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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 해방

  • 작성자 지존
  • 작성일 2025-04-30
  • 조회수 1,035

 이곳은 끝자락이다. 지도에서 손가락만큼만 밀려나도 이름 알릴 공간마저 잃을 작고 허접한 어촌. 바다는 서러우리만치 깊고 넓었으나, 마을은 축축한 골목길과 쩍쩍 갈라진 아스팔트, 녹슨 난간의 울타리로 철저히 둘러싸여 있었다. 주인이 떠나간 집들은 빈 소라 껍데기처럼 자리를 지켰고, 잔재와 같은 주민들은 매일을 바닷바람에 쓸려가듯 살아갔다. 어떠한 마음으로든 몸을 앉혔다가는 아예 가라앉으리라 으르는 막막한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이라는 이유로 이 마을을 사랑할 수 없었다. 아니, 나의 터전이라는 정체성은 이곳이 나의 그득한 혐오를 마땅히 삼켜야 하는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꼬질꼬질한 짠내가 베어든 지긋지긋한 공기, 썰렁한 어판장에서 또렷한 고음의 잡담, 종일 비웃음을 실어 보내는 들쭉날쭉한 파도.

 전부, 내게는 작살로 귀결되었다. 죽어라 나를 찌르면서도, 피를 내보내지는 못하게끔 결코 뽑혀 나가지 않았다. 독기의 작살은 꽂힌 그대로 마개가 되어 나를 틀어막았다. 고이는 피는 숨이 도는 내 안의 작은 방에 차올랐다. 피에 잠긴 내장이 최대한 오래 썩을 수 있도록 껍데기를 감옥으로 탈바꿈시키는 잔인한 수작을 부렸다. 실로 피학의 나날이었다. 마을은 그런 작살 천지였다.

 한편 나는 횡사한 무명의 어류 속 고이 남은 내장 같은 것이었다. 물고기의 배를 가르지 않는 한 빛을 받을 수 없었지만, 어부가 칼을 들이미는 어느 날 쏟아진 빛을 품어봤자 썩어가는 실체만을 드러낼 터였다. 물고기, 죽음에 빠진지도 모르고 아가미를 벌름대는 지독한 물고기에 갇힌 나는 불쾌감과 지겨움 속에서 서서히 부패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애향심이라는 단어는 애초에 내게 사용처가 없었다.

 하지만 비교를 넘어선 감상을 내리게 만드는 일련의 이변이 최근 일상을 덮쳤다.

 마을은 두려워졌다.

 전조가 가득했다. 전조, 무엇의 전조? 여기저기 서성이는 외부인 무리를 먼저 언급해야 했다. 내 신경을 가장 거슬리게 했으니까. 몇 주 전부터 나타난 그들은 단언컨대 관광객이 아니었다. 사기를 당하지 않고서야 이곳을 찾을 수 없었고, 사기를 당했다 해도 이곳을 관광지로 오인할 수 없었다. 구질구질한 사정이나 음흉한 목적을 안지 않고서야 일주일 넘게 체류할 수 없는 회색 불모지였다. 주민 중 누군가의 친척도 아니다 싶은 그들은 갈수록 불안하게 어촌을 배회했다.

 그들에게는 공유되는 특징이 있었다. 목이 졸린 양, 튀어나올 기세로 팽창되어 있는 땡그란 눈하며 얼룩덜룩한 오팔 광택을 입은 창백한 피부와 쪼그마한 입으로 이루어진 불온한 외모. 결정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며칠 전 그들 가운데 하나가 방파제에서 바다에 면상을 처박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장면을 목격했다. 물속에서 혀를 휘젓는 모습이 바닷물과 입을 맞추는 것 같았다. 어쩜, 바다와의 굶주린 입맞춤 정도는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현실이었다. 고린내가 밴 길목의 석상을 정성스레 핥고, 도로에서 열정적으로 기어다니고— 갯바위, 테트라포드, 오래된 선착장… 가로등조차 없는 어두운 장소를 잘도 골라 벌이는 그들의 기행은 이만저만 파격이 아니었다.

