지만, 미처 말하지 못하고 억누른 뒷말은 그 후 행동으로 알 수 있었다. 아, 너도 나를 사랑했구나. 우린 서로 사랑하던 사이였구나.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우리는 달라졌을까.


이다음은 평범하게 지나갔다. 이전처럼 같이 소파에 앉아 떠들고, 산책하다 놀이터 그네를 타고, 자주 가던 파스타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녀 방 침대에 누워 미처 다 보지 못했던 드라마 시리즈를 정주행했다. 평화로운 하루였다. 이 평화로운 시간이 영원했으면.

 “은솔아, 다음 휴가 때도 이렇게 와주면 안 돼?”

그녀는 오묘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쉬곤 답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다음 휴가 때는 너도 천국에 있을걸. 이번엔 운이 좋아서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쉬었지만, 선임한테 물어보니까 보통 한 세기에 한 번씩 쉰대.”

“천국이 그래도 돼? 완전 블랙 기업이네.”

“그러게. 난 죽어서도 블랙 기업을 다니는구나~”

“가서 너 보려면 착한 일 많이 해야겠다. 천국 가서 너랑 같이 일해야지.”

“지금처럼 방도 같이 쓰고?”

“응. 평생 옆에 꼭 붙어있을 거야.”

“100살 전에 오면 안 받아줄 거니까 오래 살아.”

“헐, 운동 열심히 해야겠다.”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둘째 날이 지나갔다.



3. 

“우리 바다 가자.”

일어나자마자 내뱉은 첫 마디가 저거라니. 부스스한 머리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갑자기?”

“응. 너랑 바다에 가고 싶었어. 3년 전에, 우리 약속했었잖아.”

아, 구석 한편에 깊이 박아두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녀가 죽기 며칠 전, 내게 목도리 뜨는 법을 알려줬었다. 양손을 잡고 이건 겉뜨기, 이건 안뜨기, 하며 천천히 교차하던 것이 생각난다. 이 목도리를 다 뜨면 바다에 놀러 가자 했었지, 아마. 나는 기지개를 켜곤 침대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옆 세 번째 서랍을 당기니 뜨다 만 목도리가 고스란히 놓여있다. 연분홍빛을 띠는 그것은 온전히 그녀의 취향이었다. 조심스레 바늘과 실타래를 들고 다시 그녀 곁으로 가 앉았다.

“아직 목도리 다 안 떴어. 지금 마저 뜰래.”

“그래도 꽤 떴네, 오늘 안엔 하겠다.”

나는 손을 멈춘 채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부담스러운 시선에 그녀는 내 쪽을 돌아보곤 입을 열었다. 

“얼른 떠, 늦기 전에 바다에 가야지.”

“나 뜨개질 까먹었어.”

뭐? 황당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제 품으로 끌어당겨 백허그 자세를 하곤 양손을 잡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3년 전 그대로였다. 너무 힘주진 말고… 나긋한 목소리가 귀 옆에서 속삭인다. 등에 온기가 느껴졌다면 더 좋았을 텐데. 천사는 따뜻해도 되는 거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녀는 얼굴을 내 어깨에 얹곤 집중하지 않으면 알려주지 않겠다며 툴툴댔다. 나는 미소 지으며 그녀의 손길을 따랐다. 

완성된 목도리는 꽤 도톰하고 길었다. 목도리를 이리저리 확인하고 그녀에게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원래 네 거였어. 그 말을 들은 그녀의 표정이 한층 환해졌다. 뒤에 후광 보이는 것 같은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집 밖은 겨울임에도 그리 춥지 않았다. 

“버스가 언제 오지….”

“버스 타고 가게?”

“응, 지하철역은 멀어서.”

“그거 말고 더 좋은 방법 내가 아는데.”

“어떤 거?”

“잠깐 눈 감아볼래?”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눈을 감자, 무언가 세게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어왔다. 뒤이어 그녀의 팔이 나를 감쌌다. 몸이 점점 들렸다.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깜짝 놀라 버둥대자, 걱정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팔다리로 그녀를 꽉 옭아매니 손끝에서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녀가 날갯짓하자, 붕 뜨는 느낌과 동시에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질주하는 열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내가 비명을 지르자 뭐가 그리도 좋은지 숨이 넘어갈 정도로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


  2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를 1시간 만에 날아왔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중간에 힘이 빠지면 떨어질까 봐 힘을 꽉 준 탓에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잔뜩 엉킨 머리카락을 정돈한 뒤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음, 그래. 네가 좋으면 됐지 뭐.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모래사장에선 예쁜 모양 조개껍질을 찾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을 보며 다니다 목에 쥐가 나 한바탕 난리가 났다. 목을 대가로 광택이 있는 연한 하늘색 소라를 찾아 서로의 귀에 대보기도 하였다. 정말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주운 조개껍질들은 근처에 굴러다니던 유리병에 모아두었다. 

