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이 피었습니다. 그대를 찾았습니다.
- 작성자 양양
- 작성일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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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의 집을 나오니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어스름한 하늘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이런 하늘을 황혼이라 했었지. 지표면에 반짝이며 충돌하는 빛들에 눈이 부셨다. 문득 눈앞이 조금 흐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눈이 너무 부셔서일까, 주변을 괜히 둘러보았다.
조금 전, 이전에 기증 희망 등록을 해두었던 조혈모세포 기증을 할 수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항원이 일치하는 환자를 찾았다면서 말이다. 15년 전 등록했지만, 희박한 확률 탓에 어쩌면 평생 기증을 못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째서인지 묘한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메밀밭이 보였다. 헌혈을 하러 올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말이야. 불어오는 얕은 바람에 가벼이 흔들리는 메밀꽃들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 같아, 괜스레 자연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내 모습이 늙음을 표상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온몸으로 다가오는 기분이 느껴졌다. 나는 홀린 듯 메밀밭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벌써 30년도 더 넘게 지났지만, 나는 메밀꽃을 볼 때마다 형이 생각난다. 형이 꼭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형과 메밀꽃을 보러 가자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일까, 어쩌면 둘 모두가 원인인 것일까. 명확한 이유를 규명하긴 어렵지만, 분명 메밀꽃을 보면 형의 얼굴이 머릿속을 메운다. 그러니 분명 메밀꽃은 내게 단순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다.
형은 백혈병 환자였다. 어린 나이에 병원 생활을 시작했다. 아마 열여덟이었을 거다. 여타 암 환자의 가족들이 그렇듯 우리 가족은 밤마다 울고, 기도하고, 미안해하길 반복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번갈아 가며 형의 침대 옆에 놓인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며 형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셨다. 그러고는 밤마다 형이 잠에 들면 늘 숨죽여 울었다. 어머니는 가만히 휴지를 옆에 두고 눈물을 닦으셨고, 아버지에게서는 뒤돌아 누운 등이 미처 가리지 못한 코 먹는 소리가 났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고된 하루 때문인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까무룩 잠에 드셨다. 그 옆에 누워 잠을 청하던 나도 어느샌가 잠들었다. 그러나 불편한 간병인 침대에서는 그다지 오래 잠들 수 없었다. 나는 언제나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다지 성과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공상했다. 형에 관한 생각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져 나가는 생각들. 형의 병이 나으면 무엇을 할 건지, 백혈병이 무엇인지, 그런 사소한 고민부터 시작해서 병원에 외계인이 온다면 무엇을 할 건지와 같은 정말이지 현실성 없는 생각들을 말이다.
곧이어 잠이 깬 어머니, 혹은 아버지께서는 그 옆에 가만히 누워있는 내게 이불을 똑바로 덮어주셨다. 그러고는 형의 머리맡에서 가만히 기도하셨다.
“하나님 아버지, 부디 우리 정태가...”
기도의 내용은 늘 비슷했다. 조금씩 변주되긴 했으나 결론적으로는 형의 쾌유와 일상으로의 복귀. 어머니와 아버지의 가장 간절한 소원이었다.
기도가 끝날 무렵에는 다시 잠에 빠져드는 내 귀 사이로 형에게 미안함을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레 진단받은 백혈병. 형은 자주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다. 평일 며칠을 제외하고는 난 늘 형의 병실에서 형과 함께 놀았다. 아니, 정확히는 형이 나를 놀아준 것이겠지만 말이다.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마저 그만둔 형은 나를 그다지 귀찮아하지 않았다. 늘 아픈 치료와 병색이 짙어지는 자신의 몸에 우울감을 느끼거나 짜증을 낼 법도 했으나 형은 나를 포함한 가족들과 병원 사람들, 주위 다른 환자들에게까지 모두 친절했다. 심지어는 나를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 주위를 함께 산책하기도 했다.
어린 나는 백혈병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분명 형이 거대한 병마와의 싸움에서 승기를 잃어간다는 사실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점점 야위어가는 형의 팔과 항암치료를 반복할수록 빠져가는 머리카락을 보며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나를 집어삼키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았다. 잘은 모르겠으나, 어떤 거대한 감정에 압도당하는 기분을 말이다.
분명 형도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으리라. 그러나 형은 그럴수록, 점점 야위어갈수록 긍정적으로 변했다. 흔히 일컫는 기적과도 같은 사례를 제시하며, 자신도 분명 기적이 될 수 있을 거라 자신하며 말했다. 어머니는 그런 모습을 보며 뒤에서 남몰래 울음을 터뜨리셨다.
