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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구

  • 작성자 김희수
  • 작성일 2024-02-20
  • 조회수 996

우리 집에는 늙은 개가 한 마리 있었다언제 입양을 한 건지누군가 주워온 건지 그 개는 언제부턴가 그냥 이 집에 있었다어쩌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그럴 수가 있나 싶겠지만그 개를 보면 이해할 것이다.

내가 그 개를 문득 깨달았을 때그 개는 다 무너져 가는 방 한 구석에 퍼질러져 있었다얼굴에 진 주름은 세월을 겹쳐 빚은 듯 자글자글했으며 그것은 주로 콧잔등 근처가 그랬다귀는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붙어 있었던 양 머리에 들러붙어 있었다머리의 선을 따라 몸통을 내려다보면 그것은 정말로 뼈다귀에 가죽을 얹어 놓은 듯 갈비뼈뿐만 아니라 골반뼈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그 개는 잡종인지 무엇인지 견종도 알 수가 없어서 그냥 황구라고 불렸는데그 이름이 무색하게 털 색깔이 빠져 점점 회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볼품없는 외모와 달리 황구의 눈은 세월의 바다를 머금은 듯 깊은 빛을 발할 때가 있었다하지만 평소에는 눈꺼풀이 절반까지 내려오고 눈꼬리가 축 처져 늙은 분위기를 더욱 증폭했다.

황구는 그 상태로 바닥에 달라붙을 기세로 몸에 힘을 쭉 빼고 있었다그 개는 밥을 주어도 하루종일 질겅질겅껌을 씹듯이 입만 움직였고 아무데나 누런 변을 싸댔다.

그 변의 형태가 정말 가관이었는데질척질척하게 온 사방에 눌어붙어 있어서 황구를 둘러싼 모습이 정말 끔찍했다그래서 나는 그 개를 혐오했다.

그 개를 싫어하는 것은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온 사방에 문질러진 변을 볼때마다 아버지는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고 어머니는 오만상을 쓰고 그것을 닦았다.

한 번은 참다못한 아버지가 그 개를 죽이려 든 적도 있었다발로 밟고 차며 개가 피를 토할 때까지 때렸지만 그 개는 기어코 살아남아 꿈틀거렸다아버지의 폭력은 어머니의 중재가 있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황구는 그럼에도 집에서 쫓겨나지 않았다그 이유는 나는 알 수 없었고 부모님은 이야기하려 들지 않았다나는 언제나 그 개를 참기 힘들었지만 무시하며 살려고 했다.

나에게 큰 문제는 오히려 개가 아니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머리에 실내화 가방이 날아왔다나는 익숙한 그 타격감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매일 나를 괴롭히는 놈들 둘이 보였다.

조병신이너 오늘 꼬라지 아주 가관이다?”

나는 내 옷을 내려다보았다몇 달이고 빨지 않아 기름때가 잔뜩 낀 옷이 내 시선을 억울한 듯이 마주했다네가 뭐라도 해 준거 있냐?

잠시 옷과 무언의 대화를 나눈 나는 조용히 반 안으로 들어갔다그때까지도 나에게 들려오는 욕설은 계속되고 있었다.

교시가 시작되었다나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책상 안에는 썩은 우유가 있을 것이었고 자리에는 압정이 있을 것이었다나는 익숙하게 압정을 치우고 자리에 앉았다우유는 무시하기로 했다.

그떄 내게 뭔가가 날아오기 시작했다아마 지우개 덩어리이리라덩어리는 점점 커지더니 이내는 주먹만 해졌다주먹만 한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를 지우개가 내 머리를 강타했다.

!

나도 모르게 반응해 숙이고 있던 고개가 힘없이 책상을 들이받았다목에 힘을 빼고 있던 것이 원흉이었다.

그떄쯤 담임이 나를 보고는 혀를 찼다.

무식한 놈뭐 하냐?”

순식간에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었다누구도 내가 지우개에 맞은 사실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 외에도 괴롭힘의 개수는 무궁무진했고 또 진부했다나는 익숙한 괴롭힘은 어느새 일상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가 끝나고 골목으로 끌려갔다이건 오랜만에 일어나는 전개였다어디부터 맞을지 속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너 돈 있냐아니있을 리가 없지그러니까 좀 맞아야겠다.”

