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감정을 먹는 식당

  • 작성자 캔디
  • 작성일 2026-09-22
  • 조회수 134

눈치 없게도 해는 맑게 떠 있고 사람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다들 뭐가 그리도 행복한지.'

나는 내 엄마 아빠가 누군지 모른다. 낳아짐을 당하고 3살 때 아빠가 바람을 피웠다던가. 그 이후로 둘은 이혼하고 나는 보기 좋게 버려졌다. 가끔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내 엄마 아빠도 나를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던져버렸을까 싶다. 버린 쓰레기를 안고 살아갈 이는 없으니 나 같은 건 아마 머릿속에서도, 마음속에서도 지웠겠지.

나는 늘 이 둘을 원망해 왔다. 그러나 이젠 호구같이 낳아짐을 당해버린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냥 그때 어떻게든 나오지 말고 버틸걸. 내가 죄인처럼 느껴졌다. 이런내 마음을 너희들은 알까? 나는 그 짐을 안은 채 살아가는데 너희가 그렇게 행복하게 웃고 있으면 난 어떡해? 

저기, 팔짱을 끼고 있네? 여자 둘인데... 친구겠지? 

나는 학교에서도 고아였다.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내 목을 조여왔다. 그저 고아일 뿐인데 모두의 가슴에서 사라졌다. 어쩌면 난 고아가 아니라 고인일 지도. 어디에 묻혀있는지도 모르는 신원미상의 쓰레기일 지도.

'하... 그래도 나가야겠지.'

자본주의 사회에서만큼은 고인이 되지 않으려 회사로 향했다. 그래도 면접 때는 고아가 아니었나 보다. 기적같이 합격했는데...


내 인생이 이렇지 뭐...

여기서도 나는 버려졌다.

"이것이 이번에 제가 제안드리는 프로젝트입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사가 가리키는 그 PPT 속 프로젝트는 내 것이었다. 내가 줄 때는 맘에 안 든다고 컨펌도 안 해주더니 그 PPT가 자기 것인 것처럼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속에 있는 분노를 간신히 삭이는 것 말고는. 다른 사람들도 저게 내 아이디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전체 회의 때 내가 의견을 낸 거니까. 보기 좋게 무시당했었는데 상사의 발표는 끝나자마자 극찬이 쏟아졌다.

"이 팀장. 아주 좋아. 이번 프로젝트는 이 팀장이 맡도록 해."

내가 기획한 프로젝트가 눈앞에서 가로채기를 당하는 데도 아무 말도 못 하는 신세...

'그래. 누가 내 말을 들어주겠어.'

그렇게 살아온 회사 생활도 어느덧 3년. 실적은 내가 쌓았는데 동기들 중 연봉은 내가 제일 낮았다. 연봉협상 때마다 내게 돌아오는 말.

'이렇게 매번 실적 미달이면 저희도 계속 함께 가기는 어려워요.'

빌어먹을. 그 실적 내가 쌓은 거 당신들도 알잖아. 결국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잘하겠습니다."

또다시 허리를 굽혀 굽신거렸다. 누가 보면 허리가 90도 꺾인 장애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퇴근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데 저 멀리서 아득한 불빛이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냥 평범한 식당이었다. 들어가 보니 뭔가 허름하긴 했지만 비위가 상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침 배도 고파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열어보는데...

'무슨 메뉴 이름이 다 이래?'

기쁨, 슬픔, 분노, 절망 등 감정이 음식 이름이었다. 그때 진보라색의 낡은 커튼을 열고 사람이 나온다. 나이는 50대 중반 정도 된 것 같은 여자였다. 사장인 듯했다. 머리는 파마를 잔뜩 한 것 같았고 꽃무늬 앞치마를 두른 그녀에게서 진짜로 꽃향기가 베어나는 듯했다.

"주문하시겠어요?"

그녀는 아주 태연하게 주문을 받으려 왔다. 이 이상한 식당은 뭐지?

"혹시 여기는 무엇을 파는 식당인가요? 감정을 파나요?"

나의 말에 그녀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감정을 판다기보다는 감정을 먹는 거죠."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감정이 사라지겠죠. 영원히."

그 '영원히'라는 단어에 악센트가 들어갔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감정이 사라진다라... 왠지 마음이 끌렸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찾던 거야. 감정 따위 있어봤자 뭐 해. 괴롭기만 한데.'