“불쌍해서 어떡해…. 미안해서 어떡해….”
남몰래 훔치던 어머니의 눈물은 병원 계단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며 오열하던 어머니를 우연히 보게 되어 알게 된 사실이다. 물론 30년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아직도 선하다. 눈을 감으면 당장이라도 그때로 되돌아가서, 그 울음이 눈앞에서 다시 상영될 것만 같다.
방학이 시작하고부터는, 그러니까 내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자 형의 열여덟 살의 여름에, 나는 거진 매일 형과 붙어 있었다. 형은 문학을 좋아했다. 날이 갈수록 나빠지는 병색에 조금 웃음이 줄어든 형이었지만, 문학 전집을 탐독할 때만큼은 형은 환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활짝 웃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매일같이 문학 도서들을 독파했다. 나는 어린이 세계 문학 전집을, 형은 한국 중단편 소설 모음집을 읽었다. 형은 소설을 읽을 때 늘 입가에 미소가 서려 있었다. 그 모습에 괜히 나는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정혁아, 너는 소설이 왜 좋아?”
형은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간간이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나야 뭐, 형이 읽으니까 읽는 거지! 형이 재밌으면 나는 다 재밌어!”
형이 좋아하는 건 뭐든 다 좋아하는 동생의 숙명이랄까, 아니면 멋진 형을 따라 하려 하는 어린아이의 특징이랄까? 어찌 되었든 나는 그저 형을 따라 독서하는 것뿐이었다.
“그래? 형이 하는 건 뭐든 다 좋은 거야?”
형의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응, 나는 형이랑 같이 있으면 다 재밌어!”
내 말에 형은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부쩍 올라간 형의 광대에서 형의 뿌듯함과 행복이 느껴졌다.
“정혁아, 네가 나중에 조금 더 크면, 그때는 형이 읽던 책을 네가 읽으면 되겠네.”
“형이 읽던 책? 우와! 나도 그러면, 막 그런 두꺼운 걸 읽게 되는 거야?”
“응, 그렇지! 정혁이가 형 나이쯤 되면 그때는 형이 지금 읽고 있는 것보다 훨씬 두꺼운 책도 읽을 수 있게 되겠지.”
“우와! 최고다! 완전 멋있어!”
해가 서산마루에 걸릴 때쯤에는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어떨 땐 두 분 모두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곤 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고, 산책하고, 별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면서 종종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해의 위치를 관찰하며 언제쯤 부모님이 퇴근하실지 함께 추측했다.
부모님이 퇴근하신 이후부터는 방학 전과 차이 없이 똑같은 일상의 반복뿐이었다. 잘 준비를 하고, 어느새 적응돼 설치지 않고 긴 잠을 잘 수 있는 간병인용 간이침대에 누워 흐느낌 소리를 듣는 것.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변한 것 없는 울음과 일상의 향연이었다.
형은 절대로 내게 자신의 항암치료를 보여주지 않았다. 나에게는 멋없어서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 했지만, 추측하건대 분명 형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컸던 고통 때문에 웃음을 보일 자신이 없어 그런 것일 거다.
아무렴 어때, 당시의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열 살의 나이로는 항암치료라든가, 각종 치료제와 합병증의 이름이라든가, 치료 일정이라는 말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형이 그저 많이 아프고, 그 원인이 백혈병이라는 이름의 병 때문이라는 것만 알았다.
그저 난 형이 항암치료를 하는 날에는 형을 보러 갈 수 없어 아쉬워하기만 했다. 그런 날에는 언제나 집에서 홀로 책을 읽었다.
‘초등학생을 위한 한국 단편 소설집’
형이 읽고 있던 ‘단편 소설’. 어휘력이 부족했던 나는 단편 소설이 무슨 뜻을 가졌는지도,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가만히 독서에 열정을 불태웠다. 그저 형을 만나러 가면 이 책 안에 있는 소설들의 내용을 줄줄이 읊어서 칭찬을 받아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형이라면 분명 멋진 칭찬 세례를 퍼부어 줄 테니.
그러나 전처럼 형을 자주 볼 수 있는 날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기필코 단편 소설집을 탐독해 내 형으로부터 엄청난 칭찬을 받을 것이란 다짐은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형의 상태가 위독해져 중환자실로 옮겨지며 그리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형과 거의 일주일이 넘도록 만나지 못했다.