한 놈의 주먹이 오른쪽 눈을 때렸다이윽고 배다리쓰러져서는 온몸이었다아무도 말려 주지 않았다나는 한참 뒤에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이게 내 일상이었다.

안 그래도 서러운 날에 내게 청천벽력 같은 말이 떨어졌다부모님은 돈을 벌어야 하니 내가 황구를 돌보라는 것이었다.

싫어요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요!”

열세 살짜리 아이의 목소리는 아버지는 분노한 표정 아래에서 점점 작게 수그러들었다차라리 저 개를 쫓아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공포 속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첫 날이었다나는 개를 돌보는 척만 하기로 마음먹었다그래서 시간이 되었을 때 밥만 주고 변을 닦기만 했다그 이외의 온정은 없었다나는 우리 집안에 피해만 주는 그 개가 정말로 혐오스러웠다.

나는 그 개를 내려다봤다언제나처럼 집안의 한 구석을 차지한 녀석은 자는 건지 깨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누워 있었다나는 놈을 발로 쓱 밀었다반응이 없었다.

밥 먹어.”

그렇게 말하며 나는 밥그릇을 내려놓았다놈은 그제야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밥을 천천히 입 안으로 욱여넣기 시작했다.

놈의 입이 열리자 시큰거리는 냄새가 진동하며 침이 쏟아져 나왔다그렇게 질질 흐른 침이 쏟아진 밥을 놈은 우걱거리며 먹는 것이었다그것은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을 토해내는 것처럼 보였다썩은 고기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참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황구는 바닥에서 꾸벅거렸고 나는 그놈에게 밥을 대접했다놈은 여전히 어디가 변소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그날도 나는 황구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는데아버지가 나에게 손짓하는 것이었다.

조민욱이리 와봐라.”

나는 아버지 곁으로 갔다.

너 오늘 산책 좀 해라어린 놈이 집 안에서 뒹굴거리는 꼴을 보니 못 참겠다그리고 저 개도 데려가.”

나는 차마 싫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싫다고 했다간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억지로 황구를 일으켜 세웠다놈의 몸은 놀라울 만큼 가벼웠다살이 없는 것을 넘어 뼈가 비었기라도 했는지 의심될 지경이었다놈은 한동안 일어나기를 거부했다나는 놈을 걷어찼고 그제서야 그 개는 몸을 일으켰다중력에 의해 가죽이 짓눌리자 놈의 몸은 더욱 앙상해 보였다빠진 털 사이로 갈비뼈가 돌출됐고 축 처진 놈의 성기가 덜렁거렸다나는 놈에게 오래된 옷을 입히고는 집 밖으로 나왔다.

공기는 맑지 않았다어디선가 불어온 미세먼지에 저 먼 도시의 마천루들은 보이지도 않았고 온 사방이 구름으로 뒤덮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개를 발로 밀며 공원을 걸었다이놈은 어떻게 된 개가 냄새를 맡기는커녕 자리에 앉아서 쉬려고만 들었다십 분쯤 걷다 나도 지쳐 그냥 벤치에 앉아버렸다.

하늘이 누랬다해질녘인데도 아름다운 박명 따위는 개뿔그냥 하늘이 조금 더 누래질 뿐이었다.

다리를 쭉 뻗었다더럽고 찢어진 바지가 비명을 토했다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더럽고 찢어진 옷을 입은 채로 아무도 없는 공원에 미친 개를 끌고반 친구들에게 맞은 다음에나는 벤치에 앉아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문득 눈가를 훔치자 어느새 눈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나는 내가 왜 우는지 알고 있었다그래서 웃었다나는 슬퍼서 울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다만 비참한 것 같기는 했다옆에 있는 개의 등에서 똥 덩어리를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나는 그냥 그렇게 가만히 울었다.

점점 목이 메어 와 고개를 내렸을 때황구가 나를 보고 있었다.

갑작스레황구의 눈이 깊었다.

놈의 눈에서는 생기가 아닌 어떤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새카만 홍채가 빛을 빨아들이고 나의 시선도 함께 빨아들이고 있었다나는 거기서 어떤 것을 발견했다.

웃음다시 말해 희망이었다.

