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힌 날개
- 작성자 김희수
- 작성일 202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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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힌 날개
하늘을 날아버린 바보를 아시오?
나는 옥상에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 아른거리는 일 층의 바닥은 마치 죽음과도 같아서, 나는 그 일 층을 하나의 종막으로 보았다. 내가 여기서 발을 내민다면 나는 저 죽음을 향해 일직선으로 질주할 것이고, 그것은 아마 많이 남았을 내 인생의 시간을 빠르게 감는 일일 것이었다.
나는 조금쯤 발을 움직여보았다. 죽음이 수시로 다가왔다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죽음은 저 일 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뒤에서 내 어깨를 거머쥐고 있을지도 몰랐다.
다만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그 직전에 날아오르는 내 자신이 아름답게 느껴져 이곳에 왔다. 그것은 내가 회사 임원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어서도, 내 주변에 남은 사람이 하나 없어서도 아니었다.
나는 평생 서 있는 사람으로 불리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자리에 앉는 일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바쁘게 돌아다녔고 내 일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나는 선 채로 오르고 올라 이곳까지 왔다.
죽음이었다! 나의 바로 선 수직의 삶의 종착지는 무한히 올라가는 계단이 아니라 바로 이곳, 다시 처음으로의 낙하였다. 실제로 나는 처음 이 회사에 왔을 때 저 일 층에서 근무했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내려가는 일은 실제로도, 은유적으로도 추락이었다.
하지만 그 추락 전에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비상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 가장 높은 곳에서 뛰어오른다면, 나는 누구보다 높은 곳에 있게 될 것이다. 나의 추락 전에 나는 가장 높은 곳에 오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서 이곳에 왔건만 자꾸 내 발이 방향을 바꿔대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정말로 공포일지도 몰랐다. 무엇에 대한 공포일까.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문득 쳐다본 하늘에 새 한 마리가 지나갔다. 무엇보다도, 저 태양보다도 높아 보여 나는 그만 비상을 포기했다.
집에 도착했다. 큰 돈을 주고 산 이 집은 같은 아파트 내에서도 최고층이었다. 엘리베이터로 약 삼십 초가량을 올라가면 나오는 곳. 문은 새것처럼 광이 났고 문고리는 방금 전에 닦은 듯 반짝거렸다. 나는 그 문고리에 내 지문을 찍었다.
이곳은 그 어디보다도 조용했다. 밤에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는 거리는 미개한 이들의 작은 집합처럼, 모이고 흩어지는 작용을 반복하는 어떤 현상처럼 보였다. 그것은 때로 원형을 이루고 그것의 중심을 향해 회전하곤 했다. 주로 백화점이나 학교 같은 것 말이다.
그것들의 본질은 잠시 의미를 상실하고 그것들의 움직임은 그 중심으로부터 의미를 얻는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발걸음은 중심적인 구조물들의 산물이었으며 나는 그 사이 꼭대기에서 그것을 관찰하는 관찰자였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기보단 창가에 앉아 분주한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그것들의 움직임은 그 본질이 중심에서 비롯된 것으로써, 어떤 목적을 가진 개별적인 존재체로 보기보다는 한 본질의 일부로 보는 것이 옳아 보였다.
나는 그런 건물의 중심에 있었다. 그것들을 보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모이고 흩어지길 반복하며 움직였고 움직임은 곧 반복이었다. 그들의 반복은 결과를 초래했고 그 결과는 중심에서 얻어지는 본질에 기여하거나 그곳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집 안에 있으면서도 집 밖의 것들을 사랑했다. 집 안의 것들은 그저 나의 생존에 기여하는 작은 장치뿐이나 다름없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오히려 내 안에 존재하는 나의 장기들과도 같은, 나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랬기에 내가 밖의 것들을 사랑한 것이다. 그것들의 각각의 반짝임과 그것들이 자아내는 통일성과 개별성은 내게 탄성을 안겨주었고 나는 나의 탄성마저도 그 일부로 삼아 사랑했다.
그랬기에 나는 바보였다. 나는 내 무식한 발육에 대해 내 자신에게 수치심을 느꼈다. 나는 내 안에 또 다른 세계를 품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안을 들여다볼 줄 모르고 바깥만을 쫓는 인간이었다. 그것을 일찍이 알아버린 나는 그렇게 피하지 못할 바보의 운명을 맞이했다. 그 만남은 결코 따스하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것을 그만두고 약을 찾아 탁자로 향했다. 내가 먹는 약의 이름은 센시발정, 그것은 삼환계 항우울제였다. 고리가 세 개라는 알 수 없는 이름 말고는 아는 것이 나는 없었다. 다만 그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이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가족이 없었다. 일찍이 부모님을 잃은 뒤 쭉 혼자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난 고독을 좋아하지 않았다. 고독은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주었지만 나를 떠날 줄을 몰랐다. 그래서 나는 고독을 멀리하려 했고 고독은 굶주린 늑대처럼 내게 달라붙었다.