겨우 형을 만나게 됐을 때, 형은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다. 가뜩이나 앙상하던 팔뚝은 이제 나무젓가락처럼 위태롭게 몸통에 간신히 달려 있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주일 사이 형의 빛나던 눈은 어느새 죽음을 기다리는 노파의 눈처럼 눈 아래가 어둡게 착색된 채 탁하게 변해 있었다. 그에 더해 작은 일에도 생글생글 웃던 형의 얼굴은 이제는 원래 무표정만 짓던 사람의 얼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형, 괜찮아?”
형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고이 잠든 듯한 모습에 문득 형이 죽은 것은 아닐까 하는 묘한 두려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왔다.
“정혁아, 정태는, 그러니까 형은 지금 자고 있어. 조금 전에는 깨어 있었는데. 조금 이따 형이 일어나면 얘기할까?”
어머니는 입술을 꾹 깨물며 말했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최선을 다해 억누르고 간신히 말 한마디, 한 마디를 이어 나갔다.
“자고 있으면 지금 깨우면 안 되는 거야?”
“응. 형이 지금 많이 피곤하대. 정혁이는 이해해 줄 수 있지?”
“으응. 알겠어. 나 책 다 읽어서 형한테 막 자랑하고 싶은데, 이건 나중에 해야 하는 거지?”
“응. 그렇지. 밖에 나가서 아버지랑 있어. 엄마가 형 일어나면 정혁이 불러 줄게. 알았지?”
미동 없이 가만히 누워있는 형의 모습에 슬픔이 밀려왔다. 나도 자각하지 못하는 내 새 눈시울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형이 보고 있다면 내 눈물을 닦아줄 텐데. 애꿎은 형에게 서운함을 느끼며 형의 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형이 일어나길 기다리며, 아버지와 함께 형과 걷던 길을 걸으며 산책을 두 번 하고, 병원 근처 편의점에서 초콜릿을 사 한 조각씩 천천히 녹여 먹었는데도 형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불안한 듯 주변을 자꾸만 왔다 갔다 하니 아버지도 어느샌가 신경이 많이 쓰이시는 듯했다.
“정혁아, 형 걱정이 많이 되지?”
“응….”
“형은 피곤해서 자는 거라 지금은 깨우면 안 돼서 그래. 깨우지 않고 형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자.”
두 시간이 조금 넘게 지났을까? 형이 의식을 차렸다는 소식에 나는 반가운 나머지 형에게 안길 작정으로 형을 향해 마구 뛰어갔다. 그러나 겨우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전과 너무 다른, 기운 없는 형의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나는 안기지 못한 채 형에게 다가가길 머뭇거렸다. 그런 내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읽기라도 한 건지 형은 가만히 내게 웃어 보였다. 마치 내 마음을 모두 이해한다는 듯. 다행스럽게도 형의 웃음은 그대로였다. 전혀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해맑은 웃음.
“형, 몸은 좀 어때? 괜찮은 거야?”
“응. 형은 슈퍼맨이잖아! 지금도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강한 항암치료도 형의 긍정을 이기지는 못했다. 형이 괜찮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애써 현실을 무시하려는 듯한 모습에 마음이 한구석이 시렸다.
“형, 형, 있잖아, 나 형이 읽던 그 책 열심히 읽었어! 내가 읽은 건 초등학생용 책이긴 한데, 나 형이 읽은 소설들 다 알아!”
“우와, 정말? 정혁이 무슨 소설 읽었는데?”
“나 거의 다 읽었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랑, 천변풍경, 사랑손님과 어머니 막 그런 거 싹 다 읽었어!”
“정말로? 정혁이 멋진데?”
형은 헤실헤실 웃으며 엄지손가락으로 따봉 모양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형, 형은 퇴원하면 읽고 싶은 게 뭐야?”
나는 가만히 형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왕 같은 책을 읽었으니, 이후에도 같은 책을 읽고 싶었다. 여차하다 형이 책을 읽지 못한다면 내가 옆에서 낭송해 줄 생각도 있었다.
“읽고 싶은 거라…. 글쎄? 이번에는 조금 더 긴 소설을 읽고 싶어. 솔직히 말하자면 형이 단편 소설을 읽은 이유는 장편 소설을 읽게 된다면 다 읽지 못할까 봐 그런 거거든,”
형은 조금 슬퍼 보였다. 긍정적인 말과 행동과 반대로 부정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그럼, 다 나으면 나랑 같이 서점 가자!”
형은 대답 대신 가만히 웃어 보였다.
아마도 형은 본능적으로 알지 않았을까?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과 곧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것을.
