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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 갈 방법 없습니까

  • 작성자 고래
  • 작성일 2026-09-25
  • 조회수 218

침대에 누워 있는 한 청년의 방을, 달빛이 서서히 잠식합니다. 청년은 눈을 뜨지 않은 채로 울고 있습니다. 창문 밖엔 여전히 달빛. 방은 문학서적들로 가득하고, 책상 위 노트북엔 신춘문예 당선 실패라고 떠 있습니다. 그의 용모는 수염이 덥수룩해 30대 정도로 보이는데, 신춘문예 때문인지, 지금으로선 추측만 할 따름입니다.


달이 서서히 걷히고, 눈물이 말랐을 때, 청년이 일어납니다.


".... 내 아이들은 어디갔지...."


그가 처음 뱉은 말은 마을이었습니다. 창밖엔 거대한 빌딩. 마을이라니요? 그는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이상하다는 듯 찌푸립니다.


"내 수염 어디갔지."


주위를 살피던 그의 눈에 다시 노트북이, 신춘문예 당선 실패가 들어옵니다. 눈물이 또 흐릅니다. 그는 무작정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나갑니다. 아파트들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넋두리를 쏟아냅니다.










그는 무언갈 믿고 있었습니다. 그의 뇌 속에서 시작되는 주마등과도 같은 회상에 저는 휩쓸려버렸습니다. 눈을 떴을 땐 빛나는 햇빛이 저의 눈을 강타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니라 그의 눈이었습니다. 갑자기 등장한 저는 상관하시지 마시고 이야기를 보시길 바랍니다. 그의 앞에 보인 것은 칼이었고, 상태창이었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웹소설의 기본적인 루트, 그는 소리를 지르며 좆같은 현실에서 벗어났다고 말합니다.


숲이었습니다. 발밑에서 슬라임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퀘스트창엔 슬라임을 죽여라. 그는 단칼에 죽였습니다. 살생의 감각은 이상했지만 나쁘진 않았고, 오히려 도취되는 걸 느끼며 그는 지도를 켜 마을을 향해 걸었습니다. 걷는 내내 기분 좋은 미소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마을 입구, 울타리 너머로 중세풍 마을이 보였습니다. 아름다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는 손을 주머니에 넣어 연필을 꺼내려 합니다 — 시를 쓰는 습관이지만, 연필이 이곳에 있을 리 없습니다.


"당신, 썩 꺼지쇼. 이 시기에 뭐하는겁니까?"


그는 당황합니다. 현실에서의 무시와 폭력이 떠오르려 합니다.


"닥치세요."


허리춤의 칼을 본 주민이 눈을 흘기곤 조용해집니다.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여관으로 가려 했지만 돈이 없고, 길드를 찾았지만 길드는 없습니다.


"어라..."


뒷골목에 주저앉은 그의 숨이 가빠집니다. 나무 판자들이 무언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나무에서 피가 흐릅니다. 나무에서 피가 흐를 리 없다는 걸 압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이래선 현실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는 허리의 검을 봅니다. 자신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믿으며, 그는 모험을 시작했습니다.


--




그날 이후 그는 마을에 남았습니다

슬라임을 잡는 법을 배웠고, 세이렌을 잡는 법을 배웠고, 사람들과 밥을 먹는 법을 배웠습니다


(노트북 화면은 여전히 켜져 있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 실패.)


그렇게 열아홉 번째 여름이 왔습니다.

세이렌을 잡은 열아홉 번째 여름이요.


절벽 아래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그 소리 사이로 섞여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는데도 사람의 것보다 아름다웠습니다. 그는 귀에 밀랍 대신 직접 만든 천 조각을 쑤셔 넣고 절벽을 내려갔습니다. 손끝이 바위에 쓸려 피가 났습니다. 그 피가 파도에 씻겨 내려가는 걸 보면서, 그는 문득 이 감각이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방 책상 앞에서, 신춘문예 마감을 앞두고 손톱을 물어뜯다 피가 나던 감각과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번엔 피가 나면 뭔가 끝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세이렌은 바위 위에서 그를 보고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검을 쥔 손이 떨리는 걸 느꼈습니다. 두려움과는 다른 떨림이었습니다. 그는 검을 내질렀고, 세이렌의 노래가 반음 어긋나며 끊겼습니다. 파도 소리만 남았습니다.


그날 밤, 그는 마을 축제에 초대받았습니다. 모닥불 앞에서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술잔을 부딪쳤고,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조롱이나 무시가 아닌 다른 어조로 불리는 걸 들었습니다. 그 어조에 놀라 잔을 놓칠 뻔했습니다. 그때, 모닥불 건너편에서 한 여자가 그를 보고 있었습니다. 노란 머리카락이 불빛에 반쯤 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녀는 웃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를 오래, 마치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을 확인하듯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그 시선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원고지 앞에서, 자신이 쓴 문장을 다시 읽을 때 스스로에게 던지던 시선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이름을 물었습니다.