 실종자도 그즈음 부쩍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출현과 시기가 겹치는 현상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떠났다 치부했다. 우리는 서로의 이별에 무관심했다. 원래 눈치껏 들어 살고, 바닷물 빠지듯 조용히 사라지는 바닷마을이었으니까. 하지만 정착한 인간이 삶터에서 그토록 쉽게 증발하는 법은 없었다. 살림살이를 간직한 채 버려진 집은 빠르게 늘어났다. 한 집 한 집 털어보았을 때 명확해졌다. 짐은 그대로였다. 돈까지도.

 마지막으로 해안의 수상한 흔적이 경종을 대롱거렸다. 이따금 방문한 해변은 항상 무언가의 접근을 시사하는 아리송한 액체, 젖은 부스러기, 살점 비스무리한 덩어리가 널려 있었다. 아, 분명 바닷속에서 왔겠지. 직감이라는 녀석으로 출처를 지목할 수 있었다. 물결에는 불규칙한 그림자가 어룽거렸다. 수면에 자주 드리우는 붉은 기는 바다의 체취와 차별화되는 비린 향을 뿜었다. 안타깝게도 통념과 달리 이것들은 단서로서의 기능성이 전무했다. 삐뚤어진 현상은 혼란을 보조할 뿐이었다.

 마을에 주어지는 불길한 수수께끼는 물론 주민 전원에게 유효했다. 자치회에서 치안 강화 회의를 열었다는 안내가 있었다. 어른들끼리 회관 입구에서부터 열심히 웅성거리던 풍경을 기억했다. 당일 오후 발표된 대책도 똑똑히 기억했다.

 바닷가 근처를 주의하라는 소심한 주의. 그걸로 끝이었다. 내지에 원조를 요청하자는 의견은 반영되지도 않았다. 마을은 모종의 암묵적 합의를 거친 듯 해당 사안에서 한마음으로 물러섰다. 결정권자는커녕 주류에도 속하지 못한 해녀들 몇몇은 갸웃했지만 궁금증을 붙잡지는 않았다. 다들 한 화제를 오래 지키는 법이 없었다. 침묵이 그들을 돌려보내고 박제시켰다.

 당초 개입할 의사가 부재한 학생들은 예사로이 축 늘어졌다. 정신은 흐리멍덩한데다 근시안이 극심한 아이들이었다. 기대를 품는다면 스스로를 실망시키는 행위였다. 소재 부족으로 뻑뻑해진 대화를 굴리고픈 이들은 일련의 사태를 윤활제로 동원했다. 음모론을 세우고 동태 눈깔로 서로의 괴담을 비웃다가 싫증이 난 순간 집어치웠다. 적당한 간격을 확보한 공포는 다룰 수 있었다, 유희로도. 노출된 미지의 자취는 마저 활개를 치게 되었다.

 외부인들은 진상을 꿰고 있다는 양, 자신들은 응당 그러고 있어야 한다는 듯 바닷가를 서성였다. 먹이를 기다리기라도 하는지.

 그래, 확실했다. 바다의 무엇인가가 내 삶에 숨어들었다. 마을을 철썩철썩 적시고 한창 담그는 중이었다. 오기도 의지의 일종인가 하는 의문이 스쳤다. 나를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한다면, 과연 나는 전말을 밝히는 행운을 누리는 역할일까?

 어쩌면. 나도 곧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더랬다.

 천장의 거무튀튀한 얼룩이 시선을 선점했다.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치켰다. 찬찬히 시야에 담은 벽지는 밤새 바람에 들썩였는지 모서리가 기억보다도 말려 있었다. 피로를 떨치려 뒤척이자 눅진한 시트에서 신선한 땀자국이 느껴졌다. 어깨가 뻐근했고 베개는 침대를 이탈해 있었다. 벌써 뼛속까지 방전된 기분이었다.

 잠복하던 두통이 기습하듯 머리를 죄길 신호탄으로 통증이 전신을 휘감았다. 지끈거리는 감각이 스며드는 아침은 끝내주게 불쾌했다. 벌써 하루가 끝나고 실컷 망가진 기분이었다. 애써 나아졌다 이르며 둔한 몸을 일으켰다.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옷가지를 집어 들고 대충 걸쳤다. 바지가 구겨져 있었지만 다리미는 집어던진 여파로 전사했고 나는 옷이건 다리미건 신경 쓸 여력이 고갈된 지 오래였다.

