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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의 낙엽

  • 작성자 배아픈아이
  • 작성일 2026-07-31
  • 조회수 120

 초가을 오전, 중심 상가의 패스트푸드점이 적적했다. 내려앉은 구름 아래 코끝으로 떨어진 빛이 시렸다. 나는 그곳 창가에 앉아 몽글몽글한 햄버거의 끄트머리를 베어 물었다. 창가 바깥으로 작은 농원을 향해 양옆으로 펼쳐진 단풍나무의 색이 물들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가을이구나.' 싶었다. 이따금 햄버거를 먹을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엊그제 같던 여름의 붉은색이 어느새 단풍으로 이사를 가듯, 계절도 그렇다. 변치 않는 건 둥근 햄버거뿐이었다. 비틀어진 낙엽이 그런 단풍 숲에서 떨어져 구르자, 그 표면이 냅킨 같아 빳빳한 조각을 한 장 꺼냈다. 입을 닦았다. 버거의 양념이 묻어났다. 입술은 건조했다. 빨대 속 콜라의 기포가 터지며 촉촉해지는 듯싶다가도 씁쓸함이 밀려왔다. 입술은 여전히 따가웠다. 가득 차지 않은 속이 만족스러워 자리에서 일어나 젖은 냅킨과 트레이를 정리하고 나왔다.


 촘촘히 이어진 건물과 사람들의 움직임에 귀가 아파 왔다. 그들 사이 홀로 남겨진 무게감이 공허함을 품었다. 초가을이라 그런 것일까. 쾌청한 날씨와는 달리 속은 더부룩했다. 조금 전 먹은 햄버거가 내장 속에서 꿈틀거리는 질감이 간지럽기도 했다. 연달아 출렁이는 것은 탄산 때문인지, 녹아든 음식의 기포인지 모르겠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해가 중천이었다. 서늘한 공기와는 달리 약간의 온기가 남아 있는 햇살이었다. 몽롱함과 뒤섞인 멀미가 뱃속의 어렴풋한 구토를 끌어냈다. 치솟다가도 가라앉는 그것은 목구멍 하단에 잎자루같이 매달려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도심 속 공원 끄트머리에 있는, 패스트푸드점 창가 자리에 앉을 때면 보이는 농원의 보도(步道)를 따라 이어져 있었기에 그런 햇빛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덕에 가게를 빠져나와 농원까지의 백 미터가량을 걷게 되면 올라왔던 목구멍 속 구토의 고리가 끝내 떨어져 나가는 것이었다. 농원 양옆으로 무한히 나열된 단풍나무의 짙붉은 색감을 마주할 때면 끓는 속이 여린 단풍에 뒤덮여 가라앉는 것을 느껴 왔다. 그럴 때면 모든 것은 차분했다. 농원의 고요가 흘렀다. 무성한 잎사귀들이 삐져나와 투박한 머릿결을 스쳤다. 여전히 정오였다.


 집 현관으로 노르스름한 불이 들어오며 문이 닫혔다. 목이 타들어 가 숨을 헐떡였다. 옆으로 삐져나온 우산에 걸려 넘어졌다. 우산이 비틀어졌다. 닫힌 문을 확인하고서 거실의 냉장고로 걸어갔다. 손을 씻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차 싶어 돌아갔다. 두 개 딸린 방 중 하나는 화장실이고 하나는 옷장이었다. 화장실이 냉장고 뒤편에 있는 줄도 모르고 옷장으로 들어갔다. 옷장의 공기가 떫었다. 옷을 던져 두고 나왔다. 냉장고에서 반쯤 남은 1.25L 콜라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탄산이 사그라들었다. 음료가 있던 공간 아래로 음식이 널널히 쌓여 있었다. 떡볶이와 햄버거를 꺼냈다. 먹다 남긴 것들이었다. 떡볶이 소스에 햄버거를 찍어 먹을 생각이었다. 기름기 있는 손을 티슈로 닦았다. 바닥은 찐득했다. 집 안의 공기가 음습했다. 적적함에 사람이 나오는 영상을 아무거나 골라 틀어 두었다. 마른 몸의 여자가 나왔다. 같은 음식을 먹는 그녀의 몸이 일그러졌다. 멈춰 둔 화면이 흐렸다. 화면을 티슈로 살살 닦아 내었다. 영상은 선명했고, 불 꺼진 거실 속 나의 얼굴은 역광으로 흐려졌다. 탁자 위로 소스가 뚝, 뚝 하고 떨어졌다. 햄버거를 내려놓았다. 의자 등받이를 짚고 일어났다. 몸이 수피(樹皮)를 덮어쓴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은 멀미를 삼킨 듯 뒤섞였다. 배를 붙잡고 냉장고로 걸어가 표면에 소스가 발린 햄버거를 도로 넣어 두고 손을 씻었다. 멀미가 목을 타고 올라왔다. 조금 어지럽고 숨이 느리게 차올랐다.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이를 닦기도 전이었다. 오른편의 암막 커튼을 닫고 천장을 바라봤다. 비워져야 할 배가 불러 왔다. 눈이 차츰 감기며 다음 날이 오기까지 뻗어 있었다.


