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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잔

  • 작성자 미음
  • 작성일 2026-09-28
  • 조회수 107

두 번째 잔


커피를 습관적으로 두 잔씩 타버렸네. 하나는 내가 마시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너를 위해서. 너에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원했을 거야. 그렇지? 커피에서는 항상 은은한 초콜릿 향이 나서 네가 자꾸 떠올라. 너는 초콜릿을 좋아했었지. 그래서 내가 타준 커피를 좋아했었어. 커피의 쓴맛과 달달한 초콜릿의 조화가 너무 좋다며 하루에 다섯 잔을 마신 적도 있었잖아. 나는 커피를 거의 다 마셔가지만, 오늘따라 너는 커피를 한 입도 대지 않네. 웬일이야? 이러니까 네가 처음으로 화냈을 때가 떠오르네. 그때가 100일이었잖아? 내가 끝까지 기념일을 까먹은 척하니까 마지막에 네가 울 뻔 했던 거. 아직도 생생해. 그때, 결국 이 커피를 마시고 화를 풀었었잖아. 그런데 벌써 커피가 다 식어버렸네. 내가 탔을 때 그대로 테이블 맞은편에 놓여 있잖아. 더 이상 이 커피가 달지 않은 것 같네. 왠지 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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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광(死煌).

어느 한 사람이 있었다.그는 걷고 있었다.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마치 운해 속을 걷는 것처럼,마치 나의 심상 속을 헤매는 것처럼,마치 나와 타인과의 실에 엉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처럼,그는, 유랑하고 있었다.------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순백 속을 그저 멍하니, 반달눈을 치켜뜬 채 걷고 있었다.그렇게 하염없이 걷던 와중, 사람의 윤곽이 슬그머니 그 모습을 드러낸다.당신이었다.당신은 언제나와 같이 손을 흔들며 내게로 뛰어왔다.마치 토끼처럼.마치, 사냥꾼처럼.난 잡힐 수 밖에 없었다.당신의 손에 내 손이 포개어진 그 순간을 난 잊을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당신은 그까짓거 별 것 아니라는 듯 나를 등진 채, 마치 이어진 손과 손이 독립된 존재마냥 당신은 그저 달려간다.사막의 사구를 관통해나가고, 삼림을 주파해나가며, 당신이 나를 이끌어 도착한 곳은 어느 오두막.그 오두막이 나와 당신의 새로운 집이다.이 곳에서 새로운 살림을 차리고, 나와 당신의 새까만 머리가 새하얗게 바랠 그 때까지 이 오두막 앞의 의자에 앉아있겠지.당신은, 천진난만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드디어, 드디어 왔어. 우리들의 돌아올 곳이."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언젠가는 멀리 떠난다는걸까.난 비탄에 빠져 당신에게 말한다."나로선 고작 오두막 앞 나무에서 벌목 후에 돌아올 곳이 될 뿐이야."그러자 당신은 말했다."하지만 난 아닌걸, 난 머나먼 곳에서 이 곳으로 돌아올거야."난 물었다."어째서?"그러자 당신은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입에 힘을 주며 입술을 꾹 닫았다.그러곤 오두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난 그 문을 여는 당신의 뒷모습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만보고 있었다.당신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서 심한 눈보라가 휘몰아치며 당신의 몸이 눈에 뒤덮여간다.당신은 괜찮은걸까.난 외쳤다."무슨 일이야! 거기서, 그 오두막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그러자 당신은 나지막히, 담담하게, 서리가 내려앉은 그 입술을 조심스레 움직이며 내게 말한다."당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내가 머나먼 곳에서 돌아올 때 당신은 어쩔거야? 날 기쁘게 반길거야? 아니면 문전박대하려나? 어느 쪽이든 난 당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하지만, 난 다가갈 수 있어. 당신이 눈보라 속에 있든, 모래 폭풍 속 한 가운데 있든, 난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어. 봐, 이것 봐."난 한 걸음 씩 발을 내딛었다.하지만 발을 그렇게 내딛을 때마다 오두막과 나와의 거리가 점점, 마치 요술이라도 쓴 것처럼 확장되어갔다."난, 난 널 구할 수 있어. 다리 너머에서 널 바라볼 수 있고, 높디 높은 빌딩 위에서 너만을 찾아 낼 수 있다고!"이 말을 마지막으로, 난 홧김에 눈을 꾹 감고 힘껏 달렸다.그렇게 달리고, 또 달렸다.달리다가 문득 눈을 떠보니 녹음이 만연한 지평선이 아름답게 비추는 평원이 보였다.오두막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 있었다.내 발치 주변, 수많은 쥐들이 죽어있다.하늘에서 죽은 새들이 비처럼 쏟아진다.이윽고 저 녹음의 지평선을 차츰차츰 가리며 안개가, 높