"슬픔, 분노, 절망 다 주세요."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닥치는 대로 다 시켰다. 당장 먹어서 없애버려야지. 그러면 내 인생이 조금은 좋은 삶으로 남을 수도 있는 거잖아.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그녀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물었다. 왜지? 부정적인 감정이 없으면 사는 게 훨씬 편해지지 않나?

"네."

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나의 확고한 대답에 그녀는 발걸음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식탁 위에 놓였다. 조심스레 숟가락을 들었다. 한 입 넣자마자 혀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부드럽고 향긋했다. 일주일은 굶은 것처럼 나는 그 모든 감정의 음식을 다 먹어치웠다.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다 먹고 난 후 계산대로 향했다.

"음식이 정말 맛있네요. 얼마인가요?"

"저희는 돈을 받지 않습니다."

'공짜라는 뜻인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내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뒷 말을 덧붙였다.

"더 큰 값을 치르게 될 테니까요."

그 말에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돈 안 내는 게 어디야. 

"헤헤. 감사합니다."


또다시 연봉협상 날이 찾아왔을 때 연봉은 더 깎였다. 이번에는 아예 악평까지 들었다.

"지금 해고 대상이에요. 분발 좀 하세요. 지금 처음 들어왔을 때 연봉보다 훨씬 깎였어요. 알죠?"

"네! 헤헤."

"그렇게 속 편하게 웃지만 말고요!"

"네. 히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도 안 잘린 게 어디야. 샴페인이라도 터뜨려야 하나?'

하루 종일 허허실실 웃고 있었다. 샴페인을 벌써 마시기라도 한 듯 내내 취한 사람처럼 굴었다.


3년 후, 나는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는 나의 웃는 모습이 예뻐서 반했다고 했다. 역시 그 식당에 가기를 잘했어. 아직까지 후회는 전혀 없다. 이전보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삶이다. 전에 나였다면 결코 꿈꿀 수조차 없던 행복이 현실이 되었다.

'이런 게 행복이라는 거구나.'

나는 긍정적인 감정들을 하나 둘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불편함 없이 아주 잘 살고 있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계속 애교를 부리고 그가 좋아하는 나의 예쁜 미소도 보여줬다. 그러나 그는 휴대폰만을 바라볼 뿐 나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자기야. 뭐 해?"

태양처럼 밝게 물었다.

"아냐. 아무것도."

그는 급히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넣으며 답했다. 살짝 이상했지만 우리는 기분 좋은 데이트를 이어갔다. 늦은 저녁, 그가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줬고 우리는 따뜻한 포옹으로 서로의 하루를 마무리지어줬다. 다음 날 아침,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도 덜 깬 채 잔뜩 잠겨버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순간 공기가 가득 찬 풍선을 발로 밟는 느낌이었다. 귓구멍이 터질 뻔했다.

"야! 지금 네 남자친구 다른 여자랑 있어!"

띠링- 이어서 내 폰에 문자가 왔다. 남자친구와 어떤 여자가 카페에서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이게 뭐 어때서?"

내 말에 친구는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아?"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사진 속의 내 남자친구 얼굴을 보니 귀엽고 사랑스럽게만 느껴졌다. 덕분에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마워."

"어?"

전화를 끊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나도 커피를 탔다. 그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정말 좋아한다. 믹스커피가 그 퀄리티를 흉내나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가 좋아하는 건 함께 나누고 싶다. 마시자마자 얼굴이 찌푸려졌다. 너무 썼다. 혀를 타고 목구멍을 넘어 내려오는 비릿한 향기를 지닌 그 맛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이상했다.

'그래도 그 남자가 좋아하는 거니까.'

억지로 한 컵을 다 마시니 그와 정말 닮아가는 것 같아 뿌듯했다. 그때 마침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일어났어?"

"응. 자기 카페 갔었어?"

"어?"

순수하게 궁금했을 뿐인데 왜 당황하지?

"아니. 그냥 맛있었나 해서."

"어... 맛있었어. 혹시... 봤어?"

그의 단어는 자꾸만 떨리고 있었나? 추운가? 어디 아픈가?

"아니. 직접 본 건 아니고... 근데 왜 이렇게 떨어? 어디 아파?"

"아냐. 아무것도. 괜찮아. 이따 보자."

