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리치오 II
- 작성자 김희수
- 작성일 202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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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784
카프리치오 II를 아십니까? 그, 기상곡 말고. 카프리치오 II라는 이름의 피아노 소나타 말입니다.
그걸 작곡한 안씨는 악곡의 거장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연주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음악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지만, 아무튼 거장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음악가들 특유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놀라운 참신함 같은, 그런 게 부족했습니다. 그는 그저 그런 음악들만 작곡하는 그저 그런 인물이었지요.
<민들레 소나타>나 <장미>같은, 이름부터 고리타분한 음악들이 그의 커리어 전부였습니다. 안씨는 주목받고 싶었지만 세간에서 그의 평가는 좋지 못했어요. 달리 팬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도 없어서 실패한 음악가로 보였습니다. 그는 돈이 없어서 공사판을 전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태생부터 음악가라서 몸이 허약했고 운동을 해도 근육이 잘 안 붙는 체질이었습니다. 뼈도 약하고 병도 잘 걸리고, 그래서 일을 못 나가다가 잘리는 일이 허다했지요.
그의 외모를 묘사하자면, 아실수도 있겠지만, 창백한 피부에 등은 조금 굽었고 눈가는 움푹했습니다. 입매나 눈이 신경질적으로 얇고 음울한 느낌을 줬는데 그래서 호감을 사는 인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생 누구와도 깊이 친해지지 못했어요. 그것은 그의 외모 탓도 있겠지만 성격적인 결함도 있었습니다. 일할 때는 최대한 참는 듯했지만 결벽증이 심했고 온갖 강박을 가지고 있어서 예측이 전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 사람을 좋아해줄 선한 인물들이 그의 곁에는 별로 없었던 거겠지요. 그가 환한 웃음을 짓는 것은 음악을 대할 때뿐이었습니다. 그는 그 단단하지만 고전적인 틀 안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 프레임이 꽉 잡혀서 코르셋처럼 몸을 조이는 감각을 즐기는 것 같았어요. 한 번은 자기는 속박에서 자유를 찾는다고 제게 말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그 의견을 흥미롭게 받아들였지만 공감해주긴 어려웠지요.
안씨는 천재를 동경하고 재능 없는 자들을 멸시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조차 매우 싫어했는데, 음악적으로 수준이 너무 낮다고 항상 우울해했습니다. 또한 천재적인 음악은 자기로서는 작곡할 수 없는 것이라서, 노력도 이제는 의미가 없다고 말하곤 했지요. 저는 솔직히 어느 날 그가 어딘가로 훌쩍 떠나거나 투신을 해도 놀라울 게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럴 정도로 불안정하고 어느 의미로는 조금 미친 사람 같아서, 품위 있는 클래식에 그의 광기가 어울리는지는 조금 고민을 해봐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어쨌든 안씨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 대학 동기였던 저와 그나마 연락을 하고 살았습니다. 저는 그와 음악적인 이론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위대한 음악가들의 작업물들을 들으러 다니곤 했지요. 그는 음악적인 품위를 잃고 싶지 않았는지 연주회 같은 곳을 갈 때마다 항상 정장을 잘 다려 입었습니다. 그는 없는 형편에도 그 정장만은 아주 아꼈지요.
하지만 그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도 상태가 안 좋아졌지요. 어쩌면 정신의 문제 때문에 육체마저 쇠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건강 악화에는 그의 주변인 한 명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A라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A는 안씨와는 정반대의 인물이었습니다. 아주 자유로운 음악성을 추구했고 틀에 매이는 걸 싫어했습니다. 언제나 밝은 성격이었고 모든 사람과 잘 지냈죠. 무엇보다 그는 천재였습니다. 그가 작곡한 음악을 들어보면 당신도 알 것입니다. 그가 천재라는 것을요. 그가 만들어내는 멜로디는 단순히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어떤 감상을 주었습니다. 주로 시원하다거나 뻥 뚫리는 것 같다는, 그의 성격에 부합하는 종류의 것이었어요. 그리고 안씨는 그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음악가였고 음악에 대해 잘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형식을 사랑했기 때문에 오히려 A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보기에도 A의 음악은 훌륭했고 형식 없이도 분명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습니다. A의 음악 그 자체가 사실 안씨의 음악에 대한 부정에 가까웠습니다. 그가 강박과 결벽으로 만들어 낸 편집증적인 음악은 A의 멜로디 하나에 부서져 내리곤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아예 상대가 안 되었지요. 후자는 대충 만든 것처럼 보여도 아주 복잡하고 뛰어난 구조가 숨겨져 있었고, 전자는 선대의 위대한 음악들을 억지로 따라 만든 것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그 둘의 음악을 비교할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재능의 차이라는 것, 음악적 감각의 차이라는 것이 아플 만큼이나 강하게 뇌리에 박혔기 때문이었습니다.