 다음 날 오전, 상가였다. 패스트푸드점이었고, 주위를 둘러봤다. 창가 자리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키오스크에서 햄버거를 주문하려던 참이었다. 수많은 버거들이 목록에 따라 차례로 나열되어 있었다. 같은 것은 질리기에 매번 새로운 걸 고르는 타입이었다. 어찌 이끌림이랄 것이 없었다. 공복 상태의 배 특유의 불러 옴이랄까. 가게를 빠져나왔다. 나는 전날의 공복만을 생각하며 초가을의 길거리를 걸었다. 그런데도 단풍은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어 낙엽 하나 없는 길이었다. 자원봉사자가 치우고 간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두 명의 환경미화원이 치우기에는 녹록지 않은 양이었다. 허파까지 가스가 가득 찬 느낌이었다. 그런 것들은 때론 녹진하게 스며든다. 뭉쳐진 기체의 거친 질감이 느껴짐에 따라 오전의 시침이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그런 정오, 나의 속으로 스며든 것은 무겁게 떠올랐다. 바람과 잎사귀의 흔들림에 무딘 나무같이 변화의 필름이 단상으로 스쳤다. 느려진 걸음이 멈춰 섰다. 복부가 아렸다.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기름기 있는 화면, 불거진 연락처의 단면이 상체를 비췄다. 낙엽 없는 거리로 넘어져 암흑조차 남기지 못하였다.


 눈의 전면이 검게 칠해졌다. 굽은 허리 아래 침상의 능선이 거칠었다. 메마른 관절이 몸을 굳혔다. 더부룩함과의 거리감이 멀지 않았다. 왼팔에 꽂힌 수액에 뻐근함이 느껴졌다. 링거 줄이 거추장스러웠다. 복부를 움켜잡고 주위를 둘러보니 바닥으로 스며든 빛이 푸르렀다. '새벽일까…' 하는 생각이 들며 심야 속의 눈이 맑아졌다. 간밤에 서리 끼듯 여린 발소리가 다가오자 간호사가 암막 커튼을 살며시 젖히며 들어왔다. 피로를 머금은 여인이었다. 밝아진 조명의 빛이 둥글게 번져 나갔다. 간호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의료기기를 꺼냈다. 축축한 알코올 솜을 문지르자 닦인 부위가 서늘해졌다. 주삿바늘이 들어간 줄도 몰랐다. 메스꺼움과 몽롱함에 젖어 허공을 바라봤다. 바늘이 쑥 빠지며 첨단이 반짝였다. 몸이 바르르 떨렸다. 바늘이 꽂혔던 부위를 멍하니 보며 어루만졌다. 따끔한 느낌에 손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닫힌 커튼 뒤로 간호사가 빠져나가는 발걸음이 사라졌다. 몇 시였는지 모르겠다.