그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급하게? 왜지? 우리는 여느 날처럼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꼭 가보고 싶던 식당이 있었다. 워낙 인기 많은 식당이라 식사 시간보다 웨이팅이 더 길었다. 2시간의 웨이팅을 마치고 간신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가 꽁꽁 얼어버린 얼음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진짜 얼음이 된 건가? 차갑나? 그의 손을 잡아보니 따뜻했다. 얼음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왜 이러지?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어떤 여자 둘이서 밥을 먹고 있었다.

'어? 저 사람, 그때 그 사진 속에...?'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인사했다. 밝아지니 친화력도 한층 좋아졌다. 달려가는 나를 그가 가로막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그가 내 손에 이끌려 그들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꼭 친구가 되고 말 테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분 여자친구 김서하라고 해요. 사진보다 훨씬 미인이시네요?"

"사진이요?"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네. 제 남자친구랑 같이 있는 걸 제 친구가 찍어서 보내줬거든요. 꼭 한 번 뵙고 싶었어요!"

그녀는 눈으로 내 남자친구를 향해 총을 쏘고 있었다. 이건 예쁜 눈빛은 아닌데. 뭐지?

"아냐. 오해야. 내가 나중에 다 설명할게."

그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잽싸게 내 손을 가로채며 걸어 나왔다. 그의 걸음이 너무 빨라 구두를 신고 있던 나는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어느 한적한 공원.

"아니, 넌 눈치가 없어?!"

그가 소리치며 물었다. 왜 이러지? 난 그냥 친구가 되고 싶었던 건데...

"난 그냥..."

"쟨 내 여자친구라고!"

엥? 의문이 들었다. 네 여자친구는 나잖아?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한 번에 두 여자를 만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쯤은 안다.

"그럼 난 뭔데?"

"너? 그냥 예쁘장하게 생겨서 좀 놀아준 거야. 설마 내가 정말 널 좋아했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그러면 진~짜 곤란하다."

이런 걸 보고 적반하장이라고 하는 건가? 보통 드라마에서 이러면 상대가 더 화내던데 나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그의 돌아서는 뒷모습에도 전혀 슬프지가 않았다.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핸드폰을 열었다. 배경화면은 그와 함께 사랑을 나눈 사진. 아니지. 그에게 사랑을 준 사진이 떡하니 박혀있었다. 연락처를 뒤져본다. 그러다가 내 눈에 들어온 이름. '김주하'. 나에게 조언을 해줬던 그 친구였다. 그믐달을 연상케 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걔 여자친구는 따로 있었대. 난 그냥 놀아준 거래. 예뻐서."

주하가 전화를 받자마자 속사포처럼 뱉어댔다.

"하, 넌 뭐가 그렇게 덤덤하냐?"

"아니. 나 덤덤하지 않은데."

"하... 그렇지? 여기서 화가 안 나면 사람이 아니지. 야, 숨기고만 있으면 화병 걸려. 그냥 속 시원하게 다 말해봐. 다 들어줄게."

주하는 다행이라는 듯 내뱉은 한숨을 추진력 삼아 나보다 더 빠른 속사포 랩을 선보였다. 흥분했네.

"아니? 나 화 안 나는데?"

진심이었다.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뭐?"

주하가 황당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고 삑사리와 함께 듣기 싫은 고음이 터져 나왔다. 왜 얘가 더 속이 터지는 것 같냐.

"덤덤하지 않다며."

덤덤하지 않은데.

"응. 나 지금 기분 좋은데."

"얘가 더위를 먹고 맛탱이가 갔나. 무슨 소리야?"

"기분 좋아, 진짜. 나한테 예쁘다고 해준 거잖아.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나랑 놀고 싶었다는 거고."

적막이 흘렀다. 뚝- 통화가 끊어졌다. 주하 쪽에서 먼저 끊었다. 그리고 메시지가 날아왔다.

<너 지금 제정신 아니야. 어떻게 그렇게 생각을 하냐...>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왜? 내 창의적인 답변에 많이 놀랐어? 헤헤, 기분 좋네. 고맙다.> <... 진짜 미쳤네.>

정말 내가 미친 걸까? 그러고 보니 그 식당에 간 이후로 나는 여러 부당한 일을 당해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피해를 봤고. 이것도 마찬가지인 걸까? 나는 곧장 그 식당을 찾아갔다. 그때 그 아줌마가 나와 말했다.

"거봐. 내가 후회할 거랬지?"

"저를 기억하세요?"

