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 마이 서울
- 작성자 비보
- 작성일 202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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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강 공원을 향해 달린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에 손이 떨리는 느낌을 받으며 멈춰서지만, 금세 그 느낌에 익숙해져 달리기를 계속한다. 해가 계속해서 넘어가고 있다. 이제는 완전히 한조각만의 빛을 남겨둔 상태다.
땀이 볼 위로 흘러 눈 앞을 가리지만 자전거 도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이커들의 플래시가 길을 밝힌다.
올림픽대로 위로는 차들이 멈추지 않고 달리고, 그 소리는 강바람에 섞여 들렸다 안 들렸다를 반복한다.
맞은편 아파트 단지에는 켜진 창과 꺼진 창이 섞여 있다. 누군가는 아직 깨어 있고 누군가는 이미 잠들었다. 그는 그것을 보면서도 어느 창도 오래 바라보지 않는다.
잠시 정자 앞에서 숨을 몰아쉬는 순간에도 다리는 계속 움찔거린다. 근육경련이 익숙해질 법했는데 아닌가보다. 검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에는 금이 아무렇지 않게 가있다.
다시 일어나 달릴 때까지 몇번의 호흡이 오간다. 해가 지고 완전한 암흑에 뒤덮혔다고 생각했을 때 쯤, 복싱장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은 가로등이 빛을 발한다. 한강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벤치에 앉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난간에 몸을 기댄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손을 꼭붙잡고 서로를 끌어안은 사람들이 보인다.
큐브처럼 높이가 맞춰져있는 빌딩들은 하나같이 반짝거린다. 밤이나 낮이나 다를 것없이 빛난다. 그의 숨소리가 더 거칠어진다.
조금 무리해서 옷을 껴입은 건지 걱정했지만 강가의 추위는 한파 못지 않다. 그는 모자를 조금 더 깊게 눌러쓰고 기계적으로 다리를 놀리기 시작한다.
약속된 장소로 모이는 것처럼 사람들은 다리 밑으로 모인다. 사방이 전단지와 쓰레기로 뒤덮여 있지만, 그는 그것들을 걷어차며 마침내 걸음을 멈춘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난간에 기대 한강을 바라본다. 뭔가 다른 게 있을 것 같았는데, 멀리서 바라보는 것과 다름없다. 손위를 두껍게 덮은 굳은살이 차가운 난간에 닿아 화들짝 놀란다.
난간에서 떨어져 뒷걸음질 치자 무언가 말랑한게 그의 등에 부딪힌다.
“아야.”
그는 무언가를 밟고 넘어져 중심을 잃고, 그바람에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허리를 비비며 눈을 떠보니 커다란 눈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수플레 피자. 한번만 드셔보세요. 아주 맛있어요… ”
그 눈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준비된 대사처럼 한정적이다. 그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여자의 손을 붙잡고 일어난다. 그녀의 발 아래에는 쏟아진 전단지가 산처럼 쌓여있다.
“아이쿠.”
그녀는 몹시 당황했는지 쓰고 있던 피자집 모자를 고쳐 쓰며 고개를 돌린다. 그녀는 그를 쏘아보고는 전단지를 줍는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됐어요.”
여자는 그를 흘깃 쳐다보더니 전단지를 건낸다.
그는 전단지를 받아들며 잠시 멍하니 서 있다. 손바닥에 닿는 종이의 감촉이 방금 전까지 쥐고 있던 난간의 차가움과 묘하게 다르다. 수플레 피자. 글자들이 눈앞에서 흔들린다.
그의 옆을 한 무리가 지나친다. 편의점 봉투를 양손에 든 채 서로 어깨를 치고 웃는다. 치킨 냄새가 잠깐 코를 스친다. 누군가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틀린 가사인데도 아무도 고쳐주지 않는다.
난간 아래쪽 계단에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캔맥주를 마신다. 말은 별로 없고, 그냥 강을 보고 있다. 그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말이 이미 오갔는지, 혹은 하나도 없었는지, 알 수가 없다.
전단지를 받지 않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얼굴은 전부 어딘가를 향해 있다. 아무도 지금 여기에 없는 것 같은데, 다들 여기 있다.
"저기요."
여자가 다시 전단지를 꺼내 행인에게 건네려다 멈추고 그를 돌아본다.
"아직도 거기 계세요?"
그는 자신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닫는다. 다리가 달리기를 멈춘 뒤로도 한참을 제 역할을 잊은 것 같았다. 조금 얼굴을 펴도 되려나? 그는 오늘만 오지랖을 부려보기로 결심한다.
"피자집이 여기서 멀어요?"
여자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오 분이요."
"먹어도 될까요. 지금."
그녀는 그를 위아래로 훑는다. 땀에 젖은 운동복, 뺨을 타고 내린 땀 자국, 풀린 신발끈. 그는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지 않은 채 물었고, 그녀는 생각보다 오래 그를 바라본다.
"손님이 오시겠다고 하면 저야 좋죠."
그녀는 짧게 말하고 앞서 걷기 시작했다. 전단지 묶음을 겨드랑이에 낀 채로, 서두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그는 한 박자 늦게 따라붙었다.
다리 아래의 소음이 점점 멀어졌다. 한강은 그의 등 뒤에서 여전히 검고 잠잠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다리 아래에서 올라와 흩어졌다. 서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오늘 밤도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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