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 작성자 마스터쿤
- 작성일 202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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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정육점의 문이 열리고 커다란 남자 한 명이 들어섰다. 왼쪽 눈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눈에 띄었다. 익숙하게 정육점을 둘러보더니 깊숙이 있는 휴게실로 들어갔다. 휴게실 문이 삐걱대며 열렸고, 안에서 을씨년스러운 외관에 반하는 따스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문이 열리자, 휴게실 바닥에 앉아 뜨개질하던 수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구경 씨, 왔어요?”
“오늘은 또 뭘 뜨고 있는 거야?”
“비니요. 구경 씨 드리려고 뜨고 있었어요.”
수도 구경도 알고 있었다. 구경이 비니 따위를 쓸 리가 없다는 걸. 그래도 구경은 불평하지 않았고, 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상대가 선물을 주면 기꺼이 받는 것. 그게 사람 간의 예의라는 걸 얼마 전에 배웠고, 가르쳐 줬으니까.
“잠깐 머리 좀 대 봐요. 잘 어울리는지 보게.”
구경은 순순히 머리를 내어주었다. 수가 비니를 마저 뜨는 모습을 지켜보며 구경은 생각에 잠겼다.
구경, 본명은 강태헌. 올해로 30대 중반에 들어선 그는 장기 밀매 조직의 간부였다. 그의 손짓 하나면 몇십 년을 살아온 사람의 인생이 단 3초 만에 사라졌다. 그만큼 그는 강하고 잔혹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이혼한 아내가 남기고 간 딸이었다. 아내는 말했더랬다. 태헌 같은 사람과는 죽어도 못 살겠다고. 홀연히 떠난 그녀를 태헌은 구태여 붙잡지 않았다. 그도 자신이 남편으로서는, 아빠로서는 최악에 가깝단 걸 알았다. 그는 무력을 쓰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법을 몰랐고, 언제나 강압적이었다. 사람을 수단과 도구로만 보는 남자 아래에서 자란 딸은 자연스럽게 말수를 잃었다.
그런 그가 수를 만난 것은 어찌 보면 기적이었다. 수는 장기 밀매 업에서 유통을 담당했고, 모든 게 불분명한 이였다. 그, 어쩌면 그녀는 장기 밀매 업자답게 가명인 ‘수’를 통해 본명을 철저히 감췄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과 중성적인 체형을 가졌다. 긴 백발에 어울리는 하얀 피부가 특징인 수는 신기루 같은 사람이었다.
둘의 첫 만남은 정육점(의 탈을 쓴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이전에 일하던 유통업자가 말실수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묻어버린 태헌은 새로 부임한 이에게 경고하러 정육점을 찾았다. 정육점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것은, 테이블 위에 꽃을 꽂아두고 있는 수였다. 수는 태헌을 보자마자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태헌은 그런 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수가 유통업을 맡은 지 6개월이 다 되어갈 때까지도 둘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간부가 직접 현장에 나오는 일은 드물었을 뿐 아니라, 태헌은 사람과 척을 치면 쳤지, 관계를 만드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둘이 처음으로 사적인 대화를 나눈 건, 수의 경력이 10달을 채워갈 때쯤이었다.
VIP의 의뢰가 들어와 태헌이 유통 과정을 감시하러 나온 그날, 태헌은 수 앞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제 막 7살이 된 태헌의 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 아빠, 어디야?
― 일하고 있어. 왜?
― 보고 싶어서······.
― 용건 없으면 끊어.
통화가 지속되는 10초 동안 오간 대화는 그 네 마디가 전부였다. 수는 그 전화 내용 하나만으로 태헌을 대강 파악했다. 무뚝뚝하고, 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 수가 태헌에게 말을 건 것은 태헌이 전화를 끊은 직후였다.
“따님이신가 봐요?”
제게 말을 붙이는 수에게 태헌은 언제나처럼 딱딱하게 답했다.
“알 거 없잖아.”
“따님, 의기소침할 때가 많죠?”
그 말에 스마트폰을 만지작대던 태헌이 고개를 들었다. 수는 하얀 머리를 질끈 묶은 채 빨갛다 못해 검붉은 장기를 비닐로 포장하고 있었다. 태헌이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하고 서 있자, 수가 마스크를 내리며 말했다.
“아빠가 강압적이니까 딸이 주눅 들죠.”
그때부터였다. 수가 태헌에게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시작한 건.
태헌은 고아였다. 정확히는 스스로 고아가 되었다. 폭력을 일삼는 부모님 아래에서 20살을 맞이한 태헌은 그 즉시 집을 나왔고, 그와 동시에 이전에 알고 지내던 모두와 연을 끊었다. 난폭한 부모님에게서 배운 건 불신과 폭력뿐이었고, 그는 완벽히 자라지 못한 상태로 등 떠밀리듯 어른이 되었다. 그런 그가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알 리가 만무했고, 그렇기에 그는 수가 필요했다. 태헌에 비해 훨씬 어른스럽고 성숙한 수가.
“구경 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대바늘을 움직이는 손을 멍하니 바라보는 태헌에게 수가 물었다. 그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태헌은 뻐근한 목을 풀었다.
“아니야. 오늘은 뭐 했어?”
“태헌 씨는요?”
수는 늘 이랬다. 자신에 관한 걸 물어보면 태헌에게 역으로 질문하기 일쑤였다. 태헌이 몇 번을 캐물어도 결과는 늘 같았다.
“오늘은 딸 참관 수업에 다녀왔어. 시간은 아까웠지만.”
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엷게 웃으며 대바늘을 내려놨다. 그러고는 태헌의 눈을 응시했다.
“시간이 아깝긴요. 그런 게 전부 추억이고, 기억인걸요. 현재는 언제나 과거가 되고, 과거에 머무를 방법은 현재에 존재하는 것뿐이에요.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추억, 그리고 기억이 뭉쳐야 하고요.”
태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가 수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시간은 어디까지나 효율의 영역이었고, 사람은 효율을 사수하기 위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고개를 끄덕인 건, 수에 대한 존중이자 수긍의 의미였다.
“솔직히 말해요. 내 말, 이해 못 했죠?”
이번에도 수가 정곡을 찔렀다. 수는 눈치가 빨랐고, 사람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었다. 태헌이 멋쩍게 웃었다.
“들켰네.”
“내 말이 어려울 땐 이것만 기억해요. 사람보다 소중한 건 없고, 사람에게 소중한 건 지금이라고. 이 정도는 할 수 있죠?”
태헌이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진심으로 이해한 사람의 끄덕임이었다. 수는 그제야 만족하고 대바늘을 집어 들었다.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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