  • dls
  • 2026-10-07
초목, 사람, 무희

나는, 초목(草木)이다.두꺼운 뿌리로 이 땅에 선 채, 때로는 두툼한, 때로는 얄팍한 가지를 이리저리 뻗으며 나 자신을 표명한다.그 가지에서부터 돋아난 풀빛으로 햇빛을 가리며 색다른 아름다움을 그대의 눈에 선사한다. 만연한 녹빛 사이 새어나오는 햇빛은 또 다른 요기가 된다.아, 그대여. 그대는 평원에서 일광욕을 하는 것뿐만이 아닌 이런 녹빛이 만연한 곳에서조차 녹빛이 아닌 햇빛을 찾는구나.벤치에 앉은 그대에게, 난 말한다."그대여, 그대는 여기 앉아 대체 무얼 누리고 있는거요?"그러자 발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대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여기 있으면 햇빛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요.""정녕 일광욕을 영위하고 싶다면 이 만연한 초목을 벗어나, 저기 저 넓디 넓은 평원에 가면 될 것 아니요?""...."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으니, 아무래도 내가 정곡을 찌른 걸까?괜히 자부심에 빠져있다보니 주변을 잠시 잊고 있었다.벤치를 다시 확인해보니 그대는 없었다.그대는 이미 울창한 초목들 사이를 거리낌없이 주파해가며 평원으로 나가는 모습, 그 윤곽만이 보일 뿐이었다.하지만 윤곽이 보인 것도 잠시, 수많은 초목들 사이로 새빨간, 바람 하나 불지 않는데도 혼자 일렁이는 무언가가 보인다.그대는 햇빛 아래에서 장렬히 타들어가며 내게 외친다."이게 나요. 이 모습이 초목들 사이에서 벗어난 나란 말일세! 아!"난 그대가 재가 될 때까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나는, 초목이기 때문에.------나는, 사람이다.두꺼운, 불룩 튀어나온 배와 두툼한 다리로 이 땅에 선채 얄팍한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나 자신을 표명한다.그 팔에서부터 돋아난 손가락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각기 다른 나 자신을 표명하며, 색다른 자신을 그대의 눈에 선사한다.만연한 군중들 속 새어나오는 견해 하나 하나는 또 다른 고통이 되어 파도처럼 모두에게 덮쳐온다.아, 그대여. 그대는 평원에서 빌딩의 높고 좁은 마천루 너머로 보이는 햇빛을 누리는 것뿐만이 아닌 이런 풍진이 만연한 곳에서조차 햇빛 아래의 인간을 찾는구나.회사에서 자기 자리를 찾은 그대에게, 난 말한다."그대여, 그대는 여기 앉아 대체 무얼 누리고 있는거요?"그러자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 그대는 답한다."여기 있으면 나 또한 풍진의 먼지가 되어 타인을 타인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지요.""정녕 타인의 눈을 갖고 싶다면 그대의 현안(賢眼)과 바꿔 끼우면 되는 일 아니요?""...."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으니, 아무래도 내가 정곡을 찌른 걸까?괜히 초조함에 안절부절 못하다보니 주변을 신경쓰지 못했다.자리를 보니 그저 빙빙 돌아가는 의자만이 있을 뿐이었다.그대는 보이지 않았다.그대는 수많은 회사 자리를 거리낌없이 주파해나가며 창문을 깨곤 그대로 뛰어내렸다.난 이상할정도로 천천히, 하지만 왠지 모를 죽음의 예감이 맴도는 그대를 바라보았다.그대는 구름 위, 탁 트인 파란 하늘 아래에서 몰락해가며 내게 외친다."이게 나요. 이 몰락은 결국 세상의 상승기류에 의해 하늘에서 떨어져 진정한 내가 되는 몰락과 전락의 나란 말일세! 아!"난 그대가 흙으로 돌