"당연하지. 여기는 일반 사람들은 못 와. 너 같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야.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을 만큼 싫은 사람, 없앨 수만 있다면 다 끝내버리고 싶을 만큼 세상을 증오하는 사람들 말이야. 그리고 그런 애들의 감정을 없애주면 지금 너처럼 꼭 이곳을 찾아와. 네가 올 걸 알고 있었어."

"다시 원래의 저로 되돌려주세요."

그때, 그 아줌마의 눈빛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나를 째려보는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순식간에 공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때 분명히 말했을 텐데.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부탁드려요. 한 번만 어떻게 안 될까요?"

그 아줌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인간들은 꼭 후회할 짓을 해요. 그러고는 이렇게 찾아와서 빌지. 그래도 도와줄 방법은 없어. 나가."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리려던 그때,

"하... 진짜. 내가 이래서 데몬이 되지 못한 건가? 너같이 찾아오는 애들을 매번 받아주고 있으니 원... 이번에도 루시퍼께서 크게 노하시겠구먼..."

그 말을 들은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돌아보았다. 그런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나를 비웃으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왜? 놀랐니? 나는 데몬이 되지 못한 데몬 지망생이야. 인간을 도와주던 벌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의 감정을 모조리 없애라는 명령을 받았다."

내 반응을 잠시 살피더니 다시 입을 뗐다.

"매번 너 같은 애들 도와주다가 이곳에 발을 묶인 지도 어느덧 500년이다."

나를 도와주겠다는 건가? 빤히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인간의 저 눈만 보면 마음이 약해져..."

그녀가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큰 결심이라도 한 듯이 소리를 높였다.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명 더 도와주고 루시퍼한테 깨져보지 뭐."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는 내게 어떤 병을 던져주었다. '엘릭서'.

"한 번쯤 들어봤지? 그 약이 네 저주를 풀어줄 거야. 네가 직접 만든 그 병을 치료해 줄 유일한 약이다. 쭉 들이켜."

검지손가락 크기의 병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 순간, 그동안의 모든 기억들이 떠오르며 모든 고통이 한 번에 몰려들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의 감정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 심장을 파고들었다. 온몸의 피가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차는 듯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아!!!"

괴상한 비명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내게 귓속말로 속삭이고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견뎌. 한 10분 정도는 지속될 거야."

고통에 몸부림치는 나를 남겨두고 그녀는 주방 안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딱 10분 뒤,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의아함을 품으며 가게를 나왔다. 뒤돌아보니 가게는 사라지고 그곳에는 새하얀 연기만이 피어날 뿐이었다. 그때, 편지 한 통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부디 다시는 이곳이 너의 눈에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에 쓸데없이 존재하는 것은 감정은 없다. 이 말을 너에게 전했단 걸 알면 분명 루시퍼가 날 죽이려 들겠지만 그래도 꼭 알려주고 싶었다. 이젠 모든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행복해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캔디