 익일 오전, 의사가 나를 불렀다. 덤덤한 표정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알겠습니다… 네, 네. 예, 알겠습니다." 붕 뜬 기분이었다. 그날의 창밖이 유난히 밝았다. 여름 같았다. 손끝이 여린 잎같이 떨려 왔다.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사의 눈에 나 자신이 거울처럼 비쳤다. 의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죄송합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그의 입가에 주름이 졌다. 그뿐이었다. 병상에 누웠다. 자극이란 백색소음처럼 이어지는 통증뿐이었다. 커튼 젖히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비 내리듯 촤악— 하며 닫히는 소리에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양옆 환자들의 커튼과 그 미닫이가 이어졌다. 내 병상의 커튼은 닫혀 있었고, 그 아래로 밤과는 다른 온기를 머금은 빛이 내리쬐었다. 그것은 병상 바퀴의 고리 앞에 멈추었다. 닿는 순간 철판을 타고 번져 나갈 터였다. 빛이 6시 정각에 머물렀다. 배고팠다. 입맛에는 모든 것이 쓰렸다. 노상 이 시간에는 패스트푸드점에 있었다. 왼팔을 바라보다 문득 링거를 감싼 반창고를 떼어 냈다. 바늘을 뽑았다. 일어나자 복통이 느껴졌다. 신발에 발을 우겨 넣고 수납장을 짚고 일어나 커튼을 젖혔다. "촤악—" 소리에 몸이 움찔했다. 젖혀진 커튼 사이로 따사로운 햇볕이 고개를 내밀었다. 커튼을 닫고 병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일자로 이어진 대학병원 복도는 차가웠다. 환자들이 있는 층은 고요했기에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자 삐쩍 마른 환자가 1층 버튼을 눌렀다. 내려가는 동안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중간에 들어온 사람이 없어 단숨에 1층에 도착했다. 이곳은 정문과의 거리가 조금 나다가도 창밖의 빛이 느껴짐에는 제약이 없었다. '양산이 없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갑을 치켜들고 쏟아지는 햇볕을 가렸다. 오전 정류장은 사람들로 빼곡히 차 있었다.


 중심 상가로 향했다. 가을 단풍이 붉게 무르익었다. 산더미로 쌓인 낙엽이 바닥으로 퍼지자 거리의 환경미화원이 빗자루로 쓸어 담았다. 패스트푸드점은 예사롭지 않게 바글바글했다. 이미 정오가 지난 것 같기도 했다. 입구의 문을 열고 키오스크로 걸어갔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주문했다. 창가 자리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느껴지는 팽만감과는 달리 식탁 앞 복부가 홀쭉했다. 오 분쯤 지났을까, 전광판에 영수증의 숫자가 올라왔다. 아르바이트생이 “153번 손님~”이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그 목소리가 여리고도 맑았다. 카운터로 가자 선선한 날씨에 매장 정문으로 흘러들어오는 공기가 주방의 열기를 식히는 듯했다. 떨리는 팔로 트레이를 붙잡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초가을을 지나 변화하는 거리가 보였다. 고동색 단풍의 변색이 주변 나무의 수피와 섞여 잎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혼자 남은 나뭇가지가 엉성했다. 빛이 정면으로 들어왔다. 눈가가 간지러웠다. 눈이 조금 감겼다. 햄버거를 한입 크게 베어 물자 쌉싸래했다. 나무들의 향연에 온 세상이 쓰디쓴 낙엽으로 보였다. 먹다 남은 햄버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뒤에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자리를 비웠다. 손가락에 묻은 소스를 빨아 먹었다.


 집으로 돌아갔다. 부서진 우산이 보였다. 그대로 들어 다시 꽂아 두었다. 그런 우산이 여럿 있었다. 배가 쓰렸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었다.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꺼내 먹었다. 복부는 음식으로 가득 찼다. 팽만감이 느껴졌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서 얼굴을 씻었다. 늘어난 살갗에 고독이 몰아닥쳤다. 옷이 젖었다. 커튼을 젖히고 축축한 몸으로 소파에 누웠다. 45도 각도로 저층 집 창밖의 전경이 늘어졌다. 풍경이 필름처럼 펼쳐졌다. 숨이 옅어졌다. 아날로그시계가 정각에 멈췄다. 집 안의 먼지가 햇빛에 선명했다. 창밖으로 불그스레한 가을 단풍이 나부꼈다. 고개를 들어 농원의 보도를 보았다. 환경미화원이 빗자루를 늘어뜨린 채 중심 상가로 향했다. 거리에는 낙엽이 겹겹이 쌓였다. 변치 않는 정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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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아픈아이
  • 202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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