 게으른 토요일 아침, 휴일을 느릿느릿 만끽할 수도 있었겠지만 외출 준비가 신속했다. 삭막한 집 안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숨 막히는 공기와 퀴퀴한 냄새가 두개골 내벽을 긁어댔다. 그건 해석하자면 공간이 행사하는 위협이었다. 순응하고 이 공간의 적막에 일조할 수는 없었다.

 덧붙여 목적지도 있었다. 학교. 수북이 쌓인 벌점을 청산하는 날이었으니까. 나는 자체 조퇴나 결석이 잦았다. 불량아로 분류되는 귀찮은 학생은 아니었다고 자부하지만 바람직한 미성년자도 아니었다. 꾸준히 교칙보다는 나 자신의 자유를 존중했다. 나의 가치관이 표출된 사례 하나하나가 지적을 받았을 뿐이었다. 담임은 의무란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고 설교했다. ‘자원’ 봉사는 언제부터 의무로 쳤나? 교사의 언질을 경청한 적은 없지만 내가 학교에 유일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 졸업장이었다. 그게 주말 한낮 학교 운동장에서 쓰레기를 주워야 하는 경위였다. 다행히도 나는 실행력이 뛰어났다.

 그러고 도착해서는 한참이나 바닥에 고개를 내리꽂고 있었다. 운동장의 모래알은 생각보다 더러웠다. 본래 모래색이겠거니 했던 마사토는 가까이서 관찰에 나서자 먼지가 뒤섞여 거뭇한 빛깔을 토했다. 슬슬 돌입하자 싶어 허리를 폈을 때 드디어 총체적인 전경을 눈앞에 들였다. 더러운 모래가 떠다니는 희뿌옇고 막막한 쓰레기장이었다.

 의아한 일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감독을 예고한 선생이야 실제로 나와 볼 리 없었다. 성실한 교육자는 본교에서 허구의 생물이었다. 재학하는 학교 교사진의 수준은 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함께 출두해야 했을 다른 학생마저 보이지 않는 모습은 다소 의외였다. 통성명도 않은 남학생의 참여를 멋대로 당연시하기도 우습겠으나 나는 꽤나 성실했던 첫인상을 기억하고 있었다. 빡빡한 교정에서 우리는 첫인상만으로도 다채로운 정보 전달을 해내는 법이었다. 묵묵하고 단정한 그 아이는 부당한 책임도 회피하지 않으리라는 성정을 태도로 발산했다. 적어도 충동에 잠식되어 지시를 어길 유형은 아니었다.

 남의 사정으로 지핀 참견은 싱겁게 비벼 끄고 뻑뻑한 집게를 두어 번 맞부딪혔다. 몬스터 에너지 캔, 구긴 휴지, 오예스 포장지, 녹슨 손톱깎이, 핫바 막대, 빼빼로 곽, 몬스터 에너지 캔, 바나나킥 봉지, 콘칲의 반짝이는 비닐 겉면, 몬스터 에너지 캔. 간식 수요 조사를 한다면 조사 장소로는 운동장이 좋겠다. 귀찮은 작업이지만 분노가 솟거나 하지는 않았다. 살다 보면 벌점을 적립하고, 쓰레기에 허리를 숙일 수도 있었다. 일어나도 괜찮은 사건들이었다.

 유유자적 운동장을 정화하던 중, 나는 무언가를 포착했다.

 체육 창고 외벽에 기대어 있는, 기다란 검은색 인형. 웬 인형? 고개를 푹 숙이고 긴 다리는 八자로 뻗은 인간의 형상이 엿보였다. 축 늘어진 모양이 인형 이외의 가능성을 상정하기 어려웠다. 나는 자극의 손짓에 응했다. 집게를 내려놓고 성큼성큼 다가갔다.


 갑작스러운 구경꾼을 감지한 작고 까만 거미들이 사사삭 달아났다, 인형을 남겨두고서. 거미 일행이 황급히 식사를 무른 자리에 남학생의 체구를 한 시체가 나타났다. 먹이로 전락한 인간의 가련한 잔해였다. 호기심은 그 광경에 푹 찔린 거품처럼 터지고 사그라들었다.

 아, 단단히 악수를 뒀다. 이건 도망쳐야 했던 이끌림이었다.


 쿵.


 둔탁한 소음에 담긴 음침한 생동감이 나를 불러세웠다. 외벽 너머에서 전해진 소리였다. 자명하게도 발생의 근원이 창고 내부에 있다는 뜻이었다. 벌어진 문틈을 그때 발견했다. 체육 창고 문은 처음부터 살짝 열려 있었다.