  • dls
  • 2026-10-06
업 앤 다운

어두운 구석에서 작은 백열 전구가 깜박거렸다. 다운은 의자에 앉아 천장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라디에이터가 진동하며 검은색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바닥에 고인 액체가 끈적하게 신발 밑창에 달라붙었다. 방 한가운데에 있는 모니터가 조용히 오래전에 방영됐던 영화를 재생하고 또 재생했다. 화면 속 어린 소년은 파란 요정에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애절한 목소리가 스피커 사이로 새어나왔다. 다운은 고개를 돌렸다. 저 장면을 본 지 며칠째였다. 모니터는 고장 난 듯 같은 부분만 계속 반복했다. 소년이 간절히 빌고, 요정이 침묵하고, 다시 소년이 빌고… 화면이 번쩍이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가 금세 다시 되돌아왔다. 창문 너머로 회색 연기가 끝없이 피어올랐다. 공장 굴뚝들이 하늘을 더럽히고 있었다. 거리에는 줄 선 사람들의 그림자만 보일 뿐이었다. 꺼질 듯 말듯 하던 전구가 꺼지며 어둠을 몰고왔다. 다운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현관문을 열고 소포를 들여왔다. 3개월 동안 잊고 있던 청구서였다. “청구서가 밀렸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다운은 세금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되는지 알고 있었다. 다시 일하러 갈 시간이었다. 다운은 조용히 주먹을 쥐며 외투를 챙겼다. 구겨진 주름 사이사이에서 먼지가 풀풀 풍겨 나왔다. 머리가 아파왔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며 화악 달아올랐다. 일을 구한다는 것은 큐에게 다시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큐는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눈앞으로 큐의 차가운 미소가 스쳐지나 갔다.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문은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콧속으로 지겨운 흙먼지가 몰려 들었다. 다운이 녹슨 철제 계단을 밟고 내려가자 층층이 쌓여진 컨테이너 건물들에서 붉게 달아오른 얼굴들이 튀어나왔다. "다운! 정말 오랜만이네. 어디 숨어 있었어?" 미라가 전자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웃었다. "그냥... 집에 있었어." "집에만? 몇 달 동안? 미쳤나?" 미라는 고개를 저었다. "요즘 일자리가 얼마나 귀한데. 로봇들이 다 가져가서." "그래서 나왔잖아." "큐한테 가는 거지? 조심해. 요즘 큐 성격이 더 나빠졌어. 로봇들이랑 일하는 게 많아져서 그런가." 다운은 발을 동동 굴렀다. "다른 선택이 있어?" "글쎄... 공장에서 일할 수도 있고. 물론 로봇들이랑 경쟁해야 하지만." "그건 더 싫어." 미라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긴 해. 예전엔 그래도 사람이 우위에 있었는데." 다운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하늘을 흘깃 쳐다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은 높은 빌딩과 컨테이너들에 가려져 사이로 드문드문 회색 구름만 보였다. 굴착기와 중장비의 비명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거대한 드릴이 콘크리트를 뚫을 때마다 네온사인들이 번쩍였다. 파란색과 분홍색 홀로그램 광고들이 먼지구름 사이로 일렁거렸다. 위대한 도시는 공사를 끝낸 적이 없었고, 멈출 생각도 없어 보였다. 작업복을 입은 인간들이 무거운 철판을 옮기고 있었다. 이마 위로 땀이 줄줄 흘렀지만 그

  • 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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