나는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황구의 눈 안에서더럽고 퇴락한 육체 안에서 두 눈이 생생히 빛나고 있었다내려 뜨고 있던 눈의 눈꺼풀은 이미 힘 있게 올라가 제 자리를 찾고 있었다.

황구의 안에 숨어있었을 그 힘은 어느새 황구의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황구가 나를 내려다보더니 웃음 지으며 말했다.

집으로 갈 테냐?”

 

 

할아버지는 내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다어린 나를 잘 놀아주었고 엄마 몰래 간식도 챙겨주었다할아버지는 언제나 나에게 희망을 주는웃는 사람이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미친 것은 몇 년 전이었다할아버지는 마치 개처럼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며 뛰어다녔고 더러운 오물을 흘려댔다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토해냈고 병원에서는 난동을 피우기 일수였다.

병원비는 금방 바닥났다우리는 할아버지를 집 안에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누구도 할아버지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개가 되었다우리 할아버지 조황구는.

할아버지가 정신을 차린 날우리 가족은 이사했다아버지가 살 만한 곳을 구했다고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정신을 차렸다고 건강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그는 이미 한참 전부터 암 말기 환자였다할아버지와의 시간은 짧았다황구와의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할아버지는 우리의 곁을 떠났다다행히 제정신으로.

나는 황구와의 시간들을 기억한다그것은 폭력과 더러움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나와 할아버지의 시간이기도 했다할아버지는 나에게 결국 황구였을까할아버지였을까나는 알지 못한 채 오늘도 좁은 집에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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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인용을 거듭한 한 생 끝에서 그것이 없음에 절망했다.아무것도 없었다.눈 앞에 보이는 것은 무언가가 기어다니는 듯한 어둠 뿐.기어다니는 듯한, 기대.난 그 어둠 속에서 기대라는 감각을 찾아 해맸다.손을 뻗어 이리 저리 저어보지만 마치 진창 속을 휘젓듯이 그저 어딘가 질척한 감각만이 느껴질 뿐이다.이윽고 팔을 휘젓는 행위는 어느새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잃고, 그저 힘이 드는 반복이 되어 있었다. 난 팔을 내려놓았다.그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었다.하지만 그 흑(黑) 속에서 별이 내리는 것처럼 백(白)이 내리고 있었다.흑 속에서 그 무엇하나 빛나지 않는데 백만이 마치 내게 닿으려 애쓰는 듯이 내리는 그 광경이 내가 찾던 기대의 광경이었던가아닐 것이다.약간의 실망감과 함께 난 아래를 바라보았다. 하얬다하지만 그 백(白) 속에선 그 어떤 흑(黑)도 찾을 수 없었다.그 순백에 손을 뻗어 손을 휘저어 보았다.눈이었다.순백의 눈.난 그대로 그 백의 품 속으로 안겼다.차가우면서도 따뜻했다.이게 인생이었나.기대의 감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눈의 뜨거움에 녹아 사라졌다.이 또한 인용이었다. 하지만 의미가 있었고, 이젠 없다.녹아 새로 싹을 틔운 것은 체념이라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저 눈이다. 새하얗기 짝이 없는 눈이다.난 지금까지의 일생을 돌아보았다.어쩌면 허무했을지도 모른다. 만사에 일희일비하며 살아왔던 그 정신없던 나날.만사에 정직했다.하지만 그렇게 만사를 거듭한 끝이 여기라니.어쩌면 허무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아, 그저 지금은 눈에 안긴 채 저 흑)백(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왠지 그저 따뜻함만이 느껴졌다.허무함도 눈에 녹은 걸까?눈이 점점 감겨온다.이에 저항하려는 듯 괜히 눈을 조금 뭉쳐 위로 던져본다. 중력의 이끌림에 다시 아래로 떨어져 내 얼굴을 적셨다.생을 느꼈다.아, 이게 생인가생이란 건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니였다.이젠 저항할 이유는 없다. 그저 눈의 따뜻함에 몸을 맡기고 그저 평안을 맞이할 뿐.일단 사유는, 앞길은, 그 외의 모든 기대의 감각들은.자고나서 생각하자.라고 난 생각했다.스르르, 잠에서 생이 내렸다.막을 내린 걸지도.하지만 그것조차 뒤로 미루는 것이 미덕이다.한 숨자고, 뭔가 먹고, 마시고 그 다음에 생각하자.살아간다는 건 정말이지 최고였다.아, 이 또한 인용이다

