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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그 짐승

  • 작성자 지존
  • 작성일 2025-02-09
  • 조회수 942

 섬 절벽 가장자리에는 납작한 둔덕이 하나 있었는데, 그 정체가 무덤이라는 사실은 외양으로 친절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시신을 찌그러진 흙더미로 묻는다는 발상은 세간의 인식에서 장례보다는 고인 모독에 가까웠다. 풀도 듬성듬성 비뚤게 자라 머리털을 북북 뜯긴 두피 꼴이었다는 점도 봉분의 초라함을 배가시켰다.


 하지만 결정적 요소는 아니었다. 실로 초라한 까닭은 역시 실제로는 아무것도 묻히지 못했다는 진상이었다. 육지에서 나고 자라고 고통도 받고 죽었건만 여자는 뭍의 뿌리까지 돌돌 말려 물에 잠들었다. 그러나 시신을 처량하게 매장한 장본인은 자신의 조치에 만족했으므로, 닿지 못할 온갖 부정적 감상은 다 함께 어깨동무를 짜고 물러가야 했다. 시든 무덤을 껴안은 바람만 가늘게 울고 흩어졌다.


 직접 남긴 추념의 흔적을 딛고 허리를 곧게 편 그는 이날 오롯이 밤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막막히 비명을 지르는 바다는 냉기로 굽이쳤다. 어둠이 스며든 푸른 몸을 비틀며 발악하는 광경은 오늘도 그를 평안케 했다. 달도 흐릿한 은빛 손길로 흐뭇하게 날뛰는 물살을 쓰다듬었다. 암초를 긁어 손톱을 갈고 날을 세워 불어오는 질풍이 그의 긴 머리카락을 마구 흩날렸다. 거친 돌과 풀이 얽힌 절벽 끝 무덤 위에서, 그는 안식의 시간에도 이곳의 일부인 양 행세했다. 자연물조차 감지하고 움츠리는 고약한 이질감을 풍기면서도 가장 조화로운 모습을 지켰다.


 평화롭게,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거친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고 외면당하며 피어오른 물보라는 어둠 속에서 희미한 반짝임을 품었다. 그는 짐승이 깨어지며 반짝이는 순간을 관찰했다. 관찰에는 의도가 있었다. 자신의 관찰로는 짐승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이 젓고 저은 기다림의 깊이를 잴 수 있었다. 그는 짐승을 통해 무언가를 돌려받고자 했다.


 그가 여자를 바다로 던진 것은 큰 그림의 일문이었다.


 땅에 묻힌 것은 돌아올 수 없었다. 땅은 죽음을 그대로 포용했다. 죽은 자를 부동의 토양으로 붙잡고 잘게 쪼개 새로운 삶의 주인으로 빚기 바빠 고대로 돌려보내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되찾아야 하는 것을 땅에 묻어서는 안 되었다. 그는 자신이 허락하지 않은 타인의 죽음에 어떻게 대처할지 판단할 수 있을 만큼 현명했다.


 바다는 이미 분에 겹도록 살아 있는 한 마리의 짐승이었다.


 견딜 수 없는 생명력을 분출하기 위해서였다. 바다는 전신을 수 갈래의 파도로 찢었다. 무수한 파도는 서로의 지느러미, 갈퀴와 비늘을 엉키었다 풀려나는 흐름에 가두었다. 그는 짐승의 움직임에 매료되었고 가능성에 도취되었다. 살아 있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짐승의 뱃속에서 죽은 것은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여자가 죽자, 죽자 짐승은 그에게 여자의 잔상으로 치장되었다. 육지의 허무한 이별과 공허한 애도 이상을 바다 저 무모한 짐승은 자신에게 물어 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당연하게 바다를 선택했다. 여자를 바다에 묻었다. 짐승의 깜깜한 아가리에 그가 손수 쑤셔 넣었고, 바다는 머잖아 자신의 보물을 토해 낼 터였다. 그는 여자의 죽음 후에도 평화를 누릴 수 있음에 안정을 찾았다. 매듭을 지어 놓은 기다림으로 그의 입꼬리는 미소를 맺을 수 있었다.


 그 굳은 미소가 마침내 만개했다.


 수면의 한 지점에서 그림자가 떠올랐다. 샘에 고인 연기처럼 부드러운 암영이었다. 그림자는 곧 그의 여성으로 형체를 이루었다.


 여자는 육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흐물거리는 다리로 파도를 위태롭게 걷어올리며 나아갔다. 녹아 흔들리고 찰랑거리는 살가죽은 은은한 광채를 머금고 있었다. 희고 약간은 붉고 속은 검게 빈 자태였다. 어느새 상냥해진 바닷바람이 달아오른 그의 귓가에 얄밉게 부채질하고는 훅 사그라들었다.


 그는 그저 굳어 있었다. 파도가 흐물흐물한 허리를 감고 밀어 허옇게 뒤엉킨 살덩이를 해변으로 끌어올렸다. 바다 낱낱의 동작이 여자의 육신에 냉정히 실린 모양새였다. 마지막 물숨이 발목을 놓고 그렇게 여자가 해변으로 던져졌다. 밤 공기에 노출된 피부는 맥없이 갈라지며 묽은 액을 흘렸다.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은 지켜보는 그가 숨을 몰아쉬게 했다.


 여자는 팔로 추정되는 부위를 들어올렸다. 매달린 살점이 희멀겋게 일어나 축 늘어졌다.


 그의 심장이 덜컹거렸다. 그건 당장 달음질쳐야 한다는 신호였다. 무덤에서 뛰어내린 그는 발에 불을 붙이고 내달렸다. 발밑의 돌은 채고 걸음은 미끄러졌으나 멈추기란 가당치도 않았다. 머리에 몰린 김으로 뇌가 모락모락 찌고 터지는 것만 같았다.


 쏜살같이 모래사장에 다다른 그는 진한 만족감에 마비가 올 지경이었다. 기적적이었다. 외피의 퉁퉁 불고 녹고 흘러내리는 잔재에서 그가 새긴 괴롭힘의 흔적을 여전히 읽을 수 있었다. 그의 손끝에 다시금 닿은 여자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온 것은 썩은 짐승의 울음소리였다.


 여자는 자신의 믿음처럼 돌아왔다. 기대보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더는 자신을 떠날 수 없었다.

 이런 경사에 그는 절로 사지를 펄럭거리고 있었다.


 헐떡이는 그의 엎질러진 그림자는 모래로 스며들었다. 아무렇지 않게 밀려온 또 다른 파도는 반짝임을 흩뿌린 채 잠잠하게 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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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서련

    지존님 안녕하세요. 문장이 아름다워요. 고유한 문체를 이미 갖추고 있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홀린 듯이 끝까지 읽고서 느낀 작지만 분명한 문제는, 이 소설에서 서사를 추동하는 ‘왜’와 ‘어떻게’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바다에 던진 시체는 어떻게 해서 생명(물론 인간의 생명은 아니겠지만요)을 얻은 걸까요? 또한 그는 왜 여자를 바다에 던졌고, 되돌아온 여자를 반기는 이유는 또 뭘까요? 독자가 느낄 법한 의문이 소설 내에서 해명된다면 훨씬 더 근사한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 2025-03-31 15:11:33
    박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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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졸려라

    댓글이 삭제 되었습니다.

    • 2025-02-27 11:14:45
    아이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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