 내가 내려야 했던 선택은 아무래도 좋은 듯했다. 그쪽에서 먼저 나를 응시하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젠장맞은 문틈은 더 벌어졌다. 젠장.


 젠장!

 거미.

 창고에 웅크리고 있던 생명체가 여유롭게 기어나왔다. 운동장 흙바닥을 거무스름하고 굵은 다리가 경쾌하게 더듬었다. 메마른 살점이 먼지와 엉켜 눌어붙어 있었다. 윗마디로 다리가 꺾이는 지점이 나의 명치에 이르는 길이였다. 경직된 머릿속을 거미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창고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었을 때 나는 부자연스러운 인간의 얼굴과 마주했다.


 잘못 봤나 하는 착각은 없었다. 본 것 그 자체가 감각에게서 거역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닐 때 의심은 자랄 여지를 잃는다. 사고의 지반이 압도되어 씨앗조차 심을 수 없다. 거미를 닮은 위협의 존재감은 그만큼 뚜렷하고 강렬했으며… 고약했다.


 대단한 방사능의 조화로도 이런 돌연변이의 탄생은 가히 무리였다. 늘씬한 농발거미에 인간이 어중간하게 주입된 혼종의 형체였다. 넓게 찢어지고 어색하게 벌어진 입은 올라간 입아귀 덕분에 언제나 웃는 인상을 자아낼 터였다. 미세하게 들썩이는 육중한 복부는 빵빵한 창자가 역류하여 뭉친 탱글탱글한 빨래판에 비유할 수 있었다. 가장 거슬리는 건 인간스럽지도 거미답지도 않은 목이었다. 작은 다리 같은 돌기가 꿈틀대는 목이 길디길어, 인면 거미는 고개를 쳐들고 가로등에 필적하는 높이에서 인간을 내려다보아야 했다.


 그것은 용접이라도 당했나 싶은 짓무른 눈으로 싱글싱글 기묘하게 처진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우위가 선사하는 여유를 뿜었다. 미지와의 조우에서 필연적으로 인간의 정신이 배출하는 공포를 음미할 시간을 가졌다. 즐기겠다는 선명한 마음가짐이 커다랗다는 감상을 제치고 등줄기에 얼음을 미끄러뜨렸다.


 장난하냐 감상이 앞서나갔다. 예측되던 전개에 당치도 않은 포식자가 난입했다. 여태 예고장은, 바다에서 툭툭 던져온 주제에, 정작 들이닥친 건 거미 괴생명체였다. 바다와 아무런 연도 없는. 나는 그토록 분할 수가 없었다.


 과분한 불만임을 깨우쳐 주기라도 하려는지 인면 거미가 기다란 목을 씰룩거렸다. 그리고 마저 다리를 쭉쭉 뻗어 사냥터로 나섰다. 내가 있는 곳. 나는 이미 다음 저것… 그의 다음 끼니였다. 그의 그림자가 발끝에 드리운 다음 순간 운동화 밑창이 흙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본능의 지도 아래 몸을 내던져 달렸다. 숨이 꽉 막혔다. 호흡이라는 활동에서 폐를 주무르는 기분을 맛보았다. 흙먼지를 맞으며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다리가 근육을 쥐어짜며 허공을 갈랐다. 후방에서 무언가 일정한 박자로 날렵하게 움직였다. 스스로에게 뒤돌아볼 틈도 허락할 수 없었다. 한 걸음만 밟혀도 꿰이는 추격전의 규칙을 숙지하고 있었다. 달리고 달리고, 학교를 벗어났다. 귓가에 울리는 심장의 북소리에 가쁜 숨결이 휘감겼다. 


 부둣가 가장자리에 이르자 세상은 조용했다. 어느새 정면에서 바다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코끝에서 일렁이는 소금기와 발밑에서 튀는 물보라가 어지럽게 환영 인사를 흩뿌렸다. 마른 숨을 고르고, 필사적으로 몸을 바로잡았다. 지면을 사정없이 긁던 다리들의 마찰음은 끊겨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비인간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과연 이다지도 조잡한 발악으로 따돌릴 수 있는 존재였을까?


