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 작성자 김희수
- 작성일 202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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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이곳은 내가 잘 모르는 곳이었다.
나는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리만치 짙은 수면욕을 느꼈는데, 아마 그것이 나를 이 알 수 없는 장소로 인도한 것 같다. 그것은 이해 불가능한 어떤 현상이나 증상을 이해해보려는 시도에서 발생한 피로감일 수도 있고, 그냥 반복적인-그리고 지극히 현대적인-일상에서 누적된 수면 부족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이 내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음을 난 부정할 수 없었다.
시간은 이미 늦어서 검은 하늘이 나를 마주하고, 지직거리는 가로등 몇 개만이 불안하게 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심어진 나무와 탁 트인 정경으로 인해 나는 이곳이 공원임을 이해했다.
막차가 끊겼을 시간인 것 같았다. 나는 정류장을 벗어나서 공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당장 돌아갈 길을 찾지 않는다면 오늘 집에 가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내 주머니에 든 물건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릴 적 좋아하는 시리즈의 책을 샀을 때, 혹은 장난감을 샀을 때 얼른 꺼내보고 싶어서 설레했던 그 감각. 비록 내가 든 물건은 그런 유흥거리와 거리가 멀었지만 나는 그 오래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벤치 하나를 찾아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내가 직접 메모한 그 수첩을 꺼내 들었다.
-조현병 증상의 망상적인 인지에 관하여
짧게 휘갈겨 쓴 문장 아래로 급하게 적은 글자들이 잔뜩 있었다. 기자로 생활하면서 조현병이라는 정신병에 대해 강한 끌림을 느끼고 병원까지 방문한 나의 기록물이다.
이미 조현병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나는 직접 내 눈으로 그들을 보고 싶었다. 그것은 그림책 속 사자를 동물원에서 직접 보아야만 하는 어린아이의 고집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수첩을 읽으며 내가 겪은 일들을 떠올렸다. 직접 환자들을 본 경험과 의사와의 인터뷰가 교차되었다.
-강현, 28세, 무직
내가 만난 환자가 이 사람이다. 우연이지만 그와 나의 이름, 나이가 같아서 그를 선택했다.
나는 잠시 그 만남을 떠올렸다.
"강현 씨 맞으세요? XX신문사 기자입니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제 이야기는 이미 전달받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터뷰 수락도 하셨고요."
그 사람은 언뜻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는 것처럼 헛소리를 중얼거리거나 격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시선을 내게 잘 맞추지 못했고 거의 강박적으로 창문 쪽을 돌아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가 등장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내 말을 듣고 놀라지 않았다. 그는 아마 병에서 기인했을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며 내게 대답했다.
"네, 네...안녕하세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개의치 않고 작은 의자를 끌어 앉았다.
"몇 가지 질문 좀 하겠습니다."
그 질문 내용과 대답들은 모두 내 수첩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의사들이 말하는 소위 망상증은 언제부터 발현된 것 같습니까?"
"저...저는 그걸 망상이라고 말하는 게 조금 거북합니다. 저는 그것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인정하기 어려워서...하지만 제게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난 건 사실이 맞습니다."
"최대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창문 쪽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꽤 오래 그쪽을 바라보았는데, 마치 무언가와 소통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사실 증상...은 오래됐어요. 저는 그냥 사는데 자꾸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더라고요."
중학생 시절, 강현은 축구를 하던 중에 골을 넣었다. 그 궤적이 어찌나 완벽했던지, 지나가던 구단 관계자가 그것을 보고 학교를 찾아왔을 정도였다. 관계자는 강현에게 며칠에 걸쳐 영입을 제안했고, 결국 강현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는 학교에서 엄청난 유명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구단으로 가는 당일, 왜인지 관계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학교에서 그의 인기는 단 하루만에 사그라들어서 아무도 그의 이름조차 모르게 되었다.
내가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강현은 학창 시절에 축구를 한 적도 거의 없고 구단 관계자가 찾아온 적도 없으며 인기는커녕 처음부터 아무도 그의 존재를 몰랐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로 가면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학생회장이 연설 중에 그에게 고백했다든가, 교장이 이를 흡족하게 여겨 교장실로 불렀다든가 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교장실로 갔을 때 교장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이번에도 내가 조사했을 때 당시 학교 관계자들은 아무도 그런 일을 알지 못했다.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성인이 됐을 무렵 그는 강간을 저지르려는 노숙자 한 명을 공격해서 결국 제압해냈다. 이 일로 그는 용감한 시민상을 받고 뉴스를 탔으며 전국민에게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유명해지고 싶은 재벌들에게 시기를 받았고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었다.
물론 실제로는 아무 죄 없는 노숙인을 한 명 죽이고 정신병원에 수감된 것일 뿐이었다.
