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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matic

  • 작성자 김희수
  • 작성일 2025-04-14
  • 조회수 678

Sun will shine

It's automatic

                                                -automatic, 우타다 히카루

9시, 그는 7번째 벨에 전화를 받았다.

-기다리고 있었어. 아주 오래, 대략 십 분 정도.

성대가 울려, 잇새로, 입술 사이로, 대기를 타고, 멜로디가 흐른다. 한 말은 짧았지만 그것은 리드미컬했다. 흐느적거리는 듯 끈적했고 느렸으며 한 번 톡, 하고 터졌다. 그러고는 끝없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지만 그것은 무음이 아니었다. 기류에는 달큰한 박자가 녹아 있었고 내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점점 내려가고 낮아져서 들리지 않을 뿐, 그 박자 속에 흘렀다.

그래서 말을 잃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내 사랑은 소리 따위에 갇히지 않는다. 그 조용한 듯한 소란은 무엇보다도 강하게 내 마음을 전도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었다. 정현이 입을 열었다.

-나도 기다렸어. 난 한 달 정도.

그러고는 쿡쿡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한 달 만이다. 이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정현은 몇 년 전 어디로 가는지도 알려주지 않고 떠났다. 그가 남긴 것은 매달 15일마다 연락할 수 있다는 폰 하나뿐이었다. 그 폰에는 이상한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었다. 다른 폰으로는 입력도 할 수 없는 번호였다. 그리고 그 폰은 매달 15일에 맞춰서만 켤 수 있었다. 그걸로 정현의 위치를 알려고 해본다든가 번호를 어떻게든 다른 폰에 입력해본다든가 하는 일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 그에게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그 폰 하나뿐이었다.

이제는 포기했다. 매달 그의 목소리를 그리면서 15일을 그렇게 기다린다. 다행히 언제나 15일에는 그는 전화를 받았다.

-이번 달엔 조금 아팠어.

-정말? 왜? 

-감기 걸려서.

시답잖은 대화지만 한 달을 기다렸다. 나는 최대한 많은 대화를 하고 싶어서, 그동안 생각해뒀던 말을 쏟아냈다.

-나 요즘 책 하나 읽고 있어. 시집인데…

-온라인으로 체스 하고 있다? 나 엄청 이겼어.

-직장 너무 힘들어. 상사가…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잘 대답해주었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무슨 얘기를 듣고 싶은지 전부 아는 것 같았다. 그게 내가 그를 사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 이야기는 결국 같은 이야기로 귀결된다.

-보고 싶어. 언제쯤 올 수 있어?

동화가 늘 해피엔딩으로 끝나듯, 악역은 비극 속에 빠지듯. 내 간절한 질문은 나에게도 독이 되어 돌아온다.

내 마지막 질문은 폭력이다. 나에게도, 정현에게도 그것은 아픈 부분이고 고통만을 가져다줌을 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는 없다. 또 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것이 내가 그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에 품은 전부니까. 

더없이 아프다.

정현은 답 대신 작게 웃었다. 그가 곧 말했다.

-모르겠어.

나는 안녕을 고할 준비를 한다. 또 다른 지옥 같은 한 달이 기다리고 있음에 눈가가 축축해진다. 그 느낌은 정현과의 첫 키스 같았다. 그래서 기분이 나빴다.

그때 정현의 입이 열렸다. 나는 사랑을 속삭이는 달콤한 말을 기대했다.

-다음 달엔 전화 못 받을 것 같아. 핸드폰 갖고 있는 걸 걸릴 수도 있겠어. 정말 위험해서 그래. 걸리면 연락이 아예 끊길 수도 있어. 미안하지만 전화하지 마, 알았지?

하지만 그의 말은 청천벽력 같았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한 달을 더?

-정말 미안, 그럼 안녕.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고, 정현은 내가 할 말을 생각해내기 전에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 또한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기 때문일 것이었다.

또한 내 눈물과 화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었다.


*

rainy days, 레이니 데이즈.

그가 없는 날에 비가 온다.

그가 없는 날이라서 비가 올지도 모른다.

비가 와서, 나는 그가 오지 않음을 안다.

