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 작성자 김케이크
- 작성일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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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 페트병 안에서 드러누웠다. 남자는 식감이 없는 이로 얼음을 깨부쉈다. 너덜너덜한 점막은 충치로 문드러진 지 오래였으므로 시큰한 통증은 수반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깨물은 것이 페트의 일부였음을 깨닫는다. 이렇다 할 감각이 없었다. 남자는 팔목에 힘을 주었다. 수도권의 노선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힌 혈관이 징그럽게 튀어올랐다. 남자는 낱말이 굴러가는 감각이나 감정 따위의 그런 무연고한 것들을 감지했다. 혀가 마법을 뱉어내고 있었다. 바늘은 바늘이 아니다. 주사는 주사가 아니고… 어깨 아래의 팔뚝을 투명한 끈으로 동여매는 동안 그는 한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의 말을 쫒는다. 언어가 창작성을 죽이고 있어. 바둑 인공지능이 일정 수준에 올라선 순간부터는 기존 프로기사들의 기보를 학습할 필요가 없어졌다지. 기보가 말이고 문자인 거야. 사람이 언어로 사고하는 한, 프로그래밍 문자에 갇혀 연산하는 컴퓨터와 다를 바가 없어. 볼트와 나사가 개성을 죽이는 거야. 유연한 관절에는 그에 걸맞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그럼 무엇이 필요하단 것일까. 가끔은 내가 저 인간처럼 인본주의 사상에 젖어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가도, 그럼 달리 무슨 사상으로 사고해야 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해서 이곳에 멈춰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곤 한다. 잠시 거쳐가야 하는 정류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담 버스가 오지 않아서인지, 애시당초 내가 서있는 곳이 정류장이 아니었던 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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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한 시멘트에 녹아든 추위가 콧등을 시럽게 갉아냈다. 그러고 보니 이번 겨울은 첫눈이 빨랐지. —매번 눈이 풍경을 덮어서 그런지 작년이랑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단 말야. 비니와 안경을 써 얼핏 지적으로 보이는 남자와 서늘한 날씨에도 무릎 위로 올라오는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손을 맞잡고 걸으며 만담을 주고받았다. 다를게 없다. 공사판을 지나자 눈이 소복히 쌓여 둥글게 뭉뚱그려진 철재 교문이 나타났다. 핫팩으로 데워진 손가락을 뻗어 훑어볼까 싶었지만 괜스레 피부가 뜨는 느낌일까봐 그만두었다. 겨울철에도 오한이 서리지 않는 손으로 야구공의 궤적을 그리며 프로선수를 꿈꾸던 그의 말을 기억한다. 한 학기마다 적어도 한 군데의 골절상을 달아오던 일도. 그는 옷자락을 당겨 벤치에 쌓인 포슬포슬한 질감의 눈을 쓸어내고 앉았다.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의 깍쟁이가 내게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떠냐고 권힌다. 아마 일주일에 몇 없던, 사실상의 자습시간인 동아리 시간에 들었던 말이다. 10년 가까이 되었던 두 친구가 있었다. 한 사람은 소위 말하는 양아치 기질이 다분한 학생이었다. 그래도 겁이 많고 천성이 여려 큰 사고는 저지르지 않았다. 다른 한명은 수학에 소질이 있던 오만한 범생이였다. 나와 함께한 시간은 그가 앞선 친구보다 2년정도 더 길었지만 보다 방어적인 성격 탓에 나는 아직도 그를 평면적인 사람으로 기억한다.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한 명이 없을 때는 다른 한명이 자리에 없는 사람을 험담했다. 실은 3명 다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건 나만이 알았다. 우리 셋이 만날 수 있던 이유는 내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했기 때문이다. 피지컬이 남다르던 친구 A는 얇은 관계는 넓었지만 속마음을 터놓을 상대가 없었다. 