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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나

  • 작성자 신서희
  • 작성일 2026-10-03
  • 조회수 62

너의 나

 

 

개체가 종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대답이 없었다. 새벽 알탕 집에는 홀로 묵묵히 고니 몇 개를 집어먹는 아저씨와 티브이를 틀어놓고 감상하던 식당 주인, 그리고 너와 내가 마주 보고 있었다. 너는 내 변한 몸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튀어나온 목젖이나, 잔근육이 생긴 몸, 굵어진 턱선과 납작해진 가슴팍을.

너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태몽을 하나 꿨다. 작고 붉은 사과 하나를 집어 바구니에 모으는 꿈이었다. 여자아이가 태어날 거야. 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듣지도 못했을 내게 매일 밤 속삭이며 자장가를 불렀다. 가끔은 나의 미래를 몰래 점쳐보며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기도 했다. 네 몸의 장기 일부처럼 살아가던 나는 곧 세상 밖으로 나왔다. 네가 상상하던 대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탯줄을 끊고 나서 너는 내게 이 세상에서 살아갈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니.

한참 동안 침묵하던 네가 울컥하듯 말했다. 나는 단순히 자랄 뿐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몰랐다. 그렇다 할 계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밥을 먹는 순간에도, 잠을 자는 순간에도, 씻는 순간에도 여자로 살아가는 내가 어색할 뿐이었다. 내가 남자가 되면 뭐가 달라지나요? 식당 주인이 알탕을 우리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보글보글 끓는 거품 아래는 이리들이 있었다. 나는 알탕을 국자로 휘저으며 말했다. 닭이 먼저라고 생각하세요, 알이 먼저라고 생각하세요. 꼬불꼬불한 이리를 쳐다보며 너는 멍하니 있었다. 전 알이 먼저라고 생각하는데요. 닭 비슷한 것을 키웠는데, 하필 그것이 낳은 알이 다음으로 진화될 닭이라는 종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적어도 그런 가능성은 두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닭을 키우는 사람이라면요. 너는 구토감이 밀려온다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나는 홀로 남아 이리들을 천천히 정렬하듯 국자로 만지작거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너는 다시 돌아와서 그런 말만 반복했다. 잘못된 게 아니었다. 네가 나를 키우면서 한 실수는 없었다. 나는 정말 그저 자랐을 뿐이고, 자라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제 몸과 저는 서로 다른 개체 같았어요. 너는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다가도 제 무릎을 치며 아이고, 탄식을 뱉었다. 그 모습을 보다 보면 변한 내 몸이 점점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이렇게 슬퍼하는데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다는 것쯤이야 무시하고 살면 됐을 것 같은 기분이 잠시나마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면요, 그러면 둘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들을 하나 더 낳았다고 생각하시라구요. 넌 내게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돼요. 강요하지는 않을게요. 어느덧 알탕 집에는 우리와 식당 주인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이리를 한가득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단번에 고소한 향이 입안에서 풍겨왔다. 너는 숟가락도 들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부니까 얼른 드세요.

우리 딸….

개체와 종 이전에 어미가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들은 말이었다. 그렇다면 개체는 자신을 만든 조물주 앞에서 무력하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인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계속 우리 딸, 하고 중얼거리며 속상해했다. 상한 마음은 되돌릴 수 없었다. 도려내거나 모른 체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열린 문 사이로 붉은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해가 뜨고 있었다. 능선 위로 조그마한 해가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곧 꿈을 꾸실 거예요. 제가 태어나는 꿈을 꾸실 거예요. 태몽이지요. 물고기 같은 게 나오려나요. 아니면 벼락같은 게 치려나요. 아무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요.

악몽일 거야….

해는 점점 산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빛이 번져 능선의 경계가 모호했지만, 어렴풋이 선 같은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악몽이요,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꿈이니까요, 그냥 잊어버리세요. 훌훌 털어버리고 개꿈을 꿨다고 생각하세요. 잊으셔도 돼요. 제가 그런 악몽이라면요…….


신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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