그는 화창한 날에 가서 찬란한 날에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비가 싫었다. 축축하고 끈적거리고, 왠지 불쾌하다. 무엇보다 비 오는 날에 정현이 떠났다. 그래서 나는 비가 올 때마다 집에서 나가기 싫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액체들이 보기 싫어서.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정현이 떠난 7월의 마지막 날.

나만의 기념일이다.

7월 31일이 될 때마다 나는 같은 시간에 일어난다. 아침 7시 반, 일어나자마자 파란 잠옷을 벗고 10분동안 샤워한다. 아침을 먹고 일정을 확인하는 와중에도 나는 강박적으로 기억에 나를 맞춘다. 오늘 내 모든 움직임은 정현이 떠난 그 날과 같다. 이미 정해져 있어서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 날에는 내 곁에 정현이 있었지만, 오늘은 없다. 

나는 혼자서 그가 있는 양 연기한다. 데이트를 위해 카페로 가면 내 몸은 알아서 케이크를 주문하고 창가에 자리를 잡고 빈 반대쪽 의자를 향해 미소 짓는다. 말을 하진 않는다. 다만 계속 바라본다. 그의 모습이 보일 것도 같다.

그때쯤 케이크가 나오고, 케이크를 반만 먹은 뒤 일어난다. 몸은 누군가 실을 달아 조종하는 듯 가볍다. 영화관으로 향해 영화를 본다. 그날과 영화가 달라서 내용을 몰라도 웃음이 나고 울음이 난다. 자리는 두 개 예매해서 오른쪽을 비워두었다.

예쁜 다리를 산책하고, 호수를 돈다. 귀에 낀 이어폰으로 녹음해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대답한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내 뇌는 모르지만, 입이 안다. 무슨 답을 해줘야 그가 좋아하는지 전부 알고 있다. 

이때만큼은 내가 그를 예측한다.

모든 게 자동적이다.

살짝 힘을 빼도 좋다. 정현과의 모든 기억에 나는 이미 익숙하니까. 수천 번 되뇌이고 되뇌었지만 여전히 달콤한 기억들을 나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안다.

모두 자동적으로, 반대 극을 찾은 자석처럼. 정현은 나를 당기고 나는 기억을 당긴다. 자연스럽게, 미처 눈치채기도 전에 그는 내 옆에 있다.

8월 2일에는 나은 줄 알았던 감기가 재발했다. 직장을 쉬었다.

8월 4일, 일을 끝내고 정현과 함께 가던 식당에 갔다. 식당의 모습은 너무 익숙해서 영원할 것 같았다.

8월 7일, 길거리에서 고양이를 봤다. 다리를 절었는데 내가 다가가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 모습를 보지도 못했는데도 그랬다.

8월 8일, 정현과의 전화가 일주일 남았다고 생각하다가 저번 대화를 떠올렸다. 하루종일 기분이 안 좋아서 아이스크림을 잔뜩 먹었다.

8월 10일, 정현의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려 보았다. 별로 닮지 않았지만 나중에 주려고 서랍에 넣어 놓았다.

8월 12일. 우울증이 도져서 자해를 했다. 잘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이유도 없이 기분이 나빠졌다.

8월 13일.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의사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겉으로는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처럼 신기했다. 

8월 14일. 켜지지 않는 폰을 만지작거리다 직장에 늦었다. 팀장은 화를 냈다.

8월 15일. 광복절이라고 직장에 안 나갔다. 언제나처럼 정현을 상상하며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의 목소리를 이어폰을 통해 들으며 자리에 앉고 잡담을 나누다 텔레비전을 켜서 아무거나 보았다.

9시, 나는 켜진 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정현의 목소리가, 그의 말들이 그리웠다.

7번째 벨이 울린다. 잠시의 침묵 속 달큰한 기류를 느끼려 했다. 눈을 감았다. 할 말을 생각한다. 오래 기다렸어, 이번엔 이십 분 ....

그리고 8번째 벨이 울렸다.

나는 귀에서 폰을 뗐다. 

정현의 말이 그제야 생각났다.

잊어버린 게 아니다. 내가 정현의 당부를 잊었을 리 없다.

내 몸은, 그냥 자동적으로-

뚜, 뚜, 뚜.

전화 연결이 끊기는 소리.

내 몸이 습관을 벗어났다. 

황급히 폰을 들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그날로 전화는 다시는 연결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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