그에게 조현병이 생긴 이유는, 의사의 의견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충격 때문일 거라고 했다.
“저는 학교 폭력을 당했는데, 사실 그것까진 버틸 만했어요. 막 죽을 만큼 심한 것도 아니었고….”
그는 딱히 밝은 삶을 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 심하지 않은 학교 폭력에 대해 생각보다 잘 대응했다. 물론 정부에서 가르치는 종류의 것과는 거리가 먼 대응이었지만, 그냥 조용히 있는다는 전략은 꽤 잘 통했다. 그가 충격을 받은 것은 다른 이유였다.
“어머니도, 아버지도…제가 그런 일을 당하는 걸 선생님을 통해 알더라고요. 그 말은 선생님도 알고 있다는 거였고…그 사람들은 도와주지 않았어요.”
그 배신감이 그를 정신병으로 이끈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정신과 전문의를 인터뷰해서 받아낸 질문 목록 중 몇 개를 물어본 뒤 내 개인적인 질문들을 했다.
“사람들이 그걸 병이라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죠?”
“믿기진 않았지만 그냥 믿기로 했어요. 내 행복이 병일지도 모른다는 건 예전부터 한 생각이었거든요. 다만 마음으로 납득했다는 건 아니고…그냥 그러려니 했다는 뜻이에요.”
“정신병을 의심했다는 뜻입니까?”
“아뇨, 남들은 제가 행복한 걸 못 참으니까요. 제가 어느 순간부터 행복했는데 그게 가짜가 아니라니 이상했어요.”
그의 마음에는 뿌리깊은 인간에 대한 의심과 혐오가 있는 듯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그의 얼굴은 편해 보였으니까. 낯설거나 받아들이기 싫은 생각을 말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조금 멍해 보일 정도로, 자기 평소 생각을 가감없이 털어놓는 느낌이었다. 그는 마지막에 웃음을 짓기까지 했다.
나는 질문을 계속했다.
“조현병이라는 사실이 고통스럽거나 슬픈가요?”
“딱히요.”
그는 그러고는 다시 창문을 돌아봤다. 나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질문했다.
“당신이 사랑했던 것들이 떠나가는데도요?”
“그럴 수도 있죠.”
“학창시절에 강현 씨에게 고백했다던 그 학생회장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나요?”
“글쎼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축구에 대해 어릴 적 꿈이 있었습니까?”
“아뇨.”
“혹시 지금 창문 쪽에 뭐가 있나요?”
그 질문에 강현의 몸이 딱 멈췄다. 그 전에 뭔가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는 갑자기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잠시 뒤 그가 대답했다.
“없나요?”
그 말에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고 말했다.
“예, 제 눈에는 창문만 보입니다.”
듣던 강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썩은 동태 눈깔로 나를 응시하다가 입만 움직여 웃었다.
“그럴 수도 있죠.”
나는 묘한 불쾌감이 느껴져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하지만 내게 보이는 것은 총기를 잃은 한 쌍의 검은 원 두 개뿐이었다.
눈 같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아무 질문이나 했다.
“병원은 평안하신가요?” 강현은 이번엔 크게 웃었다. 그의 두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가 그걸 숨기듯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게 보였다.
“저는 행복합니다.”
나는 그 대답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일단은 수첩에 쓴 것들을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난 잠시 후 그에게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왔다.
“안녕히 계십시오. 오늘 감사했습니다.”
강현은 다시 창문을 보고 있었다.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서 그가 보던 창문을 보았다. 밖에 뭔가를 붙여 놨는지 창문 밖으로는 검은색뿐이었다. 자살 시도를 막기 위함일지도 몰랐다.
자연스럽게 창문에 나와 강현, 병실 전체의 모습이 비쳤다. 강현은 창문 속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 누군가와 소통하던 게 아닌 걸까.
그때 강현의 중얼거림이 작게 울렸다.
“기자님. 미치니까 아주 행복합니다. 그래서 난 미친 걸지도 몰라요.”
나는 그 말에 알 수 없는 오한을 느꼈다. 난 잠시 그가 미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병원을 떠났다.
어두운 공원. 나는 문득 수첩을 접고 핸드폰을 꺼냈다. 시간을 보니 새벽이었다. 잠시 보고 있자니 핸드폰이 꺼졌다.
검은 화면에 내가 비쳤다.
나와 이름과 나이가 같은 정신병자가 생각났다. 어쩌면 정신병자가 아닐지도 모를 그는 창문 속에서 줄곧 망상 속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을 보고 있었다.
검은 화면에 두 사람이 비친다.
한 명은 강현이고 다른 한 명도 강현이다.
그리고 내 이름도 강현이다.
다시 보니 검은 화면에 비치는 것은 한 사람뿐이다.
그의 이름은 강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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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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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수
- 202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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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수
- 202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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