 뒤통수의 솜털이 쭈뼛 섰다. 벌레가 스멀스멀하는 기척이 잇따라 등가죽을 찔렀다. 돌아보는 결과를 예측하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다소곳이 서 있었다.

 바닷바람에 미끄덩 흐트러진 머리칼, 자글자글한 미소, 평온한 기색.

 하지만 아무리 얌전히 뒷짐을 지고 있어도 나체로 평화롭게 외출하는 성인은 없었다. 타자의 상식을 인용하려 들어도 상식의 법칙을 준수할 수 없는 그들에게는 역효과가 났다.


 마시는 숨이 차가워졌다. 잠시 비릿한 공기가 맴돌았다.


 “달리기. 빠르던데." 너덜너덜한 입꼬리에 촘촘히 잡힌 주름이 흔들렸다.


 다리가 들렸다. 건재한 본능이 직접 다리를 옮겼다. 그래도 도망치려고 했던 걸까? 내 이성은 본능의 영향력이 미치는 모든 세포에 협조하라 빌고 있었을 터다. 아마도. 발은 반사적으로 발은 활로를 트려 했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이 실현 가능성을 이탈해 버렸다. 도망은 이다음 선택지가 못 됐다.

 그는 정말 천천히 걸어왔다.


 "운. 좋아." 그의 입꼬리가 위로 휘어지려고 했다. 중간에 꼬꾸라졌지만. 인간식 근육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내. 마음에. 들었어."


 그의 몸이 쪼그라들며 요란하게 일그러졌다. 위장을 벗었다고 해야겠지. 축축한 피부가 갈라지며 아래턱이 벌어졌다. 불규칙한 배열의 날카로운 이빨 무더기가 그의 본 얼굴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는 입안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중 두툼한 송곳니가 물기 어린 광채를 뿜으며 어깨에 안착했다.


 뒤로는 바다, 나머지 사방으로는 거미. 기어코 죽음이 무르익었다.

 기름지고 냉한 감촉이 사지를 감쌌다.

 나는 그의 집요한 습격을 맞이했다.


 비실비실한 구름의 끄트머리가 흐물흐물한 태양을 덮은 찰나 비명, 비명이 나왔다. 온몸을 비틀었다. 그럴수록 더 큰 비명이 나왔다. 찢어진 살이 벌어졌다. 이빨은 부러진 주삿바늘처럼 파고들었다. 뿌두둑 하고 힘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닌가?


 그는 입을 털더니 다시 벌리고, 턱을 분주히 놀려 옷을 벗겨내는 양 살점을 큼직큼직 시원스럽게 뜯어냈다. 사납게 흘러나온 피는 그의 턱을 뜨겁게 적셨다. 피와 살점이 한순간에 터져 나와 이룬 질기고 붉은 물결이 짐승의 턱에서 흘렀다. 진동하는 비린내가 고통을 앞서는 악력으로 신경을 조였다. 쭈욱. 근육이 찢어졌고, 나는 힘없이 비명을 흩뿌렸다. 그는 깊숙이 박은 이빨을 뒤틀며 육체를 북북 찢었다.


 살이 찢기고 뜯기고 먹히면서, 그렇게 조금씩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진 것은 찢기고 뜯기고 먹히는 아픔이었다. 나 자신은 점점 가벼워졌다. 가장 가까이 다가온 고통이 가장 멀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뼈를 물어뜯는 소리가 울렸다. 질겅질겅, 갉히고 으스러지는 감각이 파도치듯 번져 갔다.


살아 있다고 할 상태는 아니었다. 나는 죽기 직전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직 심장이 허우적거리고 억센 뇌가 깨어 있는 것이었다.


 어째서 하필 나인가 하는 서러움은 없었다. 저것에게 딱히 나였어야 하는 놀이는 아니었다 믿었다.


 생각해 봤자 변화는 없다. 나는 먹힌 것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만족감이 엄습했다. 고로 의미가 있었다. 내가 해체 당한다면, 빛 아래에서 낱낱이 드러난다면 뱃속에 갇히는 내장 따위 없었다. 죽은 후 자신의 일부가 썩지 않는다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아직까지 버티고 붙어 있던 얼굴 조직이 즐거운 표정을 그렸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나는 이 순간, 악취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쭈욱 찢긴 목살에 대롱대롱 매달린 머리가 마침내 뜯겨 나갔다. 늘어진 숨이 멎고, 의식은 영원히 닫힐 예정이었다. 면전의 생물이 피의 웅덩이로 마침표를 찍는 집요한 포식자라 꽤나 다행이었다.