그리고 머리가 비상했던 B는, 난 아직도 그가 왜 나에게 그리 집착했는지 이유를 모른다. 그의 말마따나 어린 시절부터 알았던 친구였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도덕적 우월감에 취해있던 나는 기꺼이 A를 위해 시간을 내고 그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 관한 푸념을 경청하고 공감해주던 내 가슴 한켠에는 ‘지루하다’는 본심이 숨겨져 있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하루에 여서일곱번은 예사로 전화해대던 B와 대화하면서도 나는 자연스레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면서 전화를 끊을 궁리만 짜내고 있었다. 나는 나를 소모적으로 다뤘다. 알량한 우월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시작한 일들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 내 일상과 통화기록은 A와 B로 가득 채워졌다. 우리 관계에는 근본적인 오해가 있었다. 그들은 아마 나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을 테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밑빠진 허영심을 채워주는 도구로 생각했다. 착한 사람인 내 이미지에 취하기 위한 매개로. 그들과의 우정이 깊어질수록 내 피로감은 심해졌다. 언제까지고 관심없는 사람과 계속해 만나고 지루한 이야기에 맞장구쳐줄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들의 연락을 씹고 약속을 피하며 건성건성 대하는 식으로 점차 멀어졌다. A에게는 효과가 있었다.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1년 후 우리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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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걷는다. 사람은 걷는다. (사랑스럽게 걷는다)# 수면 위로 파문이 인다. 젖어 나부끼는 털이 전분처럼 질척거렸다. 6월의 강아지는 난잡한 작별처럼 부산스럽다. 개의 표정은 낡은 요철처럼 마모되어 있다. 우리는 물가에 앉아 강아지를 지켜봤다. 내가 형을 부르면, 강아지는 형에게 뛰어간다. 그럼 형은 강아지를 쓰다듬는다. 물수제비를 위해 모았던 조약돌을 내 발치에 던지고는 쓰다듬는다. 수면에 하나, 둘 생기는 파문을 바라보며, 형의 눈가는 물줄기처럼 주름졌다. 징—지잉- 어두운 조명에 물든 방이 시야를 매웠다. 나는 이불속에 파묻힌 손을 쥐어짠다. 무언가 으스러지는 착각이 촉각을 타고 오소소 전해졌다. —꿈이라는 건 본디 허무맹랑한 것인데. 왜 내가 꾸는 꿈은, 마치 나를 납득 시키기라도 하고싶은 것처럼. / 이끼 낀 누런 벽돌 세월이 누적된 과속방지턱 여전히 모래로 가득한 놀이터를 지나 6월의 강아지는 난잡한 작별처럼 부산스럽다. 개의 표정은 낡은 요철처럼 마모되어 있다. 이별은 깔끔한 개울가처럼 거북하다. 그가 하는 말이다. 그래도 사람은 관계를 만든다. 차에 기대어 기다린다. 새벽녘의 희미한 거푸집을 뚫고 걸어오는 그가 어렴풋 보였다. / 코가 억세게 굳은 여자가 주차장에서 연초를 태우고 있다. 도시에 억지로 욱여넣은 화단처럼 찌푸려진 미간이 이마 깊이 뿌리내려 있었다. 그녀가 나를 본다. 언제 그랬냐는 듯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담배를 우악스럽게 쥐어 꺼뜨린다. ‘어색해.’ 가로등 아래의 그녀가 입모양으로 그리 말한다. 나는 기억을 되짚으며 고개를 젓는다. 물이 흐른다. 액체가 흐른다. 죽어 화장되지 않은 내 몸도 액체가 되어 흐른다. 배의 지방, 허벅다리의 단백질, 귀, 그리고 귀는 아직 남아 강물에 덩그러니 떠내려간다. “좀 쉬자.” 그녀는 운전대를 내려놓고 기지개를 핀다. 좁은 차 안에 그녀의 체향이 훅 끼쳐 들어왔다. 나는 괜히 민망해져 숨을 참고 기척을 죽인다. 그러자 짐승같던 들숨이 잦아들고 그녀의 여름같은 숨이 귓바퀴를 타고 돌아 머릿속에 안착했다. 나는 무심코 그녀의 폐를 상상한다. 그녀의 갈빗대가 희미한 순번으로 오르내리는 것을 관측한다. 그리고, 그리고 또, 꿈을 꾼다. 갈대 사이의 귀뚜라미가 몽환적이고 잔잔한 소음을 연주한다. 익살스러운 녹색 곤충이 나의 벌개진 얼굴을 지적한다. 새빨개진 내 귀를 그녀가 손을 뻗어 어루만진다. 조금 아플 정도로 잡아당긴다. “네 형도 같은 반응이더라.” 그녀가 속일 생각 없는 목소리로 자신의 관심사를 읆는다. “그땐, 면허 없었잖아.” 나는 간신히 입술을 열었다. 졸린 눈꺼풀처럼 무거운 혀를 땐다. “그래.” 내 뺨에 그녀가 손을 얹는다. 안전벨트 결합부의 달칵이는 미묘한 소음이 우레처럼 귀를 뚫고 지나간다. 그녀는…그녀는 나를 몰라. 떠올리기만 해도 눈이 저려온다. 그녀를 보는 내 눈은 엉킨 실처럼 풀이할 수 없게 된다. 언제나 무상의 덩어리다. “그래도 내 형이라면…” 나는 뻣뻣하게 굳은 목을 돌린다. ‘내 형이라면, 이랬겠지.’ 나는 말한다. 그녀도 알고, 나도