"레베리드."


그 이름을 발음하는 순간, 그는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신이 무엇을 향해 걸어왔는지 처음으로 알 것 같았습니다. 신춘문예도, 세이렌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오래 바라봐주는 그 시선 하나였습니다.


그 후로 시간은 다르게 흘렀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던 밤, 그는 산파의 손에서 갓난아이를 받아 들고 울었는데, 그 눈물은 신춘문예 낙선 통지를 받던 날의 눈물과 똑같은 온도로 뜨거웠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눈물은 멈추길 바라지 않았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용사가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청년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습니다. 달은 아직 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순도순 살다가,


그는 현실로 끌려왔습니다.











,*







그는 통곡을 하며 울었습니다. 20년의 세월이 날아갔습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빌딩 숲들이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현실의 공기에 질식할 듯한 기분을 그는 느꼈습니다. 아직도 그의 귀에는 아내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다만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고 목소리도 어느샌가 희미해져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환상이었던 듯, 그러나 그의 피땀 눈물은 분명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며 숨이 안 쉬어지는 현실 우울증 환자로의 귀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울었고, 그렇게 1시간이 흐르자 경찰이 왔습니다.


"뭐 때문에 우시는 거예요. 시끄럽다고 신고가 들어와서요."


"제 아들과 딸과 아내가... 이세계에 있어요...."


경찰은 잠시 얼이 빠져 있다가, 그를 끌고 어딘가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울고 있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고, 어디인지 안 건 누군가의 목소리 때문이었습니다.


"환자분 진정하세요."


흰 가운을 입고 안경을 쓴 전형적인 의사의 모습, 그는 책상 위에 올려진 명패를 보았습니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 이현,


"야 이 개 잡 버러지 같은 경찰 놈아, 내가 정신병에 걸린 것 같아? 아니야 이 씨발..."


그는 흐느낍니다.


"아니라고!!! 아니면 아닌 거라고!!!"


정신과 교수는 차분하게, 답했다.


"환자분 일단 진정하시고요, 얘기를 해보자고요 저희, 환자분의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어서요."


차분한 답변과 목소리에 그의 심장 박동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는 이세계에서의 일을 말합니다. 세이렌과 미노타우르스를 잡기 위해 20년을 피땀 흘린 일, 그 후 축복 같은 아이들과 아내를 얻은 일, 그리고 이곳으로 온 일, 말을 하는데 목소리가 너무나 컸다. 속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라도 있다는 듯이, 실체 있는 감정. 정신과 교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했습니다.


"그러셨군요. 힘드셨겠어요. 우선 저희 약부터 먹어보고..."


"씨발 난 정신병자가 아니라고!!!"


그는 책상에서 자를 집어 들었다. 손에 쥐자마자 알았습니다. 이건 검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손끝은 똑같이 반응했습니다. 20년간 검을 쥐어온 손이 플라스틱 자 하나에도 같은 감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 그를 더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이세계에서도 사람을 죽인 적 없던, 몬스터만 베어왔던 그 손이, 지금은 분노와 공포에 뒤섞여 사람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는 자를 내리쳤습니다. 정신과 의사의 머리에 자가 작렬했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순간 멈췄습니다. 세이렌도, 미노타우르스도 단 한 번의 타격에 쓰러졌었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는 걸, 그는 처음 알았습니다. 분명 죽었어야 했는데, 죽어야 그가 살아낸 20년이 진짜였다는 게 증명될 텐데. 안도인지 배신감인지 모를 무언가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습니다.

그때 등 뒤에서 테이저건이 발사됐습니다. 전류가 온몸을 관통하는 순간, 그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몸이 이 세계의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정신병동에 입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테이저건에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는 하얀 병실 커튼을 보고 있습니다.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하얀 병원 침대와 하얀 병실 커튼, 손에 채워진 수갑, 그는 아무래도 법적으로 수감된 모양입니다. 그는 멍하니 허공을 봅니다. 그러곤 눈을 감습니다.


"여보. 언제 나오시게요? 밥 다 됐는데."