 나는 어디로 갈까?

 바다?

 역시 바닷속이려나.

 악취 속에서 빛을 머금고 떠오를까.

 천근만근 무거운 육체의 구속을 아직은 벗지 못한 영혼이 계속 저 밑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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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28
꽃처럼

천손, 니니기노미코토가 하계에 내려온 일을 오오야마츠미는 기쁘게 여겼다. 대대로 미와 영속을 더불어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는 천손에게 두 딸을 시집보냈는데, 나란히 니니기의 동반자를 자처한 이들은 꽃의 신 코노하나사쿠야히메와 바위의 신 이와나가히메였다. 그러나 니니기는 둘을 모두 아내 삼는 대신 미모의 코노하나사쿠야히메만을 취하고, 이와나가히메는 추하다는 이유로 곧장 돌려보냈다. 오오야마츠미는 진노하여 니니기의 어리석은 행동을 꾸짖었다. ‘이와나가히메가 있어 바위와 같이 영원하고, 코노하나사쿠야히메가 있어 꽃과 같이 번영할 수 있기에 나는 여식을 나란히 바쳤다. 만일 둘을 함께 맞아들였다면 천손은 피고 지지 않는 영광에 싸이었을 것이다. 천손의 선택으로 후생은 눈부시게 피어나되 찰나에 쇠하여 질 운명이다.’ 이리하여 영원을 내친 천손 내리의 생은 그저 피고 지는 꽃을 닮게 되었다. 이것을 인간의 삶이 꽃처럼 덧없는 세계의 시발점이라고 한다.壱—자네가 오늘의 호위군! 잘 부탁하네. 혼란의 시대란 어느 때보다도 인간에게 꽃을 영사한다. 진득한 윤곽이 말라붙어 인간을 뜻이라는 하찮은 이름으로 낙화시키고 차안의 기저에 깔아 정도(正道)라 하는 길을 수놓는다. 헤아릴 길이 남아나지 않을 때까지, 쌓인 꽃을 길로 착각하기에 이르기 전까지 난분분한 낙화는 멈추지 않는다.—최근 막부 타도니 존왕이니, 당치도 않은 망발로 나 같은 중역을 베려는 불한당이 판쳐서 말이지. 자네처럼 실력 있는 검객을 호위로 붙이지 않고서는 안심이 되질 않아. 여느 평화 속에서든 꽃이 지듯 어느 혼란 속에서나 꽃은 핀다. 지기 위해서라고 해도 지는 인간은 저무는 꽃답게 열매를 맺는다. 누구라도 원한을 쉬이 맺는 세상이다. 원한이 열매와 같이 맺히고 따이는 치열한 순환의 현장이다.—이거 원, 외출도 편안히 못하겠다니까. 사법성의 고위 관료로 재직하는 고용인은 능청을 피우며 말을 걸어왔다. 명백히 자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아니꼬운 거드름이었다. 살집을 내두르는 피둥피둥한 풍채로 시름을 연기해 봤자 목숨을 위협 받고 있다는 느낌은 결코 닿지 못한다. 아직이라고 할까, 정적이 우선적으로 노릴 재목이 못 됐다. 물론 있기나 하다면. 나는 솜씨가 좋아서 막부의 고위 인사를 호위해 달라는 비싼 요청도 금세 쇄도했다. 실력을 향한 감탄이 싫지도 않았고, 칼잡이人斬り(ひときり) 노릇은 즐거웠다. 보수를 받고 인명을 해치는 상벌의 역로만큼 뒤집힌 채 굳건한 질서도 나의 기꺼운 발견도 없었다. 무엇보다 고향을 한참 벗어난 내가 에도에서 대성하려면 돈이 필요했다.—아, 그래그래. 이쪽은 내 참모 사다토시일세. 동행할 예정이니, 유사시에는 이쪽의 안전도 부탁해. 고용인이 설렁설렁 가리킨 자리로 눈길을 보내자 어느새 조용히 합류한 남자가 작게 허리를 숙였다. 과연 참모 같다는 인상의 남자였다. 20대 후반으로 추정됐지만 꽉 찬 고뇌로부터 긁어 쌓은 연륜이 젊음을 앗아간 지 오래였다. 예리하게 째진 눈매는 그을음처럼 묻은 피로에도 불구하고 또렷하게 번뜩였다. 지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희귀한 양복을