“집에 가져가야지.”

“병 안 깨지게 조심해. 손 다칠라.”

유리병 한가득 조개껍질을 담은 뒤에는 밀려오는 파도에 맞춰 바다 쪽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나오길 반복했다. 재미있었지만, 마지막에 큰 파도가 덮치며 발목 위까지 쫄딱 젖는 바람에 덜덜 떨며 따뜻한 곳을 찾아 뛰어갔다. 사람이 북적이는 곳으로 가니 야시장이 열려 있었다. 제일 가까운 가게로 들어가 몸을 녹이는 김에 배도 채우자며 매운탕을 시켜 먹었다. 절반 정도 먹었을 때쯤 그녀는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술을 부르는 맛이라나 뭐라나. 천사가 음주해도 되는지 묻자 말없이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식사를 마친 후 부른 배를 두드리며 소화 겸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저거 폭죽인가?”

편의점 입구에 쌓인 폭죽, 그 위에는 “50% 할인”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우리는 고민할 것도 없이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가 폭죽을 구매했다. 모래사장으로 달려가 폭죽 포장지를 뜯고, 땅에 잘 고정한 뒤 불을 붙였다. 잠깐의 정적 후, 펑 소리를 내며 첫 불꽃이 하늘을 향해 터졌다. 잇달아 여러 발 발사되는 폭죽에 아이들처럼 꺄르륵대며 불꽃을 바라보았다. 선향 불꽃은 양손에 하나씩 들고 구경했는데, 사방으로 반짝대는 모습이 별을 닮았다고 말하자 그녀는 다시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라 이곳에서 보는 불꽃은 더 별 같냐고 물었다. 거리가 멀어 불꽃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냥 그렇다고 답하자 그녀는 공중에서 세 바퀴 연속 회전이라는 기묘한 묘기를 보여주었다. 로만 캔들을 잔뜩 들고 다시 날아가 불꽃놀이를 보여주겠다는 것을 말리느라 애먹었다. 

“밤이 늦었는데, 그냥 근처에서 자지 않을래?”

“그럴까? 난 좋아! 아침에 다시 여기 올 수도 있잖아.”

“근처에 모텔 있나 찾아봐야겠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모텔이 있어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도착한 뒤 방 열쇠를 받고 문을 열어 침대에 눕는 순간 기절하듯 잠들어 버렸다. 무척 편안한 꿈을 꾸었다.


“아름아 일어나. 곧 해가 떠.”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해가 뜨면, 그녀의 휴가는 끝난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은솔아,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어제 갔던 바다, 거기 다시 가고 싶어.”

얘가 원래 바다를 이렇게 좋아했나? 의문이 들었지만, 시간이 부족했기에 대충 세수만 하고 서둘러 체크아웃했다. 우린 서로 손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이윽고 바다에 도착했다. 하늘은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이 열렸다.

“아름아, 저번처럼 견딜 수 없을 땐 바다에서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려. 우리의 행복했던 순간을 바다에 대한 마지막 기억으로 삼아. 그것에 죽음을 덧씌우지 마.”

그녀는 그 말을 내뱉곤 자리에 털썩 앉아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나도 그녀 곁에 살며시 앉았다. 비릿한 공기가 폐부에 들이친다.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저 멀리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한다. 

“정말 행복했어, 그렇지?”

“응. 정말로.”

“이제 10분 남았네.”

“그러게.”

바다는 고요히 춤춘다. 파도는 넘실대며 제 발을 간지럽히다 도망가길 반복한다. 

“있지, 나 소원 하나만 들어주면 안 될까?”

“…안돼. 너 무슨 소원 빌지 다 알아.”

“하하, 눈치 하나는 빠르네. 그래도, 내 마지막 소원인데. 안돼?”

“너는 마지막까지…. 3분, 3분만 기다려 줘.”

내가 네 부탁을 어떻게 거절하겠어.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내린다. 뺨을 잡고 온기를 전한다. 천천히 입을 맞춘다. 한 명분의 심장 소리를 그녀에게 바친다.


“준비됐어?”

“준비됐어.”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그녀는 평온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름아. 나를 놓아줘.”

“나는 이곳에 두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참 어려운 부탁이네…. 그래. 네 소원, 들어줄게.”

그녀의 눈도 촉촉이 젖어간다.

“나 없다고 밥 거르지 말고.”

“응.”

“죽지도 말고.”

“응.”

“내 방도 다 치우고.”

“…응.”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가득 담는다. 그녀는 점점 투명해진다.  

“사랑했어.”

“나도.”


허공에서 목도리가 떨어진다.

땅에 떨어진 목도리를 주워 목에 맸다. 포근하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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