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 작성자 김희수
- 작성일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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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심시간이 되면 옥상에 올라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학교 안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을 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름이 창을 열고 햇빛의 광선이 옥상에 작렬하던 날. 나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옥상 난간에 올라앉아 있었다. 먼저 시선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흰 다리였다. 여름의 햇살에 반짝이던 그녀의 흰 피부는 오히려 겨울 같았다. 너무 희어서 혈관이 보일 듯 투명한 두 다리가 난간을 타고 내려와 흰 꽃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상반신이었다. 흰색 하복 셔츠에 큰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상반신도 다리와 마찬가지로 희어서, 무엇이든 반사해내어서 스스로 빛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흰 피부가 검은 후드티와 대비되며 빛났다. 고운 어깨선을 타고 올라 나는 마침내 인형처럼 작은 이목구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순간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섬광이었다.
강렬한 햇빛이 그녀의 이목구비를 감싸고 돌며 흰 서리꽃을 떨어뜨렸다. 섬광이 스치는 듯 그녀의 얼굴이 내 눈을 스쳤다.
세상이 내려앉은 듯 감은 눈가에선 어떤 애잔함과 담담함이 느껴졌다. 눈가를 스치는 바람에 깊은 애상이 담긴 것 같이, 그녀의 눈은 서정적이었다.
태양빛을 가를 듯 높은 콧대와 붉은 입술도 아름다웠지만, 특히 시선을 잡아끄는 건 그녀의 눈매였다. 그것은 어느 누구의 눈과도 달랐다.
그때, 그녀가 눈을 떴다.
폭발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담고 이내 지나치는 여느 눈들과는 달랐다. 그녀의 푸른 눈은 세상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하늘을 보고 있는데도 자신의 눈 그 자체로, 그저 ‘보는’ 것 같았다. 다른 말로 그녀의 눈은 채워질 필요 없이 스스로 온전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그리고 턱선을 타고 올라간 귀에서 작은 피어싱을 발견했다. 작은 별 모양 귀걸이였다. 나는 그 귀걸이가 그녀의 이목구비에 더해지며 어떤 폭력적인 힘을 가하는 것을 목격했다.
작은 별이 그녀가 되어 어느새 그녀는 혜성처럼 휘황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별은 별똥별의 꼬리를 달고 내 시야를, 그리고 옥상 위의 하늘을 질주했다.
나는 그 순간에 깨달았다. 저 소녀는 별(星)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순간에 이미 말을 걸고 있었다.
“아..안녕? 이름이 뭐야?”
나는 스스로도 부자연스러운 것을 느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소녀는 잠시 듣지 못한 듯 시선을 내리깐 채 사유하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는 입을 열었다.
“별. 최 별이야.”
그 말을 듣자 내 뇌리에 다시금 혜성의 심상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분명히 태양 아래서도 빛나는 별이었다.
“옥상에 올라오는 사람은 오랜만에 봐서 말 걸어봤어. 뭐, 그냥 궁금하기도 했고…”
스스로도 부끄러운 변명을 해대며 어떻게든 더 말을 이어 가려고 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아무거나 끄집어내 문장을 완성시켰다.
“내 이름은 김하늘이야. 음..어, 잘 부탁..해?”
아무렇게나 이어가려다 보니 어색한 인사치례가 나왔다. 상대도 그걸 아는 양 작게 웃음을 터드렸다.
“쿡쿡, 그래. 나는 옥상 온 거 처음인데. 너는 많이 와봤어?”
별의 말에 나는 황급히 대답했다.
“어, 응! 나는 거의 매일 여기 왔어. 그냥..하늘 보려고. 너는 여기 왜 왔어?”
다행이다. 자연스럽게 넘겼다. 하늘은 생각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대답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소녀가 고개를 들고는 하늘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한참 뒤에야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별 보려고.”
별에 대해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를 아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들려오는 말은 완전 예쁘다는 말 정도. 그러다 어떤 이야기를 들었다.
