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 바, 안녕만 하세요.
- 작성자 궁예
- 작성일 202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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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메트로칸 빌딩 지하 2층의 맨 끝 쪽에는 ‘안녕만 하세요.’라는 레코드 바가 있다. 검은색 페인트로 대충 칠해진 문을 열면, 고막이 먹먹해질 정도로 크게 틀어진 재즈 음악과 여러 사람들의 말소리가 아슬아슬하게 그 좁은 공간을 흘러넘치지 않으며 넘실댄다. 주변을 둘러보면 오래된 고동색 벨벳으로 덮인 벽 위로 손바닥만 한 전구들이 길게 이어진다. 누군가가 죽어가기 직전에 뱉어내는 숨결같이 옅은 빛이다. 그 전구 빛을 볼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 그제야 무겁고 엄격한 지상의 유현준을 떼어놓고 왔다, 이런 불순한 마음이 불쑥 튀어나와 숨이 제대로 쉬어진다. 그러고는 마치 유체 이탈한 영혼처럼 바를 어슬렁거린다. 바는 매일 오후 여섯 시에 문을 열었다가 새벽 세 시에 문을 닫는다. 나는 이곳을 일주일에 한두 번, 혼자 방문한다. 문이 열리면 주인 형제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인사를 건네고 나는 취기가 슬쩍 올라와 볼이 따스운 상태에서 바 테이블에 앉아 한 잔을 시킨다. 가장 좋아하는 건 버번, 캄파리, 베르뭇을 비슷한 비율로 섞어 내주는 불바디에. 묵직한 느낌의 버번이 목구멍을 지나가면 허브 같은 쌉쌀한 향과 기분 좋은 단내가 코끝을 스친다.
형제 중 칵테일을 제조하는 건 검은 셔츠에 검은 청바지를 입은 쪽뿐이다. 다른 쪽은 하얀 티셔츠에 회색 스웨트팬츠를 입고 있는데 지금까지 지켜본 걸로 봐서는 할 줄 아는 게 계산과 청소밖에 없는 것 같다.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저 인터넷에서 ‘모두의 안녕을 비는 형제가 운영하는 레코드 바’라는 단출한 소개 글을 봤을 뿐이었다. 형제는 필요한 말을 제외하고는 사적인 이야기를 일절 꺼내지 않는다. 검은 쪽은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네그로니 어느 분이시죠? 롱티요? 네 알겠습니다. 반면 하얀 쪽의 대사는 이렇다. 십칠만 팔천 원입니다. 카드 이쪽에 넣어주시면 됩니다. 바텐더는 물론 타인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기에, 나는 이 바가 편하다. 이곳에 오면 비로소 투명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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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나와 눈이 마주쳤고 죄를 지은 듯 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서로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새벽 세 시 십칠 분, 그들은 구석에서 죽은 듯 잠자던 나를 발견하지 못한 채 방금까지 서로의 등과 얼굴을 어루만졌다. 모두가 떠나고 바에는 나와 그들, 셋뿐이었다.
오늘 회식은 특히 길었다. 일찍 시작했고 늦게 끝났다. 부장이 내내 앓는 소리를 내며 고생하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서였을 수도 있고 몇 년째 총각이었던 앞자리 김 대리가 마침내 결혼한다는 소식을 부서 전체에 돌려서였을 수도 있다. 술을 마신 사람들은 모두 들떴고 웃었고 시끄러웠다. 지금껏 회식 자리에서 나를 쉽게 놔주던 노처녀 팀장은 무슨 일에서인지 벌게진 얼굴을 찡그리며 알코올 찌든 냄새 가득한 목소리로 오늘은 무조건 유 주임을 삼차까지 데려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평소보다 훨씬 과음한 상태로 두 시가 넘어서야 나는 바에 도착했다. 부, 부바지에. 테이블에 앉자마자 한껏 매듭진 발음으로 술을 시켰다. 늦은 시간이라 말소리가 덜했고 그만큼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렸다. 재즈와 함께 지하 유현준의 영혼도 함께 울렁였다. 칵테일이 나오고 잔 속의 오렌지 껍질을 보자 나는 그 여자가 떠올랐다. 야근을 마치고 앞자리 김 대리와 고깃집에서 단둘이 술을 마셨을 때, 그는 자기 약혼자의 사진을 보여줬었다. 이쁘지, 안 그래? 발레하던 사람이야. 예전에는 콩쿠르? 그런 데서 상도 타고 그랬어. 사진 속 여자의 볼은 오렌지색이었다. 그리고 볼 모공이 뿅뿅 뚫려있었다. 큰 모공을 가리려 두꺼운 화장을 했을 것이었다. 오렌지 껍질과 오렌지색 볼. 오렌지 껍질과 오렌지색 모공.
안녕만 하세요. 계산을 마치고 바를 나가기 전,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형제를 향한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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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좋네요! 좀 더 길게 쓰신 글도 보고 싶어요 잘 읽었습니답
@서벽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