A는 이미 어느 정도 유명해져서 스스로 작은 연주회를 열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작곡 실력만큼이나 뛰어난 연주로 상을 휩쓸었고 피아니스트들 사이의 트렌드를 만들어낼 정도로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한때 A 때문에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경쾌하고 빠른 연주를 자기 스타일로 삼았죠. 안씨는 그런 A를 싫어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까운 지인으로 둘 정도였지요. 그건 확실히 의외입니다. 아마 안씨는 개인의 취향을 음악적 완성도에 포함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기는 객관적 시선을 버리지 않았다는, 일종의 증표 같은 것으로 그를 주변에 남겨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와 안씨는 A의 연주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안씨는 싫어하진 않았지만 기대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시간은 흘러 연주가 시작되고, 저와 안씨는 A의 연주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언제나처럼 빠르고 경쾌하며 가벼운 분위기로 곡을 이끌어갔고, 그것은 편곡을 하지 않았음에도 완전히 다른 노래를 듣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원래 곡을 망치지 않으면서요. 저는 과연 A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건 천재적이었어요. 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종류의 연주였지요. 그걸 이미 본 지금도 따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연주회가 진행될수록 안씨는 조금씩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습니다. 확실히 그의 스타일과는 맞지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그는 그걸 불평할 만큼 수준 낮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연주회 후반부에는 A가 자기가 작곡한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청량하고 시원한 연주였고, 저와 관중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꼭 웅장하고 무거울 필요 없이, 순수한 즐거움뿐으로 음악을 감각하는 기회였지요. 하지만 이때쯤 와서 안씨는 얼굴에 깊은 어둠을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싫어하는 종류의 연주인데도 자연스럽게 그 흐름에 동조할 수밖에 없을 만한 연주에 충격을 다시금 받은 거지요. 그는 자신의 연주를 넘어 삶 전체를 성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중 마지막 곡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카프리치오라는 이름의 피아노 소나타였습니다. 그때까지도 안씨는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었습니다. 연주 시작 즈음, 저는 A의 입가에 드리운 미소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회심의 미소 비슷한 것이었어요. 왜인지는 몰라도 저는 그게 안씨를 겨냥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첫 번째 멜로디가 시작하고, 중간쯤 갔을 때 안씨는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그의 눈에 그 특유의 광기가 서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점점 씻겨 나갔습니다. A의 탁월한 연주와 작곡 센스, 그 중 어떤 것이 안씨를 건드린 게 분명했습니다. A의 손이 건반을 하나하나 누를 때마다 안씨의 굳은 입가는 더욱 굳어갔고, 두 다리는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것처럼 근육이 팽팽해졌습니다. 손이 자연스럽게 앞 좌석을 짚은 자세가 무언가 폭발하기 직전의 사람 같았습니다. 저는 그를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집중을 무너뜨려선 안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의 표정은 시시각각 바뀌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놀라움, 다음엔 모욕을 당한 것 같은 분노, 그리고 희미한 감탄. 그 일그러진 얼굴을 비집고 결국 환희가 드러나고야 말았습니다. 하지만 거기엔 약간의 절망도 깔려 있었습니다. 저는 느낄 수 있었어요.
연주가 끝났을 때, 안씨는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습니다. 저는 A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그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씨는 피아노를 찾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영감이 떠올라 연주가 하고 싶나 보다, 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길거리에 비치된 공용 피아노를 발견하고는 거칠게 그곳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도무지 안씨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연주를 했어요. 연주 실력 자체는 뛰어났지만 뭔가 변화가 꿈틀거리고 있었고, 곡의 스타일은 놀랍게도 아주 자유로웠습니다. A가 태생적인 자유를 표현한 것 같았다면 안씨는 마침내의 해방을 나타낸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의 연주를 말없이 지켜보았습니다. 독주는 길지 않았고,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제게 인사한 뒤 사라졌습니다. 그는 이후로 반년간 연락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반년만에 그는 완성된 악보 하나, 카프리치오 II를 제게 보낸 뒤 거기에
'여행을 떠난다.'
라고 작게 써 놓았습니다. 이후 그의 행적은 모릅니다.
그 악보는 어설픈 느낌도 있었지만 분명히 자유로웠습니다. 여행을 떠났다는 것 자체가 그런 해방을 나타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카프리치오 II는 제게 악보가 도착한 날 발표되었고, 지금까지의 안씨의 커리어에 가장 큰 흔적을 남겼습니다. 세간의 평가는 좋은 편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제게는 카프리치오 II의 정제되지 않은 버전을 연주하던 안씨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는 매우 고통스럽고 괴로워 보였지만 동시에 뭔가를 발견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카프리치오, 명확한 형식이 없고 즉흥적인 곡.
A의 곡 제목이기도 했던 그 이름은, 안씨의 그 곡에 가장 어울리는 제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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