  • 지존
  • 2025-09-01
뒷면

삼촌이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몹시 슬퍼하셨다. 그해 여름 방학은 시름에 잠긴 아버지를 따라 삼촌의 집으로 향했다. 유족은 떠난 가족의 흔적을 모아 오는 막중한 임무를 띤다고, 칙칙한 옷을 입히던 가정부 아주머니는 그랬다. 그렇게 매년 떠나는 해외여행은 삼촌의 물건을 정리하는 침울한 유품 원정으로 대체되었다. 그곳까지는 차 안에서 질릴 때까지 졸고도 더 있어야 하는 먼 길이었다. 이전에 나를 데리고 방문한 적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정작 삼촌네를 찾아가게 된 날 나는 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는 운전대를 잡는 옆태가 이미 독한 슬픔으로 젖어 있어서, 금방이라도 울어 버리겠다 싶은 불안감이 차를 모는 내내 공기를 꽉꽉 눌렀다. 삼촌은 과묵한 남자였다. 행동은 조용하고, 딱딱했고, 기분은 읽히는 법이 없었다. 만사 관심을 두지 않는 무심한 인상이었다. 감정이 굳은 근육으로부터 자유로운지도 의문이었다. 닫힌 채로 메말라 있는 삼촌의 입은 그런 궁금증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눈. 삼촌이 죽은 지금 괜히 무안해지는 감상이지만, 어둠으로 뒤덮인 그 눈에 스치는 순간마다 살갗을 걷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간의 눈이라면 자연히 서리는 정기가 깊숙이 가라앉아 있었다. 묘한 인간의 표본이라 해도 좋았다. 아버지에게는 그런 삼촌이 참 존경스러운 형이었던 듯했다. 정확히는 이복형이지만, 둘의 관계에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아버지에게 있어 관계의 출발선에 지나지 않았다. 삼촌도 나름 아버지를 아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아버지 대의 복잡한 가정 형편 속에서도 여태 친분을 유지한 사이였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가끔 아버지가 삼촌의 미소를 옅게나마 자아내는 신비를 목격했다. 삼촌은 웃고 있어도 어딘가 쓸쓸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떨어져 지내느라 삼촌이 형 노릇을 할 시간이 적었다고는 해도, 아버지에게는 따뜻한 인상을 남긴 일화들이 있을 터였다. 단지 그건 삼촌에 대해 내가 느낄 몫이 아닐 뿐이었다. 그날 오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삼촌의 집에 발을 디뎠다. 도착한 교외의 주택은 정갈하지만 단조로웠다. 주변의 생명이라고는 이파리를 죄다 잃은 비리비리한 나무가 다였고, 정면으로는 일직선 도로가 조용히 펼쳐져 있었다. 스쳐 지나가면서나 보고 말 지루한 풍경, 하얀 몸을 하고 옅은 햇살을 담담하게 받아내는 삼촌의 집은 세상으로부터 은신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위치 선정이 묘한 삼촌다웠다. 실내로 거침없이 들어서는 아버지를 나는 조심스레 뒤따랐다. 현관문 너머 일자로 곧게 뻗은 복도 끝에는 맨들맨들한 계단이 보였다. 마른 공기가 온 집안에 감돌고 있었다. 정말이지 생활감이 증발한 집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무래도 계획이 있으셨던 아버지는 거실로 직행했고, 뒷모습을 끔벅끔벅 바라보던 나는 무심코 2층으로 올라갔다. 분업 정신이라도 발동한 걸까. 목적지는 삼촌의 서재였다. 삼촌이 읽은 책이나 사용한 만년필이 있으면 챙기고 싶었다. 서재 안쪽 벽은 창문이 넓게 나 있었고, 계단보다도 맨들맨들한 책상이

  • 지존
  • 202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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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치콕
    최고에요

    러브크래프트의 [데이곤]이나 또 다른 초고를 읽는 듯한 재미가 있어요. 서서히 조여오는 미스터리를 강점으로 살리면 더 좋은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ㅏ

    • 2025-05-01 23:31:28
    히치콕 최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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