센시발정, 나는 그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어째선지 발바닥부터 다리, 사타구니를 지나 머리의 정수리까지가 찌릿거렸다.
다시 창 앞에 앉았다. 나는 움직이는 객체들을 내려다보다가 그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들은 그저 제 본질만을 찾아 움직이는 맹목적인 짐승들일 뿐이었다.
나는 내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따듯한 이불 사이로 나는 고개를 내밀었다. 내 짧은 발가락이 침대 옆의 탁자와 부딪혔다. 나는 비명을 지르는 것을 까먹어서 소리를 지르지 않고 아파하다 뒤늦게서야 소리를 질렀다.
아악!
그 비명을 자신이 비명이란 걸 잊어버린 비명이라서 참으로 공허했다. 비어 있는 비명이 사방을 울리더니 다시 내게 돌아왔다. 나는 그 공허에 응수했다.
아악!
다시 비명을 질러 보았다. 이번에는 분명한 의도가 담긴 비명이라서 그런지 힘이 강했고 본래의 공허한 비명을 반사해냈다.
이제서야 움직이지 않는 것이 행복이라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누워 있는 상태는 어떤 공포와 위기와도 동떨어져 그저 혼자 오롯했다.
나는 다시 사유하기 시작했다. 누워 있는 것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하나의 흐름을 일으키는 태풍의 눈이 된다. 다르게 말하면 오롯한 본질이 되는 것이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물, 음식, 탁자, 로션 등의 사물들은 오로지 나를 목표로 한, 그러니까 존재의 본질을 나에게서 나누어받는 객체들이었다. 나는 움직이는 존재자에서 하나의 흐름을 일으키는 본질로 승화되었다.
나의 추락은 어쩌면 추락이 아니라 그저 전환일지도 몰랐다. 수직적인 상태는 그저 높이 올라갈 뿐 그 끝이 없었다. 하지만 수평적인 상태에서는 이미 끝에 닿아 있고 그 넓이를 넓혀 나갈 뿐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날개는 접히고 어쩌면 접혀 기다리는 상태가 온전할지도 모를 그 날개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하늘을 날아버린 바보를 아시오?
나는 내 자리에서 끊임없이 움직였고 고정되지 않았소. 그것은 나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격하시켰고 나는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소. 나는 그저 시대의 거리를 지나는 행인에 불과하였소. 건배.
나는 어떤 형태가 유사함을 띨 때 그것은 같은 성질을 공유하는 것이라 믿었소. 그와 같은 성질은 다양한 목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랴서 이것은 모순과도 같소. 목적은 이미 오롯하나-오롯하다는 말은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 것인지 모르겠소-그 목적은 또다른 수단이 되고 그렇게 오롯했던 목적은 의도를 띠게 되어 그 가치를 상실하오. 그래서 같은 성질을 공유하는 물건은 서로 모순으로 얽혀 있고 그 자체도 하나의 목적이자 수단으로써 하나의 운동하는 계를 이루오. 그것이 사회이며 거기서 움직이지 않는 객체는 중심이 되오.
본질은 그 자체에 목적을 두는지 모르겠소. 건배.
나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행위를 나는 하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분명히.
나는 움직이지 않는 것에 의미를 두었을 뿐, 움직이지 않는 행위는 분명히 어떠한 행위이다. 그래서 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내가 뜻을 둔 것에 가장 성실히 임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나는 의미를 찾아 모험을 떠났다.
이내 몸을 일으켰다. 약을 먹을 시간이었다.
약은 나를 몽롱하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는 사유하기 가장 좋은 상태이다. 나는 약을 먹고는 다시 침대를 파고들었다. 이번엔 어떤 생각을 해 볼까. 마음이 설레어 왔다. 어쩌면 조금 서글플지도 몰랐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 침대에 대해 생각했다. 그저 존재할 뿐인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편승한 나는 또다른 의미를 가진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 허영심을 채워 나갔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허영심 채우기에 불과한 것을 알고 있었고 나는 손을 뻗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무언가라도 하던 시절로 돌아가 볼까.
노트북을 꺼내 워드를 열었다. 그리고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없어 아무 말이나 적었다 지우길 반복했다. 그리고 나는 문장을 적었다.
하늘을 날아버린 바보를 아시오?
제법 마음에 들었다. 접힌 날개가 간질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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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희수님. 이상의 '날개'를 모티브로 써주신 글 같네요. 앞서 올려주신 다른 글과 비교했을 때 이 글은 보다 사유 전개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고통과 허무, 허영, 회의 같은 감정을 문장을 잘 벼려 주신 것 같고요. 다만 인물이나 상황 설정이 구체적이지 않다보니 세련된 문장들이 어떤 감정선을 만들지 못하고 그대로 흩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문장에 공을 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문장을 믿고 이야기를 어떻게 펼쳐보일 것인지를 고심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