“걔 부모님이 둘 다 자살했대. 유언장에 별 보러 간다고 써놓고서. 뉴스에 나왔더라.”
그 뉴스를 찾아보았다. 사업에 실패한 부부가 딸 하나를 남겨놓고 밤에 산에서 자살했다는 이야기였다. 유언장에 써 놓은 내용 탓에 뉴스에 나온 것이었다.
‘별을 보러, 별을 두고 갑니다.’
부부가 남겨놓은 아이의 이름은 별이었다.
나는 그녀와 매일 옥상에서 만났다. 만나자고 약속을 잡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옥상에 가 보면 언제나 그녀가 있었다. 별은 언제나 낮에 별을 보겠다며 옥상에 올랐다. 나는 그런 그녀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런 점이 좋았다. 별 없는 낮에 별을 찾는다는 건, 음, 좀 멋있는 것 같았다.
옥상에서 우리는 하늘과 별 이야기를 했다. 옥상 아래에서의 일은 모두 속세의 것일 뿐이라는 듯이,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답적인 얘기를 꺼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었다.
“너는 파란 하늘에도 별이 있다고 생각해?”
별의 대답은 이랬다.
“글쎄..하늘 안에는 별이 있겠지만 낮은 밝으니까 별의 빛을 덮어버리겠지. 하지만 오히려 별은 그래서 더 빛날 수도 있어. 나는 낮에도 별은 변함없이 빛난다고 생각해.”
별은 언제나 제 이름처럼 별에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그것도 주로 낮에 빛나는 별에 대해. 낮에 빛나는 별은 태양뿐이었지만, 그래도 별들은 언제나 빛나고 있노라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그건 내 앞에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분명한 별이면서도 태양빛을 받아 더 선연하게 빛났다.
그렇지만 나는 밤의 그녀가 보고 싶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빛나는 그녀가 보고 싶었다. 그녀의 오롯함을, 그녀의 아름다움을 오로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밤에 만나자고 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이제 친구가 되었고 서로의 깊은 이야기를 은유하듯 나눴지만 그저 친구일 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별이를 좋아할지도 몰랐다. 아니, 나는 별이를 좋아했다. 나는 처음 별이를 본 순간 그녀에게 반해버렸다. 우리는 비록 친구였지만 친구와는 별개로 묘한 접점이 있었다. 별과 하늘. 나는 그녀를 품고 싶었지만 그녀는 내가 담을 수 없는 별이었다. 너무나도 황홀하게 빛나, 하늘 안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오롯한 별.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더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오히려 먼저 다가와준 건 별이었다.
“하늘아, 며칠 있다 불꽃 축제 한다는데 우리 같이 볼래?”
나는 놀랐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어, 응. 그래, 같이 보자. 어디서 한대?”
별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학교 근처인데, 우리 학교 옥상에 올라가서 볼까? 날짜는 토요일이야.”
나는 대답했다.
“토요일? 그럼 학교 문이 닫혀 있을 텐데?”
“몰래 들어가자. 그게 재밌는 거지, 뭐.”
그렇게 축제 당일이 되었다. 어두운 밤 10시, 우리는 학교 앞에서 만났다.
별이 먼저 담벼락을 기어올랐다. 그녀는 이럴 걸을 알았는지 편한 옷차림으로 와 있었다. 나름 꾸며 본 나로서는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둘이 모두 담을 넘은 뒤, 우리는 학교에 있을 당직 선생님을 피해 천천히 움직였다. 학교의 가운데에 있는 정원으로 들어가 열려 있는 문에 들어갔다.
학교 안에 달빛이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직사각형의 창문들이 각각 장막 같은 빛을 토해 내고 있었다.
우리는 계단을 올라 옥상 문을 열었다. 마친 불꽃 축제가 시작되려는 듯, 하늘을 향해 폭죽 하나가 쏘아 올려지고 있었다.
