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길
- 작성자 김종이
- 작성일 202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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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394
잠이 오지 않아 숙소에서 나왔다. 차가운 새벽공기를 마시며 깜깜해진 언덕길을 내려왔다. 길은 숲을 등지고, 계단이 없는 흙길에 제법 완만했다. 나무 기둥과 뭉툭한 줄로 이어진 위태위태한 난간이 양옆에 있었다. 맞은편에는 갈대밭과 탁 트인 바다가 길을 마주 보고 있으며, 언덕길 맨 끝에 작은 의자가 있는데 등받이가 없고 표면이 굉장히 거칠거칠한 고동색 의자였다. 길을 내려온 나는 의자에 앉아 잔잔히 흘러가는 바다를 지켜봤다.
새벽 3시의 이곳은 저녁때와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햇빛을 담아냈던 갈대는 어느새 잠잠해졌고 바다에 비친 주황빛 노을은 사라져 달이 되었다. 모든 것이 고요했다.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문득 휴대폰을 꺼내 어제 보지 않은 문자를 봤다.
●귀하는 계약직 채용 절차에서 불합격하셨음을 안내드립니다.
“..... 하…”
벌써 몇십 번 째인지 모르겠다.
“더 해야 할 게… 있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곧 얼굴 전체에 번져서 흉한 꼴이 되었다. 바다한테 소리쳤다.
“내가 하지 못한 말이 있었어? 더 잘할 수 있었을까?”
바다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소리쳤다.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냐고!!”
“거기 누구 있나?”
“죄송합니다…”
주인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이곳에서 산책을 하신다고 한다. 내 목소리가 숙소까지 들린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눈물은 다 흘렸고?”
“... 네….”
더는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께 내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는 담담히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여기서 저 같은 사람은 없었죠?”
괜히 민망해서 질문했다. 할아버지는 의외의 대답을 하셨다. 매년, 매달.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온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최근 이곳에서 목숨이 끊은 사람이 있었지. 딱 자네 나이였어.”
“네?”
빛이 들지 않는 시각, 취준생 청년 한 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바로 이곳에서.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막막한 마음에 물었다.
“그야 나는 모르지.”
할아버지의 말씀에 조금 당황했다. 작은 충고라도 들을 줄 알았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신 뿐이야. 누구도 내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으니까.”
조금 전 할아버지와는 다른 너무나 쌀쌀한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옆모습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 슬픔이 가득 차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고요하기만 한 바다를 지켜봤다.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덕길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다.
“해는 다시 뜨고 아침은 오지. 자네가 좋은 답을 찾길 바라겠네.”
나는 새벽달을 바라보며 할아버지의 말씀을 곱씹었다.
어느새 달도 자취를 감추고 해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어두웠던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맞다. 내 길은 내가 찾아야 한다. 다시 아침이 오니까, 다시 해는 뜨니까. 의자에서 일어나 돌아갈 준비를 했다.
다시 보는 언덕길은 나무기둥을 간신히 붙잡고 올라가야 할 정도로 굉장히 경사져 보였다. 가로등 하나 없는 이 비탈길을, 잘 오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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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이님 안녕하세요. 냉혹한 현실을 그려내면서도 한 줄기 희망의 실마리를 놓아두는 소설이네요. 전반적으로 건강한 인상을 주는 분위기가 좋습니다만 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설정상 조금씩 무리를 하지 않았나 싶어요. 우선 자기의 취업 시도 결과를 문자로 통보받았을 때, 그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주인공이 그 문자 메시지를 새벽 3시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서 처음 확인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이미 확인했지만 여행지에서 굳이 한번 더 보는 것으로 설정하거나, 꼭 그 시각 그 장소에서 보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다는 (독자가 납득할만한) 설명이 부연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여행자 숙소를 운영하는 주인 할아버지가 새벽 3시에… 산책을 다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까요? 흔히 노인들의 새벽잠이 귀하다고는 하지만 매일 손님을 맞고 오전 11시부터 체크아웃 손님들의 방을 정리하는 등 큰 건물을 관리하는 고강도 신체활동을 하는 분이라면 매일 새벽 3시 산책 습관을 갖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여 최근 주인공 또래의 청년이 숙소 근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만약 내가 보았다면 그를 살릴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품고 새벽 3시만 되면 자연스레 눈이 뜨이게 되었다는 설정 등이 부연된다면 납득이 한층 쉬워지기는 하겠지요. 소설로 보여주고 싶은 바가 뚜렷하다는 것은 상당한 강점입니다만, 보여주고 싶은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신중한 선택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며칠 전 하현상 - 등대 라는 노래를 듣고 영감을 받아 짧은 소설로 써봤습니다. 많이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