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렝게티의 신들
- 작성자 비보
- 작성일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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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으로 물든 돌 위로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아내렸다. 깃털이 떨어진 곳 아래에는 팔과 다리에 십자가 모양으로 칼집이 나있는 남자가 누워있었다.
남자는 거친 모포를 몸 위에 걸치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붉은색이 아닌 검은색이었다. 검은 타르같은 피는 돌 위에서 굳어가는 대신 수증기처럼 햇볕에 타들어갔다.
절벽 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하얀 새들의 구슬픈 울음소리에 남자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날개를 활짝 펼친 두 새는 하얀 골짜기를 높나들며 남자 위를 날아다니는 작은 새들을 쫓았다.
남자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가 처음 느낀 것은 그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손끝에 닿는 축축한 피였다. 그는 여기가 어디인지,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가파르게 깎인 절벽을 올려보자니 뻥뚫린 하늘이 두려웠고 그대로 눈을 감기엔 끝없는 어둠이 두려웠다.
남자의 목에 걸린 십자가 모양의 펜던트는 쇠골 부근에서 흔들렸다. 주석으로 만든 목걸이에는 말라붙은 검은 피가 굳어있었다.
먹구름은 태양을 집어삼켜 골짜기 전체를 물들였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절벽을 짚었다. 이름 모를 꽃송이가 바람에 실려 날려왔고 남자는 꽃잎을 손으로 뭉개버렸다.
입가에 작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태양만 바라보면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눈을 사로잡기라도 한 듯.
바닥에 고인 물에 비친 남자의 얼굴은 초췌하고 비쩍 말라있었다. 남자의 머리는 그도 모르는 사이에 노인처럼 하얗게 새어있었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미소 때문인지, 아니면 완전히 알아볼 수 없이 변한 자신의 모습 때문이었는지 남자는 얼굴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절벽 위에서 나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는 위를 올려다 보았다. 남자는 쨍한 햇살에 눈알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아름답지만 묵직한 선율은 남자의 눈꺼풀을 밀어내렸다. 그는 갑작스럽게 쏟아져내리는 잠을 몰아내며 손으로 햇빛을 가렸다.
말발굽과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는 나팔소리에 묻혀지기 전 남자의 귀에 닿았다. 남자는 이번에 저들을 붙잡지 못한다면 살아남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심장이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뛰었다.
남자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목구멍은 모래를 집어삼킨 것처럼 물에 메말라 있었다.
“오, 위대한 초원의 신들이시여…”
그는 두려움을 잊고 간절하게 두손을 부여잡았다.
문장들은 뇌를 거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저 혀가 기억하고 있던 것들을 읊어대는 것 같았다. 남자는 자신의 목소리가 전해지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손마디가 하얘지도록 주먹을 쥐었다.
입에서 알 수 없는 말들이 다시 한번 기어나왔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을 만든 자.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자는 여름의 눈송이. 한순간을 담은 것은 그들의 길. 지나간 신들의 발자취 아래에서 우리는 한껏 작아진다네.”
남자는 위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에 가까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듣기 어려울 정도로 뭉개진 단어들의 뭉텅이는 점점 하나의 문장이 되었다.
누군가가 절벽 위에서 남자의 말을 받아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빠름과 느림, 시간 앞에서는 누구든 공평하기 그지 없네. 그게 신이라고 한다 해도 굴레는 벗어나지 못하느니와. 나 자신이 곧 신이며 신이 곧 나이다. 성벽안에서 벼려진 칼날과 핏빛으로 달궈진 칼날의 결이 다르듯이. 나와 신의 거리는 가깝고도 멀다.”
남자는 자연스럽게 목에 걸린 로켓을 만지작거렸다. 여전히 로켓은 굳게 잡겨있었다.
“하지만 칼날을 만든 것은 인간이며, 인간을 만든 것은 신이니. 누가 또 그것에 반박 할 수 있으랴.”
남자가 입만을 달싹여 맞받아치자, 기도문이 뚝끊기며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그 소리에 몸을 움찔하며 벽에 손을 가져다댔다. 아까와는 다르게 차가웠고, 축축한 흙이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살려주…”
“도대체 거기 뭐하다 갇혔는지 말이나 해보시오.”
절벽 위에 목소리는 그를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 남자는 누군가가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채찍이 내려치는 듯한 소리가 절벽을 때렸다. 남자의 손에 단단한 무언가가 닿았고, 그는 위를 올려보지 않은 채 그것을 힘껏 움켜쥐었다. 밧줄은 남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출렁거렸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하늘이 가까워지는 것 같아 눈을 감아보려고 했지만 눈을 뜨든 감든 앞에서 아른거리는 푸른 하늘의 잔상을 지우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두 다리가 땅을 지탱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은 남자가 생각한 것보다 컸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기 위해, 위를 올려다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남자는 밧줄 끝에서 끊어지는 듯한 쇳소리가 나자 손을 뻗어 튀어나온 돌뿌리를 부여잡았다. 그의 손과 발은 사시바람에 흩날리는 갈대마냥 떨리고 있었다.
밧줄을 잡고 있느라 손에 난 물집은 몇초만에 검은 피와 함께 낭떠러지 사이로 사라졌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듯 했고, 가슴깨에서 매달리고 있는 목걸이의 촉감 역시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 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을 구해준 사람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수염과 잔털이 수북한 얼굴, 누군가에게 뜯겨나간 듯한 너덜너덜한 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거대한 몸집과 알맞지 않은 작은 당나귀를 타고 있었다.
“난 사이드포스트의 집행자인 폴트요.”
남자는 폴트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힘없이 물었다.
“그나저나, 어찌 여기에 오신 겁니까?”
“아, 나는 집행자이자 그레이트 라인을 잇는 상단의 상인이라네.”
폴트는 나귀에서 구릿빛의 명패를 꺼내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명패를 치운 후 그는 손에 묻은 먼지를 털며 입을 열었다.
“이 절벽. 고행자들만이 머무는 곳 아니오? 그런데 어찌하여 살려달라고 하는지. 자네가 고행자가 아니라면 필시 갇힌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여 꺼내줬것만. 혹시 자네, 고행자였소?”
“잘모르겠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밀랍으로 만든 것 같은 새하얀 피부는 태양에 그을려 붉게 부어올랐고 피가 흘러나온 팔과 다리는 보라색으로 부풀어 있었다.
남자는 신음을 흘리는 대신 있는 힘껏 모포를 끌어올려 다리를 꽁꽁 묶었다. 붉은 눈은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지만 피는 점차 굳어 마침내 주먹만한 흉터만 남게 되었다.
폴트는 갑자기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뇌까렸다.
"오, 여기는 연재소설 따윈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라네. 내 차마 백업 파일을 써놓지 않은 터라 , 또 더쓰기 귀찮기 때문에 이 글은 여기서 끝이라네."
남자는 고개를 갸웃하다 폴트의 말을 이해하고 자신의 가슴에 칼을 박아넣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폴트 또한 남자의 손에서 칼을 뺏어 똑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건제했으니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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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비보 님. 글틴지기입니다. 제목과 내용을 전반적으로 고려했을 때, 이번에 올려 주신 작품은 완결된 한 편의 글이 아니라 연재를 염두에 두고 올리신 것으로 보입니다. 글틴 '쓰면서 뒹글' 게시판은 작품 연재를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완결된 한 편의 작품으로 수정을 요청드립니다. 8월 9일(일)까지 수정되지 않을 시 해당 게시물은 비공개 처리될 수 있으니 이 점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공지사항-글틴 운영규정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글틴지기 옙.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