추천 콘텐츠

닿을 수 없는 우리

다온은 선천적으로 '나비 어린이'라고 불리는 병을 지닌 채 태어났다. 정확한 진단명은 '수포성 표피박리증(EB)'. 작은 마찰이나 접촉에도 온몸의 피부가 벗겨지는 질환으로, 환자들의 피부가 마치 나비 날개처럼 약하다고 하여 '나비 어린이'라고 부른다. 다온은 매일 온몸을 특수 붕대로 휘감은 채 그 위에 옷을 입고 다녀야 한다. 손은 늘 특수로 제작된 장갑을 끼고 있어야 한다. 붕대로 휘감는 순간에도, 붕대를 푸는 순간에도 천천히 시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는 게 일상이다. 붕대를 감은 팔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 싫었기에 40도에 육박한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도 그녀는 긴팔만을 고집했다. 그로 인한 땀방울이 그녀의 살을 날카롭게 베어낼지라도. 남들에게는 일상적인 행위조차 그녀에게는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과 같다. 씻을 때조차도 욕조에 자극이 없는 미지근한 물을 받아 몸을 천천히 담가야 하며, 물속에는 소독 효과와 통증 완화를 위한 멸균 식염수나 특수 세정제를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지옥과도 같던 20년을 버텨내고 드디어 성인이 되었다. 꿈에 그리던 대학의 합격 증서를 당당히 받아냈다. 서진이를 만난 건 첫 번째 팀 프로젝트 때였다. 같은 조에 배정받은 것이 둘의 첫 만남이었다. "아... 이제 마지막으로 발표를 정해야 하는데 하고 싶은 사람 있나요?" 복학생 선배가 물어왔다. 다들 눈치 보며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럼 역할이 정해지지 않은 서진 님과 다온 님이 공동으로 발표해 줄래요?" 서진과 다온은 서로를 힐끔 쳐다봤다. "네." 그렇게 둘은 발표 준비를 맡게 된다. 강의가 다 끝나고 둘은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다. "혹시 나이가...?" 서진이가 물었다. "아...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이에요. 20살입니다." "어? 동갑이네요? 우리 말 놓을까요?" 먼저 말을 놓자는 서진이의 제안에 고마운 마음으로 흔쾌히 응했다. "... 그래!" "여긴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떨까?" "발표 시간에 맞춰야 하니까 이 부분은 빼자." 매일 늦게까지 발표 준비를 하며 둘은 저녁까지도 함께했다. "어때? 맛있어?" "응. 맛있네." 서로에 의해 웃는 날이 많아졌고 발표 준비도 매우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2주 뒤 발표에서 그들은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치며 모두의 환호 속에서 A+라는 최고의 점수를 얻게 된다. A+ 기념 축하파티를 하게 되었다. "자!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특히 발표 너무 좋았어! 다 같이 건배!" 복학생 선배가 신이 나서 소리쳤다. 서진과 다온은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 짓는다. '수고했어.' '너도.' 둘은 무언의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축하파티가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서진이가 다온이를 불러 세웠다. "저기, 혹시... 나랑 영화 보러 가지 않을래? 선물 받은 건데 마침 표가 두 장이라서... 싫으면 안 가도 되구..."(술 취해서 말이 어눌해진 것을 표현하기 위함) 다온은 잠시 난처해했다. '사람들과 사적으로 엮였다가는 큰일이 날 거야.' 웃으며 거절하려 했지만 미소 짓는 그 순간, 서진이가 다가오며 물었

  • 캔디
  • 2026-08-17
뒤늦은 대답

우리 엄마는 늘 나에게 집착을 하던 사람이었다. 매번 전화하고 문자하고, 나에게서 한시도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말없이 친구랑 나가 놀기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나는 이런 엄마의 집착과 간섭이 버겁고 짜증났다. 나는 이러한 생활을 간신히 버텨냈고 대학 합격 통지서가 날아오자마자 짐부터 싸기 시작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본 엄마는 내 앞을 가로막았다. 정말 끝까지 내 발목을 잡고선 놓아주지 않았다."가지 마. 나 너 못 보내. 지방에서 대학 다녀. 거기도 원서 넣었고 합격했잖아." 지긋지긋했다. 엄마에게서 벗어나려고 죽어라 공부해서 누구나 들으면 알 만한 서울권의 대학에 합격했는데 지방대로 가라고? 다시 엄마의 인형으로 꼼짝 않고 살아가라는 얘기야?가는 날까지도 엄마의 반대는 이어졌다."굳이 가려는 이유가 뭐야? 엄마랑 함께 있자. 지방대도 충분히 좋은 곳이야. 여기서 살자."현관문 앞까지도 엄마는 내 손목을 붙잡고는 가지 말라며 나를 만류했다."그만 좀 해! 엄마가 이래서 내가 떠나는 거야! 더 이상 엄마의 집착이 짜증난다고! 집 계약까지 끝냈는데 무슨 소리야!"마지막까지도 이기적인 엄마의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라 소리치며 손을 뿌리쳤다.내팽개쳐진 엄마의 손은 잔주름과 함께 떨리고 있었다. 눈동자도 떨리고 있었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런 모습이 짜증나고 정 떨어져서 한숨만 푹 내쉰 채 문을 열고 나왔다. 현관문 너머 엄마의 울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끝까지 멋대로야."나는 짜증만 내며 돌아섰다. 기차를 타고 드디어 서울의 자취방에 들어서니 그제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드디어 엄마의 집착에서 벗어나서 완전한 자유를 얻었어. 이제 정말 자유야!"나는 환호성을 내질렀다.그 환호성 속엔 약간의 찜찜함이 담겨있긴 했지만...집으로부터 벗어나면 나아질 거라는 나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이사 당일부터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지금이라도 돌아와. 안 늦었어. 돈은 엄마가 다 대줄게."한숨부터 나왔다. 체념과 약간의 짜증이 섞인 듯한 말투로 대꾸했다."하... 이미 이사왔는데 뭘 자꾸 돌아오래. 안 갈 거니까 웬만하면 연락하지 마."하지만 그 이후에도 엄마는 계속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겼다.'딸, 돌아와. 엄마가 기다릴게.''보고싶다. 언제 올 거니?'이런 식의 문자가 수도 없이 날아왔다. 작정하고 모든 연락을 받지 않으면 하루에 부재중 전화만 30통, 문자는 50통이 넘게 와 있는 날도 드물지 않았다.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이제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호적에서 파버린다느니, 정말 엄마를 버릴 거냐는 둥 자꾸만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것이었다.물론 우리 엄마도 처음엔 이러지 않았다. 여느 보통 엄마들과 크게 다를 것 없었다. 가족 소풍에 가지고 갈 도시락을 직접 만드시며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항상 웃는 얼굴로 맞이해주셨다. 하지만 몇 년 전,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등진 뒤로 엄마는 나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 마치 내가 당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처럼...그래