“그래, 꼭 그러자.”
짧았던 면회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길, 나는 아버지에게 형의 상태에 관해 물었다. 어린 나이었기에 죽음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형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쓸쓸하게 한숨을 내쉬셨다. 그러고는 가만히 내 손을 잡으셨다. 어린 나이의 나에게 현실을 말해도 되는지 고민하시는 듯했다.
한동안 내 손을 쓰다듬으시던 아버지는 어딘가 공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찬찬히 형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형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형이 입원했을 때부터 조혈모세포, 그러니까 골수 이식을 받으려 노력했으나 기증자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항암치료를 하며 버텨왔지만, 상태는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고. 형과의 이별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할 거라고 그러셨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온 슬픔은 소용돌이치며 마음을 뒤흔들어 버렸다. 형이 죽는다니? 비록 형은 어른 같지만, 그것도 엄청 어른 같지만 아직은 학생이잖아. 아직은 어른이 아니잖아. 그런데 죽어? 믿을 수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온 힘을 다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본 형은 아버지의 말씀처럼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사람이 분명했기에.
나는 그저 담담한 척 아버지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두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나보다 더욱 슬퍼 보이는 아버지의 얼굴이 내가 떼를 쓰면 더욱 일그러지고, 슬픔으로 얼룩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저녁, 가만히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에 붙여둔 야광별이 반짝였다. 형과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야광별을 이으며 별자리를 만들던 기억이 났다. 내가 잠들기 무서워할 때마다 형은 나를 토닥이며 별자리를 만들자고 했다. 형과 별자리를 만들면 이상하게도 어느샌가 무서움은 사라져 버린 채 그저 재밌기만 했다. 저 별과 이 별을 이으면 꼭 산타클로스를 닮아서, 이 별자리는 산타클로스 자리라고 했고, 그 별자리의 바로 오른쪽 세 별은 뭉쳐있는 모습이 쿠키같이 생겨서 쿠키 자리라고 이름 붙였는데. 또 제일 왼쪽 별 네 개는 함께 붙어서 빛나는 모습이 오붓한 가족 같아서, 우리 가족 자리라고 불렀는데. 나는 천장의 별들을 가만히 손으로 이어봤다. 몇 가지 그림이 그려졌지만, 그다지 좋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떠올려보면 대부분의 별자리는 전부 형이 이름 붙인 것들이었다. 형은 늘 멋진 이름을 붙여줬다.
이후로 홀로 머리를 싸매고 한참 고민해 봐도 괜찮은 이름은 없었다. 형과 함께할 때는 정말 재밌었는데, 혼자서 별자리의 이름을 짓는 건 그다지 재밌지도, 신나지도, 설레지도, 웃기지도 않았기에 곧이어 나는 별자리 이름 짓기를 그만뒀다. 어째 유난히 형의 부재가 크게 다가왔다.
한 번 형이 생각나자, 형의 생각은 물꼬를 튼 것처럼 터지듯 머릿속을 채웠다.
그러다 문득 하나의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어쩌면 형도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형도 무섭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꼭, 형이 무섭지 않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무서움을 형이 달래주었던 것처럼, 나도 형이 무서움을 잊고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내일 병문안을 가면 기필코 형에게 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선 나는 가만히 잠에 들었다. 가슴은 아직도 먹먹하고, 슬픔이 마음을 가득 적시고 있었지만, 일단은 형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먼저였다.
다음 날, 나는 전날과 같이 형의 면회가 가능해질 때를 기다렸다. 형을 보러 갈 수 있게 되면 곧바로 들어가려고 아침 일찍부터 형을 기다렸다. 이른 아침부터 오로지 형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은 방학의 장점이다.
조금을 더 기다린 끝에 나는 비로소 형을 만날 수 있었다. 간밤 사이 많이 아팠는지 형의 몸 상태는 더 악화된 듯했다.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듯한 형의 상태에 애가 타기 시작했다. 그 덕에 형을 무섭지 않고 재밌게 해주겠다는 원대한 목표에 대해서는 말하지도 못한 채 입에서 제멋대로 말이 튀어 나갔다.
“형! 형은 뭐 할 거야? 아니, 뭐 하고 싶어?”
맥락 따위 없이 다짜고짜 튀어 나간 말에 형은 놀란 듯 웃었다.
“갑자기? 하고 싶은 거라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걸 물어보는 거야? 아니면 미래에 하고 싶은 게 궁금한 거야?”
“지금 당장! 뭘 제일 하고 싶어?”