펑!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불의 꽃이 피어났다. 하늘을 향해 물감을 뿌리듯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우리는 폭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별에게 조금 다가갔다.
그때 별이 입을 열었다.
“나는 폭죽이 좋아. 밤 하늘의 별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거든. 너도 네 하늘을 예쁘게 수놓는 폭죽이 좋지?”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으, 응. 나도 폭죽이 좋아.”
나는 다시금 용기를 냈다. 내 왼손을 천천히 뻗었다.
별의 오른손이 지척이었다. 별의 희고 작은 손은 폭죽 아래에서 다채로운 색을 반사했다. 그래서 그녀의 손은 마치 하나의 미술 작품처럼 보였다. 계속해서 색깔이 바뀌지만, 그 본연의 형태는 잃지 않았다. 그러자 그것은 예술이 되었다.
나는 조용히 그 손 위에 나의 손등을 얹었다. 손을 잡자는 듯, 손을 살짝 부딪혔다.
별은 잠시 가만히 있더니 이내 손을 조금 움직였다. 손을 웅크리는가 싶더니, 나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바닥을 맞추는 것이었다. 손가락이 서로를 파고들고, 잠시 깍지를 끼었다.
하지만 이내 별은 손을 놓았다. 손을 잡을 때와는 달리 한순간이었다.
“미안, 나는… 하늘 안에 있을 수 없거든.”
작게 웃는 그녀의 모습이 어째선지 슬퍼 보여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의 일은 마치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나날은 이어졌다. 밝은 낮의 하늘에서 별을 찾았고 별과 하늘에 대해 토론했다. 우리는 모두 별하늘을 사랑했다.
나의 별에 대한 감정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더욱 커지지도 않았다. 나의 마음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숨죽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나는 말을 꺼내고 말았다.
“그 뉴스에서 봤는데.. 너 부모님…”
아차 싶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별은 신경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아, 그 사건? 맞아, 그거 내 얘기야. 지금은 삼촌이 보호자 역할 해주고 있어. 근데 같이 살지는 않아.”
“아, 그렇구나…미안해, 괜히 얘기 꺼내서.”
“아냐, 괜찮아. 너무 어릴 때라 기억나지도 않는걸. 그리고…나 할 얘기 있어.”
“뭔데?”
“나… 사실 전학 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뭐?
“얘기 안해서 미안해. 너가 너무 실망할 거 같아서…미안.”
그리고 별은 그대로 일어나 옥상에서 내려갔다.
별은 그녀의 말 그대로 다음 날부터 옥상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저 옥상에서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릴 뿐이었다.
1년이 지나, 나는 불꽃축제가 있던 그 날에 다시 학교에 왔다. 나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옥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꽃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 동이 텄다. 그때, 하늘로 솟아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혜성이었다.
통이 터 오는 태양보다도 밝은 별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뛰어오르듯이 일어났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별아! 별아!”
나는 별을 향해 외쳤다. 그것은 별(聖)이었고 또 별이었다. 별은 언제보다도 강렬한 태양빛속에서도 빛났다. 세상을 찬란하게 물들이며, 별은 그렇게 빛나고 또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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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님, 2월에 정말 열작하셨네요…! (그전에 쓰신 것들을 몰아서 올리셨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풋풋하고 동화적인 사랑 이야기네요. 두 사람만의 세계가 있지만 그리 심각하지만은 않습니다. 진짜 별(星)을 보고 별아! 별아! 하고 부르는 장면이 낭만적이었어요. 중간에 시점 혼동의 흔적이 있습니다. “하늘은 생각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이번 달에 김희수님이 올려주신 다른 작품들에 비해 대사가 많은데, 대사 대부분이 머뭇거리는 톤으로 쓰인 것이 조금 걸리기도 합니다. (캐릭터성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조금 더 ‘경제적으로’ 머뭇거릴 수도 있었을 거예요) 전반적으로 한번 살펴봐 주신다면 보다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