  • 캔디
  • 2026-07-10
그날, 우리는 서로의 안녕이 되었다.

첫 등교 날 아침이 밝았다. 전날 뒤척이다 3시간밖에 못 잔 덕에 아주 좀이 쑤신다.드디어 새학기, 새 친구들과 새 담임을 만나는 바로 그날. 오기를 바랐지만 동시에 무엇보다도 피하고자 했던 그날이 내 눈앞에 다가왔다.끼이익-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이미 무리가 지어져 있었다.'아... 이번 1년 어떡하냐...'낙심하며 머리를 박은 채 엎드렸다.'올해 혼자 다니는 거 아니야...?'바로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놀라서 일어나보니 어떤 남자아이 하나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동그란 눈망울,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까지. 왜 연예인을 안 하고 학교에 남아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입을 떡 벌린 채로 그의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마치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저기로 빨려들어가면 영원히 못 나오겠지?'그런 생각을 하며 그의 얼굴만 본 것도 수초. 그 아이가 당황했지만 금세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안녕? 나는 이현우라고 해. 네 이름은 뭐야?"현우... 이름마저도 아름다운 그가 왜 나의 누추한 이름 따위를 궁금해하는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홀린 듯 답했다."김서연..."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치 술이라도 마신 듯이 헤롱거리며 답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내 앞의 의자를 돌려 내 얼굴을 마주보았다."너 이름 되게 예쁘다. 사실 나는 유학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거라서..."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짓했다. 귀를 대라는 것이다. 그의 숨결이 내 귀를 간지럽힐 때마다 나는 녹아버릴 것 같았다."그래서... 친구가 없어."뜻밖의 얘기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 얼굴에 아무도 들러붙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야? 뒤따라온 말을 듣고 나는 기절할 뻔했다."그러니까 나랑 친구하자.""친구? 친구를 하자고? 너랑 나랑? 왜?"동그랗게 치켜뜬 눈으로 따지듯 묻자 그는 잠시 당황했다. 그러고는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오리같은 표정을 지었다."싫어...?"그의 눈은 마치 강아지가 혼날 때 짓는 시무룩한 표정이었다."아, 아니! 좋아! 너무 좋아!"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고 주위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얼굴이 빨개진 채 홍당무가 된 나를 보고서는 현우는 피식 웃었다.아마 그는 내가 그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겠지."귀여워"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등교 때부터 하교 때까지, 아니 하교 후에도 서로 붙어있었다. 그와 있는 날들이 일상이 되었다. 이제는 그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는데..."나 유학 가. 다시 돌아가게 됐어."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뭐 어차피 너도 적응 잘했고 나 하나 없어도 잘 지낼 거란 거 알아."'아냐. 내가 너없이 어떻게 잘 지내... 처음 본 순간부터 너는 내 세상이었는데...'"알지만, 그래도 난 너 보고싶을 거 같으니까 수능 끝나고 내가 뛰어올 수 있게 7시에 이곳에서 만나. 그때 꼭 보러 올게"그때는 몰랐다. 그의 유학이 단순히 교육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그게 그와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약속대로 나는 수능이 끝나고 약속장소로 뛰어갔다.

  • 캔디
  • 2026-05-25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세요.
  • 욕설, 비방, 혐오 표현 및 과도한 홍보성 내용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운영 정책에 위반되는 댓글은 사전 안내 없이 숨김 또는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