이 말이 나왔을 때 그는 밥을 먹으러 거실로 나갔습니다. 거실로 나가면 훈장과 세이렌의 비늘이 걸려 있었고, 20년의 흔적이 눈 앞에 보였습니다. 여보는 밥을 차려 놓고 있었고, 그리고 따듯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얀 병실 커튼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다시금 눈물을 흘립니다. 언제까지고 눈물을 흘릴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에겐 현실에서의 돈이 없었기 때문이죠. 병원 약과 치료비를 감당할 만큼의 재산이 지금 없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으니까요. 이대로라면 빚더미에 앉게 된다는 것을, 그는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눈물이 나는 건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때, 이상하게도 손이 들렸습니다. 손은 주머니를 향했고, 언제 넣었을지 모를 연필이 있었습니다. 이세계에선 없던 연필, 그는 벽에 연필을 들고, 유령에 빙의된 듯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너가 올 때의 들리던 된장찌개의 내음이


보글보글 끓는 물에 소리에 얹혀 있는 웃음 소리가


Cd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되어 나는 카페에서 너희들에 소리를 듣는다 커피를 마시고 시를 쓴다


시를 쓸때면 언제나 커피를 마시고....]


웃고 있었습니다. 그러곤 머리를 벽에 박았습니다. 계속, 연달아, 의사들이 대거 몰려왔고 머리에선 피가 흘렀습니다. 왜 박았을까요.






그 다음 날 그는 울지 않았습니다. 연필이 그의 손에 쥐여져 있었고, 생각해보니 그는 시로써 이세계와 교류하고 있었습니다. 시 속에서 아들과 딸과 말을 했고, 아내와 밥을 먹었습니다. 아들과 딸과 테니스를 치고, 아내와 꼭 안고 잤습니다. 웃음이 실실 새어나왔습니다. 그는 현실에 있었지만 현실에 없었습니다.


그는 두 세계에 살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문을 두드렸습니다.




*




문을 열었을 때 그가 서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입던 옷 그대로였습니다. 손에는 연필이 들려 있었고, 손톱 사이에는 지워지지 않는 잉크가 끼어 있었습니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를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의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빌딩도 없었고, 병실도 없었고, 그가 살던 마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무언가가 남아 있었습니다.


아내의 목소리.

아이들의 웃음.

세이렌의 노래.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저녁 식사.


그는 연필을 쥔 손을 내려 보았습니다.


손가락 사이의 잉크가 묻어 있었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왜 왔나?"


그는 연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연필 끝에는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이세계 갈 방법 없습니까."


저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없다만."


그 순간 그의 표정이 무너졌습니다.


그는 울지 않았습니다.


다만 연필을 쥔 손에 힘을 주었을 뿐입니다.


부러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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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래
  • 2026-07-25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오줌이 나오지 않는다

오줌을 누고 있는데 지린 내가 얼굴에 턱 붙는다. 텅 빈 화장실, 오줌이 새어나오고 있었고,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고함소리인 듯 단순 괴성인 듯 영문을 모르겠는 소리가 울린다. 오줌은 여전히 나온다. 고함인가 괴성인가 구별이 안 가고, 몸이 움찔한다. 이건 오줌이 나와서 몸이 떨리는 거다. 그렇게 정리한다. 계속해서 오줌을 눈다. 그러다 그 소리가 화장실에 가까워지며, 그 음색이 교수님의 것임을 알고 변기칸으로 달려갔다. 바지도 못 올린 채, 오줌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바지가 축축해지고 있었다. 문을 잠갔다, 다시 열었다, 다시 잠갔다."이범수 학생 그거 왜 그러는 거야?"침이 꼴깍 넘어간다. 우웩 소리를 내려다 입을 막는다. 아까만 해도 괜찮았는데 오줌이 바지에, 신발에 묻었다. 오줌이 지금 보니 땅바닥에 흐르고 있었다. 조준을 안 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오줌 소리가 들릴 것이다. 교수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생각을 못했는데, 그러면 숨을 왜 참는 거지."모릅니다 그냥 이상한 애인 것 같습니다.""아니 어떻게 오줌을 지려!!!""죄송합니다..."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둘의 기척이 사라졌다. 그제야 오줌 누는 소리가 끊겼다. 신기하게도 그 둘이 나가자 오줌은 나오지 않았다.우웨에엑... 참고 있던 토가 나온다. 속을 두드리는데 너무 답답하고 꽉 막혀 있는 듯하다. 여전히 바닥은 오줌 투성이고 지린내 투성이다. 토가 토를 낳는다. 나는 이 상황을 그렇게 정의했다. 그렇다면 이건 현실의 토가 아닌가. 토가 없는 어둠 속이라면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눈을 감고 코를 막았다. 숨이 차분해진다. 헛구역질도 안 나온다. 팔꿈치로 더듬어 마침내 물을 내렸다. 신발과 양말과 바지를 벗고 세면대로 달려가 비누로 뽀득뽀득 빨았다. 바지를 입을 게 없다. 가방을 뒤져 반팔 바지로 갈아입었다. 경찰 제복을 입고 있어서 골치가 아프긴 하지만 벌거벗고 다닐 순 없지 않은가. 발을 닦고 또 닦았다. 손톱이 날카로워서였을까, 스윽, 피가 났다. 지린내가 피비린내로 가려졌다. 피를 닦으니 발에선 더 이상 지린내가 나지 않는다. 미소를 짓는다. 밴드를 붙이고, 대걸레로 청소를 시작한다. 토가 나오려 하지만 내가 한 일이니 치워야 하지 않겠는가. 30분 만에 다 치우고 세면대로 가 손을 씻는데, 오늘따라 고개를 드는 게 유독 힘들었다. 세면대 정면을 보기 싫은 감각은 늘 있었지만, 오늘은 목뼈가 유독 뻐근했다. 고개를 들었고 속에서 무언가 솟구쳐 토가 나왔다. 이번엔 침이 아니라 총알과 피였다. 손이 무의식중에 움직였고, 장전하고 달칵—쾅. 격발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깨진 거울에 날파리 한 마리가 붙었다.현관문 비밀번호를 찍는다. 2 0 1 6. 우리 집은 연도가 바뀔 때마다 그 연도로 비밀번호를 바꾸는 전통이 있었다. 문이 열리니 술 냄새가 가득했다. 아버지의 술주정이 배경음처럼 깔렸다. 술병이 깨져 있었다. 신발을 정리하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조각을 쓸어 담았다. 멍하니 TV만 보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가만 생각하면 그날은 문을 한 번 잠근 날이었다.