“... 아니야! 그냥 전부! 지금이랑 퇴원하면, 그리고 또 어른이 됐을 때! 미래에 하고 싶은 거랑... 그냥 다!”
생각해 보니 나는 형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아는 편이 좋았기에, 곧바로 말을 정정했다.
형은 내 횡설수설한 말이 만들어낸 이 상황이 웃긴 지 가만히 웃었다.
“음…. 내가 미래에, 어른이 됐을 때 하고 싶은 거라면, 글을 쓰고 싶어. 정혁이 너도 알다시피 형은 글을 좋아하잖아. 어른이 되면 언젠가는 꼭 글을 쓰고 작가가 되고 싶어.”
“작가! 완전 캡짱이다! 그리고 또? 또 뭘 하고 싶어? 지금 하고 싶은 거는?”
“지금 하고 싶은 거라면... 메밀밭에, 메밀꽃이 가득 핀 메밀밭에 가고 싶어. 얼마 전에 소설을 하나 읽었거든. 메밀꽃 필 무렵이라고, 정혁이 네가 들어봤으려나? 그걸 읽었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메밀꽃밭에 대한 설명이 정말 아름답더라고.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게 만드는 글이었어.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는데, 꼭 그 아름다운 광경을 두 눈으로 보고 싶어.”
“나 그 소설 알아! 아직 안 읽긴 했는데, 꼭 읽어 볼 거야! 꼭! 그러니까 형, 나랑 꼭 메밀밭에 가자. 꼭 같이 메밀꽃을 보자.”
나는 형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래, 형이랑 꼭 가자. 꼭. 약속할게.”
형은 웃으면서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형과 나는 손가락을 맞걸고 약속했다.
“약속한 거야! 꼭 가야 해!”
“당연하지. 형은 약속한 건 다 지키는 거 알지?”
형은 내 손에 도장을 찍는 시늉을 했다.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형이 지금 당장 내 하나뿐인 동생 정혁이랑 하고 싶은 건... 간지럽히기!”
형은 마구 웃으며 팔을 뻗어 나를 간지럽혔다. 얼마 있지 않아 옆에 있던 간호사에게 장난치지 말라는 말로 제지당해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래도 장난을 치는 형은 형의 아프기 전 모습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형에게 복수의 간지럼을 태우지는 않기로 했다.
더불어 내 마음속에서는 아주 작은 기대가 피어올랐다. 어쩌면 형이 나아질 수도 있을 거라는, 그런 기대.
슬프게도 형은 한 달.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형에게 골수를 이식해 줄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형은 메밀꽃을 보러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로 별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형을 보낸 후로 몇 달간 눈물로 밤을 지새우셨고,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끊으셨다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하셨다. 형이 죽은 후로 내 가슴은 어딘가 공허한 기분이었다. 무언가가 사라지고 빈자리만 남았는데, 절대 채워지지 않는 듯한 감각.
그래도 산 사람은 살라는 말처럼, 세상은 굴러갔고, 삶은 계속해서 영위되었다. 남은 세 가족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형이 아프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형의 사십구재가 다가올 즈음 형의 유품들을 모조리 태웠다. 아픔을 잊으려는 듯, 쓸쓸히 유품을 한데 모아 태웠다. 형의 유품에는 유독 책들이 많았다. 병원 신세를 지기 전부터 읽고 소장하던 책들과 학교를 그만두고 병원 생활을 시작하고부터 읽어 내려간 책들을 모두 합치면 족히 백 권은 넘을 것 같았다. 책은 팔거나 기증할 수 있었지만, 부모님은 태우는 길을 택하셨다. 마치 형을 완벽하게 보내주려는 듯이, 형이 쓰던 모든 물건을 태웠다.
그렇지만 나는 그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형의 유품을 모두 태우는 것은 형을 그저 잊어버리겠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형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형을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여기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태울 것이니 형의 유품을 내오라는 부모님의 말씀에도 남몰래 책 한 권을 숨기고 태우지 않았다.
형이 죽기 전에, 정확히는 죽기 이틀 전에 형은 내게 건네주었던 책이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정혁아, 형이 저번에 말했던 책 있지, 메밀꽃 필 무렵.”
“응! 읽어 봤어. 형이랑 얘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읽었지.”
“어린이를 위한 도서로 읽었지? 이건 원문 도서야. 형은 질리도록 읽어서 이건 정혁이한테 줄게. 나중에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그때 읽어봐.”