  • dls
  • 2026-07-10
뒤늦은 대답

우리 엄마는 늘 나에게 집착을 하던 사람이었다. 매번 전화하고 문자하고, 나에게서 한시도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친구랑 나가 놀기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나는 이런 엄마의 집착과 간섭이 버겁고 짜증났다. 나는 이러한 생활을 버텨냈고 대학 합격 통지서가 날아오자마자 짐부터 싸기 시작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본 엄마는 내 앞을 가로막았다. 정말 끝까지 내 발목을 잡고선 놓아주지 않았다."가지 마. 나 너 못 보내. 지방에서 대학 다녀. 거기도 원서 넣었고 합격했잖아." 지긋지긋했다. 엄마에게서 벗어나려고 죽어라 공부해서 누구나 들으면 알 만한 서울권의 대학에 합격했는데 지방대로 가라고? 다시 엄마의 인형으로 꼼짝 않고 살아가라는 얘기야?가는 날까지도 엄마의 반대는 이어졌다."굳이 가려는 이유가 뭐야? 엄마랑 함께 있자. 지방대도 충분히 좋은 곳이야. 여기서 살자."현관문 앞까지도 엄마는 내 손목을 붙잡고는 가지 말라며 나를 만류했다."좀 그만 좀 해! 엄마가 이래서 떠나는 거야! 더 이상 엄마의 집착이 짜증난다고! 집 계약까지 끝냈는데 무슨 소리야!"마지막까지도 이기적인 엄마의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라 소리치며 손을 뿌리쳤다.내팽개쳐진 엄마의 손은 잔주름과 함께 떨리고 있었다. 눈동자도 떨리고 있었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런 모습이 짜증나고 정 떨어져서 한숨만 푹 내쉰 채 문을 열고 나왔다. 현관문 너머 엄마의 울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끝까지 멋대로야."나는 짜증만 내며 돌아섰다. 기차를 타고 드디어 서울의 자취방에 들어서니 그제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드디어 엄마의 집착에서 벗어나서 완전한 자유를 얻었어. 이제 정말 자유야!"나는 환호성을 질렀다.그 환호성 속엔 약간의 찜찜함이 담겨있긴 했지만...집으로부터 벗어나면 나아질 거라는 나의 생각이 산산이 부서졌다.이사 당일부터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지금이라도 돌아와. 안 늦었어. 돈은 엄마가 다 대줄게."한숨부터 나왔다. 체념과 약간의 짜증이 섞인 듯한 말투로 대꾸했다."하... 이미 이사왔는데 뭘 자꾸 돌아오래. 안 갈 거니까 웬만하면 연락하지 마."하지만 그 이후에도 엄마는 계속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겼다.'딸, 돌아와. 엄마가 기다릴게.''보고싶다. 언제 올 거니?'이런 식의 문자가 수도 없이 날아왔다. 작정하고 모든 연락을 받지 않으면 하루에 부재중 전화만 30통, 문자는 50통이 넘게 와 있는 날도 드물지 않았다.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엄마가 이제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호적에서 파버린다느니, 정말 엄마를 버릴 거냐는 둥 자꾸만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물론 우리 엄마도 처음엔 이러지 않았다. 어느 보통 엄마들과 크게 다를 것 없었다. 가족 소풍에 직접 도시락을 만드시며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항상 웃는 얼굴로 맞이해주셨다. 하지만 몇 년 전,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등진 뒤로 엄마는 나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 마치 내가 당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처럼...그래도 처음에는 괜찮아질 거라고 믿