- 김케이크
- 2026-04-27
…짜증이 났다. 피부가 떨리고 근육이 수축하는 통제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물론 나는 소매를 걷었다. 손목 밑에 뜯지 않은 비닐포가 아직 남아있었다. 곧 약효가 떨어질 터였으니 다시 섭취하는 편이 나았다. ‘이거 받아, 오빠.’ 느닷없이 그녀가 말했다. 나는 어느샌가 축축한 플라스틱 물병을 들고 서 있었다. 그 물방울이 손가락 마디 사이로 스며들며 땀과 썪였다. 가시돋친 얼음조각이 뿌연 용기 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그 찬 기에 잠시나마 분노를 식힐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표피의 잔주름에 셔츠의 물망울이 흡착되는, 그 전신이 죄여 드는듯한 불쾌감을 단시간 떨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은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눈앞이 터널처럼 좁아진다고 한다. 저마다의 습관과 별개인 불쾌한 경험이다. 나는 동공을 고리 모양의 창살처럼 부풀렸다. 습관적으로 그녀의 머리를 가둬놓았다. 여름 길바닥의 열을 빌려 그대로 팽창시켰다. 단순히 시야의 한가운데로 무언가를 위치시키면 그리 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온몸을 떨었다. 흉추는 가만히 두고는 덜 자란 팔을 사시나무 떨듯이 어설프게 휘적거렸다. 그녀의 눈에서는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유년기 특유의 안구가 산만히 배치되고 있었다. 반면 내 홍채는 점점 더 오므라들어서는 마치 뜬눈을 감는 모양새로 동공 중앙의 흑색 구덩이에 그녀를 밀어넣고 있었다. 이미 전신이 딱딱하게 굳은 그녀의 몸뚱아리를 원반 모양의 구멍으로 옥죄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나를 이해했다. 한순간 나는 타자의 시점에서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개다. 강아지. 욕구를 게워내는 중. 살냄새를 맡고 몰려든 파리들이 날리며 흙 부스럼을 만든다. 눈물이 났다. 눈에서 콧물이 질질 흐르듯 미간이 시큰했다. 나는 무력했지만 예견된 무력함이었다. 지성이 부정하는 것은 본능이 일러주는 법이다. 간단히, 도움 없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법이었다. 나는 시야를 넓히고 모두를 지켜보았다. 나와 아버지를 제외한 전부가 각자의 삶 속에서 분주히 움직인다. 절로 박수가 나오게, 분에 넘치게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는 그것을 사후경직이라 불렀다. 실은, 그래서 저는 이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강한 사람이 뒤처진다는 것은 언제나 구경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매주 병문안을 가면서도 그의 정상적인 모습을 한순간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은 의외의 일이었습니다. 동물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경도가 없었다고나 할까요, 단단한 돌이 푸딩처럼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정도가 이맘때쯤의 그에 대한 정직한 감상인 것 같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팔뚝에 찬 깁스도 더 이상 맞지 않을 정도가 되지는 않을까. 그를 왠지 서늘한 계절에 보관해 둬야 할 것 같았습니다. 예부터 그처럼 강직한 인간이라도 분명 세월이라든가 관계라든가의 풍파에 깎여나가고 말 거야, 라며 기도에 가까운 시샘을 해왔던 저였지만 마냥 좋아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유약하게 침상에 뉘여진 채 탯줄같은 주삿바늘이 연결된 그를 바라보며는 어딘가 설명할 수가 없는, 한마디로 이거 대체 뭔데?
- 김케이크
- 202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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