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기능
- 작성자 달해
- 작성일 202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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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156
전화기 너머로는 옅은 숨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교실 안 학생들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나가는 모습이 꽤나 우스워 보였겠지. 나는 팔을 쓸어내리며 복도 중앙으로 몸을 기울였다. 화면 속 통화 시간은 어느새 7분 9초를 넘어가고 있었다. 수업 중이라고, 나중에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멈춰버린 것은 우리 뿐이니까. 교실로 돌아와서는 내색하지 않으며 교과서 속 글씨를 이어갔다. ‘가족의 의미와 기능’ 오늘의 수업 주제였다. 뒷 주머니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규칙적으로 흐르던 판서 소리가 길을 잃자, 학생들의 집중 역시도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나는 뒷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 전원 버튼을 지그시 눌렀다.
응급실의 연락을 확인한 건 그 후로 3번의 수업 종이 더 울린 후였다. 전화를 받기 무섭게 김자영 씨의 보호자가 맞냐며, 확실과 불안 사이 그 중간 즈음에 위치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만 들었음에도 이미 여러 번 전화를 돌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선뜻 대답할 수 있을 만한 질문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이름을 오랜만에 들었던 탓도 있었지만, 보호자라는 단어가 곱씹을수록 나의 신경을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표면적인 뜻 아래에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 이라는 속뜻을 모르지는 않았다. 병실로 들어가자, 김자영 이름표가 붙은 침대에는 가장 김자영 씨답지 않은 사람이 누워있었다. 불과 5년이란 시간 동안 어머니는 지금껏 살아온 모든 세월을 온전히 신체로 맞이한 사람 같았다.
“아팠어?”
뱉고 난 직후에도 멍청한 질문이라 생각했다. 아팠냐니? 아프지 않았다면 지금껏 연락 한번 없던 아들에게 간호사가 대신 연락을 취하게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 역시도 적절한 대답은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가정교사가 되기 위해서 쌓아왔던 지식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소정의 수술비와 조금의 걱정뿐이었다. 어머니의 메마른 입이 조금 움찔거렸다. 수술은 필요 없다고. 어머니의 말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당황해 있는 사이 어머니는 재차 수술은 필요 없다고, 휴대폰이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휴대폰을 가져와 줄 수 있겠냐고, 말문이 트인 어머니는 한 단어에 꽂힌 5살의 아이처럼 휴대폰, 그 말을 계속해 읊조렸다. 처음 보는 어머니의 낯선 모습에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내뱉지 못한 말은 차의 시동을 건 후에야 한숨으로 튀어나왔다. 시동이 걸린 차량의 미세한 떨림이 핸들을 타고 손끝으로 옮겨졌다. 어머니를 마주하고 있을 때 느끼지 못했던 기억들이 뇌리를 스쳤다.
신호 대기를 하고 있자 문득 아내에게 전화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네비게이션 화면이 켜져 있는 휴대폰을 슬쩍 본 뒤 시선을 그쳤다. 운전을 하고 있었다 말한다면 아내 역시도 이해할 것이었다. 아내와 가졌던 아이는 다섯 살이 됐을 무렵 주차장에서 후진하던 학원 차량에 치여 죽었다. 아내는 대학 강연을 하고 있었고 나는 가정 교과 수업을 하던 때였다. 그곳에는 아들과 어머니뿐이었다. 남은 수업을 내팽개치고 영안실로 향했을 때, 희미하게 보이는 먼지들이 아들의 코 주위를 저공비행 하듯 배회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 기이한 광경에 튼튼하게 묶여있던 신경들이 이상하게 뒤틀려 몸 이곳저곳을 정체시켰다. 아내는 한참을 울었다. 내가 그나마 멀쩡해 보였던 걸까, 어머니가 다가와 중얼거리듯 말했다. 많이 운다고. 붕대를 두른 어머니는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문을 열자 펭귄 캐릭터가 그려진 매트가 보였다. 아들이 자그마한 손으로 모서리를 뜯어놓던, 그 상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한동안 차단 되어있던 어머니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기능이라곤 문자와 전화뿐인 휴대폰은 특유의 불쾌한 진동음을 방 한구석에서 내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어 보인 뒤 이리저리 살폈다. 휴대폰은 예전 개통한 그대로였다. 화면을 열자 옅은 불빛이 깜빡깜빡하더니 작은 직사각형 안,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장례를 치른 뒤로 아들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앨범을 버리고 사진을 지웠다. 그랬던 아들이 어머니의 휴대폰 화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작은 화면을 보다 보니 눈이 시려왔다. 어머니에게 작은 크기의 휴대폰을 사드렸던 게 처음으로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문득 옆 거울을 봤다. 굽은 허리를 따라 올려다본 머리는 대부분이 희끗했다. 내가 이렇게 늙었던가. 지금껏 멈춰있던 것은 어쩌면 나뿐이라고. 나는 휴대폰을 들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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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과 '멈춰버린 것'을 시제로 작성한 글입니다.현대 사회에 들어서며 소홀해진 가족 간의 소통을 주제로 잡아봤습니다.어설프고 조악한 글이라고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조언을 주신다면 감사히 받고 다음 글에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