형은 그렇게 말하며 책을 한 권 건넸다. 얼마나 많이 읽은 건지, 단번에 형의 손때 묻은, 형이 정말 아끼는 책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형이 아끼는 책 같은데, 내가 가져도 되는 거야? 형이 가지는 편이 더 낫지 않아?”
“내가 가져도 되지만, 이 책의 주인은 이제 정혁이 네가 되는 편이 더 좋을 거라 생각해. 정혁이 너만 좋다면, 부디 받아줄래? 그리고 가끔씩 형이 막 너무 보고 싶고, 그립고, 그러면 형 대신 이 책을 봐줘.”
“불길하게 왜 그런 말을 해! 그러지 마.”
형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듯 내 말에 대답 없이 웃어 보였다.
그 이후로 나는 종종 형이 너무 그리울 때, 형이 보고 싶어 못 배기겠을 때마다 가만히 그 책을 읽었다. 형과 지키지 못한 약속의 죄책감 때문일까, 나는 시간이 지나고도 형을 완전히 보내주지 못했다.
때문에 형을 찾게 될 때마다 읽는 그 책은 내가 형을 잊지 못하는 것을 표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나이가 마흔이나 된 요즘에도 종종 하곤 한다.
주변에서 작은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지나가던 행인 모두가 메밀꽃밭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메밀꽃 사이사이로 빛이 스며든 듯 반짝이는 풍광에 나 또한 넋을 놓고 가만히 메밀밭을 바라보았다. 꽃들 사이에 숨어든 빛이 작은 조각으로 갈라진 채 세상을 향해 존재를 과시했다.
형이 이런 풍경을 봤다면 분명 좋아했겠지. 괜스레 혼자만 메밀꽃을 보는 것에 미안함이 느껴졌다. 나는 아직도 종종 형에게 미안함을 느끼곤 한다.
내 나이가 어느새 형의 나이보다 많아졌을 무렵부터 나는 헌혈을 하기 시작했다. 형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아픈 사람에게, 특히 형과 비슷한 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러면 왜인지 형에게 피를 나누어주는 기분이었다. 너무 어렸던 나머지 형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헌혈할 때면 형에게 못 주었던 도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기분이었다. 그러면 왠지 형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은 줄어드는 듯했다.
스물다섯 살 때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 등록을 한 것도 그 이유였다. 기증자를 찾지 못해 죽은 형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만분의 일 정도의 확률이라는, 그런 낮디낮은 기증 일치 확률 때문에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지만, 만에 하나 누군가에게 연락이 온다면, 그때는 정말 형을 돕는 기분이 들 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헌혈보다는 조혈모세포를 기증한다면, 그제야 진정으로 형을 도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형을 가슴 속에 묻어줄 수 없을 것 같으니.
나는 눈앞에 펼쳐진 메밀밭의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며 메밀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메밀밭은 그 황홀한 자태를 더욱이 뽐냈다.
“형, 보고 싶다. 미안해. 아직까지 놓지 못해서. 형을 제대로 보내주지 못하겠어. 내가 형이 아픈데도, 아무것도 못 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나 봐. 메밀밭도 가자고 약속했는데, 가지도 못하고.”
“그래도 이제는, 형을 보내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어. 내가, 도울 수 있는 환자를 찾았대.”
어째서인지 혼잣말이 나왔다. 마치 형이 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가만히 메밀 줄기를 어루만지며 한참을 허공에 대고 혼잣말했다.
나는 가방 속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형이 내게 남겨준 유일한 유품.
나는 가만히 형이 남긴 책을 바라보았다.
메밀꽃 필 무렵.
문득 이제는 형을 정말로 보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미루었던 숙제를 끝내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그 환자에게서 형을 비추어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곤, 거짓말처럼 조금 전부터 사라지는 듯한 미안함과 생겨나는 애틋함을 느꼈다.
나는 가만히 책을 쓸어보았다.
메, 밀, 꽃, 필, 무, 렵.
책의 제목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었다.
형에게 잘 있으라는 인사를 마음속으로 건네고, 나는 책을 조심히 태웠다. 한 줌의 재가 된 책은 진정한 작별을 의미하는 듯했다.
나는 메밀밭에 재를 뿌렸다. 핸드폰에서는 조혈모세포 기증에 관한 안내 문자가 오고 있었다. 메밀밭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형의 웃음처럼 맑게 불어왔다. 앞으로 형이 보고 싶어질 때는 이 메밀밭에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조용히 형의 이름과 함께 작별 인사를 속삭였다.
메밀꽃이 피었고, 나는 마침내 형에게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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