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온 귤
- 작성자 성민
- 작성일 202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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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날아온 귤이 내 손안에 있다. 귤의 꼭지는 별 모양이고, 껍질은 진한 주황색이다. 분명 평범하기 그지없는 귤이다. 아니, 귤이었다.
오랜 친구인 지아는 제주의 땅에서 기른 귤을 나에게 매번 보내주곤 했다. 집엔 귤나무가 있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지아의 귤은 우리 집에 도착했다.
지아는 귤을 판매하기도 하는데, 달달하고도 신, 호불호 없는 맛이라 인기가 많다. 아마 돈이라면 돈대로, 귤이라면 귤대로 넘쳐날 것이다.
그렇게 잘 팔리는 귤 농장의 이름은 -우주 정거장-이다.
왜 “우주”일까?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당장 지아에게 연락했다.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비밀 하나 알려줄게. 내가 키우는 귤나무는 우주에서 왔거든.”
의기양양하게 말한 지아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벌써 지아와 10년지기인 나는 안 봐도 지아의 표정을 알 것 같았다. 저건 분명 장난치는 것이다.
만약 지아의 말대로라면 “정거장”은 제주도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구는 우주 안에 있고, 제주도는 지구 안에 있으니까.
인터넷에 “우주 정거장 귤”로 서치를 해보았는데, 리뷰가 꽤 많았다.
하나도 터지지 않고 깨끗하게 왔다느니, 다른 귤은 너무 셔서 아이들이 못 먹었는데 여기 귤은 적당한 신맛으로 아이들도 잘 먹는다느니, 앞으로 귤은 여기서만 먹을 거라느니. 호평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걸 보는 나도 귤 하나를 까서 내 입에 넣었다. 음, 역시 맛있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지만, 나를 반겨주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귤이 가득 들어있는 귤 상자였다.
적어도 5명 이상의 가족이 이틀은 먹을 수 있는 양이었는데, 그만큼을 1인 가구인 나한테 보내준 것이다.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귤을 많이 먹는 편이 아니라 썩을까 봐 걱정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성과를 보면 귤을 남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까스로 귤을 다 해치웠던 날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일주일은 꾸준히 먹었는데 급하게 먹느라 체했던 적도 있다. 귤이 대체 뭐길래 나를 힘들게 해! 라고 생각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지만, 지아의 정성을 생각해서 최대한 맛있게 먹으려고 했다.
이렇게만 본다면 귤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억지로 먹는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래. 억지로 먹는 거 맞다.
어릴 때부터 귤보다 딸기, 딸기보다 복숭아를 찾았던 나는 귤이라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누가 주면 먹기는 하지만, 그렇게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단짝 친구인 지아가 스무 살이 되자마자 제주도로 날아갔다.
지아는 농장을 운영할 거라며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게 이뤄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꽤 커다란 규모의 귤 농장을 운영하던 지아는 그제야 주변인들에게 귤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귤 나눔을 시작한 때는 귤을 팔아 벌어들인 돈이 꽤 모여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남은 귤을 팔지 않고 나눠줘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덕분에 겨울마다 우리 집에는 귤이 끊이질 않는다.
물론 나도 멍청하게 귤만 까먹고 있던 것은 아니다. 가족들에게도 나눠주고, 회사 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내 친구가 귤 농장을 하는데 거기에서 보내줬어. 한 번 먹어봐.”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몇 년간 귤을 천개쯤 먹었을 때부터 이상 현상은 시작되었다.
귤이 “별 맛”으로 느껴졌다. 진짜로 “별 맛”. 별난 맛이 아니다. 하늘에 떠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그 “별” 말이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별은 먹어본 적이 있나요?”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별 맛이다.
환상적인 맛이 내 입을 감싸고 톡톡 튀는 스프링클 같이 입이 즐거워진다. 어쩌면 귤에서 별이 자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저번에 보았던 리뷰 중, 스쳐 지나가 신경 쓰지 않았던 리뷰를 다시 찾아보았다.
‘귤 맛이 환상적이네요~ 이런 귤은 처음 맛봅니다. 번창하세요~^^’
이 사람 말이 맞았다. 환상적!
지아에게 당장 이 현상을 물어봤다. 내가 지금까지 맛보던 귤의 맛이 아니라고.
지아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내가 말했잖아. 우주에서 온 귤이라고. 내 농장에 와보면 왜 우주인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듣고 나는 제주행 비행기표를 샀다.
한 달 뒤, 회사에 연차를 내고 지아의 귤 농장을 구경하러 갔다.
비행기는 느릿느릿 하늘을 날았다. 사람의 몸만 가지고는 갈 수 없는 구름 위를 떠다녔다. 창가 쪽에 앉은 나는 그 풍경을 카메라로 담았다. 인화해서 진아에게도 보여줄 예정이었다.
주소를 겨우 찾아가 지아를 발견했다.
지아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게 얼마 만이야! 너무 반가워!
그리고 나는 드디어 우주 귤 농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집에 들어가 차라도 한잔하려는 지아를 붙잡고 급히 농장으로 갔다.
지아의 귤 농장은 평범했다. 정말로 평범했다. 그저 귤이 통통하고 무엇보다 맛나 보인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지아는 말했다.
“어때, 다채롭지 않니? 귤을 자세히 봐봐.”
아무것도 다른 점이 없는데 지아가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병원을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귤에 미친 사람이 있을 줄이야.
나는 내 미각이 잘못되었다고 판단을 내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다. 귤의 환상적인 맛을 느끼고 바로 비행기표를 끊다니. 정말 즉흥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대체 어디가 다르다는 거야. 귤 모양이 다른 것도 ... .”
“쉿. 자, 여기.”
...!
귤은 밤하늘을 머금고 있었다. 놀라웠다.
별의 껍질을 벗기니 귤락은 별자리를 만들고 있었고, 과즙은 비처럼 내렸다. 귤의 꼭지는 물론 별이었다.
바로 한 입 먹어보았다. 역시나 맛있었고 귤나무의 옆에는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지아가 있었다.
아까는 잠시동안 내가 귤을 너무 많이 먹어서 미쳤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지금은 지아의 농장이 우주라는 걸 인정한다.
이 정도 됐으면 그냥 속아주자.
“귤이 진짜 우주에서 온 것처럼 맛있네. 지아야 번창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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