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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

  • 작성자 김희수
  • 작성일 2025-04-11
  • 조회수 809

그녀의 마음에서 사랑 같은 것은 이미 썩어 떨어지고 가학적인 욕정만이 남은 것 같았다.

그녀가 근로하는 신식 교도소에서, 언제나 교도관 정복을 단정히 입은 그녀는 일명 썩소라고 불리는 미소를 띤 채 자기 담당 구역을 순찰했다. 그녀의 현대인의 위엄에 걸맞는 시니컬한 정신상태는 수감자들을 대할 때 주로 유지되는 편이었다.

교도소의 복도는 길다. 그 설계적인 특징은 때로 지나친 수감자의 숫자를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나의 작은 사회의 규모를 나타내는 표인 것 같기도, 감옥 속 감옥 속 감옥 속 감옥인 죄수의 숫자를 그려 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 현정은 그 긴 복도를 돌아다니면서 방 하나하나를 관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팠지만, 어차피 무정물에 가까운 감방 속 생명체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그녀의 알 바가 아니었다. 어쩌면 완벽한 시스템 속에서 교도관은 수감자들과 단절되어 있을지 모르는 노릇이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구조만이 아니라 체계적, 심리적으로도 수감자들의 머릿속에 감시 카메라를 심는 현대식 파놉티콘은 일부 정신병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반항할 생각을 그치게 한다. 이중 삼중으로 통제되는 감옥 속에서 교도관은 장식품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매 감방에 카메라가 설치된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모든 카메라의 모든 장면이 분석되고 보고되는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감정 없는 AI는 지치지도 않는지 수감자들의 손짓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분석해냈다. 그럼에도 현정이 모든 감방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단순히 카메라가 비추는 각도가 감방의 구석구석까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현정은 감시 카메라 속 AI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역할이기도 했다.

1. 현정이 느끼기에 언제나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건 곧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같고, 그런 면에서 교도소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또한 언제나 무언가의 일은 벌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뭔가 사건이랄 만한 것은 현정의 작은 일탈 뿐이었다. 

교도관들 사이에서 그것은 1015라고 불렸다. 죄수번호 1015가 사건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었다. 답답함을 못 이겨 동료 죄수와 교도관을 공격했던 1015는 현정의 감시 아래 102일째 독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덩치가 작고 귀여운 외모를 지닌 1015는 교도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교도소에 들어온 것은 폭력적인 남편을 끝내 공격했다가 벌어진 일로, 수감 이후에도 그녀는 가끔씩 누군가를 공격하려 하는 발작 증세를 보였다. 그런 특징들은 현정의 욕구와 맞물려 1015를 가학적인 본능의 노리개로 만들었다.

그녀가 독방에서 나올 법하면 항상 그 시점에 맞춰 뭔가 일이 터졌고, 1015는 잠시의 자유를 맛본 뒤 다시 독방에 수감되길 반복했다. 그러기를 102일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독방에서 대화 한 마디 못하는 1015의 애잔한 모습은 언제나 현정에게 성욕에 기반한 출근 욕구-적어도 현정은 그렇게 불렀다-를 부추겼고, 덕분에 현정은 삭막한 교도소에서 가장 활기찬 사람이었다.

1015에게 공격받은 교도관이 교도소장과 절친하다든가 현정이 왜인지 그 독방 앞에서 매일 수십 분을 보낸다든가 하는 불결한 이야기도 있었으나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1015가 언제쯤 미치냐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미 미쳤을 수도 있었지만 현정 때문에 확인이 어려웠으니 그것은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었다.

2.교도소에 들어오는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들어온 뒤부터는 딱히 다르지도 않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개성은 죄수번호 뿐인데 특이한 숫자를 가진 자들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7월 중순, 7777의 죄수번호를 지닌 수감자가 한 명 교도소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수감자들 사이에 때아닌 폭풍을 불러왔는데, 본래 4777의 죄수번호를 지닌 자가 죄수들 사이에서 왕으로 군림했는데, 그 웃기지도 않은 문화에 7777번은 중대한 위협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4777은 자신의 권위에 심대한 위험을 직감했다. 출근 욕구에 불타는 여자 현정은 죄수번호 문화를 광기라고 불렀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죄수들 사이에서 중요한 문제였고, 4777의 측근 3555와 8234는 진지한 회의에 들어갔다.

"7777을 죽입니까?"

"아니, 그년을 1015 친구로 만들어버리자."

"좆까! 반란을 일으킨다."

그런 절차를 통해 4777을 따르는 한 죄수 무리가 초대형 죄수반란을 준비하게 되었다. 반란의 목적은 죄수들의 권리 찾기가 될 수도 있었고 7777의 퇴출이 될 수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탈옥을 목표하진 않았다. 반란의 날짜는 이틀 뒤, 운동 시간에 운동장에 나온 모든 죄수들이 교도관들을 공격하기로 했다.

반란 당일은 실로 끔찍한 혈투가 아닐 수 없었다. 죄수들의 거친 손톱과 주먹과 발차기가 교도관들을 공격했고 교도관들은 곤봉 등 질서 유지의 상징으로 그들을 때려눕혔다. 유례없는 반란의 결과로 죄수들은 대부분 재판을 또 받거나 이감을 당하거나 해서 형량이 늘어나게 되었다. 4777은 형량이 오 년 더 늘어났다. 현정은 뺨에 할퀸 자국이 남았고 1015의 독방 기간도 늘어났다. 그리고 7777은 새로운 왕이 되었다. 그 이유는 정확하진 않았는데 주로 7777이라는 숫자의 특수성이 작용한 것 같았다.

3. 현정은 오늘도 출근한다. 독방에는 불쌍한 1015가 갇혀 있고 곧 지나가는 교도관에게 욕을 한 죄로 독방 기간이 10일 늘어날 예정이었다. 자유가 주어지는 시간마다 살아남은 3555는 7777에게 어디선가 구한 담배를 바칠 것이고 7777은 어느새 왕이 되어 있을 것이다. 새로 들어온 1234는 7777에 의해 괴롭힘을 당할 것이고, 곧 이감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들은 자기들끼리 잘 놀다가도 학교처럼 울리는 종소리에 모여들어 무정물로 돌아갈 것이고, 그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교도관들은 그걸 보면서 커피를 마실 것이다. 그렇게, 절대왕정과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합쳐진 완벽한 사회 속에서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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