  • 고래
  • 2026-07-18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사진은 허공에 걸려 있었다

여자는 서산에서 태어나 일생을 보냈다. 서산은 그에게 모든 것이 담긴 공간이었다. 서산에서 그의 남편을 찾았고, 남편은 여자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열정을 다해 여자와 살았다. 좋은 남편과 귀여운 아들과 딸, 여자는 항상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고,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집 안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서늘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식탁에 앉은 세 사람 또한 서늘함을 느끼는 듯, 눈이 흔들렸다. 그러나 한 사람은 눈이 흔들리지 않았고, 대신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을 탁탁탁 치며 울고, 밥을 입에 넣고 울었다. 밥에 눈물이 고여 입안으로 들어간다. 눈물이 다시 그녀의 가슴에 안착했다. 그리곤 다시 흘렀다. 그녀는 토끼 옷에 내복을 입고 있었으며, 헬로 키티 케이스를 낀 핸드폰을 꼭 잡고 있었다. 저 손을 여자는 잡아주고 싶었으나, 그녀는 핸드폰만을 오롯이 잡고 있었다. 옆에 있는 남자는 침을 꿀꺽 삼켰으며 남편은 TV로 눈이 가 있었다. 둘의 공통점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침묵을 불러온다는 것. 바람이 휙 하고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여자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슬기야 그냥 밥 먹지 말고 들어가서 쉬어."그녀의 눈은 흐리멍덩했다. 초점이 없고 가슴팍을 탁탁 칠 뿐이었다. 여자는 손등으로 제 눈가를 슬쩍 만져보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여자 또한 계속해서 기다렸다. 그녀는 밥을 먹지 않았다.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눈물이 그녀의 안에서 고여,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여자의 앞이 흐릿해지려 하고 있다. 촉촉한 무언가가 눈두덩에 안착했지만, 손으로 닦아내곤 그저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알겠어. 엄마..."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여자의 머릿속엔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가기 전 모습이 떠 있었다. 마치 전시회처럼 사진이 걸렸다. 그러나 사진들은 벽에 걸려 있지 않았다.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여자가 가까이 다가가자 사진 속 인물들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여자의 동공은 그곳에선 뚜렷했고, 갑자기 보이는 그곳을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곳의 여러 사진들은 여자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이었다. 굴곡진 모습, 지친 모습, 그 중 한 사진이 보였다.여자는 그녀를 다시 봤다. 사진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영상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여자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눈을 찡그렸다. 자신이 버스 안에 있는 모습, 여자는 회사에 가는 중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여자의 모습은 여러 고정된 사실로 존재하고 있었다. 여자가 특성화고에 나와서 돈을 벌고 있다는 것, 그 돈은 오빠의 대학 입학비로 나간다는 것. 여자는 눈물을 흘렸다. 여자의 입술 위로 눈물이 고였다. 이대로 6일 동안 엄마와 아빠를 볼 수 없다는 현실. 여자는 울었고, 사진은 바뀌었다.어느새 여자의 옆엔 남편이 생겼고, 남편의 눈초리는 분명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으나 옆에 있는 사람이 생겼다. 여자는 웃음을 지었고, 자신에게 찾아온 아이 둘을 향해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슬기와 이범수. 두 아이의 키는 작았으나 눈은 총명했다.사진은

  • 고래
  • 202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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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래

    올려놓고 퇴고하는게 그렇게 재밌더라고요

    • 2026-09-25 22:41:49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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