  • 캔디
  • 2026-07-10
두 친구

두 친구그는 공사중인 공원의 앞을 걸었다. 어딘가 헛헛해지는 시멘트 냄새가 추위에 녹아들어 콧등을 시럽게 갉아냈다. “그러고 보니 이번 겨울은 첫눈이 빨랐지.” “응— 매번 눈이 풍경을 덮어서 그런지 작년이랑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단 말야.” 비니와 안경을 써 얼핏 지적으로 보이는 남자와 서늘한 날씨에도 무릎 위로 올라오는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손을 맞잡고 걸으며 수다를 떨었다. 공사판을 지나자 눈이 소복히 쌓여 둥글게 뭉뚱그려진 철재 교문이 나타났다. 그는 핫팩으로 데워진 손가락을 뻗어 그 눈자락의 끝에 뱀이 훝고 지나간 듯한 자국을 새겼다. 겨울철에도 오한이 서리지 않는 솥뚜껑만한 손으로 야구공의 궤적을 그리며 장래에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포부를 선보이던 그의 말을 기억한다. 한 학기마다 적어도 한 군데의 골절상을 달아오던 일도. 그는 옷자락을 당겨 벤치에 쌓인 포슬포슬한 질감의 눈을 쓸어내고 앉았다.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의 깍쟁이가 내게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떠냐고 권힌다. 아마 일주일에 몇 없던, 사실상의 자습시간인 동아리 시간에 들었던 말이다. 10년 가까이 되었던 두 친구가 있었다. 한 사람은 소위 말하는 양아치 기질이 다분한 학생이었다. 그래도 겁이 많고 천성이 여려 큰 사고는 저지르지 않았다. 다른 한명은 수학에 소질이 있던 오만한 범생이였다. 나와 함께한 시간은 그가 앞선 친구보다 2년정도 더 길었지만 보다 방어적인 성격 탓에 나는 아직도 그를 평면적인 사람으로 기억한다.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한 명이 없을 때는 다른 한명이 자리에 없는 사람을 험담했다. 실은 3명 다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건 나만이 알았다. 우리 3명이서 만날 수 있던 이유는 내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했기 때문이다. 피지컬이 남다르던 친구 A는 얇고 넓은 관계는 많았지만 속마음을 터놓을 상대가 없었다. 그리고 머리가 비상했던 B는, 난 아직도 그가 왜 나에게 그리 집착했는지 이유를 모른다. 그의 말마따나 어린 시절부터 알았던 친구였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도덕적 우월감에 취해있던 나는 기꺼이 A를 위해 시간을 내고 그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 관한 푸념을 경청하고 공감해주던 내 가슴 한켠에는 ‘지루하다’는 본심이 숨겨져 있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하루에 여서일곱번은 예사로 전화해대던 B와 대화하면서도 나는 자연스레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면서 전화를 끊을 궁리만 짜내고 있었다. 나는 나를 소모적으로 다뤘다. 알량한 우월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시작한 일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내 일상과 통화기록은 A와 B로 가득 채워졌다. 우리 관계에는 근본적인 오해가 있었다. 그들은 아마 나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을 테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밑빠진 허영심을 채워주는 도구로 생각했다. 착한 사람인 내 이미지에 취하기 위한 매개로. 그들과의 우정이 깊어질수록 내 피로감은 심해졌다. 언제까지고 관심없는 사람과 계속해 만나고 지루한 이야기에 맞장구쳐줄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들의 연락을 씹고 약속을 피하며 건성건성 대하는 식으로 점차 멀어

  • 김케이크
  •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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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서련

    김희수님, 잘 읽었어요.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개를 집안에 두고 기른다는 것이 잘 납득되지 않아 (그런 한편 황구에 대한 묘사는 무척 상세하고 설득력있어서) 황구는 아마 사람이 아닐까 했는데 역시 그랬군요. (참고로 저는 왠지 민욱의 동생일거라 짐작하며 읽었어요) 이 반전을 인식한 채로 첫 장면으로 돌아가니 첫장면에서 가족들이 황구에게 가하는 냉대와 폭력이 더욱 잔혹하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네요. 시니컬한 민욱의 어조도 어쩐지 매력이 있습니다. 특히 “나는 내 옷을 내려다보았다. (…) 잠시 옷과 무언의 대화를 나눈 나는 조용히 반 안으로 들어갔다.” 같은 부분은 감탄이 나왔어요. 아주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민욱이 학교에서 당하는 폭력과 민욱이 황구에게 가하는 폭력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도록 연출해주면 어땠을까 하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학교에서 배, 다리, 쓰러져서는 온몸을 맞았으니까 황구도 그렇게 때려야겠다고 생각한다든지… 김희수님도 민욱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듯하지만 독자들에게 그 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조금 위악적이지만 사실은 약하고 선량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민욱의 모순된 내면을 보다 잘 드러낼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 보셨으면 합니다. 정말 잘 읽었어요.

    • 2024-03-15 10:51:41
    박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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